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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842화 (842/1,064)

842화

흐름을 읽는 눈이 있는 자들은 모든 상황에서 기회를 엿본다. 그 얼마 안 되는 이들 중에 또, 실력과 운을 고루 갖춘 소수만이 결과를 얻는다. 권력, 재물, 아니면 다른 뭐가 됐든.

돈 냄새 하나만큼은 짐승보다 더 빠르게 맡는 상인들이 이번 일에서 달콤한 무언가를 포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카인도 얼마 안 되는 여유자금을 털어서 투자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여유자금이 정말 얼마 되지 않아 재미를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말끔하게 포기했다. 재산, 지위, 다른 모든 것이 어정쩡한 그가 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브라그는 생각이 다른 듯했다.

"들어보게. 새로운 상로를 뚫기만 한다면 상당히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은 당연해. 그렇지 않나?"

"그렇긴 하지."

"그래. 물론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처음 얼마간은 쏠쏠하게 재미를 볼 수 있을 거란 말이야."

"그런데… 우리가 끼기에는 너무 판이 크지 않나? 게다가 잘못 발을 들였다가는 된통 데이기만 하고 끝날 텐데?"

재무관을 하려면 단순히 성격이 좋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온갖 싫은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정신을 붙들 정신력과 받아넘길 수 있는 성격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머리가 좋아야 한다. 숫자를 다루는 이가 머리가 나빠서 셈이 느리고, 어설프다면 온갖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는 '죄송합니다' 한 마디로는 넘길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될 확률이 높다.

또한, 돈을 다루는 일을 하다 보면 재무관들은 자연스레 현실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돈이야말로 현실 자체였기에.

혹자는 돈의 흐름을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던데, 온갖 재무를 처리하다 보면 그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새로운 상로를 개척한다는 것도 그래. 상로 개척이라. 말이야 쉽지, 그게 정말로 쉬웠다면 다른 상인들이 왜 여태 그 돈을 들여가며 주 경계를 넘었겠나?"

상인들이 주 경계를 넘을 경우,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일단 기본적인 관세부터 시작해, 주경계를 지키는 지휘관들에게 괜히 트집잡히지 않기 위해 적잖은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뿐인가? 일단 경계를 넘었다면 그때부터는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주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사실상 국경을 넘는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른 귀족, 다른 법이 지배하는 땅으로 넘어간 것이기에 현지에 뒷배를 둔 것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위를 걷듯 신중하게 보내야 하는 것이다.

"자네도 알겠지만, 오젠 총독이 어떤 자인가?"

오젠의 총독, 아라누만 멘티케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는 자였다. 각종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면서 뒷주머니로 적잖이 빼돌리고, 심지어 수하들에게도 상납을 받기도 한다던가. 그가 총독으로 취임한 지 3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오젠의 백성들이 모두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니, 그 학정이 어떠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셈이다.

그런 자가 안정이 필요한 동부에 취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가 중앙 조정에 댄 끈이 상당히 튼튼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악착같이 재물을 긁어모으는 것도, 어쩌면 그 끈을 유지하는 한편 더 두텁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래. 그자가 어디 보통 인사던가? 윗머리가 그러니 아랫것들도 덩달아 따라갔던 것이지. 그런데도 달리 방도가 없어서 꾸준히 오젠을 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래. 자네 말이 다 맞네. 하지만 이번엔 달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멘티케 총독은 물러설 수 없네. 그 자신이야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끓고 있을지 몰라도, 그의 뒤에 있는 이들은 그걸 용납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우리 성주께서는? 그분이 과연 칼을 빼 들고 먼저 물러나실 분인가? 아니. 아니지. 절대 아니야."

이미 사과 몇 마디와 심심한 선물 정도로 무마하기에는 일이 너무 커졌다. 허수아비 총독은 당연히 눈치나 살피며 뒷짐을 질 것이고, 테리브란에서 결론을 내기 전까지 경직되니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리라.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네. 문제는 누가 먼저 나서느냐겠지."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라네. 누가 먼저 나서겠는가? 가장 먼저 나서는 자가 가장 먼저 실패할 터인데?

그 위험부담을 누가 지려 하겠느냐 이 말이네. 누구보다 손해 보기 싫어하는 상인들이 말이야."

"확실히, 일개 상인이 나설 일은 아니지."

"그리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이건 자네들만 알고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브라그가 괜히 주변을 한번 쓱 돌아본 후 목소리를 낮췄다.

"높으신 분께서 이번 일에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이야기가 돈다네."

"높으신 분? 어느 정도로……?"

"나도 몰라. 이름을 거론하는 해서는 안 될 정도로 높은 분이라는 것밖에는. 사실 나도 아주 우연히 주워들은 이야기라서 말이지."

"으음."

"높으신 분들이라고 돈을 싫어하시겠나? 오히려 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 돈 나갈 일이 더 많기 마련이겠지. 우리 같은 것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말이야. 기회가 될 때마다, 챙길 수 있는 것은 챙기려는 것이 당연한 일일 걸세."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그래서 자네 말은?"

"드러났을 때의 문제도 문제지만, 아무래도 체면이라는 게 있지 않겠나. 높으신 분이 주도하는 일이라 할 지라도 전면에 나서는 것은 상인들일 것이 분명해. 그렇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도 미미하게나마 선을 대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확실히… 그럴지도."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대화에 끼지 않고 듣기만 하던 이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정말 확실한 건가?"

"확실해. 하지만 말했듯이 나도 아주 우연히 들은 것이라 정보가 얼마 없다네. 그래서 말인데……."

브라그의 시선이 카인을 향했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카인은 피식 웃었다.

높으신 분 운운했을 때부터, 카인은 브라그가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렸다. 우연히 얻어들은 고급 정보에 몸은 잔뜩 달아올랐는데, 재무관으로 있으면서 기른 현실감각이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게 끔 보다 확실한 정보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뜻.

"카인. 자네가 공자와 긴밀한 사이지 않나."

"밖에서는 그렇게 보이는가 보군."

"뭐, 그렇지."

"다른 데서는 그런 말 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공자께 누가 되는 말이니."

"으음. 그래. 하지만 어쨌거나 자네가 공자님과 연이 있다는 건 사실 아닌가. 바오룸 공 같은 분과도 사사로이 어울리고 말이지."

"정보를 알아 봐달라, 이 말인가?"

"염치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어떻게 안 되겠나? 구체적이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내가 들은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만 확인해주면 되네.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알아볼 테니까."

"흐음."

"생각해보게.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나? 잘만 하면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을 거야. 번듯한 집 한 채 장만하고, 아니지. 당장 이 더러운 일 때려치워도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어."

과장이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과장. 설령 그의 말이다 맞고, 일도 다 좋게 풀려서 선을 대는 데 성공했다고 쳐도 챙길 수 있는 한몫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몫이 커지려면 들이는 돈이 그만큼 많아져야 하는데, 그 정도로 깊숙하게 발을 담갔다가는 높으신 분들의 이목을 끌게 될지도 모르니까.

브라그도 그 정도는 알 터. 그런데도 이렇게 허풍을 부린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몸이 달았다는 뜻이겠지.

카인은 브라그 외에도 자신을 향한 뜨거운 눈길들을 느꼈다. 여기서 힘들다고 발을 뺀다면, 감당해야 할 실망과 원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았다.

'간사한 놈.'

어쩐지 이번만큼은 꼭 참석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니,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건가.

'하지만…나쁘지는 않아.'

한몫 챙기는 걸 누가 마다하겠나. 위험부담만 크지 않다면 공짜로 돈을 버는 일은 그로서도 환영이었다.

문제는 이 정보가 신빙성이 있냐는 것인데.

"그래. 한번 되는 데까지는 알아보도록 하지."

"고맙네. 고마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보리스 공자와 사이가 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인사들과는 아직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니까. 브라그가 말했듯, 바오룸 같은 이들과는 직접 만나기도 하는 사이였고.

그러니 그들에게 넌지시 한 번 떠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 자. 들지. 오늘은 내가 사겠네."

카인이 제안을 받아들여서일까. 아까보다 목소리가 더 커진 브라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 카인은 그 달아오른 분위기에 적당히 어울려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

"으음?"

"그렇지 않습니까. 오젠과 분위기가 썩 좋지 않게 되었는데, 오젠의 총독이 어떤 자인지 생각해보면 이 경직된 분위기가 금방 풀릴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지요."

바오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얼굴은 이미 적당히 붉어진 상태였다.

"맞는 말이지. 그 탐욕스러운 돼지는 테리브란에 있는 제 후원자의 눈치를 더럽게 봐 대니까."

"오젠을 통한 교역이 막히게 되면 판니른도 타격이 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영향을 받겠지요."

"흐음. 나는 잘 모르겠지만, 총독이 알아서 하지 않겠나? 그러라고 있는 총독이지 않나."

"운바소르 아실 말씀입니까. 그자야말로 허수아비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습니까. 테리브란에 있는 제 주인의 눈치를 볼 테고, 그다음은 우리 장군이나 몰던 가주의 눈치나 살필 테지요."

"흐흐. 그 말도 일리가 있구만."

술이 들어가서인지, 아니면 총독이 우리 장군의 눈치를 살핀다는 말이 좋게 들려서인지 바오룸은 실실 웃기만 했다.

"…아무튼,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군. 뭐, 그런 문제야 신경 써야 할 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바오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그 말을 들은 카인은 브라그가 언급한 높으신 분이 보리스가 아니거나, 보리스가 맞더라도 바오룸은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알았다.

'흐음.'

이 시국을 통해 한 몫을 챙기려는 높으신 분. 그것도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누가 될 만큼 높으신 분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역시 보리스크렘보르다. 브라그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자신을 끌어들인 것일 터.

그런데 그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바오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보리스가 그에게는 언질을 주지 않은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바오룸은 사람이 조금 가벼운 경향이 있고, 생각이 깊지 못하다 보니 이런 일에서는 배제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하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단 말이지.'

보리스 크렘보르는 실리도 실리지만, 무엇보다 체면을 중시한다. 크렘보르의 확고부동한 후계자라는 자리는 그를 빛나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림자도 드리웠다. 카인은 그 짙은 그늘을 서기로서 그를 따라다니는 동안 몇 번이고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그늘은 보리 스 크렘보르를 여러모로 제약했다. 명문 귀족 자제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으나, 보리스 크렘보르는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했다.

'이런 돈놀이에 발을 들일 것 같지도 않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깊게 관여하지는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생각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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