제2화
당사자를 추궁해도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이제는 어떻게든 뒷수습을 해야 한다.
“한두 푼도 아니고 그렇게 큰 거금을 빌렸다면 아버지도 뭔가 생각이 있었겠지? 어디에 썼는지 알고 있나?”
“예. 전대 영주님은 앤드루스 제국에서 열린 경매에서 뭔가를 구입하셨다고 했습니다.”
“제국까지 가서 뭔가를 구입했다고? 무려 8,500골드짜리 물건을?”
믿기 힘들다는 밀턴의 말에 행정관이 송구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에게도 그건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물어는 봤지만 알려주지 않으셨기에….”
“그 물건은 어디에 있지?”
“예. 영주님이 직접 관리하시는 금고 안에 있습니다.”
“후우우우….”
밀턴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게 뭔지 몰라도 비싼 물건이겠지? 그렇다면 어설프게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든 그걸 팔아서 빚을 변제하는 게 좋을지 몰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밀턴은 빚을 변제할 수 있는 길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8,500골드짜리 물건이 어떤 물건인지 확인을 해 봐야 알 일이다.
“직접 봐야겠군. 그리고 샌슨 단장.”
“예. 부르셨습니까? 영주님.”
샌슨이라고 불린 중년의 남자가 듬직하게 대답했다.
샌슨 부르노.
나이는 40대 중반의 나이까지 익스퍼트에 들지 못했으니 검에 대단한 재능이 있는 남자는 아니다.
하지만 충성심만큼은 대단했기에 전대 포레스트 자작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가문의 기사단장을 하고 있었다.
기사라고 해 봐야 세 명밖에 없는 가문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샌슨에게 밀턴이 명령을 내렸다.
“토마스 행정관을 당장 체포해서 저택에 구금하라. 죄목은 영주인 나에게 보고해야 할 사항을 숨겼으니 업무 태만이다.”
“예. 영주님.”
“영주님. 제발 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끌려가며 행정관인 토마스가 겁을 잔뜩 먹고 애원했다.
그 모습에 밀턴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중에 결과 봐서.”
일단 가문의 금고에 있는 8,500골드짜리 보물부터 뭔지 확인해야 했다.
‘제발 환금성 좋은 물건이어라.’
가문을 이어받고 영주가 되었지만 아직 밀턴은 가문의 금고를 열어보지 않았다.
사실 포레스트 자작가는 그렇게 부유한 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고라고 해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 무려 8,500골드짜리 물건이 들어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도대체 아버지는 뭘 산 거야?’
불안감과 호기심을 가지고 밀턴은 가문의 금고를 열었다.
금고의 안에는 가문의 중요한 문서들이 있었지만 딱히 다른 귀중품은 보이지 않았다.
“뭐가 8,500골드짜리인 거야. 응?”
밀턴은 서류 뭉치를 뒤지다가 문득 한 장의 편지를 발견했다.
편지의 봉투에는 전대 자작의 친필로 [사랑하는 아들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밀턴이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종이봉투를 찢고 내용물을 꺼낸 순간….
파아아앗!
강렬한 빛이 휘몰아치며 밀턴의 전신을 휘감았다.
“어? 뭐야? 무슨… 웃!?”
그리고 밀턴은 자신의 영혼에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방대한 정보량이기도 했고, 인식 자체를 바꾸는 새로운 감각이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밀턴의 의식으로는 지금의 변화에 저항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헉…. 헉…. 헉….”
모든 것이 끝나고 밀턴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골랐다.
시간으로 치면 5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밀턴에게는 수십 년으로 느껴질 정도로 기묘한 감각이었다.
“이게 도대체…?”
아버지의 죽음에 전생의 각성, 그리고 지금의 영문 모를 일까지….
요즘 들어서 자신의 일상이 너무 크게 무너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밀턴은 자신이 찢은 봉투를 다시 확인했다.
거기에는 하얀색의 백지와 아버지가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밀턴은 우선 편지부터 확인했다.
- 나의 아들 밀턴에게.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것은 내가 죽고 네가 가문을 이었다는 말일 것이다.
정식 유서와 별개로 이렇게 편지를 남기는 것은 너에게만 긴밀하게 전할 말이 있어서이다.
정식 유서와 별개로 남긴 이 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밀턴은 신중하게 한 글자 한 글자를 꼼꼼하게 읽어갔다.
-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샤를롯트 상단에서 돈을 빌려서 제국의 경매에 참가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우리 포레스트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였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 포레스트 가문은 원래 중앙에서 정계의 큰 축을 자랑하던 후작가였다.
하지만 정쟁에 휘말려 가문의 직위는 자작으로 내려갔고 지방의 귀족으로 몰락해 버렸던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친과 조부에게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나 역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확실히 그랬죠.”
밀턴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납득했다.
아버지인 사우스 포레스트 자작은 틈만 나면 가문의 옛날을 그리워하는 말을 하며 술이 약간만 취하면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아들에게 잔소리 섞인 주정을 했던 사람이다.
밀턴은 그런 아버지의 말을 그냥 푸념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지만 본인에게는 진심을 넘어서 사명감에 가까운 감정을 있었던 모양이다.
- 최선을 다해서 가문을 일으키려고 해봤지만, 내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나는 최근 의사에게 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가문의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나에게 제국의 경매에 관한 정보가 들어왔다.
그 경매에 고대의 유물이 등장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샤를롯트 상단에 영지를 담보로 돈을 빌리고 경매에 참가했다.
고대의 유물을 잘 이용하면 우리 영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에서였다.
내가 경매에서 낙찰한 것은 한 장의 스크롤이었다.
고대 시대의 유물이라고 하지만 스크롤의 용도를 알 수 없는 그 물건은 다행히도 경쟁자가 적어서 10,000골드라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 책정을 받을 수 있었다.
“네? 낮은 가격? 8,500골드… 아니 10,000골드가요?”
아무래도 아버지는 빚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자산까지 총 동원하신 모양이다.
냉정하게 생각할 때 낮은 가격은 맞았다.
고대 시대의 유물의 경우 가격에 따라서 10만 골드를 넘어설 때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현대인의 감각으로 치면….
[이번에 람보르기니가 싸게 나와서 샀다. 잘했지?]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감각이었다.
애당초 포레스트 자작가에게 고대 시대의 유물은 분에 넘치는 물건이었다.
그걸 무리해서 산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밀턴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편지에 집중했다.
- 내가 구입한 물건의 이름은 군주의 권능이라고 불리는 유물이었다.
사실 이름 말고는 모든 것이 전무한 스크롤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것이 우리 가문에게 힘을 실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근거로….’
기가 막히다는 말이 아마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놓은 말일 것이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유물은 적성자가 아니면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통상의 스크롤은 누구나 사용이 가능한 물건이지만 이것은 적성자만에게만 효과를 발휘하는 물건이라고 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는 효과를 본다고 해도 가문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너라면 혹시 모른다.
네가 이 군주의 권능과 적성이 맞다면 너에게는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너 역시 이 스크롤에 적성이 맞지 않는다면 스크롤을 다시 팔아서 가문의 빚을 갚도록 하여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우리 포레스트 가문을 다시 영광되게 만들 것을 믿으며 이 편지를 남긴다.
너의 아버지 사우스 포레스트.
편지의 내용은 거기서 끝이었다.
“즉, 아버지가 남긴 유물은 스크롤이었다는 거지? 그런데 스크롤은…. 헉!?”
밀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편지 안에 들어 있던 또 하나의 백지.
그게 왜 백지인 거지?
‘설마? 설마? 제발 아니어라….’
밀턴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 안에 있는 백지를 살펴봤다.
언뜻 보기에는 그냥 새하얀 백지다.
그런데….
“설마….”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다.
“내 10,000골드!!”
10,000골드가 홀라당 날아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자신이 이 망할 놈의 유물과 적성이 맞았던 것이다.
인생 한 방.
전생에서 박문수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몇 번 들었던 말이다.
보통 로또를 노리거나 언젠가 자신에게 큰 기회가 와서 인생이 한 방에 붕 뜨기를 바라며 하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말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다른 의미도 있다.
인생은 한 방에 훅 뜨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 방에 훅 가는 수도 있다.
지금 밀턴에게 벌어진 일은 두 번째였다.
“10,000골드…. 10,000골드라….”
스크롤이 백지가 된 지금에 와서 이 빚은 고스란히 자신의 능력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걸 갚지 못하면 영지는 압류당하고 무일푼으로 쫓겨날 것이다.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어.”
밀턴은 마음을 강하게 먹기로 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나아질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고민이 아니라 행동을 해야 할 때였다.
조금이라도 위안이 있다면 고대 시대의 유물로 가지게 된 자신의 능력에 있었다.
“군주창 오픈.”
밀턴이 그렇게 명령하자 눈앞에 밀턴에게만 보이는 창이 떠올랐다.
[밀턴 포레스트 자작.(영주)]
군주 LV.1
무력 - 45 통솔 - 75
지력 - 55 정치 - 49
충성 - 100
특성 - 카리스마.
카리스마 LV.2 :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해서 신하들의 충성심을 올릴 수 있다.
영지 - 포레스트 영지.
인구 - 7,345명.
자금 - 950골드.
주요 생산품 - 밀, 보리, 귀리.
군사력 - 기사 3인, 기병 5인, 보병 80인. 궁병 20인.
한동안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박문수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밀턴에게 있어서 이것은 익숙한 것이었다.
“게임 시스템이라니….”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이 영지의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것도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영주님. 기사 단장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밀턴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을 열고 샌슨이 들어왔다.
그리고 밀턴이 정신을 집중해서 그를 바라보자….
[샌슨 부르노]
기사 LV.8
무력 - 52 통솔 - 70
지력 - 25 정치 - 22
충성 - 91
특성 - 단결, 분전.
단결 LV.3 : 위기 상황에도 부하들을 흐트러짐 없이 통솔할 수 있다. 매복이나 야습 같은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다.
분전 LV.2 : 자신의 주군이 위급한 상황이 되면 발동한다. 자기 실력의 최대 40퍼센트 이상의 실력을 보인다.
샌슨 부르노라는 자신의 신하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리고 밀턴은 새삼 이 노기사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기사로서의 레벨은 8, 무력은 50이 간신히 넘는다.
일반 병사의 무력이 20정도였으니 기사로서의 무력은 그렇게 높은 게 아니다.
하지만 그걸 다 떠나서 91에 달하는 충성심은 그가 얼마나 올곧은 기사인지 알 수 있었다.
실제 능력치에서도 통솔력이 70이 넘고 단결이라는 특성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그가 부하들을 잘 다스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인재 중에는 그래도 가장 쓸모 있는 인물이지.’
그렇게 생각한 밀턴은 다소 정중한 어조로 샌슨에게 말했다.
“구금시킨 행정관 토마스는 어떻소?”
“영주님의 명령대로 자택에 구금 중입니다. 다른 특이 사항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군. 한번 만나야겠군.”
“이곳으로 데려오겠습니다.”
“아니, 은밀하게 만나야 하니 내가 직접 찾아가겠소.”
“알겠습니다. 영주님.”
샌슨은 두말없이 대답하면서 밀턴의 명령에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