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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665화 (665/1,064)

665화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며 수소문하기 시작했지만,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았다. 술사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말을 거는 병사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복색을 바꾸는 등 외관을 여행자처럼 꾸민들 군인 특유의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는지, 그들은 병사들의 신분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경계심을 드러냈다. 관군이 헤이모라를 통제하려 한다고 생각한 듯했다. 쿠엘단의 유산에 눈이 멀어 있는 그들에게 있어, 관군의 개입은 경쟁자의 등장보다도 더 위협적인 일이었으니 그들이 경계심을 넘어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아는 것을 다 이야기해라.”

일이 그렇게 되자, 하는 수 없이 군터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에게는 까칠하게 대하던 술사들도 그가 나서면 기가 꺾여 고분고분해졌다. 기세를 억누르지 않고, 의도적으로 위압하는 그의 앞에서는 그 어떤 술사들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들은 대번에 안색이 창백해져 아는 사실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물론 간혹 대가 세거나, 탐욕에 눈이 돌아간 자들이 몇 있기는 했다. 군터는 그런 자들을 어렵지 않게 간파했고, 그들이 교묘하게 입을 놀려대는 순간 단번에 칼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서걱!

눈을 굴려대다가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기 무섭게 중년인의 머리가 위로 떠올랐다. 허공에 그어지는 한줄기 핏물은 덤.

“으, 으아악!”

중년인과 일행인 또 다른 술사가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가 술법을 사용하기도 전에 할렌의 검이 그의 목에 가 닿았다. 술사는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덜덜 떨었다.

“어, 어찌 이러…십니까! 이, 이게 대체 무슨…….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소!”

“무사하지 못할 것은 또 뭔가.”

군터가 담담히 대꾸했다. 칼날에는 피가 묻지 않았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허공에 한번 칼을 휘둘렀다.

“아는 것을 다 말해라. 모른다면 어떻게든 알아내라. 그리하면 살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당신…당신은 누구요. 이런 짓을 벌이면 이곳에 모인 모든 술사들의 공적이 될 거요. 정녕 그것이 두렵지 않은가?!”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너희가 허가 없이 군주의 영지에 들어선 무법자들이라는 거다. 너희 모두를 이곳에서 학살한다고 해도 내게 뭐라 할 수 있는 이는 없다는 거지.”

군터는 손을 뻗어 술사의 지팡이를 움켜잡았다. 그가 한번 손아귀에 힘을 주니 지팡이가 뚝! 하고 부러졌다. 같은 무게의 금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값어치가 나가는 법구가 단번에 망가진 것이다.

하지만 술사는 자신의 법구가 망가진 것에 분노할 시간도, 놀랄 여유도 없었다. 지팡이를 부러뜨린 손이 그의 목을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커…커컥!”

우악스러운 힘이 목을 조이자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의 몸이 어느새 떠올랐다. 그는 목을 움켜잡은 손과 팔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우악스러운 손과 팔은 마치 쇠기둥이라도 되는 것처럼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을 가벼이 여기지 마라.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시험해봐도 좋지만, 그러지 않기를 충고하지. 목이 떨어지고 나면 후회해봐야 늦을 테니까.”

군터는 버둥거리던 술사가 입에 슬슬 거품을 물기 시작할 즈음에야 손에서 힘을 풀었다. 시체처럼 쓰러진 술사는 경련을 일으킬 뿐,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군터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내려보다가 술사의 남은 일행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대답할 마음이 좀 드나?”

그들은 군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는 것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쏟아내는 말 중에 쓸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군인으로 보이던 자들 몇몇과 함께 움직이던 술사 한 명이 지하 미궁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갔다는 정도?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이들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별로 만족스럽지 않군.”

“하…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저희가 아는 전부입니다!”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내가 방금 말했듯, 모른다면 어떻게든 알아와라. 너희가 모른다면 알 만한 자를 찾아.”

“그, 그런!”

“무엇이라도 좋다. 너희가 말한 그 술사 일행에 대한 정보를 무엇이라도 알아온다면 너희에게 손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약간의 보상까지도 약속하지. 그러니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가져와라.”

군터의 말이 끝나자, 병사 한 명이 단검 하나를 손에 쥐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단검으로 술사들과 그 일행의 어깨에 얕은 상처를 냈다. 그들은 저항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예리한 무언가가 살을 파고드는 감촉을 느꼈을 때, 그들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다. 허튼 마음을 먹었다가 늦는다면 후회하는 것은 네놈들이 될 거다.”

군터는 그렇게 몇 무리의 술사들을 겁박했다. 뒤따르는 할렌과 병사들조차도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 정로도 포악한 행보였다.

그러나 군터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마음의 부담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술사들을 겁박하면서 약간의 즐거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테리브란에서도 이랬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니. 아니지.’

군터는 더 거칠고 사납게 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는 일전에 들었던 황자의 경고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 폭력성이 자신의 본성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는 신이나 그 찌꺼기로 인한 것이라 확신했다.

‘테리브란에서의 일이…어지간히도 얹혔던 모양이군.’

한 줌도 못 되는 자들이 알량한 권력 나부랭이를 믿고 오만하게 구는 꼴이 심히 역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화풀이를 엄한 데다 해서야 곤란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 도시의 술사들을 겁박한 일을 후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모페이브 일행을 찾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으으…….”

다음날 새벽. 죽을상을 한 자들이 몰려왔다. 아마 간밤에 나름대로 몸속을 파고든 독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했을 테지만, 소용없음을 깨닫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을 것이다.

‘평범한 독이 아니니까.’

독물에서 채취한 평범한 독이 아니라, 영적인 독이다. 엄밀히 말하면 독도 아니다. 일종의 저주라고 할 수 있다. 사기를 잔뜩 머금은 칼날에 망령의 원독을 깃들게 한 것이니,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절대 칼날의 독을 해독할 수 없다. 오직 저주에 정통한 사령술사나, 고명한 사제 정도는 되어야 손을 쓸 수 있을 터. 하지만 이곳에 그런 자가 있겠는가? 사령술사는 있을 수도 있지만, 설령 그런 자가 있다고 해도 하루도 되지 않아 손을 쓰기는 무리다.

결국, 모든 것은 이렇게 될 예정이었다. 이제 문제는 저들이 괜찮은 정보를 물어왔느냐, 하는 것인데…….

“찾으시는 그자들이 남서쪽의 입구를 통해 지하 미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자가 있습니다.”

“그게 언제지?”

“대략 스무날 전입니다.”

군터는 그럴듯한 정보를 가져온 자들에게서 망령의 원독을 뽑아냈다. 그가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고 가볍게 잡아당기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몸에 침입한 원독이 술술 뽑혀 나왔다. 그와 동시에 다 죽어가던 자들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그게 끝이 아니라, 군터는 그자들에게 금화가 들은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그렇게 군터가 약속했던 것을 확실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자, 다른 자들도 용기를 얻어 입을 열었다.

“그자들이 미궁에 들어서면서 일행 몇 명을 도시에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그자들은 어디에 있지?”

“그, 그것이…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고…….”

“사라져?”

예상했던 대로였다. 모페이브는 부주의한 자가 아니니, 필시 연락책을 남겨두었을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당한 거겠지.’

그게 누구냐가 문제다.

“가, 감사합니다.”

별로 신통찮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정보는 정보이니 그들에게도 적절히 보상을 해주었다. 그 뒤로도 자잘한 정보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하나같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뿐이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기는 했다.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모페이브 일행의 행적이 머릿속에서 뚜렷하게 그려졌다.

“그자들이 도시에 남겨뒀던 자들……. 그자들이 미궁에 들어가는 것을 본 자가 있습니다.”

“뭐라?”

영양가 없는 정보들에 점점 심드렁해질 즈음,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가 들렸다. 군터는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창백한 사내가 덜덜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그런데…그자들과 함께 들어간 자들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술사로 보이는 자가 마치 용병처럼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나이는 대략…….”

사내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군터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래.”

정보는 얻을 만큼 얻었다. 이제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니, 결국은 이 도시의 밑에 있다는 미궁에 들어가야 한다.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식량은 충분한가?”

“아껴 먹는다면 열흘 정도는…….”

“조금 전에 왔던 자들에게서 징발…아니, 조달해와라.”

“예? 그래도 되겠습니까?”

“금화를 주고 받아오면 될 일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앙심을 품었을 것이 뻔한 자들이니, 그들의 식량을 얻어온다면 미궁에서 그자들과 맞닥뜨릴 일도 없어지겠지.”

뭐, 미궁에서 그들과 맞닥뜨린다고 해도 두려울 것은 없다. 당장 원독을 뽑아내기는 했어도, 그 후유증은 꽤 지속될 터. 모르긴 몰라도, 최소 며칠 간은 술력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할렌과 병사들은 군터의 명대로 식량을 조달해왔다. 그들의 재방문을 받은 술사들은 식량을 사겠다는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거부했다가 그 무시무시한 거한의 분노를 사지는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됐습니다. 이 정도면…못해도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듯합니다.”

“출발하지.”

모페이브 일행이 들어갔다는 남서쪽 입구. 군터 일행도 그곳으로 들어갔다. 불길한 어둠이 잔뜩 깔린 계단이 그들을 반겼지만, 군터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자들에게는 몰라도, 그에게 있어 이 정도 어둠은 가소롭기만 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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