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8화
권력자에게는, 특히 귀족에게는 친위병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신변에 위협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에, 그들은 지적에서 자신을 지켜줄 무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친위병, 나아가 친위대의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과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군터도 비슷했다. 그에게도 친위대가 있었다. 늘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호위하는, 오직 그만을 위한 병사들이.
친위대에게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었다. 심지어 살라스조차도 그들에게 명령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오직 군터 그렘보르의 입에서 나온 명령만을 따랐다.
그들은 군터 휘하의 병사 중 실력으로는 충성으로든 최고의 정예였다. 당연히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그런 만큼 그들의 자부심도 보통이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런 친위대의 인원 보충 또한 엄격한 심사를 거쳤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충성심의 증명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보통 복무기간을 기초적인 척도로 두었다. 그게 기본이고, 그 기초적인 기준을 넘은 이들 중 실력이 뛰어난 이들을 선별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런 관례에 예외가 생겼다. 첫 예외였다. 롬바드라는 이름의 사내였는데, 여러모로 기괴하면서도 수상한 자였다.
일단 그 외관부터가 그랬다. 두꺼운 전신 갑옷을 입은 것이야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투구로 얼굴을 가린 채 얼굴 한 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의심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심한 화상 때문에 얼굴이 흉측하게 변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친위대원들은 그를 자신들의 새로운 동료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의 주인, 군터 크렘보르가 직접 그의 신원을 증명했기에.
"롬바드는 내 고향 사람이다. 비록 사정이 있어 한동안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의 충성심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너희가 다소 껄끄럽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안다만, 그를 너희의 새로운 동료로서 맞이해줬으면 좋겠군."
평소 말이 거의 없다시피 한 군터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속에 어느 정도씩 불만이 있더라도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하지만 명령에 따른다고 해서 마음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조용히, 티나지 않게 텃세를 부렸다.
물론 어린아이들처럼 치졸하게 따돌리거나 하는 식은 아니었다. 그들은 친위대로서의 자부심이 있었고, 그 자부심 때문에라도 그런 짓은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텃세를 부리더라도 떳떳하게 부렸다. 상술했듯, 그들에게는 친위대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 자부심은 자신들의 실력에 기인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근본을 알 수 없는 신입에게 자신들의 실력을 과시함으로써 신입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좌절하기를 바랐다. 이 또한 유치하다면 유치한 짓이었지만, 어쨌거나 크게 잘못된 방법은 아니니 그들은 떳떳했다.
그런데 그렇게 벌인 일이,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헉…헉……."
완전무장을 한 채로 시작된 구보, 그들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건방진 신입이 제일 먼저 입에 거품을 물고 뒤처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신입은 제일 먼저 뒤처지기는커녕, 오히려 누구보다 빠르게, 그리고 오래 달렸다. 끝끝내 구보에 참여한, 신입을 제외한 모두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신입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대, 대체…어떻게 되어 먹은 체력이냐."
"무기를 잡은 후, 단 하루도 단련을 쉬지 않았습니다."
거칠고 탁한, 찢어지는 것 같은 목소리가 여전히 귀에 거슬렸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달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숨을 몰아쉬기 바빴다.
"그, 그래.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나 보군. 하지만 체력이 다가 아니야."
"물론이지. 체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역시 기마술이……."
그렇게 애써 충격을 덜어냈지만, 그들은 군터가 롬바드를 소개하면서 그의 고향 사람이라고 한 것을 잊고 말았다. 군터가 어디 출신인지,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 그들이 모를 리 없었음에도 아주 잠시 그것을 망각한 것이다.
히히힝!
거센 콧김을 뿜어내는 말이 솜씨 좋게 방향을 틀었다. 그 위에 올라탄 사내는 능숙하게 말과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 인마가 합을 맞추는 그 움직임에 어색함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이, 이게……."
친위대원들도 기마술이라면 어디 가서도 내세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보기에도, 아니 그 누가 보더라도 롬바드의 기마술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들은 그제야 롬바드가 그들의 장군과 동향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군."
이어진 대련, 이번에야말로 그들은 신입의 기를 꺾어 주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커흑!"
명치를 파고든 검 끝. 독하게 마음먹고 연무장을 오른 친위대 무관은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어지간한 고통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그였지만, 이 공격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정확하게 틈을 노려 급소를 파고든 일격. 버티는 것은 고사하고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
볼품없이 무릎을 꿇고 컥컥대는 무관. 그는 친위대에서도 무공으로는 한 손에 꼽는 실력자였다. 그런 자가 스무 합을 버티지 못하고 패했다.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그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저 신입이 그들의 동료가 되기에 부족함 없는 실력자라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할듯했다.
***
"답답하지 않으십니까?"
"뭐가 말인가?"
나짐은 이제 롬바드, 아니 할렌의 이 거슬리는 목소리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여전히 듣기 안 좋다는 점은 그대로였지만, 이전처럼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지는 않았다.
"한때 할렌님의 수하였던 이들 아닙니까. 그런 이들이 이제 할렌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신입으로 대하니……."
"내가 할렌이 아닌 롬바드로 살아가기로 정했으니,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지."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말은 옳다만, 머리와 가슴은 본래 따로 놀기를 좋아하는 놈들이 아닌가. 게다가 무부라는 족속들은 특유의 자부심이 있어, 체면이 상하는 것을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 이상으로 질색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나짐은 할렌도 그 중 하나일 거라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지레짐작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들은 할렌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한 짐작이었다.
"그 점은 괜찮네. 그보다…이건 어떻게 안 되는 건가?"
할렌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당연하지만 그의 얼굴에 화상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피부가 핏기 없이 창백했다. 그 모습이 도무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방도를 찾아보고 있습니다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할렌님의 그 육신은 이미 죽은 몸입니다. 시체나 다름없는 것을 억지로 기능하게 하고 있는 셈입니다."
시체나 다름없다. 물론 할렌은 그 말이 자신이 아닌, 자신이 쓰고 있는 몸뚱이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았으나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마치 자신을 두고 움직이는 시체라고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화상을 입어서라는 핑계가 언제까지 통하지는 않을 걸세. 훈련 때문이든, 아니면 다른 일 때문이는 투구를 벗어야 하는 경우가 올 거야. 아니, 투구만이 아니지. 갑옷 역시 마찬가지."
"으음. 예. 그 부분은 저희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해서 연구를 거듭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노력하고 있다는데 더 말한들 무엇할까. 할렌은 입을 다물고 자신의 창백한 몸뚱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사실 핏기없이 창백한 피부도 문제지만, 죽어버린 몸뚱이에서 나는 냄새도 문제였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그의 몸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다행이라면 자신은 그 악취를 맡을 수 없다는 점일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의 감각은 일부가 마모되어 있었다. 후각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고, 통각도 심할 정도로 무더졌다. 그나마 시각과 청각은 멀쩡하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할렌이 자신의 몸뚱이를 살펴보고 있는 동안, 나짐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기에 조금 더 시간을 달라 했건만.'
할렌이 이야기한 문제점들은 그들도 진즉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찍부터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렌은 그 연구의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지하실을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좁고 어두운 곳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답답한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래도 나짐은 그가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졌더라면 좋았으리라 생각했다.
"말씀하신 것 외에, 신경 쓰이시는 부분은 없습니까?"
"다른 것은 문제가 없네. 현재까지는."
할렌의 육신은 비록 여러 가지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성능은 평범한 인간의 육신을 상회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적인 성능이라는 것은 근력이라든지 순발력 같은 부분을 의미했다. 이 부분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나짐은 이 흥미로운 상에 대해서도 연 싶었지만, 밀린 있기에 당장은 뒷전으로 밀린 상태였다. 다만 짐작하기로는, 시제에 남아있던 잔혼에 할렌의 영혼이 더해지면서 육신에 어떠한 작용을 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다행이군요."
"몸을 쓰면 쓸수록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기억이 뒤엉키거나 마음이 혼란스럽지도 않아. 좋은 현상인가?"
"물론이지요. 영혼이 육신에 익숙해지는 과정입니다."
다 안다는 듯이 주절대고는 있지만, 사실 나짐도 정말 그런 것인지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는 사령술사였지만, 영혼이라는 것이 보통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그도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이 일에 더욱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것이고.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지식이다.'
죽은 자의 소생. 비록 그 소생이 다소 불완전한 것이라고 해도 대단한 업적임에는 분명하다. 어떤 일은 기적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아니, 필시 그럴 것이다.
이 일을 처음 맡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짐의 가슴은 흥분으로 두근거렸다. 그는 술사였으며, 학자였다. 미지의 지식에 목마른 그에게 있어 할렌은 타는 목에 닿는 꿀물과 같은 존재였다.
"언제든, 뭐라도 걸리는 점이 있다면 주저 말고 이야기해주십시오."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