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4화 문스
모두가 성벽과 성벽 위의 적만을 바라 보며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해자의 물속에서 유력처럼 떠오른 시체들을 발견하는 것이 늦었다. 그들이 물에 젖은 시체들의 존재를 눈치챘을 능 녹슨 칼날이 날아든 뒤였다.
"아악!"
전력으로 달리던 중에 발이 돌부리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그 크기가 작을지라도, 규형을 잃고 넘어지기가 십상이다.
그들 역시 그러했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균형을 잃었다.
끝도없이 기세를 올리며 성벽으로 돌진하던 걸음이 주춤했다.
"당황하지마라! 사령술로 일으킨 시체들이다! 사지를 잘라버리면 그만이야!"
그러나 모든이들은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사령술에 대한 지식이 있거나, 사전에 군터 크렘보르가 사령술을 다룬다는 정보를 접한 장교들은 당황한 병사들을 신속하게 진정시켰다. 그리고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달려드는 시체들에 맞섰다.
"연기를 흡입한 자들은 뒤로 빠져! 예비대에게 당장 올라오라고 일러라!"
시체들의 급습을 받은 적이 잠시 주춤한 사이. 성벽 위의 병사들이 바삐 움직였다.
연기를 들이마신 병사들이 내려가고, 예비대가 그 자리를 채웠다. 다행리 연기는 빠르게 옅어지고 있었기에, 새로 자리를 채운 예비대가 가슴을 부여잡거나 숨을 헐떡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는데, 그건 성벽 아래 보이는 이질적인 존재들 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는데, 그건 성벽 아래 보이는 이질적인 존재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저 시체들이 해자 속에서 기어 나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것을 보고 입만 벌린 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이게 어찌 된 사정인지를 대강, 혹은 제법 정확하게 짐작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군터 크렘보르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소문으로만 접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저 시체들이 아군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 꺼림칙한 시체들이 아군이라는 것을 알기 문에 더욱 껄끄러운 부분도 있었다.
대를 이어 제국의 백성으로 살아온 그들이기에, 이제는 선황이 된 과거의 황제가 사령술을 금기로 삼았던 것을 머리와 마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문에 그들은 사령술사들이 그 재미주로 부정한 짓을 벌이는 걸 직접 본 적이 없음에도, 그저 막연하게 사령술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품고 있었다.
"왜 손이 느려지나!"
장교들이라고 병사들과 다를까. 그들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저 아래에서 날뛰고 있는 시체들이 무엇이건 간에, 이 전투의 승리를 위해 병사들을 지휘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로니 복잡한 마음이야 어F게든, 지금은 병사들을 있는 대로 닦달할 수 밖에.
"장군! 다음 예비대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그리 해라!"
할렌은 자신을 장군이라 칭한 장교를 나무라지 않았다. 내심 어깨가 으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현 상황이 그런 구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지금 만큼은... 내가 장군이지.'
북쪽 성벽을 맡았다. 네 개의 전선 중 하나를 통째로 관장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 배치된 병력만 5천에 가깝다.
그 많은 병사가 자신의 말 한마디에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책임감을 무겁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수하들의 말을 따라 성벽을 내려갈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쁘더라도, 몸의 힘이 떨어진 것이 확연히 체감되더라도 말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병사들을 이끌겠는가.'
방금 그를 장군이라고 불렀던 머저리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울렸다.
조금 느슨하게 쥐었던 칼을 강하게 고쳐 쥐고, 쉬기 시작한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힘껏 외쳤다.
"공성추를 노려라! 저것은 쇳덩이가 아니다! 나무로 만든 조잡한 물걸일 뿐이다! 그런 것치고 조금 튼튼하기는 하다만, 언제까지 계속 버티지는 못한단 말이다!"
할렌의 말은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리 기름을 붓고 불화살을 쏴대도 불씨 하나 생기지 않았지만, 계속 공격을 하다 보니 공성추에서 조금씩이지만 연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저 커다란 병기에 무슨 수작을 부려놨는지는 몰라도 그 수작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었다.
"돌을 던져라! 화살을 쏴! 저놈이 계속 성문을 두들겨대게 주지 말란 말이다!"
공성추는 이미 오래전에 성문 앞에 다다랐다. 육중한 추가 성문을 때린 지도 꽤 되었다.
추가 한 번 앞뒤로 움직일 때 마다 콴! 하는 굉음이 터지고 성문에 가까운 성벽 일부가 들썩였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미리 성문을 보강해두었기에 다행히 아직은 문제가 없지만, 저렇게 계속 두들겨대면 아무리 두껍게 덧댄 성문이라고 해도 뚫릴 수 밖에 없을 터.
"놈들이 사다리를 건다!"
한창 소리를 질러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들린 외침이 할렌의 귀를 사로잡았다.
족히 십여 개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사다리가 일제히 허공에서 기울고 있었다. 그것들은 성벽에 비스듬히 걸쳐졌고, 사다리가 걸쳐지기 무섭게 성벽 아래 적들이 타고 오르기 시작했따.
성벽 위 병사들이 사다리를 밀어내려 고 달라붙었지만, 그들이 사다리에 손을 대기도 전에 무수한 화살이 날아왔다.
운 좋게 화살을 피해 사다리에 손을 댄 병사는 힘을 써보기도 전에 비명을 지르면 뒷걸음질을 쳤는데, 그의 손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다리의 끄트머리 부분에 박혀 있던 뾰족한 가시에 찔린 탓이었다.
"뭣들 하느냐!"
할렌이 방패 하나를 들고 번개처럼 내달렷다.
그는 그를 따르는 병사들과 함께 순식간에 사다리까지 접근했다.
"벽을 쌓아!"
병사 두 명에게 방패를 들게 한 헬렌은 사다리를 걷어찼다.
그러나 사다리는 한사람이 걷어 내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게다가 아래쪽에 이미 상당 수의 병사들이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던 터라, 밀어내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흐읍!"
할렌의 목관 얼굴에 핏발이 섰다. 흉악하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본 병사 한 명이 뒷걸음질을 쳤다.
"빌어먹을!"
할렌이 대차게 욕지거시를 뱉으며 있는 힘껏 다리를 뻗었다. 그러자 이제껏 꼼짝 않던 사다리가 느리게나마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크아앗!"
불을 토하는 듯했다. 할렌이 외마디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것을 내지르며, 기어이 사다리를 밀어버렸다. 커다란 사다리가 밀려나고, 거기에 매달려 있던 수십의 병사들이 사다리와 함께 날아갔다.
"허억... 허억!"
할렌은 대단하다며 그를 추켜세우거나, 탄성을 지르는 주위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거세게 뛰는 가슴의 고돌과 그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남용하지 말라고 했던가.'
모페이브의 경고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는 이 힘이 남은 생명을 태우는 힘이며, 이것을 남용한다며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 자신을 본다면 화를 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할렌도 할 말은 있었다.
'남용이 아닙니다. 모페이브 공.'
쓰기 위해 원한 힘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힘을 써야만 하는 순간이 아닌가.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이 머저리 놈들! 친절하게 적이 성벽 위에 기어 올라 올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었나?!
물론 그것도 좋지만, 이 성벽은 우리가 서기에도 비좁다! 저 쓰레기 같은 놈들까지 받아줄 공간이 없다는 말이지! 내말이 틀린가?!"
"아닙니다!"
병사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력 있었다.
조금전, 너덧 사람이 밀어도 꼼짝 않던 그 커다란 사다리를 혼자 걷어 차버리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지휘관이 솔선하여 그런 용력을 보이니, 병사들의 사기가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사다리가 걸리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십인데가 즉시 걷어내라!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은 방패를 들고 그들을 호위하고!"
처음 내리는 지시가 아니었다. 병사들도 이미 알고 있던 사항이지만, 최고 지휘관이 직접 우렁차게 상기시켜주니 안개가 낀 듯했던 병사들의 머릿속에 불꽃이 튀었다.
"장군!"
그때, 할렌의 뒤편에 있던 장교가 기겁하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가 뭘 하기도 전ㅇ에 할렌이 잽싸게 칼을 휘둘렀다. 칼날에 부딪혀 반으로 쪼개진 화살이 위로 튀었다.
"내 걱정은 하지마라! 병사들이나 신경 써!"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장교를 뒤로하고, 할렌은 다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저항이 완강하군요."
"장군도 저 도시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잖소?"
"물론 그랬습니다만....."
메일러 오챈은 말을 아꼈다. 적의 저항이 그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완강하다는 말은 굳이 더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주변의 무관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술독이 조금은 더 효과를 볼 줄 알았습니다만."
각진 턱의 무관이 조용히 중얼겨렸다. 그에 잔카라스 데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리 생각했네만, 어쩔 수 없지. 저쪽도 숨겨둔 한 수가 있었으니."
"사령술이라니, 황제 폐하꼐서 친히 금기로 지정하셨거늘, 어찌 감히....."
각진 턱의 무관 외에도 여럿이 분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메일러 오챈은 그들을 보며 내심 한숨을 쉬었다.
'금기니 뭐니, 대놓고 독을 사용하는 자들이 할 말인가.'
이쪽도 저쪽도, 승리하기 위해 쓸수 있는 모든 수단을 쓰는 것뿐이다.
사령술이 금기라고는 하지만, 어지간한 귀족 가문이나 권세가라면 사령술사 한둘쯤 곁에 두기 마련이다. 지금 분개하고 있는 자 중에도 사령술사를 부리고 있는 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저 시체들.....'
전장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아직도 소란이 가라앉지 않은 것만 봐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해자에서 올라온 시체들이 아직도 다 쓰러지지 않은 것이다. 족히 수천은 되는 병사들 사이에서 말이다.
'일반덕인 시체가 아니군.'
사령술로 일으킨 시체는 창칼에 죽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로 대단치 않았다. 움직임은 생전보다 둔하고, 힘도 약하다. 그런 시체들이 무서운 점이라면
역시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덤이 지만, 그래도 여럿이서 상대한다면 위협적이지 않은 짐승을 사냥하듯 손쉽게 무력화하시킬 수 있다.
때문에 메일러 오챈은 시체들이 해자에서 튀어나왔을 때는 놀랐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다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생각과는 달리, 소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잔카라스 데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평범한 시체가 아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허나 흐름이 끊겼어."
잔카라스 데반은 간혹 이해하기 힘든 말을 툭 던지곤 했다. 특유의 화법이었는데, 남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머릿속의 생각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무엇보다, 저게 끝이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나."
"해자 속에... 더 많은 시체가 잠들어있을지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메일러 오챈은 그에게 향하는 몇몇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다. 건방지게 나서지 말라는 눈총이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맞소. 사실 해자 속 에 시체가 더 있건 없건, 그건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저렇게 한 번 저렇게 한 번 데이고 나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는 거지."
다리를 건너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굼떴다. 해자에서 멀어지려는 이들이 자꾸 안쪽으로 파고든 탓이었다.
"길이 있으면 길로 향하려 하는 법. 의표를 잘 찔렀군. 그럴듯한 함정이야."
입으로는 짜증 난다는 듯 말하지만, 잔카라스 데반의 얼굴은 무섭도록 차분했다. 그러나 메일러 오챈은 그가 지금 머릿속으로 온갖 복잡한 계산을 거듭하고 있음을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