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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824화 (824/1,064)

824화

삐이익-!

날카로운 호각소리를 들었을 때, 아드리안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호각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며 곧바로 칼을 뽑았다.

어쩌면 순찰병들이 발 빠른 좀도둑, 내지는 불량배들을 놓치고서 호들갑을 떠는 걸지도 모른다. 아마 십중팔구 그런 것일 테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런 거라면 오랜만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주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겁을 상실한 도적놈들이 몰래 도시 안으로 숨어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솔롬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고, 도시가 발전한다.

는 건 그곳에 돈이 모인다는 것을 뜻이다. 그리고 그건, 돈이 모이는 곳에는 늘 꼬이는 똥파리들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고, 지금까지는 그런 자연스러운 현상을 잘 막아왔지만, 혹시 모른다. 욕심에 눈이 멀어 제 목을 들이대는 얼간이들이 생긴 것일지도.

"이랴!"

대단할 것 없는 일이 분명했지만, 아드리안은 가슴이 뛰었다. 어떤 이들은 피 냄새가 지긋지긋하다고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 도시의 냄새가 적응이 안 된다는 말에는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극한의 긴장, 두려움이 있다. 한번 그것을 맛보고 나면, 다른 어지간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게 된다.

"저-저기!"

헐레벌떡 뒤따라온 병사가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멍청한 녀석이다. 누가 앞서왔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떤 놈들이 감히!"

널브러진 시신들을 보고서도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분통부터 터뜨릴 수 있다는 것. 그건 솔롬의 병사들이 약졸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호각을 분지 얼마나 됐다고.'

소리를 듣자마자 말을 달렸다. 그 짧은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는 건가.

"흔적을 지울 겨를은 없었던 모양이군요, 저쪽입니다."

"바로 쫓아간다."

"지원 요청을……."

"그래. 네가 해라. 난 어떤 놈들인지 얼굴이라도 봐야겠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혹 아바시스 놈들일지도 모르는데."

"하! 아바시스?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

보통 놈들이 아님은 분명해졌지만, 아드리안은 그렇다고 해도 정체 모를 적이 아바시스에서 왔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근래에 국경 부근에서 별다른 보고는 없었다. 눈에 띌 정도의 병력, 즉 군대가 음직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껏해야 첩자 내지는 암살자들일 텐데, 그런 놈들이라면 일개 순찰대에게 덜미를 잡히겠는가.

"서둘러라!"

도시 내에서, 특히 성문이 닫힌 후에 말을 달릴 수 있는 것은 허가받은 이들뿐이다. 도적놈들이는 암살자 놈들이든, 이동하려면 두 다리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덕분에 아드리안은 곧 적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놈들은 말발굽 소리로 진작 추적을 알아차렸는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웬 놈들이냐."

의미 없는 물음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묻는다고 답해줄 놈들이었으면 저런, 척 보기에도 수상한 행색으로 숨어들어와서 일을 벌였겠는가. 그걸 알면서도 의미 없이 한마디 던진 것은, 단지 수하들에게 숨 돌릴 틈을 조금이라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걸 상대도 알았던 것일까.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칼로 답을 대신했다. 움직인다 싶었을 때 이미 거리를 반쯤 좁혀왔다. 무섭도록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돌파!"

서서 싸우는 쪽과 말 위에서 싸우는 쪽.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 나름. 적은 이런 방식의 싸움이 익숙한 듯 보였다. 그렇다면 굳이 저쪽이 원하는 대로 어울려줄 필요는 없지 않겠나.

아무리 몸이 날래다고 해도 달리는 말보다 날랠 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천천히 진을 빼며 짓밟으면 그만이다.

"어엇!"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분명 그대로 말발굽에 치이거나, 바닥을 구르거나 둘 중 하나였을 상대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그대로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사술!'

그 순간 아드리안은 최대한 감각을 끌어올리면서 칼을 휘둘렀다. 시내 순찰이라 창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으나,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닿기를 바랄 수밖에,

핏!

바람이 통했는지, 아니면 상대가 마음이 급했던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주 살짝. 칼끝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났다. 아드리안은 다급히 몸을 숙였다. 머리 위로 뭔가가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흡!"

힘껏 달리던 말과 뭔가가 부딪혔다. 억눌렀으나 미처 다 숨기지 못한 신음을 들었을 때, 아드리안은 재차 칼을 휘둘렀다. 이번엔 확실히 베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피는 뛰지 않았다.

'유령을 상대하는 것 같군.'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술수가 있다고 하니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성가실 뿐.

'하지만, 모습과 기척은 다 지워도 호흡만큼은 지우지 못하는 모양이지?'

잔뜩 흥분한 말을 달래며 말머리를 돌렸다. 칼날에 닿은 확실한 느낌 이후로 두 호흡 정도. 분명 아무것도 없던 곳에, 어깨를 부여잡은 시커먼 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베는 맛이 확실하다고 느끼긴 했는데, 보아하니 뼈까지 건든 모양이다.

"좋아. 천천히 해보자. 이쪽은 시간이 많다."

아드리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수하들을 살폈다.

혹시 당한 놈들이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자잘하게 긁힌 놈들은 있어도 크게 당한 놈은 없었다. 훈련의 성과다. 물론 두꺼운 갑옷의 공도 컸을 테고,

"대장,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음?"

재차 돌격명령을 내리려던 차였다. 갑작스레 그의 부관이 옆에서 속삭였다.

"열세임을 알 텐데도 물러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죽기 살기로 엉겨 붙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무슨 말이지?"

"어쩌면 여기 이놈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한두 놈 정도만 남겨서 심문해보면 될 일이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드리안은 그런 생각을 바로 머릿속에서 지웠다. 적을 앞에 두고 생각이 많아져서 좋을 것은 없다. 눈앞에 있는 상대가 만만찮을 때는 더더욱.

지금 약간 승기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그뿐이다. 생각은 적을 눕힌 후에 해도 충분한 것이다.

"알겠지? 서 있는 놈이 없어질 때까지 절대 멈추지 마라!"

크게 외친 아드리안이 다시 한번 힘차게 말을 달렸다.

***

"헉…헉……."

카인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안간힘을 쓰며 달려도 등 뒤로 느껴지는 압박감은 점점 짙어져만 갔다.

점차 줄어들던 보폭이 끝내 느릿하게 걷는 수준까지 떨어졌을 때, 카인은 매서운 살기를 느끼곤 다급히 땅을 굴렀다.

퓩!

작은 단검이 땅을 파고들었다. 거칠게 땅을 구른 카인은 곧바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한차례 휘청거렸다.

"애먹이는군.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비릿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악문 이빨 사이에서 흘러나온 피였을까, 아니면 땅을 구르면서 혀라도 씹은 것일까. 뭐가 됐든, 그 비릿함은 어질어질한 정신을 조금이나마 일깨워주었다.

"정말이지 지독하군. 포기할 줄을 몰라."

"명을 받았으니 따를 뿐이지. 멈추고 멈추지 않고는 나 같은 자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야."

"그래. 충직한 개로군. 하지만 안 됐어. 그리 고생했지만, 결국은 헛수고를 하게 될 테니."

몸은 힘을 잃고 비틀거렸으나 눈빛만큼은 형형했다.

성큼성큼 다가서던 추격자들의 대장도 심상찮음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지독하기로 따지면 네놈도 만만치 않지. 힘들지 않았나? 곱게 자란 고귀한 태생이 세상에 던져진다는 것이, 녹록지는 않았을 것인데."

"하하!"

무엇이 그리 우스웠을까. 카인은 웃긴 농담을 들었다는 듯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냄새를 따라 쫓아올 줄만 알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

"됐다. 끝내 개에게 덜미를 물려버린 내 잘못이겠지. 그저, 이제 이 지긋지긋한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거야."

나직한 독백.

카인의 눈빛이 변한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카인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의 양어깨에는 어느새 조금 전 땅에 박힌 것과 같은 단검 두 자루가 꽂혀 있었다.

"크윽!"

균형을 잃고 밀려 넘어지는 순간까지도, 고통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독?'

감각이 무뎌졌다. 얼마나 지독한 독을 발라놓은 것일까. 어떻게든 혀를 씹기 위해 노력했으나, 양어깨에서부터 번진 독은 빠르게 몸의 감각을 앗아갔다.

'이런…빌어먹을'

후회가 밀려왔다. 진작 무술을 어느 정도라도 익혔더라면,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무술까지도 필요 없다. 뭐라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절망하고 두려워하며 의미 없이 세월을 보내는 대신, 정말 뭐라도 했었다면.

'부질없는 후회로군.'

그때의 연약하고 어리석었던 자신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될 줄 알았겠는가. 미래라는 것이 존재할 줄 알았겠는가.

쓰러진 걸까. 눈높이가 낮아졌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사냥개가 산처럼 커 보였다. 몸을 일으키려 팔을 허우적거렸으나 별 소용없었다. 팔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는데, 어떻게 땅을 짚고 일어서겠는가.

"걱정하지 마라. 단순한 마비독이다. 사지 멀쩡하게 황도까지 데려다주지."

선심 쓴다는 듯 말하지만, 그게 오히려 거슬렸다. 사지 멀쩡하게? 어차피 비참한 꼴을 보게 될 텐데, 그전에 팔다리가 잘리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역정을 낼 수도, 그럴 이유도 없다. 벌레처럼 꿈틀대며 끝내 찾아온 운명에 조아리는 것. 그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누구냐!"

그렇게 체념하고 눈을 감던 차였다. 날카로운 고함이 들리더니 챙! 하는,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웬 놈이냐."

분노가 끓는 나직한 목소리에 눈을 뜨니, 우두머리 사냥개가 거리를 벌리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낯선 자가 칼 한 자루를 들고 서 있는 것도.

"우리가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인데 알아 무엇하겠소. 목숨이라도 보전하려거든 이만 물러나는 게 어떨지?"

담담하고, 젊은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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