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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821화 (821/1,064)

821화

대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지만, 짧다면 짧은 그 시간만으로도 로우렌은 롬바드라는 자가 어떤 자인지 대강 알 수 있었다.

첫째로, 그는 무뚝뚝한 사내였다. 그 무뚝뚝함이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흉한 목소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말수가 적었다.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살라스님이 총애한다고 했을 때부터 대충 짐작은 했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한, 자고로 사람은 비슷한 이들끼리 어울리게 되는 법이다. 살라스는 날 때부터 군인이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성품이 완고하다. 그런 자가 아끼는 수하라면 직접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그 짐작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대체 어디서 저런 자들을 찾아내는지."

"그런 자들이 알아서 모이는 거다. 성주님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휘하의 살라스님도 널리 이름이 알려진 분이니까."

그라모트가 로우렌의 말을 정정했다. 로우렌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런 것치고는 말이 조금 통하는 듯도 하던데."

"그래?"

"음.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이겠지. 간간이 아버지에 대해서 이래저래 물어보더이다."

"……."

그라모트가 입을 다물었다. 동생과는 달리, 그는 아직 부친의 빈 자리가 주는 허전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로우렌의 목소리도 조금 가라앉았다.

"신기하더군, 생전 처음 보는 자인데, 묘한 기시감같은 것이 들더라니까."

"기시감?"

"음. 그, 왜 있잖소, 딱딱한 무부들 특유의,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무슨 설명이 그따위란 말이냐. 그래도 뭘 말하는지는 알 것 같다만."

"나보다는 형님이 이야기를 나눴으면 더 잘 통한다고 느꼈을 거요. 뭐, 친위대 인간이니까 언제 기회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친위대는 성주 직속이다. 군부의 조직체계에서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나와 있다고 봐도 좋다. 그렇기에 그들은 독립적이다. 사실 독립적이라는 표현보다는 고립되어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위에서는 그러기를 독려하는 편이고, 다른 일에는 관심 없고, 관심을 둬서도 안 된다. 오직 성주의 안전만을 살핀다. 그런 최정예 호위 세력인 만큼, 외부와의 접점은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단순한 호위 집단인 것 같지만, 그렇다.

고 그들을 얕잡아 볼 수는 없다. 솔롬에서 성주는 절대적인 존재고, 친위대는 그런 성주를 가장 가까이에서 따르는 이들.

성주를 가장 가까이서 따른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존중받을 만하다. 이 솔롬에서는 말이다.

'우습단 말이지.'

세상이 넓은 만큼 권력자도 많다. 하지만 그 어떤 권력자가 이 정도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질 수 있을까.

'영주, 아니, 황제나 다름없지.'

로우렌은 이 광활한 제국 안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특별하고 특이한 권력자일 것이 분명한 성주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음에도 도무지 정이 안 가는 인간이지만, 대단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어쨌거나 크렘보르 가문도, 이 도시도 그가 맨손으로 일궈낸 업적 아니겠는가.

성주에 대해 떠올리던 차에, 오늘 연회장에서 대화를 나눴던 가면 쓴 사내가 아주 잠깐 머릿속을 스쳤다.

왜인지는 몰랐다. 말 그대로 잠깐 스친 것에 불과했으니, 로우렌은 금방 머릿속에서 그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

"어떠셨습니까?"

"색다르긴 하더군."

"역시 그렇지요? 말씀드렸듯, 혈연이란……."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짐은 가면 속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어떤 자들은 사람의 눈만 봐도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은 허풍쟁이거나, 거짓말쟁임이 분명하다. 설령 그게 아니라 한들, 적어도 그는 가면의 눈구멍으로 보이는 눈빛만으로는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제 저 쇳덩이가 익숙해졌나 보지.'

한동안은 가면 쓰는 것을 답답해하더니, 이제는 가면을 벗고 있는 것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좀 더 차갑게 변한 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저 쇠로 된 가면은 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지니까 말이다.

"기억은 이제 온전하다. 하지만 기억 속의 감정까지 돌아오지는 않는군. 어제 그걸 확인했다."

"으음."

"아내와 두 아들을 두었던 할렌은 분명 나다. 그러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답을 찾으신 듯하군요."

"네가 원하는 답은 아니겠지만."

"제가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원한다면 할렌님이 하루빨리 온전해지시는 겁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나짐은 할렌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린 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이제 스스로에 대한 의심도 사라졌을 테니, 마음의 평온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면 영혼과 육신의 부조화도 차차, 어쩌면 머지않아 해결될 테고, 물론 자신의 이론이 틀리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그래서, 지금 기분은 어떠십니까. 전처럼 혼란스러우십니까?"

"아니."

"감정적인 동요도… 없으신 듯하군요. 좋습니다. 덕분에 저도 장군께 오랜만에 어깨를 펴고 보고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간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아무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도 성과를 내지 못했던 터라, 성주의 집무실로 불려갈 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성주의 최대 관심사는 할렌이었고, 덕분에 나짐이 받는 압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처음에는 밤잠을 줄여가며 성과 없는 연구에 계속해서 매달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반쯤 포기 상태였다. 물론 그러면서도 꾸준히 연구는 했다.

'우습군.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할 때는 막막하기만 하더니…….'

미지의 탐구라는 것이 본래 이렇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허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허탈감이 안도감을 이기지는 못했기에, 나짐은 차갑게 느껴지는 가면을 바라보면서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좋아질 일만 남은 건가? 이 악취도 사라지고?"

"확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여러모로 좋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말씀하신 악취도."

말 그대로 아마였다. 나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악취가 풍기는 이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인데, 어찌 확신하겠는가.

다만 할렌의 육신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영혼과의 부조화 때문일 것이니 그 부분이 해결되면 나머지 문제도 자연히 해결되지 않을까 짐작하기만 할 뿐.

'이거 내가 무슨 의사라도 된 것 같구만.'

나짐이 내심 자조했다. 의사를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술사인 자신이 왜 환자를 상담하는 의사노릇을, 그것도 조력자에 대한 존중을 전혀 보이지 않는 이를 상대로 하고 있어야 하는지 조금은 한탄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얄팍한 마음이 드는 것도 칙칙한 지하실에서 시간을 죽일 때까지만이었다. 성주의 호출을 받아 그의 집무실로 들어섰을 때, 나집은 이번만큼은 할 말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할렌에게 말했던 것과 달리, 그의 어깨는 이전처럼 움츠러들어 있었지만.

"더는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리 상태는 안정적이고……."

"그래서, 다 해결됐다는 건가?"

"아직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차차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군터가 몸을 일으켰다. 나짐이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군터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창이 나 있는 집무실 한쪽 편을 향했다.

"할렌의 자식과 어울리고 있다지."

"아, 예."

"미래를 준비하는 건가?"

"그……."

"뭐라 할 생각은 없다. 제 인생에 열심이라는 것이니 오히려 칭찬해주고 싶군. 뭐, 현재에 소홀하고 미래만 준비한다면 실망스럽겠지. 그런데 자네는 그게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야."

나짐의 뒷덜미에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오늘도 전처럼 아무런 성과도 가져오지 못했다.

면 어땠을까. 분명 저 말의 내용 달라졌을 테고, 그러면…….

꿀꺽!

나짐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군터는 여전히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대충 수고했고, 그간의 노고에 대해 섭섭잖게 상을 내리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짐은 그 말에 기뻐할 겨를도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숨막히는 공간을 벗어나고픈 마음뿐.

"그럼……."

"그래. 이만 물러가게."

나집은 물러가라는 그 한마디가 그리도 달콤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

"그 정도입니까?"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걸세. 성주님과 독대하는 것은…목에 칼을 대고 있는 것과 비슷해. 아니, 그보다도 더 심하지."

"흐음."

성주와의 독대를 마친 후, 나짐은 술친구를 찾아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했다. 그 술친구가 왜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카인인가 묻는다면, 글쎄. 말이 잘 통해서라고 답하리라.

그래. 말이 잘 통한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게 비슷한 나이대 때문인지, 아니면 과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 그게 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중요한 건 말이 통한다는 것. 정확히는 말을 하면서 계속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자네나 나나, 피곤한 신세 아닌가. 항시 처신에 신경 써야 하는."

"그게 어디 저희만 그렇겠습니까."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에 이런저런 공통점이 있다.

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자연스레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바오룸이 주선한 술자리에서 처음 만나 서먹하게 통성명을 하던 사이가 이렇게 단둘이 만날 정도로 가까워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성주께서는 아직도 정정하신가 봅니다. 보통 그 나이대의 무관들은 기력이 쇠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물론 무관도 무관 나름이다. 카인이 말한 무관은 일선에서 수도 없이 활약하며 몸이 상한 이들을 뜻한다.

그런 이들은 종종 이르다 싶은 나이에 현역에서 물러나곤 했으니, 카인이 성주의 정정함을 의아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짐은 웃으며 그의 일반적인 생각을 바로잡아주었다.

"성주께서는 보통 사람이 아니시네. 보통 사람이 어찌 그런 공을 쌓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분께서는 그 정도가 아니야. 나로서는…솔직히 그분이 십년 안이든, 이십년 안이든 물러나신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아."

"공자가 들으면 달갑지 않아 하시겠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내 생각이 그런 것을 어쩌나. 자네도 성주님과 독대하고 나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걸세."

나짐은 은연중 자신이 성주와 독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며 으스댔다. 카인은 그저 웃으며 긍정할 뿐이었다.

카인의 이런 점도 나짐이 그와 교분을 나누는 이유 중 하나였다. 보통 술자리에서 한 사람이 자기 자랑을 하면 맞은편에서도 받아치듯 뭔가 튀어나오기 마련인데, 카인은 그런 것이 없었다. 그는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줄 줄 아는 자였다. 적당한 호응은 덤이고.

어쩌면 그것이 카인 나름의 처세술일지도 모른다.

귀한 재주다. 어떤 현인이 그러지 않던가. 인간의 귓구멍 두 개를 합쳐도 입 크기 하나만 못한 것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런 면에서 카인은 비범한 자였다. 괜히 이곳저곳에서 한낱 서기의 이름이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어깨가 무거우시겠습니다. 나집님이 하시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성주께서 나집님을 총애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입을 열더라도 상대가 곤란할 만한 말은 일절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기분 좋게 사람을 띄울 줄 아니, 그와의 대화가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

"뭐, 그렇지, 자네는 어떤가?"

"저 말입니까?"

"그래."

"잘한다는 소리야 심심찮게 듣고 있네만, 당사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 않나. 아무래도 서기 일이라는 것이… 적성에 맞기가 쉽지도 않고."

카인은 대답 대신 가벼운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나 짐은 그 웃음만 봐도 카인이 그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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