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6화
짐승과 시선을 맞춘 시간은 한순간이라고 해도 될 만큼 짧았다. 하지만 군터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짐승의 기억뿐만 아니라 그가 인지하고 있는 세상, 그가 품었던 감정까지도.
그는 오랫동안 섬김을 받아온 신이었다. 때로는 신으로, 때로는 정령으로, 또 때로는 재앙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그가 이 땅에 살아간 존재들에게 늘 경외의 대상으로서 존재해왔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단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의 눈으로 그의 역사를 들여다본 군터는 단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적어도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그러한 존재를 신이라 칭한다.
하지만 우습다. 안쓰럽기도 하다. 한때 신이었던 존재가 지금은 이렇게 초라한 돌무더기로 전락해버리다니.
평범한 사람들은 초월적인 존재를 마치 이 세상의 이치와 동떨어진, 그렇기에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바라보며 신이라 부르지만 이런 것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들풀보다 조금 더 크고 질긴 잡초일 뿐. 더 큰 바람이 불면 마찬가지로 위태롭게 흔들리다 뿌리째 뽑혀 날아가 버리고 마는.
‘아니. 그보다 더 안 좋은가.’
최후의 날은 짐승의 기억 속에 가장 크고 깊숙하게 틀어박혀 있었다. 해와 바람, 별의 움직임에 따라 흘러가던 하늘에 어둠이 들어서고, 본 적 없던 자들이 흉포함을 뽐내며 이 땅에 발을 들였다.
그는, 그들은 다툼을 알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로 가볍게 으르렁대는 힘 싸움 정도는 알지언정 서로의 존재를 걸고 싸우는 전쟁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살의와 광기로 무장한 침략자들에게 속절없이 밀렸다. 뒤늦게 필사적으로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은 후였다.
결국, 그들은 패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렀다. 처절하게, 아니 참혹하게.
“음.”
단지 들여다 봤던 것을 잠깐 떠올린 것만으로도 정신이 흐트러졌다. 그만큼 이 영락한 존재가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 * *
모든 존재는 이 세상의 일부다. 철학적인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의 의미다. 이 세상에서 태어났으니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 세상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미의 뱃속에서 태어나고, 죽어서는 흙이 되어 묻힌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순환이다. 그 어떤 존재도 이 순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찮다 여겨지는 미물에서부터 그저 우러러보게 되는 지고한 존재까지. 모두 이 순환에 속하는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같은 하늘 아래 있다고 해서 모든 존재가 동등한 것은 아니다. 멈추지도, 지체하지도 않는 거대하고 도도한 순환 속에서 어떤 존재들은 특별하다 할 만한 역할을 맡게 된다. 순환 속의 질서를 지탱하는 기둥. 그들의 탄생은 자연적인 것이었다. 바람에 깎인 산이 뾰족한 봉우리를 낳듯, 세상이 그들을 낳았다. 그들은 그렇듯 자연스럽게 세상에 나왔고, 존재했다.
신, 재앙, 정령, 그 어떤 표현도 그들을 나타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고개를 부러질 듯 꺾어도 꼭대기를 보지 못하는 미물들이 그것을 두고 건축물의 기둥이니 산의 봉우리니 떠들어대는 꼴이다.
바람을 느끼며 들판을 거닌다. 그가 남긴 큼지막한 족적에서 새싹이 피어났다. 외관과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포효가 터져 나오면 새벽의 이슬을 씻어내는 훈풍이 불었다.
군터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고, 그의 기억 속에서 그의 평생을 보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스스로 사고조차 하지 않는, 그런 면에서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진짜 짐승과 별다를 것 없는 그는 우습게도 정말 신적인 존재였다. 그의 기억 속 그의 모습. 그런 모습을 보고서 신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이단이라면 입에 거품을 문다는 신학자들이 같은 것을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듣자 하니 그들은 원신만이 진정하고 유일한 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던데, 어쩌면 그들은 이 영락한 존재를 신이 아니라고 부정할지도 모른다. 정령이라든지, 조금 순한 마물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면, 신이란 게 무엇인가. 전지전능한 존재?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만약 그런 것이 신이라면, 이 가엾은 짐승은 신이 아니다. 그의 몰락과 최후는 그런 강대한 존재가 맞이하기에는 너무나 비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
흉포한 거인에게 패한 그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가로프와 그의 수하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지된 세계에 갇혀 절망만을 거듭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이가로프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으나, 그에게 내려진 저주는 그보다 더 컸다.
그는 흉포한 거인에 의해 못 박혀, 강제로 이 땅의 질서를 유지해야 했다. 날 때부터 그에게 주어졌던 힘. 하지만 자유롭게 행사했던 그 힘을, 자유가 거세된 채로 억지로 써야 했다. 아니, 뽑혀 써야 했다. 그것은 마치 사지가 묶인 채 피를 뽑히는 것과 비슷했다.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힘이 뽑혀가는.
그 영원한 구속과 절망 속에서, 그는 한때 자신이 자유롭게 노닐었던 세상을 보았다. 흘러가는 바람처럼 아무런 의지도 없이, 자연스레 존재해왔던 존재는 고통과 절망이라는 생경한 감정 속에서 점차 변해갔다.
세상을 저주하게 되었다. 자신의 피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 끝없는 증오의 밑바닥에 또 다른, 질투라는 이름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음은 그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순환의 물결에 휩쓸려 거대한 하나로 회귀하는 그 순간까지.
‘이런 것들이 하나일 리가 없지.’
지금 이 땅을 휩쓸고 있는 재앙은 이런 것들을 가두었던 구속이 깨졌기에 벌어진 일이다. 결국, 짐작했던 것이 맞았다. 신주에 문제가 생긴 거다.
‘이제야 알겠군.’
유일신의 계시를 받은 황제가 이 땅에 신의 섭리를 펼치나니, 제국의 성세는 밤낮으로 하늘을 밝히는 해와 달, 별과 같이 영원히 이어지리라.
이 말은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치세를 추켜세우기 위해 흔히 퍼뜨리는 수식어가 아니었다. 제국의 신민들이 꽤 오래전부터 떠들어대는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아바시스 같은 적성국에서 자연재해 같은 것이 일어날 때마다 노래 부르듯 반복하는 말이었다.
제국의 땅은 가뭄을 모른다. 설령 가뭄이 들더라도 교단의 고위 사제가 왕림하여 하늘의 신에게 기도제를 올리면 언제 메말랐냐는 듯 비가 내린다.
제국의 신민들은 그러한 기적을 목도하며 신의 존재와 제국에 내린 가호를 실감했다. 그러한 믿음이야말로 이 광활한 대제국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이제야 알겠어.’
그리고 지금. 군터는 제국을 지탱해온 힘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제국 광신도들의 주장이 맞았다. 제국의 성세를 지탱하는 것은 분명 신의 힘이다. 다만, 그 신이 그들이 말하는 신은 아니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신주가 망가졌다. 무너졌다고 해야 하나? 어쨌거나 본래 해야 할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신들을 가두고 그들의 힘을 짜내어 이 땅에 뿌려야 하건만, 갇혀 있어야 할 신들은 이렇게 밖으로 뛰쳐 나와 멋대로 설쳐대고 있다.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가? 군터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고, 그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조금 전 확인했다.
‘거인왕.’
그러고 보면 우스운 일이다. 제국은 왕은커녕, 영주의 존재도 허용하지 않는데 거인왕이라니? 그렇게 불리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게 불리는 것을 가만히 용인하는 것은 더 이상하다. 군주라서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적어도 군터가 알기로, 군주들 가운데 ‘거인왕’만큼 튀는 작자도 없었다. 물론 그가 제국의 사정에 대해 그리 잘 아는 것은 아니니 뭔가 다른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거인왕’이 세상을 꽤나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는 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신주를 제멋대로(아마도) 망가뜨리고 한 주를 재앙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것이겠지.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변해버리는 것인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거슬리는 모든 것을 치워버리면서.
생각해보면 그런 경향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거의 매일, 거슬리는 것들을 무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노력도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노력조차 무의미해지는 때가 오면…그때는 저 ‘거인왕’처럼 될지도 모르지.
‘무엇을 원하지?’
인과는 충분히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거인왕’이 무엇을 원해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다. 그가 신주에 손을 쓴 것은 필시 이 땅에 혼란을 불러오기 위함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일을 보다 수월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그것을 바꿔 말하면, 그가 원하는 것은 세상의 이목을 끌어서는 안 되는 무언가라는 뜻.
‘아니. 세간의 이목이 아닐 수도 있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헤이모라에는 줄카가 있다. ‘거인왕’ 아간투스베록과 같은 군주. 어쩌면 아간투스베록이 피하고자 한 것은 세상의 이목이 아니라 줄카의 이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정도를 넘어, 적대적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은 당사자인 줄카에게서 직접 들은 바 있었다. 줄카와의 대화가 늘 그랬듯, 흘러가듯 나온 이야기이긴 했으나 그 짧은 몇 마디에서 군터는 줄카의 요동치는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전의였고, 적의였다.
‘이 난리를 일으키면서, 무엇을 노리고 있는 건가.’
성문을 통해 밀려 들어오는 괴물과 짐승들. 그리고 그것들을 필사적으로 막아서는 병사들이 보였다. 저들 모두, 거대한 폭풍에 휩쓸린 부평초들일 뿐이다. 너무나 작고 하찮은.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이 땅에 휘몰아치는 재앙에 휩쓸린 생명이 얼마나 될까. 수십만? 수백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겠지. 그 무수한 생명이 단 하나의 의지에 휘말려 상처 입고 죽어간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모든 존재는 이기적이다. 그중에서도 끝도 없이 이기적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일 터였다. 그런데도 사람의 세상이 아직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한 힘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만약 어떤 자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다 빼앗아 가질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왜 그러기를 마다하겠는가.
존중은 경계의 다른 얼굴이다. 경계하지 않는 상대를 존중하는 이는 없다. 만약 그런 상대를 존중하는 것 같다면, 그건 존중이 아니라 무시나 경시일 것이다.
군터는 마주한 적 없는 상대에게서 끝 모를 자신감을 읽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어떠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 눈에 보이는 것과 비슷한 광경이겠지.
[쓸어버려라. 모두.]
군터는 사라지는 신의 잔재 근처에서 배회하는 영혼들에게 자유를 부여했다.
[실로 오랜만이군.]
그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이가로프가 가장 먼저 식어가는 육신에 깃들었다. 배가 몇 갈래로 갈라져 창자를 쏟아냈던 시신이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서 숨을 헐떡이던 한 병사가 그를 보고 경악하여 입을 벌리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맹금에게 목이 뜯겼다.
“장군!”
하나둘씩, 시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본 시어문드가 군터를 보며 외쳤다. 그 다급한 외침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하지만 군터는 시어문드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제부터, 사소한 것들은 무시하겠다.”
‘하찮은’을 ‘사소한’으로 바꿔 말한 것은 아직까지도 다 떨쳐내지 못한 자그마한 망설임 때문이었다.
‘내가 아니라면, 어차피 오늘 모두 다 죽을 것들이 아닌가.’
조금 내려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어째서 지금까지 미련하게 억누르고 참아왔는지 조금 후회가 될 정도였다.
‘일어나.’
식어가는 몸을 일으킨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들과 뒤엉켜 쓰러져 있던 짐승, 괴물들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순환에 이끌려 사라지려던 영혼들이 군터의 힘에 묶여 본래 있었던 육신에 깃들었다. 섬세하게 다루지 못한 탓에 이지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물어뜯어라.]
사람을 물어뜯기 위해 혈안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방향을 바꿔, 정반대의 대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난폭하고 무질서한 돌진을 잠시 바라보던 군터가 어느새 그의 옆에 선, 초점 없는 눈을 한 군마에 올랐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