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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678화 (678/1,064)

678화

“크렘보르 장군가에서 술사들을 모집한다.”

이 소식은 며칠 되지 않아 테리브란의 술사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처음 이 소식이 퍼졌을 때, 별 반응은 없었다. 이미 어지간한 술사들은 다 후원자를 두고 있었고, 그게 아닌 자들은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을 원치 않거나 후원을 받을 만한 실력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어중이떠중이들에겐 희소식이겠군.”

“뭘 그렇게까지 말을 하나. 운이 없었던 자들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운? 아직도 이 바닥에 그런 게 있다고 믿나?”

한두 번 정도는 운이라는 것이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세월이 몇 년 이상이라면, 그때는 운 어쩌고 하는 것도 우스워진다.

“그자에 대한 소문이 테리브란 내에 파다해. 설령 정말 운이 안 좋은 자들이 몇 있다고 쳐도, 그자들이 판니른까지 가겠나? 여차하면 전쟁터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

이미 아바시스의 군대가 쳐들어온 전력이 있다. 물론 막아내기는 했지만, 언제 또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물며 요즈음 제국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돌고 있는 상황.

“생각해보게. 누가 그런 곳을 가겠나.”

전투 술사라는 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술사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곳보다는 안전한 실험실을 더 선호한다.

“그래도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는 데다, 한 주의 방위군단장이 아닌가. 크렘보르 가문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일찌감치 뿌리를 내리려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 바로 그런 자들이 어중이떠중이라는 걸세.”

이미 자리를 잡은 대부분의 술사들 사이에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나 대부분일 뿐, 전부는 아니었으니.

“…….”

한 사내가 자그마한 방에서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의외로군.’

군터 크렘보르 본인이 사령술사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령술이라는 것이 드러낼 수 있는 재주가 아니다 보니 다들 쉬쉬하고, 본인도 조심하는 줄 알았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한데…….’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내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꺼리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번 크렘보르 가문의 술사 모집에 흥미가 있었다.

* * *

“으음. 이자는 좋지 않은 소문이 도는 자입니다.”

“소문이라면?”

“그럴듯한 언변으로 연구비를 받아놓고는, 정작 연구는 뒷전으로 미룬 채…….”

거기까지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보리스는 이어지는 호닝거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다음 이름을 불렀다.

“나짐? 이자는 어떻습니까?”

“크리페 가문 소속의 술사…로 듣기는 했지만, 사실 그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다만 대략 6, 7년 전쯤에 테리브란에 정착한 외지인이며, 저 먼 서남부에서 온 자라는 것밖에는…….”

“이름이 알려진 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요.”

실망하지는 않았지만, 다소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도 인재가 없단 말인가.’

처음 술사를 모집하라는 지시를 접했을 때. 보리스는 내심 기대에 찼었다. 드디어 부친이 가문의 영향력을 드러내고 외연을 확장하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름 있는 술사들을 여럿 거느리는 것은 권세가들만의 특권이나 마찬가지이니, 바꿔 말하면 이름 있는 술사들을 여럿 거느린다면 명실상부 권세가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 보리스는 크렘보르 가문이 드디어 기지개를 피고, 저 제레이스나 자하브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가 왔다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가 상상한 것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크렘보르의 이름을 걸고 술사들을 모집했으나, 고개를 들이미는 자들은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무명이거나, 안 좋은 소문이 도는 자들뿐이었다.

‘이래서야…테리브란에서 모집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회의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시작한 일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기껏 모집한다고 널리 알려놓고서 정작 문을 두드린 자들을 홀대한다면 크렘보르 가문의 명성에 흠이 갈 테니까 말이다.

‘소문이 안 좋은 자들은 대충 둘러대서 돌려보내고, 무명인 자들은…일단 만나보기는 해야겠군.’

일을 벌여놓고 빈손으로 끝맺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이름난 인재를 모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단치 않은 자들이라도 모아야 한다.

“결격 사유가 없는 자들을 직접 만나보려 합니다. 함께 자리해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그리하여 보리스는 호닝거와 함께 지원한 술사들을 한명 한명 만나보았다. 그들은 크렘보르의 후계자가 직접 나왔다는 사실보다, 호닝거가 후계자의 옆에 있다는 사실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로 인해 보리스는 호닝거의 명성이 궁 밖까지 널리 퍼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자였군. 이런 자가 우리 가문의 술사라면 좋을 것을.’

어디까지나 마음뿐이었다. 보리스는 그것이 무척이나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았다. 궁정술사가 아닌가. 게다가 황자가 직접 중요한 임무를 맡길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는데, 그런 자가 신생 귀족 가문으로 오겠나.

“음.”

술사들을 한명 한명 만날수록 보리스의 목소리는 점점 가라앉아갔다.

안 좋은 소문이 도는 자들은 전부 돌려보냈다. 혹 억울한 자들이 있을까 싶어 몇 마디를 나눠보기도 했지만, 그 짧은 몇 마디에서 느껴지는 간사함이 보리스의 마음을 굳혀주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크렘보르를 위해 일하고자 온 자들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얻어먹을 것이 있을까 싶어 몰려온, 들개와 다를 바 없는 자들이었다.

‘멀었군. 멀었어.’

보리스는 자신의 가문이 갈 길이 멀었음을 실감했다. 비록 근래에 이름을 날리고는 있지만, 그래 봐야 신생 귀족 가문에 불과했다. 황자의 총애를 얻고 있지만, 군주의 총애라는 것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

‘가문의 내실을 다져야 해. 허나 이곳에 우리를 위한 기회는 없다.’

멀리 갈 것 없이 술사들만 봐도 그렇다. 이름난 술사들은 모두 권세가들에 속해있지 않던가.

‘우리 가문의 기반은 판니른이다. 그러나 이곳의 일도 소홀히 할 수는 없어.’

테리브란에는 황자와 조정이 있다. 모든 대소사가 이곳에서 정해지고 이루어지니 기반을 어디에 두든 테리브란에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래. 멕시스 가문처럼.

“나짐이라고 합니다.”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또 다른 술사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보리스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술사에게 눈길을 주었다.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바깥 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피부색이 그런 것인 듯했다.

‘나짐. 나짐이라.’

서부에서 왔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자신을 나짐이라고 소개한 술사의 외관은 상당히 이국적이었다.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실력이 인상적인 술사이지, 겉모습이 인상적인 술사가 아니었다.

“약간의 수기(水氣)를 다룰 줄 압니다.”

목소리에서 간사함이 느껴졌던 자들이 허세를 부리며 스스로를 띄우거나, 겸손을 떨고 있다는 것을 대놓고 알 수 있을 정도로 과하게 자신을 낮췄던 것에 비해서 나짐이라는 술사는 자신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수맥을 발견하고 북돋는 것과, 비를 불러오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흠. 성과가 있었소?”

보리스는 나짐의 말에 눈을 크게 떴지만, 호닝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문했다.

‘설마하니 이런 것들도 술사들에게 있어서는 대단하지 않은 주제인가?’

수맥을 찾는 것이나, 인위적으로 비를 부르는 것이나 일반인들의 눈에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둘 중 하나만 성공하더라도 농사 걱정을 크게 덜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 대단한 일이기에 물을 다루는 술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시도해볼 법한 것이라는 뜻이 되지 않나. 그렇기에 호닝거는 성과를 물었던 것이리라. 연구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성과를 내는 것은 극소수만이 가능할 테니까.

“둘 다 약간의 성과는 거둘 수 있었습니다. 다만 농사에 크게 보탬이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요. 수맥을 찾는 것은 기껏해야 우물 하나 정도 놓을 크기에 그쳤고, 비를 부르는 것은 중품 기석을 서너 개 사용하여 잠시간 소낙비를 부르는 정도였습니다.”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구려.”

“예.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호닝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짐은 입을 다물었다.

실망스럽다면 실망스러운 대답이었으나, 보리스는 이상하게 저 나짐이라는 술사에게 눈이 갔다.

‘입으로는 부끄럽다고 말하지만, 태도는 전혀 그렇지 않아.’

위축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당한 것도 아니다. 그저 담담하다.

‘들어와도 그만, 안 들어와도 그만이라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여느 콧대 높은 술사들처럼, 굳이 크렘보르 가문에 들어가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면 저런 태도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호닝거의 물음에 제법 성실하게 답하고 있지 않은가.

가문을 찾아온 모든 술사들을 만난 후. 보리스는 호닝거에게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보셨던 이들 가운데 눈에 띄는 자가 있으셨는지.”

“으음. 솔직히 말씀드려서, 인재라고 할 만한 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입맛이 쓰지만, 사실 보리스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입에 발린 말 대신 솔직하게 답해주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공자께서는 눈에 들어오는 자가 있으셨는지.”

“글쎄요. 저는…그 나짐이라는 자에게 눈이 가더군요.”

“나짐? 분명 물의 술법을 다루는 자였지요. 출신 외에 특별한 구석은 없어 보였습니다만.”

“예.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런데 뭔가, 영문은 알 수 없으나 그자가 눈에 밟히더군요.”

“그렇습니까. 뭐, 특별하다고 할 만한 구석은 없었습니다만 그만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 훗날 그자의 수준이 더 높아진다면, 그때는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테고요.”

호닝거가 그만하면 나쁘지 않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의 술법을 다루는 술사들은 그의 말처럼 다방면에서 활약을 하곤 했다. 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전투에서도 쏠쏠하게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지금은 수준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영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 외에도 나쁘지 않은 자들이 몇 있었으니, 그들을 챙기시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예.”

그리하여 보리스는 호닝거의 조언에 따라 나짐을 포함한 술사 넷을 영입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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