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9화
"모페이브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심장이 언제 터질지 시험하듯 입에 단내를 풍기며 달리던 모페이브와 나짐은 곧 경계를 서던 또 다른 병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허억…허억……"
두 사람 다 입에서 단내가 풍기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젊은 나짐이 그나마 모페이브보다 상황이 나았다. 그가 침입자들이 나타났으며, 두 수인병이 목숨을 바쳐 시간을 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병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 역시 수인병이었고, 시간을 끌고 있는 이들은 그의 동료였기에 당연히 그들과 친분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모페이브님께서는 서둘러 빠져나가십시오.
만약 놈들이계속 쫓아오고 있다면, 저희가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그들이 이렇듯 결연한 태도를 보이자, 모페이브는왠지 모르게 마음이 답답해졌다.
사실 그는 이들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저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자들 정도? 받는 만큼 일을 하지만,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오면 한목숨 건지기 위해 등을 돌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훈련을 받은 병사든 뭐든, 그것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이보일 법한 모습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달랐다. 왜일까? 군터가 이들에게 섭섭지 않게 대우를 해왔기 때문에? 아니면 니클라스가 이들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잘 훈련시켰기 때문에?
"가십시오."
뭐가 됐든, 모페이브는 이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축 늘어지는 몸을 억지로 꼿꼿하게 세운 뒤, 병사들에게 정중히 굽혔다. 병사들은 당황하는 듯했으나, 곧 낯빛을 굳히고 역시 정중하게 인사를 받았다.
* * *
"왜 이렇게까지 하지?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사내는 끝까지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괴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상대는 이미 이성이날아가고 본능만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답이 돌아올 리는 없었다.
"지치는군."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괴인이 잠잠해졌다. 사실 이미 반쯤 숨이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저 나머지 반을 마저 끊어주었을 뿐.
"우리가 다소 안일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요."
"이런 놈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제 보니 이것들은 강체술을 익힌 것이 아니라 특수한 시술을 받은 것 같구나."
제국의 음지에서 활약해온 그림자 검사단의 일원으로서 그들은 신비로운 비밀들에 대해서도 제법 많이 알고 있었고, 그중에는 신체의변이를 일으키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다만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많은 자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예전 북쪽 땅에서 망국의 잔당들이 전쟁을 일으켰을 당시, 초원의 야만족들이 괴이한 힘을 사용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흐음. 그 이야기라면 나도 들은 적이 있다."
꽤 유명한 이야기였다. 망국의 잔당 때문이 아니라, 그 전쟁에 그동안 조용히 있던 줄카가 끼어들었기 때문에 말이다. 군주 줄카는 그들이 최우선적으로 감시해야 하는 자였기에, 그가 뜬금없이 북쪽의 자그마한 전쟁에 끼어들었을 때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휘하 적기군과 용아일부만 거느리고 북쪽으로 향할 때만 해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를 줄이야.
물론 제국의 군주가 제국의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군주라는 자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들이었다. 그들은 황제의 명에 따르지만, 황제의 명이 없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설령 눈앞에서 제국의 성이 적군의 공격을 받는 것을 본다 한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제국의 군주라는 자각이 없었으며,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국심 같은 것도 없었다.
그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갑작스레 전쟁에 끼어든 줄카의 변덕을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뜻밖이기는 하지만, 그리 대단치는 않습니다."
신체 능력이 강해지고, 짐승과 같은 야성을 발휘한다. 이정도만 해도 상당하기는 하지만, 신체 자체를 변화시키는 비술들은 대개 그 정도 수준은 된다. 그러니 이 괴인들은 능력 자체만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많은 수를 볼 줄은 몰라서 조금 놀랐을뿐.
"정말 지독한 놈들입니다. 이렇게 지독한 놈들은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그들이 진정 놀란 것은 괴인들의 힘이 아니었다. 그들이 보이는 무서울 정도의 집착이었다. 어떻게든 상처를 입히겠다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발악.
죽음을 불사한다는 것이 말이 쉽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들은 정말 말 그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볐다. 이런 정신력은 그 어떤 비술로도 얻을 수 없는 것. 그림자 검사단의 일원으로서 온갖 적을 상대해온 그들도 이 정도로 강한 정신을 가진 적은 거의 본적이 없었다. 하물며 이들은 일개 병사가 아닌가.
"비밀리에 양성한 결사대라도 되는 모양이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들 수인병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그들은 잘 훈련된 병사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니클라스의 밑에 들어간 후로 고되게 훈련받기는 했지만, 그것이 지금 이들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이 지금처럼 죽을 것을 알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덤비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동료애였다. 과거 베이고르의 실험체가 되어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는 삶을 살던 시절, 그들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옆에 있는 동료뿐이었다. 그때, 그 끔찍한 실험 끝에 살아남은 이들은 소수였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끈끈해졌다.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동료 이상이었다. 형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형제가 죽었다. 비굴하게 등 돌리고
도망친다고 해서 살 가능성이 크지도 않다. 그렇다면 죽더라도 먼저 간 형제에게 부끄러움이라도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절대로 갈 수 없다…"
그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원수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였으므로,
"귀찮은 놈들!"
생각지도 못하게 계속 시간을 끌리면서, 그림자 검사들을 이끄는 우두머리는 어쩌면 이 괴인들을 피해서 움직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직작 그 술사놈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엇하겠는가. 이제 길을 막는 놈들도 거의 사라진 것 같으니, 부지런히 따라가면 될 일이다.
"드디어 따라잡았군.
한참을 어둠 속에서 헤맨 끝에, 그들은 마침내 숨을 헐떡이는 술사 두 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네놈들일 줄이야. 이 쥐새끼 같은 놈들.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그러나 그들이 막 몇 발자국 뗐을 때, 맞은편의 어둠속에서 경멸과 분노로 찬 목소리가 철컥거리는 소리에섞여 들려왔다.
[네가 이곳에 와본 적이 있던가?]
주인의 물음에, 카니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처음입니다."
그는 크기에 비해 휑해 보이는 도시를 눈에 담았다.
과거에는 저 도시의 중앙에 높은 탑이 하나 있었겠지. 하늘에 닿은 탑이.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멋들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
물론 군주가 거하는 도시라고 해서 딱히 멋있거나 규모가 커야 할 필요는 없다. 당장 그의 주인이 거하는 도시 역시 그리 괜찮은 곳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으니.
"쿠엘단 전하는 승천했다고 하더군요. 갑작스레 하늘이 어두워지고, 별의 비가 내리는 것을 봤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승천이라.]
유쾌함, 의심, 그리고 약간의 씁쓸함.
주인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부하로서 괜찮은 일이었다. 물론 때때로 강한 감정의 물결에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줄카를 섬겨온 카니악은 이제 그런 고통에도 익숙해졌다.
"독특했던 분이라 들었습니다."
말이 좋아 독특이지, 사실은 괴상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들은 것만 놓고 보면 말이다.
[그래. 그랬지. 특이한 놈이었어.]
줄카는 자신의 동료, 그러니까 군주들과 사이가 그리 원만한 편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군주들이 다 그랬다. 그나마 룬차이가 다른 이들과 사이가 원만한 편이었으나, 그 원만함은 적대적이지 않다 정도였지 특별히 친분이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반면 룬차이를 제외한 나머지 군주는 서로 이를 드러내는 상대가 꼭 하나씩은 있었다. 줄카의 경우는 키리스트와 아간투스베록이 그랬다. 만나기만 하면 당장 검을 뽑아 들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황제도 그들을 같은 전장에 투입하는 일은 없었다.
사이가 안 좋은 이가 그 둘이라고 한다면, 그럭저럭 괜찮게 지내는 이 또한 둘이었으니 그들이 바로 룬차이와 쿠엘단이었다. 엄밀히 말해 쿠엘단은 괜찮게 지낸다기보다는, 서먹하지는 않은 사이 정도랄까. 쿠엘단 자체가 워낙 밖으로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자라 교류를 하고 싶어도 할 일이거의 없었다. 가끔 줄카가 특별한 사냥감을 사냥한 뒤 그 부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나 몇 번 만나는 정도였다.
"첫인상도 강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랬지.]
줄카는 까마득한 옛날, 처음 쿠엘단을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가 군주의 계약을 맺고, 황제의 궁전에서 다른 군주들과 처음 대면하던 날, 쿠엘단은 유난히 그에게 흥미를 보였다.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용을 죽인 그가 신기하다며, 그의 육체를 연구해봐도 되겠느냐고 물었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이다.
[난 그놈이 미친놈인 줄 알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쿠엘단은 미친놈이었다. 그것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라 아주 단단히 미친놈이었다. 그 광기가 엄한 곳에 향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언젠가 이 감옥에서 탈출할 것이다.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쿠엘단의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소문으로나마 들은 뒤에는 말이다.
[승천이라…]
그는 점점 가까워지는 주인 잃은 도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지. 이곳은……"
입구를 가로막던 병사는 카니악의 살벌한 눈빛 한 번에 바짝 굳어서 길을 내주었다. 그 뒤로 도시를 구경하는 데 장애물은 없었다. 그는 이전, 환영의 탑이 존재했던 자리를 보며 상념에 잠겼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눈치챈 것은 카니악이 먼저였다.
"전하. 냄새가 납니다."
[냄새?]
카니악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난 줄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냄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그래. 냄새가 나는구나.]
쥐새끼들 특유의 비릿한 악취가 스멀스멀 코끝을
간지럽혔다.
[찾아라.]
명령을 받은 카니악이 용아 몇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카니악은 캄캄한 지하 미궁에서 악취를 풍기는 쥐새끼들과 마주했다.
"이거 아주 운이 좋구만."
붉은 눈을 빛내며, 카니악이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