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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781화 (781/1,064)

781화

"솔롬으로 돌아가다니요?"

보리스는 불만이 많아 보였다. 감히 대놓고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미세하게 올라간 목소리에서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군터는 그런 아들을 이해했다. 한창 야망에 불타고 있던 자에 이런 비보를 접하게 되니 속이 상할 만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군터는 굳이 아들에게 사정을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그래' 하고 짤막하게 답한 뒤, 토어릭에게 흘깃 눈길을 주었다.

토어릭은 야속하다는 듯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공자도 알다시피 병사들이 크게 상했습니다. 공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기반을 잃어서야 아무 의미가 없지요. 무엇보다,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순간 보리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결정된 일이라는 말이 거슬렸다. 그 결정이 언제 내려진 것인이며, 왜 자신이 결정이 끝나고 나서야 통보를 받아야 하는가.

그러나 속내가 그렇다고 해도, 표정 관리에 끝내 실패했다고 해도 그걸 입 밖에 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보리스는 살짝 고개를 숙인 뒤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이미 결정된 일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철군은 언제입니까?"

"내 후임자가 정해지면 조정에서 사자가 올 거다. 철군은 그 이후가 되겠지."

"알겠습니다. 그 밖에 제가 알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까?"

"없다."

보리스가 나간 후, 잠자코 있던 토어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공자의 상심이 클 겁니다."

"상심은 무슨, 이건 군무다. 부자의 정이 아니라 상관과 수하의 관계로 따져야지."

토어릭의 우려를 아드리안이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그러자 이번엔 시어문드가 끼어들었다.

"맞는 말이지. 하지만 사람이 이성적으로만 사고하고 판단한다면 세상의 수많은 불상사가 어찌 일어나겠나."

"그래서 뭐? 항명이라도 할 것 같은가?"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겠지. 하지만 이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하면 불만을 품은 자들이 나올 걸세. 납득하지 못하는 자들은 더 많이 나올 테고."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건 잘 훈련받은 정예병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 있는가 하면, 전장이라는 기회의 땅에서 뭔가 더 큰 것을 얻기를 바라는 자들도 있기 마련.

그런 자들은 이번 결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시어문드의 말처럼, 불만을 품는 자들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장군. 이것은 보리스 공자에 대한 시험입니까?"

시어문드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군터는 문득 생각했다. 수하들에게는 자신이 그렇게 복잡한 자로 보이는 걸까? 그는 그저 남의 손에서 놀아나기 싫어서,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할렌을 되찾고 싶어서 솔롬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수하들은 그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이상한 추측이나 해대고 있다. 그들이 어리석어서일까?

아니. 아니다. 어찌면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다른 이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토대로 추측할 뿐이다. 그 추측은 들어맞기도 할 것이고, 완전히 빗나가기도 하겠지.

'번잡스럽군.'

줄카가 떠올랐다. 그 이전에 잠깐이나마 보았던 쿠엘단도 떠올랐다. 그들은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의성이라고 하는, 독특한 수단으로 소통했다. 비밀도 없고, 오해도 없는.

그 편리함과 진실함에 잠깐 마음이 갔다. 하지만 곧, 군터는 그 유혹을 뿌리쳤다. 점점 '그들'을 닮아갈수록, 인간에서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곱 트라소프는 언젠가 자신이 괴물이 될 것이라 말했다. 직접 만난, 그 괴물인 줄가도 비슷한 말을 했었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말이 옳다는 것을, 하지만 언젠가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싶었다.

"시험?"

"보리스 공자의 군재는 어느 정도 증명이 됐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장군께서는 공자의 또 다른 능력을 시험해보고자 하시는 게 아닙니까?"

보리스는 의욕 넘치는 젊은이들의 대표나 마찬가지다.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미 그렇게 됐다. 철군 소식이 전해진다면 불만을 품을 이들이 바로 그 젊은이들이니, 보리스는 대표로서 그들의 불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군터 크렘보르의 독자이자 후계자였으니까.

시어문드는 그때, 보리스가 어떻게 그들을 다스리는지를 보고 싶은 게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다.

"흐름."

토어 릭마저도 혹시?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시어문드가 제기한 의문이 그의 귀에도 썩 그럴듯하게 들린 듯했다.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지만, 군터는 그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보리스를 시험할 마음은 없지만, 녀석이 이런 경험을 통해서 성장할 수도 있을 테니까. 어쩌면 기회가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군터는 굳이 시어문드를 비롯한 수하들의 오해를 풀어주지는 않았다.

***

"뜬금없기는 하군요."

"병력 소모가 큰 것은 사실입니다. 백성들을 징집하거나, 용병을 고용하여 어떻게 머릿수를 재운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지요."

로우렌은 고개를 가웃거렸고, 그라모트는 그리 밝지 않은 현황을 이야기했다.

그라모트가 이야기한 부분은 크고 작은 승리로 가리고 있는 어두운 단면이었다.

군터 크렘보르의 군대가 몇 배나 많은 적을 상대로 싸우고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물론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부터 시작해 휘하 장교들이 병사들을 잘 이끌었기 때문도 있으나 병력의 질이 우수했음도 빼놓을 수 없었다. 특히 솔롬에서 온, 군터 크렘보르의 직속 병력은 최정예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우수한 병력이었다. 그들은 어떠한 전투에서도 물러섬 없이 활약했고, 그 활약에 힘입어 힘겨운 전투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병사들이라고 해도 창칼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라, 전투가 거듭되면서 그들의 머릿수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어떤 이들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만, 그라모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솔롬의 병력이 줄어들면서 군대의 실질적인 전투력이 하락했음을 실감했다.

"솔롬의 병사들은 크렘보르 장군께서 공들여 육성한 정예입니다. 급하게 긁어모은 병력으로는 그들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흐음. 형님의 말도 일리는 있소."

로우렌은 책상물림이 아니었다. 그는 몸보다는 머리 쓰기를 즐겼지만, 할렌의 아들답게 군대의 실정에 대해서도 빠삭한 편이었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군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위 말하는, 정예 병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을펼칠 수가 없군요.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분명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기회는 계속 머물지 않습니다. 이번에 한 번 물러나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습니까? 조정의 욕심 많은 자들이 지금도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말입니다."

군터 크렘보르라는 이름은 이제 무명이 아니다. 그전까지는 그저 황자의 총신이라는 것이 그를 수식하는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가 세운 전공만으로도 데리브란에 있는 조정 중신들이 그를 견제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자이드라 멕시스와 정치적 동맹이라는 점까지 더해지니, 언제 그를 향한 온갖 견제가 날아든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판에, 과연 그들이 위협적인 정적에게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할까?

"나도 아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버지는 이미 결정하셨으니, 따를 수밖에."

"뭐, 그렇기는 합니다."

군터 크렘보르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솔롬의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판니른의 군관들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심지어 한 번만이라도 그와 직접 대면한 적이 있다면, 그 거친 용병대장들조차 고분고분해진다.

아무리 납득가지 않는 명령이라고 해도, 그 명령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면 따른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말이다.

"불만을 품은 자들이 나올 겁니다. 그들을 다독이고 이끄는 것은 공자님의 몫이 될 테고요. 아……."

"왜 그러느냐."

"이건 어찌면 공자님께는 또 다른 기회일지도 모르겠군요."

"기회?"

"이번 일로 불만을 품을 자들은 대부분 야심이 있는 젊은이들일 겁니다. 장차 군부를 이끌어갈 동량들이지요. 공자님께서 그들을 잘 다독여 품으신다면, 그들이 곧 공자님의 자산이 되지 않겠습니까?"

보리스는 순간 흠칫했지만, 곧 굳은 표정을 풀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부친의 결정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 일이 자신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허면 내가 어찌해야겠느냐?"

"일단은…장군을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허락을 구하셔야 합니다."

"허락? 어떤 허락말이냐?"

"소문을 내는 것에 대한 허락입니다. 공자님이 장군과 철군 문제를 두고 가볍게 언쟁을 벌이셨다는……."

"언쟁이라고? 그건……."

풀렸던 표정이 다시 굳었다. 보리스는 로우렌이 말하는 언쟁이, 정확히는 그 소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대강 짐작했다.

상술했듯, 군터 크렘보르의 이름값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그의 후계자라 하더라도, 그와 부딪칠 수는 없다. 소문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그랬다가는 당장 아드리안이나 시어문드 같은 고위 군관들부터가 그를 곱게 보지 않을 것이고, 그 밑의 인사들도…….

"무엇을 우려하고 계시는지 압니다. 하지만 감수하셔야 합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지요. 종종 있는 일이고, 그게 이번일 뿐입니다. 게다가 오해는 결국 풀리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시간이 해결해줄 겁니다. 무엇보다도, 공자님은 장군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후계자입니다. 공자님은 공자님 자신의 위치에 대해 좀 더 자각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보리스는 침음을 흘리며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그리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끊는 욕심에 귀를 기울이니 망설임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깨끗하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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