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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813화 (813/1,064)

813화

회의장에서 있었던 일은 오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 아무래도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들 중 입이 싼 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잔뜩 화가 났거나, 군터 크렘보르가 감비오 하비아누스에게 모욕을 줬다더라. 자기 심기에 거슬리는 짓을 하면 군대를 보내겠다고 협박했다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헛소문이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상당히 과장됐을 것 같은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떠돌아다녔다.

살라스는 군터에게 그 소문이 사실이냐고 묻지 않았다. 먼저 말해주지 않는다면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다.

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적이 생기겠군요."

"언제든 적이 없었던 때는 없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암살자들이 그 증거다. 위협적이라고 느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쥐새끼들이 유쾌할 수는 없다.

군터는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빠르게 퍼지는 악의적인 헛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감비오 하비아누스가 누구였는지 떠올리느라 잠깐 생각에 잠겨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회의장에서 자신에게 면박을 듣고 고개를 떨어뜨렸던 중년인이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뒤에서 속닥거리는 것 밖에 없는 족속. 그런 하찮은 놈들의 수작질에 일일이 반응해줘야 하겠나.

"건방지지 않습니까."

귀족이 아닌 일개 부부가 귀족, 그것도 정무대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지체 높은 귀족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살라스나, 듣는 군터나 이런 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저들끼리 입을 맞춘 후에 장군께 덤벼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때 상대해주면 그만이다."

"장군의 뜻이 그러시다면."

강하게 주장할 생각은 없었는지, 살라스는 군터의 심드렁한 대답을 듣자마자 더는 말하지 않았다.

"떠나기 전에, 물리츠 몰던과 조용히 한 번 보기로 했다."

"준비하겠습니다."

하잘을 떠나기 전날 밤. 군터는 살라스와 몇몇 수하들만을 거느린 채 물리츠 몰던과 회동했다. 비밀스럽게 만난 것치고 그리 중요한 내용은 오가지 않았다. 해들리르의 일과 관련한 몇 가지 자잘한 사안과 앞으로 함께 했으면 좋겠는지 사업들에 관한 이야기들.

"언제 또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소."

"글쎄."

자리가 파하기 전. 뮬리츠 몰던이 힐끗 군터의 기색을 살피더니 한 마디를 던졌다.

"재미있는 소문이 도는 모양인데, 들으셨소?"

"소문?"

"장군과 감비오 하비아누스 사이에 있었던……."

"들었소만."

"흐음. 별로 개의치 않으시는 듯하오."

"신경 써야 이유가 있나."

"본인의 일 아니오."

"어중이떠중이들이 숨어서 떠들어대는 것까지 다 신경 써야 한단 말인가. 그럴 여유는 없소. 여유가 있다 한들 그런 쓸모없는 일에 심력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고 "

"장군은…참으로 대범하시구려. 그 정도 대범함이 있기에 수만의 적을 상대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지. 아무튼, 감탄했소이다."

"감탄할 것도 많군."

군터는 흐릿하게 웃는 상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물리츠 몰던, 판니른에서 손꼽는 지위를 제외하고, 봐도 꽤 눈길이 가는 자다. 어중이떠중이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물론 저 가느다란 목은 힘 한번 주면 그대로 부러질 테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제 형제, 인척을 모두 죽이고 저 자리에 앉았다고 했지.'

권력에 눈이 돌아간 자가 눈이 돌아가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단순하게 눈이 돌아가는 것과 진정으로 독해지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런 면에서 뮬리츠 몰던은 걸물이라고 할 만하다.

혹자는 권력에 미쳐서 제 혈족을 모조리 쓸어버린 도살자라고도 하지만, 군터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제 혈족을 쓸어버리는 도살자가 되는 것도, 그만한 독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잔혹한 독심이.

하지만 잔잔하게 웃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서 그런 잔혹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철저하게 안으로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겠지.

***

"장군께서 돌아오시면 분명 공자님을 크게 치하하실 겁니다."

로우렌의 아부에 보리스가 피식 웃었다.

"넌 아직도 내 아버지를 모르는구나. 그분은 칭찬에 인색하신 분이다. 음…아니지. 인색하다기보다는, 기준점이 상당히 높다고 해야겠군."

"알고 있습니다. 허나, 공자는 처음으로 관리자 일을 맡으셨음에도 훌륭하게 해내지 않으셨습니까. 장군께서도 이 부분은 헤아려주실 겁니다."

"내가 한 일이 뭐가 있겠느냐. 아래에서 고생한 자들이 한 일이지."

"그들을 문제없이 부리는 것이 윗사람이 할 일입니다. 그러니 공자님은 할 일을 다 하신 셈이죠."

"되었다. 아부는 그쯤 해둬라. 그보다, 투기장 쪽은 어떠냐."

"대성황입니다. 피와 땀은 늘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지요. 공자님도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내가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시끄러워질 자들이 한둘이겠느냐."

투기시합을 마치 혐오스러운 것인 양 여기는 고리타분한 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장차 부친의 뒤를 이어 이 도시를 다스리게 될 보리스가 그런 혐오스러운 것에 눈길을 주는 것을 묵과하지 않을 터였다. 비록 그 혐오스러운 것이 벌써부터 쏠쏠한 수입을 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입으로는 천박하니 야만스럽니 떠들어대지만, 아마 그자들도 은밀히 투기장에 출입하고 있을 겁니다. 혹 직접 출입하지는 않더라도, 아랫것들을 통해 노름이라도 하고 있겠지요."

"함부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냐?"

"흥, 공자님도 이제 슬슬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 대다수는 위선자들입니다. 정작 본인은 지키지도 못할 도덕 수준을 남에게는 아주 쉽게 강요하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장군께서 왜 그런 자들을 그냥 두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대다수가 기반이 튼튼한 자들이니까."

그렇게 답은 했지만, 보리스는 내심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반이 튼튼하다? 그의 부친은 이전에도 호족이니 뭐니 하는 자들을 싹 쓸어버린 전적이 있었다. 그랬던 부진이, 알량한 기반을 믿고 설치는 자들을 그냥 둘 이유가 있을까?

'거슬린다는 느낌조차 받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자신에게는 함부로 입을 놀리는 자들이, 부친의 앞에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설령 입을 연다고 해도 한껏 눈치를 봐가면서 말을 꺼낸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함부로 입을 나불렀다가는 그대로 목이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발을 뻗을 곳을 봐가며 뻗는다는 건가.'

별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얕보였다는 뜻인데, 어찌 유쾌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또 불쾌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듣기에 좋은 말만 찾아서는 안 되지.'

주변에 아첨꾼만 가득하다면 현자도 순식간에 얼간이가 되고 만다. 듣기 좋은 소리도, 싫은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그게 아니더라도…….

"요즘도 그자들과 어울리고 있느냐."

그자들이란, 로우렌이 교분을 다지는 젊은 관리들을 말함이었다. 로우렌은 젊은 관리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고, 영향력을 얻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가 어울렸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양가 없이 고상하기만 한 취미들을 함께 하면서 말이다.

"예. 처음에는 시간 낭비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더군요."

로우렌은 그가 어울리는 젊은 관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우두머리 비슷한 것이 되었다. 말재주가 좋고, 씀씀이도 인색하지 않으니 그가 함께하는 자들의 인망을 얻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라모트는 무관들 사이에서, 로우렌은 분관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장차 그들 형제가 명성과 그에 걸맞은 지위를 얻게 되면 양 날개가 되어 자신을 보필할 것이다.

그런 계획이었으나, 요즘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모든 것을 녀석들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지.'

그라모트와 로우렌을, 그들의 충성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인 물은 언젠가 썩기 마련 아닌가.

또한, 보리스는 고작 자그마한 물웅덩이 하나에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것이 호수, 아니 못해도 강 정도는 되기를 바랐다.

고리타분한, 어쩌면 위선자일지도 모르는 이들의 보족한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거슬리고, 얼핏 쓸모없게 느껴지는 그들 역시 그가 다스리게 될 강의 일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아참, 공자님."

"음?"

"일전에 아가씨를 뵈었습니다."

"실비를?"

"예. 시내의 공연에 갔을 때입니다. 귀빈석에 낯이 익은 것 같은 분이 계시기에 봤더니, 아가씨더군요. 변복하고 계시긴 했습니다만, 알아보기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흐음. 그래. 요즘 그런 공연들을 많이 보러 다닌다고 듣기는 했다."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예전처럼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가시는 것보다는……."

"뭐, 그렇긴 하지."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부인의 잔소리가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틈만 나면 아가씨가 걱정된다는 등, 신경쓰이는 소리를 해댔는데 말이다.

"호위는?"

"눈매가 날카로운 자들이 여럿 붙어있더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걱정은 하지 않았다. 녀석이 어련히 알아서 할까. 여인이라고는 해도, 어지간한 사내들보다 기운이 강한 녀석이었다. 거기다 무술 수련도 상당한 수준으로 했으니…….

'그러고 보니 걱정이군. 누가 그 녀석을 데려갈는지.'

실비아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많다고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지만, 이제 슬슬 혼처를 고려해봐야 하는 시기였다. 그렇지만 본인이 생각이 없어 보이고, 부친은 혼사에 관해서는 자유를 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니 자신이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댈 수는 없다.

'녀석이 알아서 하겠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슬그머니 드는 잡생각을 밀어내고, 보리스는 곧 돌아올 부친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부족함 없이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부친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보리스는 성주 대리로서 미진했던 부분이 없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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