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터-818화 (818/1,064)

818화

"모페이브."

"예."

"두 녀석, 무슨 일 있었나?"

가족 식사가 끝난 후, 군터가 모페이브에게 물었다.

자를 내오던 모페이브는 느닷없는 물음에 잠시 멈칫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어색하더군."

보리스는 평소보다 더 말을 붙이려고 하는 듯했고, 그에 반해 실비아는 다소 차가웠다. 언젠가부터 둘 사이에 그리 많은 말이 오가지는 않게 됐지만, 오늘은 유독 둘 사이가 더 멀어 보였다. 군터는 그것이 결코 기분 탓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모페이브는 할렌에 대한 연구 외에도 크렘보르 가문의 집안일을 총괄했다. 이 저택에서 그가 모르는 일은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그런 모페이브가 잘 모르겠다고 한다면, 별일은 없다는 뜻.

"신경 쓰이십니까?"

"두 녀석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으니까."

"제가 알기로, 형제자매 사이가 좋기는 힘듭니다. 앙숙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그런가?"

"귀족 가문의 후계다툼 같은 것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극단적이군."

"아가씨께서 사내였다면, 어쩌면 다른 가문의 일이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되도록 둘 것 같은가."

"때때로, 부모는 자식들의 일에 대해서는 무력해지곤 하지요. 어쩌면, 장군께서도 예외가 아니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까? 군터는 가만히 생각해보았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닥치지도 않은 일을 가정하여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은 역시 무의미하다.

"일은 좀 어떤가."

"송구할 따름입니다."

군터가 말하는 일이란 당연히 크렘보르의 집안일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할렌이 겪고 있는 '부작용'을 줄일 방법의 연구. 그것에 대한 진척이 좀 있었는지를 물은 것이다. 그리고 모페이브는 고개를 숙이며 답을 대신한 것이고,

"그리 어려운가?"

"어둠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금방 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헤매게 될 수도 있지요."

미지를 탐구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우연히, 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쉽게 답을 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반대로 기약 없는 막막함에 매몰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그저 끝없이 발버둥 치는 것이다. 죽어라 휘두른 팔과 다리에 무언가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요즘은 통 성과가 없었지.'

모페이브는 빈 잔을 옮기며 생각했다.

노력한다고 반드시 크고 작은 성과가 따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따른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긴 하는 이들은 성과가 나올 때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기에 그리 믿고 있는 것뿐.

물론 모페이브는 그들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미지의 탐구자로서 더없이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나 그들처럼 할 수는 없다. 사람의 열의는 언제나 처음처럼 타오를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모페이브는 나짐을 탓하지 않았다. 근래에 눈에 띄게 열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젊은 술사는, 그에게 있어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군말 없이, 열과 성을 다해온 것이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겠지.

게다가 나짐은 젊다. 젊은 나이에는 혹하는 게 많기 마련.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손에 재물까지 쥐었으니 술사이기 전에 젊은 사내인 나짐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연구실에서 보내던 시간이 삶의 전부였던 그에게 누가 바람을 넣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때가 되면, 잠깐의 일탈이 지겨워질 즈음이 되면 다시 지식을 갈망하게 되리라 그러한 믿음으로, 모페이브는 군터의 앞에서 말을 아꼈다.

***

로우렌은 어려서부터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말재주가 있는 편이었는데,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말을 하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말이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로우렌은 자연스럽게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즐거운 취미라도 일이 되면 처음처럼 즐기기는 힘들어지는 법, 로우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왜 이런 샌님 술사에게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 고심했다. 물론, 그런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하! 그래서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했냐면……."

사내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술이 조금 들어가면 으레목소리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특히 옆에 여자까지 있다면, 귀여운 허세에는 조금 더 힘이 들어가곤 한다.

그런 것들을 적당히 흘려듣고,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것은 이제 숨 쉬듯 쉽고 자연스럽다.

"역시, 대단하군, 사내라면 그 정도 호기는 있어야지."

"암, 암! 내가 그렇게 대차게 밀고 나가니까 녀석들도 당황했는지 아무런 말도 못하더군."

이런 자는 대하기 쉽다.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고,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면 되니까. 술에, 여자까지 있으니 그런 사소한 노력만으로도 충분하다. 문제는…….

"나짐 공, 어찌 그리 조용히 계십니까?"

"아, 하하. 재미있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니 조용히 경청하던 중입니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대놓고 말하자면 존재감이 없다. 술사들이 대개 이런 경향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 나짐이라는 자는 그 정도가 상당히 심했다. 처음에는 그저 조용한 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짐, 이자는 사람과 어울릴 줄을 몰랐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분위기에 녹아들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는데, 그런 주제에 조심성은 또 그렇게 많다는 게 문제였다.

놀러 나온 자리에서 혼자 전쟁터에 낙오한 신병처럼 굴어대니, 이런 자를 껴서 술자리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모르는 체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이었으니까.

'전보다는 조금 빈도가 줄었다지만, 여전히 들락거리고 있단 말이지.'

성주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로우렌의 비공식적인, 그러나 공식적인 업무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업무였다.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것은 눈치가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마음을 헤아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행동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성주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성주가 왜 휘하 술사들에게 그리 큰 관심을 갖는가.

분명 맡긴 일이 있으니 그럴 터인데, 그렇다면 그 일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일전에 그에 대해 넌지시 물었을 때, 나짐은 고렘에 관한 일이라 답했으나 로우렌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째서냐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저 느낌, 혹은 감이었다. 정말로 나짐이 모페이브의 조수 같은 자이고, 모페이브의 밑에서 고렘에 관한 이런저런 일을 돕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영 꺼림칙하단 말이지.'

그저 겁이 많을 뿐인 어수룩한 자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로우렌은 오늘, 그것을 확인하고자 마음먹었다.

마침 오늘은 상석에 앉아 헤프게 웃고 있는 청년의 생일이었다. 정확히는 하루가 지났지만, 어쨌거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나 비싼 만큼 분위기도, 술도, 여자도 좋은 곳으로 장소를 잡았다.

평소보다 한껏 사치를 부린 만큼, 저 조용한 술사도 조금은 들뜬 듯했다.

"이 사람이 사는 자리니, 모두 부족함 없이 즐겨줬으면 좋겠소."

"이를 말씀이오. 뭐 대단한 날이라고 이렇게 과분한 자리를 마련해주셨소."

고마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웃으며 마주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로우렌은 나짐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이 사람은 우리가 이 솔롬의, 판니른의 미래를 이끌 인사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소. 특히! 여기 로우렌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보리스 공자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계시는 분 아니겠소."

"하하. 끝까지 가자더니, 벌써 취하셨소?"

"겸양도 좋지만, 이번만은 그러지 마십시오. 공자께서 로우렌 공의 말이라면 그 어떤 말이든 귀를 기울이 신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소. 처음에 공자의 곁에 있는 그대를 보고 부친의 후광에 기댄다며 떠들어대던 이들도 이제는 모두 그 입을 다물었지. 왜겠소? 로우렌 공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소. 아니, 그래야만 하오."

"혹시나 해서 여쭙습니다만, 오늘 제가 술을 산다고 해서 그리 띄워주시는 건 아니지요?"

"하하. 뭐, 그것도 이유 중에 하나긴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띄워주고 기분 좋게 웃는 일이 반복됐다. 기분 좋으라고 과장을 하긴 했어도, 아예 없는 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로우렌이 나름대로 고르고 고른 이들이었다. 주기적으로 얼굴을 보면서 관리해야겠다고 필요성을 느낀 이들이라는 말이다. 그런 자들인 만큼, 배경이는 본인의 능력이든,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나짐 공은 어떻습니까? 요즘 하시는 연구는 좀 잘되시오? 그, 고렘 연구 말입니다."

"예, 뭐……."

"고렘이야 이미 테리브란으로 넘어간 것 아니었소? 더 연구하고 말고 할 것이 있던가?"

평소 같았으면 나오지 않을 이야기였다. 이들 모두, 나짐이 그들의 모임에 어울리는 자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는 있었으나 모임의 주최자나 마찬가지인 로우렌을 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로우렌이 나짐을 대우하는 까닭이 있으리라 생각해서 알려주기 전에 굳이 먼저 묻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지금은 술이 적당히 들어가서인지, 아니면 모두가 시끌시끌하게 떠들고 있는 와중에도 홀로 조용히 있는 모습이 거슬려서인지, 나짐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말이 나왔으니 한번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나짐 공이 하시는 일이 정확히 뭡니까? 성주께서 직접 챙기신다는 말도 도는 것 같던데, 사실입니까?"

모두의 시선이 나짐에게 쏠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