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4화
“콜록콜록!”
선잠에서 깨자마자 느껴지는, 가슴속을 간질이는 것 같은 불쾌한 감각. 참지 못하고 토한 기침은 목구멍을 긁어내다 못해 뱃속의 장기까지 끄집어내려는 듯 거칠기 짝이 없었다.
고통에 잔뜩 일그러졌던 보리스의 얼굴이 그나마 펴진 것은 비릿한 피냄새가 입 안 가득 차오른 후였다.
“여봐라! 게 있느냐!”
“예, 각하.”
“목이 타는구나. 술을 내오거라.”
술을 내오라는 말에 중년 시종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댔다. 그간 주인을 살핀 모든 의사와 사제가 절대 금주를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하, 하오나 각하…….”
“내 명하였다.”
“아…옛.”
후에 불호령을 듣게 되겠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다. 당장 그의 주인이 눈으로 불을 토하고 있는데 어찌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높으신 분들의 사이에 낀 아랫것의 고충이란 이다지도 서글픈 것이다.
잠시 후. 시종이 유리잔과 술을 가져왔다. 보리스는 잔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서 술을 병째로 들이켰다.
“크으.”
후끈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가니 그제야 지저분하게 꼬인 속이 좀 풀어지는 것 같았다.
“됐다. 물러가라.”
“저…각하. 의사를 불러오리까?”
시종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보리스의 눈매가 대번에 날카롭게 변했다.
“멋대로 내 속을 짐작하지 마라. 필요하면 어련히 부를 것이니.”
“소, 송구하옵니다.”
시종이 물러가고, 보리스는 몇 번 더 술을 들이켜더니 기어이 병을 비웠다. 열기가 몸속에 가득 퍼졌고, 취기마저 슬슬 올라오는 듯했다.
“하!”
보리스는 빈 병을 대충 내던지고 담요를 가슴깨까지 끌어올렸다. 몸은 뜨끈해졌지만 여전히 추웠다. 벽난로의 불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고, 솜씨 좋은 술사들이 공들여 제작한 열등(熱燈)이 침대 머리맡에서 제 기능을 하고 있건만 이 지독한 추위는 도통 가실 생각을 안 한다. 저주라도 걸린 것 같았다. 추위를 느끼게 하는 저주 같은 것이 있기는 한지는 둘째 치고 말이다.
“…….”
얼굴을 쓸어 내리다, 문득 앙상하게 마른 손이 눈에 들어왔다. 새삼 믿기지가 않았다. 이게 진정 자신의 손이란 말인가? 한때 이 손에 검 한 자루만 쥐면 두려울 게 없었거늘. 지금은 검은커녕 막대기 하나라도 제대로 쥘 수 있을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흐…흐흐흐.”
새삼. 새삼이다. 대체 그게 언제 적 이야기란 말인가. 미련을 둬도 적당한 때에 둬야지. 이 정도면 미련이 아니라 노욕이다.
‘그래. 난 이제 늙었다.’
일흔 하고도 셋. 오래도 살았다. 소싯적 동년배라고 여겼던 이들 중 지금도 살아있는 이는 거의 없다.
‘더 버티는 것도 욕심인가.’
동생은 먼저 떠났다. 그라모트도, 로우렌도 마찬가지.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들이 때가 되었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을 떠나갔다. 야속한 놈들 같으니.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그리도 앞서갔단 말인가.
‘그래. 떠날 때가 되면 떠나야지.’
오래전, 젊음을 탐하다가 손자의 손에 독살당한 자이드라 멕시스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나이대가 되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죽음이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욕심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끝이 보이는구나.’
먼저 간 녀석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마음이 약해진 탓일까? 이렇게 고통스럽게 삶을 이어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술이 들어가서일까, 약해진 몸을 따라 마음마저 약해지던 그때. 침실 전체가 어둑해졌다. 보리스의 시선이 즉시 벽난로 쪽으로 향했으나, 벽난로에서는 여전히 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벽난로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열기뿐이었다. 불빛은 중간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보리스는 천천히 손을 베개 밑으로 가져갔다. 단검 한 자루가 만져졌다.
“누구냐.”
어둠이 내려앉았다. 보리스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집어삼킨 것 같다고 느꼈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약해졌구나.]
머릿속이 울렸다. 보리스는 반쯤 뽑아 든 단검을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어둠 한복판을 바라보았다.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다.
“이건…꿈입니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꿈이라면 참으로 지독하군요. 하하하.”
꿈인지 현실인지, 그것도 아니면 암살자의 술수인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머릿속을 울린 한 마디 이후, 보리스의 마음은 놀랍도록 편안해졌다. 그를 괴롭히던 추위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저는 이제 죽는 겁니까?”
[아직.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겠지요. 오래 살았으니 말입니다. 아내보다도, 동생보다도 더 오래 살았지요. 그들을 먼저 떠나보낼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리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저는 지쳤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많은 이들이 제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하들, 심지어 가족들까지 말입니다. 아들 놈들이 그중 제일이지요. 제가 없으면 제 놈들이 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본래 그의 후계자는 장남이었다. 허나 녀석은 날이 갈수록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였다. 2대에 걸쳐 이룩한 가업을 녀석에게 맡겼다가는 발전하기는커녕, 위태로운 지경까지 퇴보할 것이 눈에 보였다. 하여 놈을 후계자 자리에서 내쳤다. 그리고 자격을 증명하는 녀석에게 자리를 물려주겠노라 선언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다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나갔나 싶었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후계자도 얻지 못하고 가족 간의 불화만 키운 셈이 되었으니까.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변명이 아니에요. 저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랬던 걸지도. 차라리 동생이 가문을 이끌었더라면 더 나았을까?
[그만하면 됐다.]
어둠이 출렁였다. 그렇게 느꼈다.
한기가 퍼져 나갔다. 숨을 쉴 때마다 흰 입김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더없이 아늑했다.
“오랫동안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지요. 그간 어찌 지내셨습니까.”
어느새 눈앞에 그가 서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한눈에 알아보았다. 알아보지 못할 리가 있나.
“아버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보리스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제법 재미있는 꿈이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마지막으로 선물이라도 주는 것인가? 그런 거라면 그간 교회에 낸 돈이 아깝지 않다.
“분명 제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보고, 누비셨겠지요. 궁금하군요. 저 바깥의 세상은 어땠습니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 마음뿐이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든 최대한 길게 늘여서 갇혀 있고 싶은. 어린아이의 치기 같은 순수한 바람.
[그래.]
다행히 이 꿈은 친절했다. 그의 고집스러운 요구를 너그럽게 들어주었다.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세상 밖, 제국 밖의 이야기. 불모지 너머의 땅.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들.
“이야기를 들으니 더 궁금해지는군요. 저도 보고 싶습니다. 서쪽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머저리들도 데려가면 좋을 테지요. 그 말 많은 놈들이 벙어리가 된다면 그만큼 즐거운 경험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즐거웠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더, 더 없습니까? 더 이야기해주십시오. 저는…….”
[보리스.]
끝나지 않는 꿈은 없다.
[시간이 다 됐다.]
멍한 눈이 위를 향했다.
하늘의 별을 가져다 박아 놓은 것 같은 두 눈이 그를, 추레한 몰골의 노인을 비췄다.
[함께 가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까?”
[네가 원한다면.]
역시, 이것은 꿈이 분명하다. 누구도 깨어나기를 바라지 않을 달콤한 꿈.
“원합니다.”
어둠이 그를 감싸 안았다.
모든 고통이, 원망이, 슬픔이 씻은 듯 가셨다. 빛 바랜 생명이 떠나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대하고 왕성한, 찬란히 빛나는 또 하나의 생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늦었네.”
어?
“얼마 못 버티고 따라올 줄 알았는데.”
여인이다. 젊은 여인. 그런데 그 모습이 익숙하다.
“뭐 그리 좋다고 골골대면서 끈질기게 버틴 거야?”
오래전에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에 온기가 감돈다. 보리스는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오랜만이구나.”
7년. 아니, 50년만이다.
“역시 이건 꿈이로군.”
“글쎄.”
여인이, 동생 실비아가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어렸을 적, 오라비의 바짓단을 찢어먹던 그때처럼.
“어떤 것 같아?”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어.”
아무래도 좋다. 현실이면 어떻고, 꿈이면 또 어떤가.
꿈이라 한들 깨지 않는다면,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가자.]
커다란 등이 저만치 앞에 있다. 보리스는 한 걸음 앞서가는 실비아를 따라 그 등을 좇았다. 아주 오래전의 그가 그랬듯, 다시 한 번.
* * *
아들의 영혼을 거두고, 군터는 유령처럼 솔롬을 빠져나왔다. 들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나올 때도 누구 하나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옛날, 일개 요새에 불과했던 솔롬은 이제 판니른 제일의 대도시가 되었다. 단순히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라, 주도라는 간판마저 하잘에게서 가져왔다. 총독가인 크렘보르 가문의 위상 덕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만약 솔롬이 주도에 걸맞지 않았다면 솔롬이 주도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건만, 솔롬을 바라보는 군터의 눈길에는 어떤 감정도 깃들지 않았다. 저 안에 살아가고 있는 그의 후손들 역시, 아무런 감정도 일으키지 못했다.
“장군.”
어둠이 일렁이는 말을 탄 두 사내, 살라스와 할렌이 다가왔다. 그 바로 뒤에는 조금 전 오라비와 짤막한 해후를 나눈 실비아가 있었다.
[가자.]
짙은 어둠이 모여들어 말의 형체를 이루었다. 살라스와 할렌, 실비아가 탄 것과 똑같이 생긴 말 위에 군터가 올라탔다. 그러자 말은 기다렸다는 듯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커먼 말발굽은 아무 소리도 없이 땅을 내리찍었다.
(<군터>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