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5화
“…이게 어찌 된 일이지?”
한참을 침묵하던 군터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페이브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초점 흐린 눈으로 멍하니 서 있는 인형에게 다가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눈으로 살펴보기도 하고, 직접 손을 대거나 술력을 주입하기도 하며 인형의 상태에 대해 파악해보려 애썼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무언가, 영혼이 육신이 안착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만은 확실합니다만.”
그 정도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모페이브가 그런 말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현상이 통상적인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범주에 있다는 뜻이다.
분명 보주 안의 영혼은 쿠엘단의 인형에 들어갔다. 그리고 멈춰있던, 아니 죽어 있던 육신이 다시 기능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 기능을 했다는 것은 숨을 다시 쉰다거나, 멈춰있던 심장이 다시 뛴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뿐. 심지어 이지도 상실했다. 어찌 보면 보주 안에 봉인되어 있을 때보다 더 안 좋은 상태가 된 것이다.
“어쩌면…그 보주의 기능은, 고대인들이 아는 것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모페이브는 조심스럽게 그리 추측했다. 군터는 그 말이 일리 있다고 여겨 즉시 보주 안의 영혼들에게 물었다.
[어찌 된 거지?]
[우리도 모르겠다. 소생의 술법은 우리의 비원이었다. 갖은 노력을 기울여 술식을 완성했지만, 그것은 온전한 성공을 거둔 적은 없는 반쪽짜리였지. 보주에 영혼을 모아두는 것은 우리로서도 모험이었다. 말했듯, 우리에게는 다른 방도가 없었으니까.]
[후세의 인간들에게 기대하면서 말인가?]
[기대라기보다는, 믿은 거지. 인간의 본성을.]
[본성?]
[욕망. 가치 있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그럴듯했다. 실제로 헤이모라에 모여든 술사들은 거의 모두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비록 그 대상이 정체 모를 고대인들의 흔적이 아니라 쿠엘단의 유산이라는 점이 다르기는 했지만.
[모험은 실패인 것 같군.]
예전에 쿠엘단이 송곳 탑에 거하던 당시, 헤이모라에 들렀었던 군터는 쿠엘단의 인형을 보았었다. 그때 그가 보았던 인형과 지금 눈앞에 있는, 고대인의 혼이 깃든 인형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비슷한 점은 멀쩡하게 움직이면서도 눈에 초점이 없다는 점이고, 다른 건 쿠엘단의 인형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죽음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긴다는 점이다.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군.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못할 뿐.”
[저주에 걸린 것 같은 모양새다.]
모페이브에게 말한 것이었는데 보주 안의 영혼이 답했다.
[저주? 아니. 이건 사령술로 일으킨 시체와 같아.]
물론 사령술로 일으킨 시체와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뛰어나다. 감응 능력, 움직임, 모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사령술이라……. 그렇군.]
보주 속의 영혼은 담담하게 반응했다.
[이 보주는 너희가 만든 건가?]
[만들었다? 글쎄.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 보주 자체는 고대의 유물이었으나, 거기에 술식을 더한 것은 우리이니.]
고대인들이 고대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 보주의 기원은 정말 까마득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모페이브가 이 말을 들었다면 분명 관심있어 했을 테지만, 군터는 아니었다. 그는 보주 안의 고대인들이 보주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족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에 모험을 걸 생각을 하다니.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군.]
[쉽게 말하지 마라. 그 재앙은…아니. 이제 와 설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잠시 후, 고통이 뚝뚝 묻어나는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우리는 더 견디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저주받은 것일지도 몰라. 아니. 틀림없다. 우리는 저주받았어. 재앙을 피해 도망쳤지만, 사실 피하지 못한 것이야.]
군터는 보주 속 영혼들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느끼고 있는 고통과 분노가 그에게도 일부 전해지는 듯했다.
[우리는…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고통받았다.]
[그래서?]
[우리를 놓아다오. 이 끔찍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 인형에 너희를 깃들게 하면, 너희는 백치가 된다.]
[그래. 모든 것을 다 잊게 되겠지. 이 고통도…….]
너무 고통스러워 아무렇게나 지껄여대는 말 같았다. 그들의 상태는 지하 미궁에서 막 봉인을 풀고 나왔을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해져 있었다. 이제 군터는 이 보주에 뭔가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군터는 처음 계획대로 보주 안의 영혼들을 쿠엘단의 인형에 불어넣었다. 이럴 바에야 지하 미궁에서 소멸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나 싶지만, 어쨌거나 본인들이 원하니 그대로 해주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그에게 필요한 것은 보주였으니까.
‘게다가…….’
보주 속의 영혼이 깃든 인형은 그의 통제하에 놓여 있다.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부릴 수 있는 종속물이 생긴 것이니 그에게도 나쁠 것은 없다.
그리하여 군터는 보주 속의 영혼을 대부분 쿠엘단의 인형들에 불어넣었다. 전부가 아니라 대부분인 이유는 모페이브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는 보주 속의 영혼들을 통해 여러 궁금증을 풀고 싶은 모양이었다.
“고대에 있었던 재앙이라는 것. 보주에 대한 정보 등.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보주에 대한 정보는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최대한 알아내야 합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를 물건을 장군께서 사용하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미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만.”
백치가 되어도 좋다며, 보주에서 해방시켜달라고 절규하던 영혼들. 그들에게서 뭘 얻어낼 수 있을까, 군터는 조금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모페이브는 생각이 다른 듯했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습니다. 군집체라는 것은 본래 오염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여러 정신이 하나로 섞이는 것이다. 오히려 그 오랜 세월, 물론 봉인되어 있었다지만 그래도 각자의 자아를 약간이나마 유지해온 것이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보주는 확실히 대단한 보물입니다. 일단 드러난 부분만 놓고 보아도 장군께서 원하시던 대부분을 이뤄줄 수 있을 테지요.”
망령들을 보주 속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시체에 깃들게 한다. 모페이브가 헤이모라까지, 지하 미궁까지 들어간 것도 다 그것을 위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식은 얻지 못했어도 그 기능을 할 수 있는 보주를 얻었으니, 따지고 보면 원하는 바는 다 이룬 셈이다.
“하지만…말씀드렸다시피 보주에 대해 다 아는 것이 아니니, 어떤 위험요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일단은 고대인들의 영혼을 통해서 최대한 정보를 얻어내야 합니다. 그리고…지하 미궁도 더 탐색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건 어렵다. 내가 자리를 비운 지 이미 오래야. 이 이상은 안 돼.”
솔롬은 군터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보를 통제하려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보를 통제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 그가 직접 얼굴을 보여 처리해야 할 일이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성주의 부재는 어떻게든 알려질 수밖에 없다.
“또한, 내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이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다.”
아직도 헤이모라는 금지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곳에 병사들을 이끌고 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터. 설령 조만간 쿠엘단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때가 되면 달콤한 냄새를 맡은 이리떼가 몰려들 테니.
“허면…….”
모페이브가 다시 입을 열자, 군터가 그의 말을 끊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를 이곳에 남겨둘 수는 없다. 이번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느냐.”
“…….”
모페이브는 그답지 않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하 미궁에서 생사의 위기를 겪었음에도 그러는 것을 보면, 지하 미궁에서 본 신비들이 어지간히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모양이었다.
“정 마음이 쓰인다면, 믿을만한 용병을 고용하여 탐색시키도록 하겠다.”
그냥 하는 말이었다. 용병 나부랭이들이 저 지하 유적을 제대로 탐색할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 애당초 믿을만한 용병이라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돈푼에 팔려 다니는 자들은 더 가치 있는 것 앞에서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자들이 지하 미궁에서 무언가 성과를 얻는다 한들, 그것을 얌전히 가져다 바칠까? 군터는 회의적이었다.
군터가 생각하는 것을 모페이브라고 모를까? 그럴 리가. 그도 군터가 용병 운운하는 것이 그저 달래주기 위한 말임을 잘 알았다.
‘하아.’
그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아쉬움이 계속 발목을 잡아 그런 것일 뿐.
“알겠습니다.”
결국, 그는 끈질기게 달라붙는 아쉬움을 털어낼 수밖에 없었다. 모페이브는 헤이모라를 떠나는 길 내내, 어쩌면 지하 미궁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신비로운 지식을 꿈속에서 정신없이 탐닉했다. 그리고 잠에서 깬 후,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매번 헤이모라 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군터는 솔롬으로 돌아오자마자 성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사형수들을 은밀히 모았다. 혹시 쿠엘단의 인형에 영혼을 불어넣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형수들을 죽이고, 그들의 육신에 영혼을 불어넣었을 때도 쿠엘단의 인형 때와 똑같은 결과가 반복되었다.
[우리를 해방해다오! 약조하지 않았는가!]
[인내심을 가져라.]
[우리를 기만한다면 더는 참지 않겠다.]
[참지 않으면?]
[말했듯, 보주를…….]
[할 수 있으면 해봐라.]
[……!]
어느 순간, 군터는 보주 속의 영혼들이 처음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음을 알아차렸다. 수가 줄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정신이 오염되면서 힘까지 줄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 그들이 보주 운운하며 협박을 할 때, 그 소리에서 거짓이 느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 녀석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반신반의했었다. 그렇기에 방금 툭 던져본 것은 시험이었다. 그런데 그 시험에 대한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맞는 듯했다.
[우리를 해방해다오! 해방……!]
이성이 날아간 것일까. 이제 느껴지는 것은 분노와 살의, 공포 같은 극단적인 감정들뿐.
군터는 미쳐버린 것 같은 영혼들의 소리를 더는 듣지 않았다.
“보주 속의 영혼들은 완전히 미쳐버렸다.”
군터는 모페이브가 상심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모페이브의 반응은 그의 예상과 달리 덤덤했다.
“그렇군요.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에게 뭔가를 알아내는 것도 힘들어질 터인데.”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봐야겠지요.”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