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1화
요마, 혹은 파수꾼의 본체는 허공에 부유하고 있었다. 화살을 쏘거나, 창을 던져서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군터는 직접 창을 찌르는 쪽을 택했다. 어중간한 공격으로는 제대로 피해를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쾅!
할렌과 병사들이 잠깐이나마 요마의 주의를 끌어준 덕에, 군터는 곧장 틈을 노려 뛰어올랐다.
“…….”
그가 땅을 박차자마자 섬뜩한 감각이 삭풍처럼 그를 할퀴고 지나갔다. 요마가 눈치를 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거리가 조금 가까워지던 순간. 군터는 갑작스레 벽에라도 부딪친 것처럼 강한 저항감에 직면했다. 그러더니 앞으로 나아가긴커녕, 오히려 몸이 뒤로 크게 밀리는 것이 아닌가.
‘기이한 힘을 쓰는군.’
그리 놀랍지는 않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봤을 때부터 온갖 이상한 것들이 나올 수 있다고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어찌한다…….’
다시 똑같이 시도한들 똑같이 밀려날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을 달리해야 할 터.
군터가 채찍처럼 날아드는, 꼬리인지 촉수인지 모를 것을 피하며 생각하는 사이 요마의 움직임은 격렬해졌다. 놈은 이제 진짜 위협적인 상대가 누구인지 깨달은 듯했다. 할렌과 병사들이 다시 놈의 주의를 끌기 위해 움직여도 조금 전처럼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짐작했던 것처럼, 요마는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놈이었다.
‘거리를 좁힌다.’
조금 전에는 너무 멀리서 뛰어올랐다. 아무리 힘껏 뛰어올랐어도 허공에 뜬 다음부터는 속도에 한계가 있었기에 요마에게 닿기 전에 막혀버렸다. 하지만 더 거리를 좁힌 후, 한 번에 뛰어오른다면 어떨까. 놈에게 반응할 틈을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문제는 군터가 그렇게 계획을 세웠어도, 정작 거리를 좁히는 것 자체가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요마는 이제 할렌과 병사들의 공격은 대부분 무시하고, 오직 군터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힘껏 내리친 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튕겨 나오자 할렌이 기어이 거칠게 욕지거리를 했다. 그는 척추뼈 여러 개를 길게 늘여 꼬아놓은 것 같은, 보기만 해도 혐오감이 올라오는 기다란 것으로부터 재빠르게 멀어졌다.
‘정말이지 끝없이 변하는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것은 도마뱀의 꼬리 같은 모양새였다. 그런데 방금 저렇게 변해버렸다. 문제는 단지 외형만 변한 것이 아니라, 성질마저도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꼬리 같은 형태였을 때는 그나마 칼이 들어가기는 했는데, 저 뼈 다발처럼 생긴 흉물은 쇠처럼 단단하여 칼날이 박히지를 않았다.
‘칼이 박힌다고 한들, 그게 효과가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전 반응을 하기는 한 것으로 보아 효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지만, 이렇게 칼이 박히지 않게 되면 난감할 뿐이다.
물론, 꼬리가 뼈로 바뀌었다고 해서 아예 손쓸 방도가 없는가 하면…그것은 아니다. 공격할 수 없는 것을 피하고, 공격할 수 있는 것을 공격하면 되니까. 하지만.
‘나를 견제하고 있다.’
요마가 똑똑하다는 것은 이제 할렌도 슬슬 느끼고 있었다. 놈을 상대하려면 조금 더 머리를 써야 할 것 같았다.
“계속 움직여라! 놈의 시선을 분산시켜!”
지금까지는 요마의 공격을 피하고, 틈을 노리는 식으로만 움직였었다. 그러나 이제 할렌은 병사들에게 발을 쉬지 말 것을 명했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더러는 서로 위치도 바꿔가며 요마의 주의를 최대한 어지럽히고자 한 것이다.
그런 시도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몇 번은 요마에게 칼날을 박아넣을 수 있었으니까. 다만 그것이 유의미한 공격이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저 요마가 조금이라도 더 고통스러워하고, 더 분노하기를 바라며 이를 악물 뿐.
* * *
‘지구전으로 가서는 안 돼.’
모페이브는 전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는 술사였고, 제국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 생활할 당시에도 전투에 나서기보다는 다른 쪽으로 교단에 공헌했었다. 그 후로 이런저런 경험이 많이 쌓였고, 술사로서 실력도 원숙해졌지만 여전히 전투 쪽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그에게는 군터와 할렌 등이 파수꾼과 싸우는 것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만한 판단력은 없었다.
다만, 그는 파수꾼이 봉인으로부터 힘을 얻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봉인이 해제되며 파수꾼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지만, 봉인은 해제된 것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해제된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 것이었다. 봉인을 이루고 있던 술식이 변화하면서 그 힘이 파수꾼에게로 전해지고 있었다. 루멘과 그의 무리가 봉인을 풀기 위해 쏟은 제물만큼, 어쩌면 그 이상의 힘이 파수꾼을 지탱하고 있었다.
저 힘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까지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반면에, 군터는 몰라도 할렌과 병사들은 슬슬 움직임이 처음보다 둔해지고 있었다.
‘틈을 만들기 위해서겠지.’
전투에 재능은 없지만, 그래도 실전을 여러 번 겪은 만큼 보는 눈은 있다. 할렌과 병사들이 계속해서 빠르게 움직이는 이유는 쉬이 짐작이 갔다. 군터가 파수꾼을 제대로 찌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할 수 있을까.’
온몸이 물먹은 솜 마냥, 아니 그 이상으로 무겁다. 이런 몸으로 술력을 끌어냈다가는 뒷감당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대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나중 일은 나중의 문제고, 당장 눈앞의 문제부터 어떻게 해봐야 하지 않겠나.
모페이브가 입술을 깨물며 숨을 골랐다.
* * *
쾅!
도끼처럼 떨어진 손이 땅을 깊숙이 파고들며 균열을 일으켰다. 군터는 뒷걸음질로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음.”
이제껏 그는 여러 괴물들을 봐왔고, 싸워왔다. 그러나 그가 겪었던 괴물 중에도 이 정도로 괴상망측한 놈은 없었다. 어떨 때는 손이었다가, 어떨 때는 꼬리, 어떨 때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안개 같은 것이 날아들었다. 계속 변화하는 외형만큼이나 공격 방식도 달라져서, 그때그때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제법 까다로웠다.
그래. 지금처럼.
푸푸푹!
난데없이 땅에서 창인지 가시인지 모를 것이 튀어나왔다. 급히 몸을 빼며 피해내니 또 다른 가시가 뒤를 쫓았다. 그 수가 족히 열 개가 넘어갔다. 군터는 쉼 없이 몸을 날리며 그것들을 모두 피해냈으나, 곧바로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덮쳐왔다.
“흡!”
사기를 불어넣은 창을 크게 휘둘렀다. 바람에 실려 간 사기가 연기와 충돌하며 그것을 흩어놓았다.
“후우.”
요마의 공격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슬슬 탐색전을 끝내겠다는 뜻일까. 아직까지는 상대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틈을 노리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대로 힘만 빼면서 지구전으로 끌고 간다면 곤란해질지도 모른다. 그는 몰라도, 할렌과 병사들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차아!”
군터가 살짝 숨을 고르고 다시 앞으로 뛰는데, 그와 동시에 반대편에 있던 할렌이 힘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요마에게 달려들었다. 앞으로 가더라도 힘을 아껴 언제든 몸을 뺄 수 있도록 했던 이제까지와는 달리, 이번에는 뒤는 없다는 듯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군터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보조를 맞췄다.
한 발자국. 할렌이 혹 허튼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신경이 쓰였다.
두 발자국. 잔뜩 긴장한 할렌의 얼굴을 보며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세 발자국.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느낌에 다시 의아해졌다.
네 발자국. 익숙한 기운의 정체와 의미를 깨달았다.
‘그렇군.’
기감에 집중하자 땅 밑으로 움직이는 힘의 흐름이 느껴졌다.
군터는 그 힘과 나란히 달렸다. 그 힘이 발밑에 가까워질수록 달리는 속도도 더 빨라졌다.
콰앙!
할렌의 모습이 흙먼지에 가려 사라렸다. 얼핏 보면 휩쓸린 것 같지만, 군터는 마지막 순간에 할렌이 요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을 보았다.
지금, 할렌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이제는 그의 차례.
쿵!
발밑이 크게 들썩였다. 땅이 스스로 일어서서 그를 올려주었다. 군터는 점점 높아지는 땅을 밟으며 앞으로 달렸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요마와의 거리를 좁히자 강한 힘이 그를 뒤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의 기습 때와 같은 상황.
하지만 군터도 이번에는 그때처럼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틸 발판이 있었으니까.
창을 휘둘렀다. 보이지 않는 힘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콰드득!
요마의 공격이 한층 더 격렬해졌다. 하지만 피할 길이 없는 허공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발 디딜 땅이 있는 상태에서는 공격이 이보다 더 거세진다고 해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
군터는 순식간에 날아드는 유무형의 공격들을 피하고 쳐냈다. 손과 팔에 전해지는 강렬한 충격에서 요마의 초조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우웅!
안 되겠다 싶었는지, 요마의 본체가 쓱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요마가 물러나는 것보다 군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빨랐다.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고, 군터는 두 가닥의 기괴한 팔을 거칠게 쳐내며 달려들었다.
반은 선명하고, 반은 뚜렷한 커다란 구. 요마의 본체를 향해 검은 창이 찔러 들어갔다.
쾅!
전력을 다한 찌르기였으나, 이번에도 역시 보이지 않는 방벽 같은 것이 있어 단번에 꿰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잠깐 힘이 죽었을지언정, 군터의 창은 그 방벽을 부수는 데 성공했다.
방벽이 깨짐과 동시에 요마의 본체가 크게 흔들렸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틀림없는 기회.
“흐읍!”
요마가 뒤로 물러나고, 방벽을 깨는 데 한 호흡을 낭비하면서 다시 거리가 벌어졌다. 요마의 본체가 흔들리며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는데, 또 뭔가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군터는 한 걸음을 내딛는 대신, 그대로 창을 집어던졌다.
평범한 병기는 요마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의 창은 평범한 창이 아니었다. 요마의 뼈로 만든 창이며, 이제껏 그의 사기를 무수히 머금으며 약간이지만 고유한 기운까지 머금게 된 기병이었다.
콰직!
창이 요마의 본체에 닿는 순간, 군터는 들었다. 무언가 부서지는 것 같기도 하고, 찢어지는 것 같기도 한 소리.
그리고.
[이런.]
한숨 섞인, 뜻 모를 말소리.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