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화
시체들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런 술법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군터가 시체들을 이용해서 얻으려던 것은 정보였다. 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초병들이 여전히 남아있으니, 그들이 어찌 반응하는지 한 번 떠보려 한 것이다.
“알아차렸겠지.”
밤이 깊어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다. 하지만 이쪽도 제법 요란하게 움직인 데다, 무엇보다 뗏목을 대거 띄웠기에 적들도 눈이 먼 게 아닌 이상 이쪽이 도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터.
그러니 한 번 떠보는 거다. 퇴각준비 중이라면 반응이 미적지근할 테고, 그게 아니라면 전처럼 칼같이 반격에 나서겠지.
군터는 어둠 속에서도 대낮처럼, 강 건너 적들의 모습을 훤히 볼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저급한 눈속임은 통하지 않았다.
* * *
“장군!”
“보고 있다.”
시체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무렵, 때마침 가르비아는 로츠를 비롯한 휘하 무관 몇 명과 함께 강가로 나와 있었다. 퇴각준비가 한창인 만큼, 혹여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제국군의 동태를 직접 살피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그토록 골치를 썩이던 시체들을 이럴 때 보게 될 줄이야.
‘아니. 공교로운 것이 아니지.’
가르비아는 시커먼 강물 속에서 걸어 나오는 시체, 아니 뼈다귀들을 보며 적장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눈치가 빠르군.’
조금 서두르기는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눈치채는 게 빠르다. 이런 식으로 떠보는 것을 보면 아직은 의심 정도인 것 같지만…….
“저 뼈다귀들이 그동안 우리를 질리도록 괴롭혔던 놈들인 것 같다.”
가르비아는 그의 창을 들었다. 은색 일색에 멋들어진 문양이 각인된, 누가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짐작할 수 있는 기병(奇兵)이었다.
“싹 쓸어버리도록 하지.”
“저희만으로…괜찮겠습니까?”
한 젊은 무관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런 대꾸가 나올 만도 했다. 지금 그들 일행은 호위로 따라붙은 병사들까지 전부 포함해도 오십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
반면에 저기 강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해골들은 그 수가 백을 훌쩍 넘어 보였고, 그 수는 지금도 계속해서 늘고 있었다.
“왜? 자신 없나?”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혹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하하. 내 걱정을 하는 건가?”
가르비아가 무척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크게 웃었다.
그렇게나 장군으로 부르라고 입이 아프도록 말했건만, 아직도 그의 수하들은 그를 장군이 아닌 의원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들이 나가족에 대해 무지하고, 가르비아라는 이름에 대해 무지한 것이던가.
“50년은 일러.”
“예?”
“자네가 내 걱정을 하려면 50년은 이르다는 말이네.”
가르비아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미끄러지듯 언덕을 내려갔다. 그 속도가 어지간한 말이 달리는 속도에 맞먹었다.
“장군을 따르라!”
로츠가 대경하여 소리치고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지만, 그들이 가르비아를 따라잡기도 전에 가르비아는 해골들의 앞에 당도했다.
“평범한 시체는 아닌 모양이구나!”
나가는 인간에 비해 기감이 뛰어나다. 때문에 나가 중에서는 술사의 비율이 꽤 높은 편이었다. 열 명 중 너덧 명 꼴로 술사가 나오고, 그중 한 명 정도는 고위 술사의 수준에 오른다. 나가의 긴 수명을 고려해도 이는 특별한 일이었다.
가르비아는 아쉽게도 그 너덧 명 안에 들지 못하여 술사가 되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술사가 아닌 이들에 비하면 빼어난 기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강가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저 해골들이 사령술사들이 흔히 부리는, 평범한 시체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 평범한 시체였다면 그렇게 애를 먹이지도 못했겠지.’
간만에 몸 좀 풀어볼 생각에 들뜨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제 보니 조금은 긴장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상대도 상대고, 그동안 몸이 얼마나 녹슬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흐읍!”
가르비아의 창은 일반적인 창보다 조금 더 길었다. 또한 창날 부분은 가늘어서, 얼핏 보면 창이 아니라 노포에 쓰이는 조금 큰 화살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런 것을 직접 들고 휘두른다면 과연 실용성이 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가르비아는 한때 이 창으로 무수한 적을 무찔렀었다. 바로 이렇게.
콰직!
쭉 뻗어 나간 창이 정확히 해골의 목뼈를 찔렀다. 쾌속하고 강력한 공격은 단번에 가느다란 뼈를 끊어놓았고, 머리를 잃은 해골은…….
쉬익!
‘멀쩡하군.’
가르비아는 머리가 떨어졌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칼을 휘두르는 해골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앞으로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그의 몸은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뒤로 물러났다.
‘역시 귀찮단 말이지.’
사령술로 일으킨 시체를 없애는 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술법을 사용한 술자를 죽이는 것. 하지만 이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둘째는 뼛가루도 남지 않게 태워버리는 것인데, 그 역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니 남은 건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인데, 이것은 엄밀히 말해 완벽하게 없애는 방법은 아니다. 바로 사지를 끊어놓아 무력화를 시키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시간이 지나고 힘이 다한 시체가 알아서 움직임을 멈추게 된다.
지금, 가르비아가 택한 것이 바로 이 마지막 방법이었다.
콰직!
가느다란 창은 빠르게,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창이 뻗어 나갈 때마다 여지없이 가느다란 뼈가 뚝! 하고 부러졌다. 그것이 목뼈든, 팔뼈든, 다리뼈, 무엇이든 하나는 반드시 부러졌다.
“흡!”
그러나 착실히 성과를 내는 와중에도 가르비아의 상황이 마냥 여유롭지는 않았다. 그는 시체들의 공격을 피해내면서 여러 번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도 창끝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물러나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필시 이마에 혈선이 그어졌을 것이다. 아니면 평소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푸른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잘려나갔던가. 어느 쪽이든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장군!”
다행스럽게도, 그의 숨이 가빠지기 전에 로츠를 비롯한 수하 병력이 당도했다. 가르비아는 부드럽게 뒤로 물러나면서 크게 외쳤다.
“조심해라! 일반적인 시체들과 다르다! 정예병을 상대한다고 생각해!”
그가 이 해골들을 상대하며 느낀 것은, 앙상하게 뼈만 남은 시체들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시체가 아니라는 것은 처음부터 짐작했지만, 그런 그의 짐작보다도 더 강했다. 금방 수하들에게 외친 것처럼, 시체 하나하나가 잘 훈련된 정예병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다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사령술로 일어난 시체 특유의 단점, 그러니까 상대를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똑같았다. 눈이 제 기능을 못하기에 대강 생기를 감지하고 무턱대고 공격을 가하는데, 그러다 보니 공격이 날카롭지가 않았다.
“흩어지지 마! 이놈들, 생각보다 더 빠르다!”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로츠를 비롯한 무관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따라 싸우는 병사들도 최소 5년 이상 훈련을 받은 정예병이었다. 수가 많다고 해도, 생각보다 빠르고 강하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휘둘러대는 공격에 무너질 전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콰직!
그들은 단단하게 진형을 갖추고 시체들에 맞섰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몰려드는 시체를 상대로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이지만, 가르비아가 목청을 높이며 직접 가장 앞에서 창을 휘두르니 그들도 용기를 얻었다.
“10보! 물러나라!”
가르비아는 가장 앞에서 싸우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병력을 지휘했다. 그는 싸우는 내내 조금씩 뒤로 물러났는데, 그들의 수가 적고 적의 수가 많은 것을 역으로 이용해 발 디딜 곳이 마땅찮은 지형에서 싸우기를 반복했다. 시체들은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니, 그는 싸우는 장소를 계속해서 바꾸면서 그들이 서로 부딪치며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게끔 만들었다.
“후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들에게서 여덟 번째 사망자가 나왔을 때, 멀쩡히 서 있는 시체는 하나도 없었다.
“장군. 소관이 그동안 장군께 잘못한 것이 있다면 부디 지금 말씀해주십시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면 더 좋고요.”
로츠가 투구를 벗은 채 손으로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그에 가르비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직 쉴 때가 아니야. 확실하게 정리를 해야지.”
병사들이 쓰러진 시체들을, 정확히는 꿈틀거리는 뼈들을 짓이겼다. 그렇게 마디마디 잘게 부숴놓았음에도 경련하듯 잘게 움직임을 보였지만, 이제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잘 마무리된 것 같군요.”
“그래야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이 정도면 잘 대처했다. 가르비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뼈밖에 남지 않은 이따위 인형들 때문에 병사 여덟 명이 죽은 안타가웠으나 덕분에 적의 음흉한 시도를 차단했으니 손해를 본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멀리, 강 건너편에서 어둠을 꿰뚫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 * *
“준비해라.”
“예!”
군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드리안과 할렌이 움직였다. 그들은 묻지 않았고, 의심하지도 않았다. 그저 따랐다.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수하들과는 달리, 군터는 느긋하게 앉아 조금 전 본 것을 떠올렸다.
‘제법이야.’
그는 조금 전, 가르비아와 아바시스 병사들이 그의 시체들과 싸우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공교롭게도 하필 그 시점에 가르비아가 강가를 돌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도 병사들이지만, 생긴 것만큼이나 독특하게 싸우는 적장의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정말 뱀처럼 미끄러지듯 움직이면서 싸우는 모습이, 군터의 눈에도 상당히 훌륭하게 보였다.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에도 계속 뭐라뭐라 병사들에게 외치며 지휘하는 것을 보니 경험 많은 장수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판단이 빨랐군.’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그의 신경을 꾸준히 긁어왔던 적장의 속내를 드디어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저 얼굴에 낭패한 표정이 떠오를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앞에 서서 창을 겨눠주면, 이 좋은 기분이 더 좋아질 것 같았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바로 도강할 수 있습니다.”
“기다려라.”
먼저 움직일 수는 없다. 적이 본격적으로 퇴각을 시작해야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널 것이다.
결국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셈이었지만, 군터는 왠지, 이 밤이 지나기 전에 강을 건널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 그의 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이루어졌다.
“지금이다.”
군터가 몸을 일으켰다.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그는 미리 준비해놓은 뗏목을 향해 말을 달렸다.
잠시 후. 수십 개의 뗏목이 일제히 강 위를 움직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