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에 빙의된 나는 무기입니다 3권
8. 촉수로 변한 사람들
“뭐, 뭐야……?”
나는 방금 내 몸을 감싸 쥐려 했던 길쭉하고 미끈거리는 무언가를 본 듯하다.
벌렁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방금 봤던 기분 나쁜 형체를 되새겨 보는데, 나무 틈 사이로 끙, 희미하고 작은 신음이 들려왔다. 시끄러운 폭포 소리 틈으로 정확히 귀에 들렸다. 그리고 그게 루스가 숨을 억누르는 소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
몬스터는 방금 공격 이후로 더는 내게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끈적한 소리가 숲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더해서 루스의 호흡도 아까보다 빨라졌다.
“무, 무슨 일이야.”
금방 몬스터가 녹아내리리라 생각한 것과 달리 나무 틈으로 보이는 표식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더해서 루스의 하얀 머리카락이 나무 틈으로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이상함을 느끼며 루스가 있는 곳으로 주춤주춤 걸어갔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가오지-.”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루스가 빠르게 말을 내뱉었지만…… 나는 보고 말았다. 어두운 나무 틈 사이로 루스와 몬스터의 모습을.
나와 눈이 마주친 루스는 더는 말을 뱉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
루스의 앞에는 바위같이 둥그런 몸통을 지닌 몬스터가 있었다. 눈, 코, 입 어느 것도 없는 몬스터였다. 대신 꿈틀거리는 촉수 여섯 개가 길쭉하게 뻗어 흔들리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쿨쩍, 쿨쩍 끈적하고 불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촉수 중 다섯 개는 루스의 사지와 목, 허리 부근을 칭칭 감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기괴한 장면에 나는 질겁하며 숨을 삼켰다. 그러다 힘겨워하는 루스의 숨소리를 듣고서 서둘러 멈췄던 발을 움직였다.
“루스!”
“다가오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네가 위험하잖아……!”
“아닙니다. 이 정도는 제 마력으로 손쉽게-.”
몬스터에게 붙잡혀 있는 루스는 말을 뱉다 말고 문득 입을 다문 채 촉수로 감긴 제 팔을 쳐다봤다.
나는 루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쳐다봤다. 루스는 제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에서는 하얀 마력이 작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평소보다 흐릿한 기운이었다. 아슬아슬해 보이던 그 마력은 이내 물을 끼얹은 듯 픽 하고 꺼져 버렸다.
멈칫하며 손바닥을 쳐다보던 루스는 주먹을 쥐었다 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노력하는 듯 보이는 움직임에도 루스의 손에서는 더 이상 마력이 피어오르지 않고 있었다. 이어서 눈썹을 찌푸리는 루스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덜컹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왜, 왜 그러는데…….”
잠깐 머뭇거리던 루스는 스스로도 어이없어하는 투로 말했다.
“……마력을 소진해 버렸군요.”
“뭐? 네놈은 마력이 차고 넘치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을 하던 나는 구름에 가려졌던 달빛이 루스의 얼굴을 비추자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이 평소보다 핏기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심상치 않은 안색을 멍하니 보던 나는 뒤늦게 놈에게서 유독 보호 본능이 자극됐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가 실제로 마력을 다 써 버려, 기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마력이 갑자기 소진된 이유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지난 일주일간 최선을 다했지만, 저로서는 기복 님의 방대한 마력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내가 기절했을 때 매일 힐을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할 때도 지금처럼 상당히 창백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상당한 양의 마력을 힐에 쏟아부은 나머지 현재, 소진된 듯하다.
“…….”
루스가 몸을 비트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몸에 칭칭 감긴 촉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력을 소진한 루스는 꽤 높은 레벨의 몬스터의 마력에 속수무책이었다.
루스가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움칠 고개를 들었다.
“내, 내가 곧 구해 줄 테니까 조금만 참-.”
나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어 헛손질을 해야 했다.
심장이 불안하게 쿵쿵댔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고개를 내려 허리 쪽을 쳐다봤다. ……있어야 할 단검집이 허리에 보이지 않았다.
“어, 어디-.”
잃어버릴 리가 없는데, 당황하는 것도 잠시, 여기가 마을 안이라는 점을 다시금 자각했다. 그러고 보니 잠깐 나갔다 올 뿐이니까, 라며 가볍게 산책하기 위해 단검을 챙기지 않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아니, 몬스터가 마을에 나타날 걸 누가 짐작했을까…….
“괜찮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력이 돌아올, 큿-.”
비어 있는 허리춤을 망연히 보고 있는 내게 루스가 달래듯이 말을 뱉을 때다. 루스의 사지를 감던 촉수가 압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빌어먹을, 뭐가 괜찮냐고……!”
어떻게 해서든 촉수를 잡을 작정으로 앞으로 발을 뗄 때다. 촉수 하나가 위로 치솟았다. 그러더니 내가 있는 방향으로 조준하듯 꿈틀대기 시작했다.
나는 곧 촉수가 날아올 것을 직감했다. 촉수의 반대편 방향으로 구를 준비를 했다. 그렇게 촉수가 도움닫기를 하듯 구부려졌을 때 나도 무릎을 굽히며 공격을 주시하고 있던 차다.
날아올 것 같던 촉수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도망가세요-.”
루스가 빠르게 말을 뱉으며 몸을 확 기울었다. 그러자 공격을 준비하던 몬스터의 남은 촉수 하나가 루스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잔뜩 경계하고 있던 나는 촉수가 루스의 몸을 온통 감싸자 기겁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몬스터에게 달려 있는 징그러운 촉수 여섯 개 모두, 루스의 몸을 칭칭 감싸고 있었다.
감색 제복 안으로 촉수 하나가 파고들어 갔다. 촉수는 루스의 상체를 비비듯 움직였고 이내 제복의 단추가 바닥으로 투둑 떨어졌다.
상의가 풀어 헤쳐지자, 달빛 아래로 조각 같은 그의 몸이 드러났다. 촉수는 그의 선명한 복근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맨살을 타고 올라가는 족족 끈적한 액이 흔적처럼 묻기 시작했다.
촉수가 루스의 가슴팍을 지분거렸다. 그러자 루스의 눈가가 짜증스럽게 찡그려졌다.
루스는 촉수를 매우 성가시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혼자 두고 어떻게 가냐……!”
그 모습을 본 나는 주변에 있는 돌을 들고서 촉수 쪽으로 다가갔다. 큰 대미지를 줄 수 있는 건 아니더라도, 공격을 대비해 뭐든 손에 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껏 경계하며 다가갔으나, 몬스터는 이쪽을 공격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번 촉수로 붙잡은 상대에게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몬스터인가 보다.
몬스터의 성질을 파악하고 빠르게 루스의 앞으로 걸어가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기복 님께 이런 한심한 꼴을 보여 면목이 없군요.”
눈이 마주치자 루스의 입에서는 한숨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해 준 녀석을 한심해하겠냐.”
나는 루스에게서 촉수를 떼어내기 위해 돌로 내리쳤다. 그러나 고무 속성의 몬스터라 돌이 튕겨졌다. 예상대로 돌로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저택으로 돌아가서 다른 녀석을 데려와야 하나……. 몬스터가 있는데 루스를 두고 가도 괜찮은 거냐고…….’
복잡한 마음으로 콱콱, 돌로 촉수를 내려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려쳐도 소용없었다. 입술을 짓씹던 차에 위에서 억눌린 소리가 들려왔다.
“읏.”
고개를 퍼뜩 들자, 루스의 표정이 구겨져 있었다. 공격 때문에 압박이 심해졌나 싶어 멈칫했다.
내가 굳어 있는 사이, 루스의 몸이 미끈거리는 촉수로 인해 바닥으로 내려갔다. 딱딱한 바닥에 루스의 몸이 널브러지자, 상체를 지분거리던 촉수도 끈덕지게 아래로 내려갔다. 그 촉수는 루스의 허벅지에서 꿈틀거렸다. 다리를 문지르며 올라가더니 루스의 바지 안으로 들어갔다. 앞쪽이 촉수 모양으로 불룩거리는 게 보였다.
“윽…….”
루스가 힘겹다는 듯이 입을 깨물었다. 촉수는 계속해서 루스의 아랫도리를 지분거렸다.
상체가 온통 풀어 헤쳐져 숨을 뱉고 있는 관능적인 루스의 모습이 달빛 아래 보였다. 루스가 움직일 때마다 땀에 젖은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이 달라붙었다.
나는 뻣뻣하게 굳어 그 광경을 보다가 문득 촉수의 몸통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촉수 몬스터가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나는 몬스터의 몸통이라 할 만한 덩어리를 게슴츠레 쳐다봤다. 그러나 몬스터는 몬스터였다. 눈, 코, 입도 달리지 않은, 덩어리뿐인 생물이 해괴망측한 짓을 의도할 리가 없었다.
“큿-.”
다시 아래에서 루스의 억눌린 숨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퍼뜩 그를 쳐다봤다.
“루, 루스!”
루스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달빛에 물방울같이 맺혀 있던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괴롭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있는 루스를 보고 있으니 역시 이러고 있을 시간에 저택으로 돌아가서 단검을 챙겨오거나, 다른 놈을 데려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기다-.”
결론을 내리고 일어나려던 차다. 어디선가 꿀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앞에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소리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끈적거리는 불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시야 끝에 수풀이 수상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설마, 설마.’
나는 애써 부정하고 싶었지만, 틈 사이로 촉수를 보고 말았다. 그 순간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끼쳐왔다.
‘이, 이쪽으로 오는 거냐고.’
나는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또 다른 촉수가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당연히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오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수풀 사이에서 촉수가 흔들리고 있을 뿐 다가오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제자리에 있는 몬스터를 보자 저택에 갔다 와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발을 돌리며 루스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구해 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고 있-.”
발을 땅에 딛는 순간이다. 수풀 사이에서 꿈틀거리던 촉수가 이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언 듯이 동작을 멈췄다. 눈을 크게 뜨고 촉수가 있는 수풀을 쳐다봤다. 촉수가 다시 움직임을 멈췄다. 긴장하며 수풀을 쳐다보고 있는데, 루스가 밭은 숨소리와 함께 말했다.
“……하아, 땅으로 전해지는 울림을 읽나 봅니다.”
“땅……?”
“기복 님이 발을 움직일 때마다, 촉수가 움직이는군요.”
루스의 말에 나는 발아래를 내려다보다 다시 수풀을 쳐다봤다. 몬스터는 내 걸음과 함께 멈춰 있었다.
그의 말대로다. 그렇다면 저택으로 가려다 나까지 촉수에 묶이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럼 몬스터가 움직이지 않는 한, 이곳에서 꼼짝없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최악이다.
“루, 루스. 너 언제 마력이 회복될 것 같냐.”
“아마…… 내일 저녁이면 될 것 같습니다.”
“내, 내일 저녁?”
내가 되묻자, 착잡하게 눈을 내리는 루스의 반응이 보였다.
“하-.”
허탈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럼 내일까지 이러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 그건 못 할 것도 없다. 사실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나는 루스의 팔다리를 꽉 옥죄고 있는 촉수를 내려다봤다.
“…….”
촉수에 묶인 루스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렇다. 문제는 촉수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몬스터에게서 루스가 쭉 공격을 받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고……!’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두운 수풀에서 흔들리는 촉수만 보일 뿐이다. 몬스터를 상대할 무기가 한적한 폭포 길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두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방법을 찾으려 머리를 쥐어 잡았다.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 봤지만,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필이면 마나도, 무기도 없을 때 몬스터가 나타-.’
속으로 한탄하던 나는 문득 눈을 깜빡였다. 머리통을 쥔 손을 천천히 내리며 가만히 돌바닥을 내려다봤다.
‘가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사막에서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어떻게 했더라-.’
의문을 가지며 골똘히 기억을 되짚어봤다. 오래 생각할 것 없이 천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툭 하고 재생됐다.
‘응. 근데 기복이가 변신하면 무기 안의 마력을 사용할 수 있어.’
사막에 있을 때 다비 녀석이 했던 말이었다. 그것도 아주 반짝거리는 눈으로 말이다.
그때가 상기되는 순간 나는 머릿속에 악귀를 쫓아내려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다, 아니다. 분명 다른 방법이-.
“흣.”
그때, 루스의 물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흠칫하며 시선을 들었다. 그러자 창백하게 질린 루스의 얼굴이 보였다.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아까보다 더 힘든 기색이 완연했다. 초조함에 옷자락을 꽉 쥐었다. 목이 바짝 타는 기분이다.
‘거짓말…… 진짜 이 방법밖에 없는 거냐고!’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억눌린 숨소리가 가슴을 짓눌러댔다. 동시에 ‘……그깟 게 뭐 대수냐.’라는 머릿속의 목소리가 진해져 왔다.
결국 나는 결심한 듯이 눈을 부릅뜨며 지척에 있는 루스에게 손을 뻗었다. 허리를 숙여 루스의 바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바지를 붙든 손에 땀이 폭발하고 있었다.
“-하아. 뭐 하시는 겁니까.”
“이, 있어 봐.”
버클을 풀던 나는 루스의 목소리에 죄짓는 사람처럼 화들짝 말이 튀어나왔다.
“…….”
입을 꾹 다문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지를 내렸다. 그러자 바지춤에 머물러 있던 촉수와 함께 루스의 성기가 튕기듯 올라왔다. 잔뜩 허리를 숙이고 있던 나는 루스의 것이 뺨을 툭 치자 고개를 뒤로 뺐다.
“윽.”
상체를 물리니, 바지 춤을 문질러 대던 촉수로 인해 잔뜩 힘을 받은 그것이 한눈에 보였다. 불뚝 솟은 형체를 굳은 눈으로 보고 있자 아래에서 띄엄띄엄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시고 싶다면, 해도 됩니다. 그러나 취향이 조금 가학적이십-.”
“무, 뭔 소리야!”
녀석의 애처로운 목소리를 복잡한 마음으로 듣던 나는 한순간에 나를 변태로 만들어 버리자 당황스레 소리쳤다.
나는 당연히! 눈치 빠른 놈이니, 마력을 나눠 주려 한다는 걸 파악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크나큰 오해를 한 모양이다.
나는 뜨거워진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해명했다.
“그게 아니라! 내가 네 무기로 벼, 변할 테니까 내 마력을 쓰라고……!”
다급하게 말을 쏟아내자 루스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나는 발딱 선 놈의 것을 쳐다보며 심란하게 말을 뱉었다.
“어쩔 수 없잖아…….”
흉흉한 것에서 시선을 떼며 몸을 일으켰다. 심호흡을 뱉은 뒤, 허리춤에 손을 댔다. 떨리는 손으로 바지를 내리려 했다. 그러자 아래에 있던 루스의 보라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나는 그에게 다른 곳을 보라고 말하려 했지만…… 나도 저놈 걸 봤는데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루스의 빤한 시선을 느끼며 주춤주춤 바지를 내렸다. 그러자 허여멀건 다리가 달빛에 드러났고, 서늘한 바람이 휭 불었다.
“…….”
다리 사이에 축 늘어진 내 아랫도리가 보였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루스의 것도 같은 시야에 걸렸다.
……어쩐지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후우…….”
깊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러고선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쳐다봤다.
……루스의 눈동자가 내 아래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눈에서 느껴지는 집요함에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그러자 놈의 시선이 위로 올라왔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보라색 눈동자가 일렁였고, 놈의 입에서 탁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위로 올라오시지요.”
“굳, 굳이 말로 안 해도 된다고…….”
몬스터의 감지력이 예민하지 않길 바라며, 루스의 허리 옆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려놓았다. 다행히 쿨쩍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다짜고짜 촉수가 뻗어오진 않았다.
안심하는 것도 잠시, 몬스터에 잡힌 것도 아니건만 더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다음은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언제나 놈들이 먼저 나를 붙들고 행위를 벌였던지라 전과 다른 방식에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안 하실 겁니까?”
내가 멈춰 있자 루스가 재촉하듯 말을 뱉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조금 들뜬 감이 있어 나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여전히 루스는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그를 보고 있자, 희게 질린 그의 입술 틈으로 고통스러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흐읏.”
반듯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식은땀이 보였다.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날 구하다가 이렇게 된 거잖아. 뭘 의심하냐고…….’
뜸 들이고 있는 스스로를 질책하며 마음을 다잡듯 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다. 곧장 목석같은 몸짓으로 다리를 구부렸다. 그의 시선이 내 몸과 함께 내려가자 뒷덜미가 후끈거렸다.
쭈그려 앉는 자세가 될 즈음, 엉덩이 골 사이로 불뚝 솟은 것이 닿았다.
“하, 한다.”
“예. 하십시오.”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것을 천천히 잡았다. 손끝에서 미끈거리는 촉수 점액이 느껴졌다. 이어서 손으로 감싸 쥐자 두툼한 기둥이 버겁게 잡혔다.
안에 넣어야 할 크기를 손으로 체감하니 오금이 저렸다. 평범한 크기였다면 훨씬 덜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놈의 사이즈는 빌어먹게도 거대했다.
나는 들숨과 날숨을 두어 번 깊게 뱉어내고서 몸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렸다. 잡고 있는 그것이 골을 가르고 들어왔다. 손바닥에서부터 소름 돋는 감각이 느껴졌다.
현재 행위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자각돼 눈을 질끈 감던 차다. 입구에 묵직한 것이 툭 닿았다. 목이 바짝 타들어 가는 기분이다.
멈춘 자세로 호흡을 뱉으며 잠시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려 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손 안에 든 거대한 것이 움직였고 입구가 쭈욱 벌려졌다. 내장이 쏟아질 것만 같은 감각에 몸이 경직됐다. 그 상태로 기둥이 안으로 들어와, 손에 힘이 풀려 잡고 있던 것을 놓쳐버렸다.
“하윽-.”
길쭉한 게 몸을 쪼갤 듯이 가르고 들어왔다.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허둥지둥 루스의 탄탄한 가슴팍을 잡으며 몸을 지탱했다. 그러자 루스에게 붙어 있던 촉수가 내 손을 타고 올라왔다. 미끈거리는 감각에 펄쩍대며 몸을 젖혔다. 그와 동시에 반쯤 들어온 기둥이 쑤욱 안으로 삽입됐다.
“아읏!”
“큿-.”
점액이 묻어 있던 탓에 기둥이 깊숙한 곳까지 결합됐다. 눈물이 핑 돌았다. 속이 더부룩하고 배가 아릿했다.
“흐으…….”
안이 꽉 채워져 조금만 움직여도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어떤 수치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올지 겁이 나 차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결합 상태로 어쩌지 못하고 숨만 뱉을 뿐이다.
“움직여 주시겠습니까.”
나는 루스의 요구에 ‘방금 네 무식한 걸 처넣었는데, 어떻게 바로 움직이냐.’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루스의 표정을 보니 말이 절로 삼켜졌다. 그는 지금 몬스터에게 사지를 압박당하고 있는 힘겨운 상태였다.
“……아, 알았…… 하으.”
뜨겁고 단단한 기둥으로 뒤가 잔뜩 벌어져 어떻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움직이기 위해 다리를 조금 들었다. 그러나 내장이 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다시 안으로 넣어야 했다. 즈즈즛, 뜨겁고 두꺼운 것이 입구와 내벽에 차례로 맞물려 자극이 됐다.
적응 안 되는 감각에 눈가가 찌푸려졌다. 밭은 숨을 쉬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씩 조금씩 몸을 들어 올렸다. 꽉 맞물린 게 움직이자 손발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겨우 놈의 귀두 부분만 머금은 상태가 되고 동작을 멈췄다. 차마 다시 넣기에는 겁이 나 그에게 눈길을 돌렸다. 놈이 결합 부위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끈덕지게 달라붙는 그의 시선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넣으셔야지요.”
“아, 안다고……. 근데…… 너무 크, 크잖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아니면, 제가 허리를 조금 움직여 드릴까요.”
“아니! 내가 하, 할게.”
나는 저놈이 무식한 것을 확 찔러 넣을까 봐 서둘러 말을 뱉었다. 그러자 루스가 알았다는 듯이 시선을 내렸다. 그의 시선이 결합 부위에 닿았다. 마치 얼른 넣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속이 바짝 탔다. 끝만 조금 넣고 있는 상태인데도, 아래가 찢어발겨질 것만 같았다. 절대 태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계속 이 상태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놈의 것을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후으…… 으으읏…… 아흐…… 아!”
호흡을 뱉으며 몸을 내리자, 굵직한 게 끝도 없이 들어왔다. 숨이 막히는 크기에 잠깐 멈췄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어서 몸을 내리자 놈의 것이 깊은 안쪽까지 쑤욱 들어왔다. 단단한 기둥이 내부 어딘가를 쿡 자극했고,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읏.”
루스가 숨을 토해냈다. 배 안쪽까지 꼬챙이가 박힌 듯 무서운 느낌이다. 더부룩함에 아랫입술을 깨물며 다시 다리를 들어 올렸다. 넣고 있는 것도 힘든데, 스스로 움직이기까지 해야 하니 버거웠다.
기둥을 쭈욱 뒤로 빼고 멈췄다. 허벅지가 경련하듯 떨려왔다. 두려움이 몰려왔으나 어차피 해야 하면 빨리 해치워 버리자 싶은 마음도 들었다.
놈의 가슴팍에 손을 얹은 채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성기에 묻은 점액으로 인해 결합 부위에서 쿨쩍쿨쩍 소리가 들렸다. 귓가에 열이 몰려 뜨거워졌다.
“으윽…… 흣으…… 허윽, 흐…….”
숨이 엉망으로 뱉어졌다. 거대한 크기에 뇌까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입에서 이상한 하이 톤 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놈의 것은 무식하게 컸고 빈틈없이 꽉 맞물려 내부가 온통 자극되고 있었다. 조심히 움직이나 마나였다.
지그시 눌러지는 내벽에 몸이 수시로 움찔거렸다. 눈썹을 찡그리며 깊은 곳에 닿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몇 번 들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놈의 것은 여전히 단단했다. 이 망할 행위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깨닫자 나는 숨을 고를 겸 멈췄다. 이어서 아래에 있는 놈에게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빠, 빨리 사정하라고…….”
“그러고 싶지만…… 자극이 약하니, 흥분되지 않는군요.”
“엄청나게 세운 놈이 뭐가 흥분이 안 된다는 거냐…….”
“사정까지는 부족합니다.”
“자, 장난하냐. 이만큼 했으면 됐잖아……!”
“아직입니다.”
“그럼 어떡하라고……!”
“조금 더 깊이 머금고, 한껏 조여 주시죠. 허리를 유연하게 흔들면서 야한 얼굴까지 보여 주신다면-.”
“미쳤냐?!”
“그저 물음에 답했을 뿐입니다.”
“……빌어먹을.”
“하지만 말대로 움직여 주신다면 빠르게 끝나겠지요.”
“…….”
“변신이 목적이지 않습니까?”
서둘러 달라는 그의 어투에 속이 쥐어짜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딴 낯짝 부끄러운 요구를 어떻게 들어준단 말인가, 개소리로 치부하고 못 들은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뱉은 말을 곱씹어야 했다. 한적하긴 해도 여긴 마을 안이었고, 주변에 높은 레벨의 몬스터도 있는 상황이다.
그 말인즉슨 한시라도 빨리 놈을 사정시켜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소리다.
‘시발, 시발…….’
빌어먹을 상황에 속으로 욕을 짓씹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메인 목으로 간신히 말을 뱉었다.
“……알았다고…… 망할.”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어서 다시 허리를 들었다.
“하…… 아흑! 아!”
녀석이 말한 대로 깊이 그의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아까보다 더 내려앉았다. 그러자 생각보다 안쪽까지 닿아 왔다. 아랫배에 힘이 잔뜩 들어감과 동시에 밑에서 탁한 숨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전기가 통한 것 같은 아찔함에 몸이 경직됐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마저 놈의 것을 머금었다. 마침내 그의 음낭이 아래에 닿았다. 빽빽하게 넣어진 감각과 함께 허리가 움찔 튕겼다.
깊숙한 곳은 취약했다. 그래서 최대한 피하고 있었는데, 깊이 넣을 때마다 루스의 입에서는 신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움칫움칫 떨리고 있는 하얀 허벅지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입구에 닿은 그것이 뜨겁게 맥박 하는 게 느껴졌다. 아까보다 더 뜨겁고 굵어진 느낌이다.
“으…… 윽!”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리를 들었다. 그리고 빨리 행위를 끝내기 위해 눈 딱 감고 뿌리 끝까지 삽입을 시도했다.
“흐극!”
눈앞이 번쩍거리는 자극에 입에서 비명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를 되찾으려 눈을 깜빡거렸다. 제 몸 가누기도 어려운데, 움직이기까지 해야 하니 죽을 맛이다.
“큿…….”
그의 신음에 눈동자를 들었다. 그러자 달뜬 숨을 뱉어내는 루스의 얼굴이 보였다. 방금 놈이 제대로 느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조금만 움직이면 녀석이 사정할 것임을 눈치챘다.
끝이 보이는 행위에 힘겹게 상체를 바로잡았다. 그러자 결합한 부위가 맞물리듯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목 끝까지 쭉 치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하으…….”
찔러지는 감각에 허리가 움직여졌다. 그러자 루스가 숨을 들이켜다 신음을 뱉었다.
“-하아.”
나는 멈칫하다가 이를 질끈 깨물었다. 빌어먹게도 방금 행동에 루스가 가장 느끼는 듯했다.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허리를 앞뒤로 계속 움직였다.
“응…… 아! 으, 아아!”
뻣뻣하게 움직이던 허리가 찌릿찌릿한 자극이 올라오자 유연하게 움직여졌다. 점점 아래로 몰리는 열기에 이상한 신음이 질러졌다. 안쪽이 움칫움칫했고 사정감이 휘몰아쳤다.
“아! 아응, 아…….”
불룩 솟은 그의 성기가 안쪽 어딘가를 뭉근하게 자극을 해 올 때면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흔들며 움직일 때다.
“으……으앗! 아!”
팔 쪽에서 찐득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눈물이 투둑 떨어짐과 함께 시야가 트이자 팔을 끈적하게 타고 올라오는 촉수가 보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몸을 뒤로 물렸다. 동시에 깊숙이 결합이 되어 있던 것이 꿈틀거려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시야가 번쩍이는 느낌에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던 차에 찐득한 액을 머금은 촉수가 겨드랑이를 지나쳐 어깨 위로 스멀스멀 올라왔다. 뱀이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에 몸을 뒤로 뺐다.
“하윽, 저, 저리…… 흐읏!”
단단한 기둥이 문질러져 신음이 개같이 터져 나왔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촉수를 떼어내려 팔을 들었다. 몸을 지탱하고 있던 팔이 들리니 배가 불뚝해질 정도로 결합이 깊어졌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흐린 시야 틈으로 불그스름한 촉수가 어른거렸다. 얼굴 가로 올라온 촉수가 뺨에 찐득한 액을 묻히며 움직였다. 지분거리는 촉수를 보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오래 느낄 것도 없이 현실이 되었다.
“으우…… 웁흐!”
얼굴을 비벼대던 역겨운 촉수가 입가에 닿았다. 얼른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고무로 된 촉수는 너무 질척거렸고 힘마저 있었다. 곧바로 입으로 훅 파고들어 오는 촉수에 당황하며 이를 세웠다. 자를 기세로 콱 깨물었으나 레벨이 높은 만큼 치아 따위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두툼한 촉수가 입 안으로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고, 숨 쉬는 게 버거워졌다. 입 안에서 꿈틀꿈틀하는 감각이 소름 끼쳤다.
나는 두 손으로 촉수를 잡아 뜯으려 했다. 그러나 루스를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찰거머리 특성의 몬스터답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루스와 나를 한 몸으로 인식한 듯하다.
입에 자리 잡은 촉수가 목 안으로 쭈욱 들어올까 봐 겁이 났다. 나는 촉수를 잡아당기는 데 온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훕, 컥- 웁.”
그러던 차에 갑작스럽게 내부가 움직여졌다. 동시에 입 안에 들어찬 촉수가 꿈틀거렸다. 목구멍을 자극하는 촉수의 감각에 고통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물이 핑 돌 만큼 어지러웠다. 그러나 고통을 삼킬 새도 없이 거대한 성기가 안쪽을 철퍽거리며 쑤셔댔다. 그와 함께 촉수가 입 안에서 움직였다. 숨 막히는 자극에 힘겹게 눈을 내리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앞에 루스의 창백한 얼굴이 보였다. 풀려 있는 그의 눈과 마주치자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야한 얼굴이네요…….”
“우- 욱, 웁!”
그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을 뱉더니 아래에서 허리를 쳐올렸다.
철퍽, 물기 어린 소리가 들려왔다. 찌릿한 자극에 몸이 경련하듯 떨려왔다. 몸이 흔들리자 촉수 역시 움직였다. 목 안쪽까지 들어올 것 같던 촉수가 뒤로 물러났다.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내부에 삽입된 성기가 찔꺽거리며 계속 움직였다. 헐떡거리는 숨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촉수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고 목 안으로 숨이 삼켜졌다.
“웁……! 웁, 웁, 욱.”
루스가 허리를 들어 아래를 강하게 쑤셨다. 깊은 곳만 집요하게 찔러대는 기둥으로 인해 머릿속에 스파크가 튀듯 번쩍거렸다. 더해서 질기고 커다란 촉수가 입 안을 들락거렸다.
턱이 빠질 것같이 아파져 왔다. 입가에 침을 삼킬 겨를도 없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댔다. 시야가 혼란스럽게 일렁였다.
“후으-.”
배 안쪽으로 들어찬 뜨거운 것은 몸을 가를 듯 박아댔다. 신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입을 막고 있는 촉수로 인해 막힌 소리만 나올 뿐이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토할 것같이 어지러웠다. 위아래로 휘몰아치는 자극에 정신이 혼미해지던 차다. 안을 자극하던 묵직한 기둥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위에서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큿-.”
두려울 정도로 아찔했던 자극이 뚝 끊겼다. 멍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배 안으로 뜨거운 게 퍼졌다. 그러자 이리저리 휘저어졌던 정신이 까만 공간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소용돌이치던 감각이 멎고 까만 공간에 안착했다.
잠시 동안 앞을 바라봤다. 빙글빙글 휘저어지던 감각은 여운처럼 남은 상태다.
‘……어쩔 수 없었다고…….’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건만, 정적이 가득한 공간에 있다 보니 변명이 뱉어졌다. 그러니까, 둘 다 꼼짝도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피치 못할 행위와 반응이었다고 말이다.
속으로 변명을 쏟아내고 있는 즈음, 몸이 공중으로 뜨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차 싶은 마음에 서둘러 감각에 집중하자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황금색 태양 모양의 지팡이로 변신한 몸뚱이가 보였다. 지팡이를 쥐고 있는 루스의 고운 손도 함께 보였다.
“-기복 님의 광대한 마력이 느껴지는군요.”
-그, 그러냐.
루스가 경탄하는 투로 말을 뱉자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의 길쭉한 손가락이 지팡이를 위아래로 쓰다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몸이 만져지는 듯한 감각에 소름이 돋아 루스를 쳐다봤다.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의 단정한 입술에서 신음과도 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기복 님의 몸은 타고났나 봅니다.”
야릇하게 움직여 대는 손길과 젖은 목소리에 나는 멈칫했다. 루스의 보라색 눈동자가 흥분으로 번들대고 있었다.
조금 전의 상황이 떠올랐고, 놈이 어떤 의도로 말을 했든 내게는 이상하게 들려왔다. 그래서 뭐가 타고났냐고 왈칵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전에, 몸을 만져대는 손길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놈의 손을 쳐낼 듯이 움직였건만, 무기로 변한 나는 루스의 손에서 달싹거리는 게 다였다.
-모, 몬스터 처치 안 하냐!
“그렇네요.”
벌컥 말을 뱉자 잊고 있었다는 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벙찐 기분이 들었다……. 그것 때문에 변신을 한 건데, 그걸 잊었냐 싶다. 그러고 보니……. 여전히 사지가 묶여 있음에도 루스 놈은 아까처럼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
식은땀이 씻은 듯이 거둬진 루스의 멀끔한 얼굴을 보며 이상함을 느끼던 차다.
문득 이 게임을 처음 접했던 초등학생 때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고인물 아니, 썩은물에게 사기당했던 그때의 분하고 억울했던 순간이 말이다.
왜 그 기억이 머리를 스쳤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상당히 께름칙한 기분으로 앞에 있는 녀석에게 말했다.
-……너, 엄청 멀쩡해 보이네.
“기복 님께서 마력을 주신 덕이지요.”
-그래……?
“왜 그러십니까? 제가 설마, 기복 님과 행위를 하고 싶어 위험한 몬스터에 붙잡힌 척을 했겠습니까.”
루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도 안 된다는 투로 내게 말했다. 차분히 나를 보는 그 시선에 나는 주춤거리며 수긍했다.
-……그, 그렇긴 해.
말은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미친놈이 마력도 없는 상태에서 위험한 몬스터에게 붙잡히겠나 싶다. 나를 구해 주기까지 했던 녀석을 의심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다.
“그럼, 몬스터를 처리하겠습니다.”
루스가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찝찝한 기분을 지우고 마력을 넘겨주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하얀 마력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동시에 내 안에 있는 레스탈로스의 마력도 일렁였다.
몸 안에 있는 마력이 머리 위로 쭈욱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번개가 내려치듯 번쩍, 하얀 빛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력이 뿜어져 나갔고 루스의 사지를 붙들고 있던 촉수가 쪼그라들었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몹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이들은 약하게 꿈틀거리더니 이내 어떤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
바위만 한 몸체가 사람 키만 해졌다. 아니, 진짜 사람이 되고 있었다. 불그스름하던 피부가 살구색으로 변해 갔고 위에 표식이 일그러졌다. 몬스터의 위에 [전사] 표식이 띄워지더니 촉수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사, 사람?
사람들은 정신을 잃고 하나둘씩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군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루스의 얼굴이 보였다.
“지하 세계 몬스터에게 감염당했나 봅니다.”
-뭐? 지하 세계 몬스터……?
“예. 간혹, 용기가 과하게 발달한 전사들은 무모하게 지하 세계에 가기도 합니다.”
-허…….
전사들은 특유의 용기와 모험심으로 인해 별난 짓을 많이 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강한 몬스터들이 득실대는 지하 세계에 들어간 전사들이 감염당했나 보다. 어쩐지…….
-그래서 마을에 몬스터가 있었나……. 죽였으면 큰일 날 뻔했네.
“공격을 했으니 죽어도 억울할 건 없지요.”
단호하게 말을 하는 루스를 올려다봤다. 그러던 차에, 가까운 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널브러진 사람들이 끙끙 앓고 있었다. 괴롭게 숨을 쉬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된 숨소리를 뱉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말한 것치고……. 치유는 해 줬네.
“협조해 준 값입니다.”
-무슨 협-.
“밤이 늦었습니다. 이만, 저택으로 돌아갈까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루스가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앞으로 걸어갔다. 놈의 빠른 이동 속도에 주변 바위들이 휙휙 지나갔다.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뱅글뱅글 도는 시야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로켓이라도 탄 듯한 기분이다.
-흐으…….
어지러움에 허덕이던 나는 저택 입구 앞에 도착할 즈음 서서히 시야를 되찾을 수 있었다. 루스가 속도를 늦췄고, 나는 간신히 무기화를 풀었다. 울렁이는 속을 달랜 뒤, 비척비척 저택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루스가 나를 붙잡아 세웠다.
어지러운 시선으로 뒤를 돌았을 때 루스가 바로 코앞에 서 있었다. 훌쩍 다가와 있는 루스를 당혹스럽게 쳐다보던 차다.
그가 서서히 바닥으로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서 밤과 닮은 고요한 투로 내게 말했다.
“그렇게 무방비한 모습이시면 곤란합니다.”
“……뭐를-.”
뜬금없는 소리에 내 입에서는 맹한 말이 튀어나왔고 이내 돌처럼 굳었다. 달빛으로 인해 유독 더 하얘 보이는 다리와 축 처진 내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슷한 위치에서 정갈한 루스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지그시 나를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차가운 손이 피부에 닿았다. 길쭉한 손이 내 발목에 걸려 있는 바지를 잡고 끌어 올렸다. 하얀 정수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친절하게 허리까지 바지를 올려준 그는 커다란 몸을 일으켰다.
이 모든 동작이 이어지는 동안 사고회로가 정지된 기분을 느꼈다. 앞에서는 곤란함을 잔뜩 담은 루스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자꾸만 절 유혹하시는군요.”
그의 입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머리에 입력되는 순간,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유, 유혹, 내가 언제-!”
놈의 미친 소리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어서 난처해하는 루스의 얼굴이 보였고, 마치 내가 정말로 유혹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터질 듯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앞에 있는 놈에게 완강히 부정하며 소리쳤다.
“……그런 적 없으니까 멋대로 해석하지 좀 말라고!”
나는 곧장 몸을 틀어 저택의 입구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저, 저놈은 대체 나를 뭐로 보는 거냐……! 바지는 내 의지가 아니잖아!’
뒤통수에서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