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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846화 (846/1,064)

846화

무리의 덩치가 크다는 것은 확실한 이점이다. 자잘한 도적 떼가 건들기에는 부담스러우니, 여정 중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유리한 점이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점만 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일단 덩치가 큰 만큼 이동하는 데 이런저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고, 쉽게 눈에 띄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천에 육박하는 무리가 움직이고 있으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또한, 무리가 크다는 것은 자잘한 적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겠으나 자잘하지 않은 적에게는 오히려 군침을 흘리게 할 만한 요소였다. 들개들이야 덩치 큰 들소를 보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지만, 사자들은 다르듯이.

"정지."

실비아는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았다.

자신이 할 줄 아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했다는 뜻이다. 그녀는 군사적인 부분은 롬바드에게 일임했다. 되도록 자신과 가까운 이를 쓰는 것이 좋겠지만, 산드라는 호위라면 몰라도 병사들을 지휘하는 데는 서툴렀다.

'아버지가 붙여준 사람이야.'

사실 롬바드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부친에 대한 신뢰였다. 그녀가 롬바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앞뒤 안 가리는 무지막지한 자라는 것. 그리고 상당히 과묵한 자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부친이 능력도 없는 자에게 친위대 병사들을 붙여서 보내지는 않았으리라 믿었다.

"무슨 일인가요?"

"매복하기에 좋은 지형입니다."

"그런가요?"

이곳저곳이 올라오고 가라앉은 구릉. 거기에 수풀도 우거져 롬바드의 말처럼 몸을 숨기기에 좋아 보였다.

"정찰이 끝나면 그때 움직이시지요."

"그리 하겠습니다."

평범한 상행이었다면 일정이 늦어진다고 조급해할 법도 하다. 그러나 이번 상행은 평범한 상행이 아니었다. 실비아는 조금도 서두를 마음이 없었다.

"잠시 정지!"

롬바드의 명을 받은 병사들이 정찰을 위해 움직이는 동안, 본대는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카인도 잠시나마 말에서 내려 숨을 돌렸다.

"후우, 쉽지 않군."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치고는 전혀 힘들어 보이시지 않는데요?"

"육체적인 피로를 말함이 아니네."

그와 마찬가지로, 레온 역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하긴, 숙련된 무인인 그가 이 정도 일정에 지치는 것도 우스운 일이겠지만.

"우리는 지금 미지의 땅에 들어선 거야.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지."

"솔직히, 너무 과장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가?"

"미지의 땅이니, 야만의 땅이니 뭐니 해도 결국 다 같은 사람 사는 곳 아니겠습니까."

"그 말도 맞지."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 어느 곳을 가더라도, 내 집을 떠나왔으면 늘 긴장하고 경계해야 하지요."

"그래. 자네 말이 맞아.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 일은 내게 무척이나 중요하다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네가 함께 와 주어 얼마나 든든한 지 모르네."

"또 그런 말씀을."

"하하. 이런 말도 이제는 지겨운가?"

"아니라고는 못하겠군요."

"알았네. 알았어. 이제 이런 말은 그만하도록 하지."

"그 말씀도 벌써 세 번째인 건 알고 계십니까?"

"그랬나? 몰랐군."

실비아 크렘보르를 따라 상행에 나서기로 결정을 내린 후, 카인은 가장 먼저 레온을 찾았다. 쉽지 않은 일인 만큼,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튼튼한 말이나 칼 한 자루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레온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모험에 나서시는군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레온은 그리 말하며 작게 한숨부터 쉬었다. 이제는 도시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끝낸 그였다. 자신이 속한 작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에 대한 파악 역시도 다 끝낸 지 오래였다.

"보리스 공자는 동생이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런데도 형님은 괜찮으시겠습니까?"

"나 같은 자그마한 사람이 어찌하든, 보리스 공자는 신경 쓰지 않을 걸세.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리고…내가 지금 내 마음대로 뭘 거절하고 승낙하고 할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

"함께 가주겠는가?"

"그러지요. 뭐, 지금도 따분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외에는 하는 일도 없으니까요."

고민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한번, 자신을 걱정하고는 흔쾌히 함께해주겠다고 했다. 카인은 그런 레온에게 고마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건 기회다.'

실비아 크렘보르가 자신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부터 이미 거절할 권리 따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개 재무관 나부랭이가 어찌 실비아 크렘보르의, 권유의 가면을 쓴 명령을 거역한단 말인가.

그의 처지는 크렘보르 남매의 기 싸움이라는 폭풍에 휘말린 한 마리 작은 새에 지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불어온 칼바람에 날개가 부러지고, 다리가 꺾일지 모르는.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고 누가 말했던가. 불어오는 바람을 잘 이용하기만 한다면, 더 높게 날아오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저 롬바드라는 자. 보통이 아니군요."

"그래?"

"예. 소문으로만 들었을 때는 무모하고 명령에만 충실한 군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보니 꽤 유능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침착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 이 많은 인원을 이끄는데, 망설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군."

"예. 능숙합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나이를 짐작할 수는 없지만, 듣자 하니 꽤 젊다고 하던데 말이지요. 지금까지의 모습만 보면 경험이 꽤 많아 보입니다."

"예사 인물이었다면 성주의 신임을 받을 수 없었겠지. 먼 길을 떠나는 자식에게 붙여주지도 않았을 테고."

"그건 그렇습니다."

말 위에서 가벼운 손짓으로 병사들을 부리는 모습이 마치 전장에 나선 장군 같았다. 카인은 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고 넘겼으나, 레온은 그 뒤로도 롬바드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를 카인도 알아차렸으나, 그저 무인 특유의 호기심이 도진 것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

몇 차례 습격이 있었다. 모두 마적 떼의 소행이었다. 야음을 틈탄 습격이었으나 경계를 철저히 한 덕에, 그리고 롬바드의 신속한 지휘 덕에 어렵지 않게 적을 격퇴할 수 있었다.

푸욱!

롬바드는 한 자루 창을 쥐고 이곳저곳을 누볐다. 적을 찌르고 베면서도 그의 고개는 계속해서 움직였고, 찢어지는 목소리는 유령의 비명처럼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쫓지 마라! 자리를 지켜!"

그는 적 중에 목소리가 큰 놈이 있다 싶으면 곧장 그쪽으로 말을 달렸다. 그리고 기어코 목표로 한 적의 목을 베었다. 그는 그를 따르는 친위대 병사들과 함께 바람처럼 적을 휩쓸었다.

"피해는?"

"짐꾼 다섯이 죽고 상인을 포함하여 열 명 정도가다쳤습니다."

"싸움은 끝났다. 남은 것들을 수습하라."

"예."

전투가 벌어질수록, 롬바드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마냥 두려워하거나, 호기심 내지는 의심 섞인 시선을 보내던 이들도 이제는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의 창 때문이 아니라, 롬바드의 능력을 신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가씨."

"롬바드 공. 고생 많으셨습니다."

실비아가 완전무장한 채로 롬바드를 맞이했다. 금방이라도 적의 목을 벨 것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는 그녀였지만, 당연하게도 그녀가 몸에 피를 묻히는 일은 없었다. 그녀 자신은 한 손이라도 거들겠다고 했지만,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며 만류했다. 그 과묵한 롬바드조차도, 자신의 목이 떨어지기 전에는 그럴 수 없다며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러자 실비아도 하는 수 없이 상인들과 함께 안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지만, 그때마다 산드라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혀를 차기를 반복했다.

"이동해야겠습니다. 되도록 빠르게."

"무슨 말입니까? 걸리는 점이라도?"

"정보가 퍼진 것 같습니다. 곧, 피 냄새를 맡은 다른 놈들이 몰려들 겁니다."

누군가 제국 밖을 야만의 땅이라 칭했던가. 실비아는 그 말의 뜻을 나날이 실감할 수 있었다. 연합이라고는 해도, 하나하나가 작은 소국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어디에나 도적들이 판을 쳤다. 이 정도면 소국들이 도적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용인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라르옌다드까지 이틀 거리라고 들었습니다."

라르옌다드. 솔롬을 떠나기 전에 정한 경유지 중 한 곳이자, 꽤 규모 있는 도시국가였다. 물론 그래 봐야 테리브란은커녕, 하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 출발한다면 내일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실비아는 롬바드가 다급한 마음에 무리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껏 그의 말을 들어 일을 그르친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일단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늦은 오후,

멀리 보이는 라르옌다드의 성벽에, 실비아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하고자 마음먹으면 못할 일은 드물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시다! 라르옌다드다! 모두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짐꾼들이 이를 악물고 발을 움직였다.

***

"정지!"

"실비아 크렘보르다! 라르옌다드의 왕께서 내 이름을 알고 계실 것이야. 아뢰어라!"

우르르 몰려나온 라르옌다드의 병사들 앞에서, 실비아가 크게 외쳤다. 비록 편치 않았던 여정으로 외관은 상했을지라도, 그 위엄만큼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의 호령에 기 싸움을 벌이려던 라르옌다드의 병사들이 움찔거릴 정도였다.

"크렘보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크렘보르라는 이름은 라르옌다드에서도 제법 유명했다. 알 만한 이들은 다 안다고 해도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르옌다드는 판니른과 가장 인접한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런 만큼 판니른의 유력한 가문 중 하나를 모르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잠시 후, 안으로 들어갔던 병사가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왔다.

"들라십니다! 하지만 실비아 크렘보르 공을 제외한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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