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화
“쿨럭!”
야스메티는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몇 차례 기침이 끝나고 나서도 구겨진 인상은 펴질 줄을 몰랐다.
‘죽겠군.’
기침이 잦아졌다. 그냥 기침이 아니라, 한 번 할 때마다 목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기침에 피가 섞여나오는 것은 예사에, 한번 시작했다 하면 속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멈추지도 않는다.
“하아…하아…….”
힘없이 손을 뻗어 탁자 위에 있던 술병을 잡았다. 한 손으로 들기가 힘들어 두 손으로 쥐고. 그 안에 든 독주를 입에 쏟아부었다. 후끈한 열기가 너덜너덜한 속을 적시니 그제야 통증이 좀 가라앉았다. 아니, 어쩌면 통증이 가라앉은 게 아니라 감각이 무뎌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그에게 있어서는 고통만 좀 줄어든다면 그게 그거였다.
‘못해먹겠군.’
눈 감을 때 감더라도, 그전까지는 조금이라도 더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이 세상에 야스메티라는 인간이 살았다는 흔적을 하나라도 더 새기고 싶었다. 그래서 피를 토하고 잠자리를 뒤척이면서도 어떻게든 버텼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인 듯싶었다.
“하아.”
모든 인간이 태어난 이후로 매일매일 죽음에 다가선다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이 시시각각 미소짓는 것을 보고 있는 건 참으로 못 할 짓이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야스메티가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정오의 햇빛이 비스듬히 흘러들어와 바닥을 따스하게 덥혔다.
“걷지 마라! 뛰어!”
이름 모를 장교의 호통 소리가 들려온다.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그 뒤를 따른다. 백성들의 시끌벅적한 활기는 사라졌지만, 용맹한 병사들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이제 이 성은 파헨델 못지않은 군사 요새가 되었다.
‘참 특이하지.’
이 담백하기 그지없는 요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자니,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 요새의 주인에게로 옮겨갔다.
권력도, 재물도, 무엇 하나 원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 사람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욕심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은…그런 이상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세상사 모든 것에 초연한 듯하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여러 번 진지하게 고민해봤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나서 그런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뭐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그 이후로 그는 달라졌다.
‘이 뒤에 뭐가 더 있을까?’
가끔 궁금해졌다. 그래서 죽음을 겪어본 주인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돌아온 답은 그리 신통찮았다. 무슨 물속에 가라앉은 것 같다느니,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 같다느니 하는 이해하기 힘든 설명뿐이었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 역시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어차피 곧 알기 싫어도 알게 될 테니까.
“쿨럭쿨럭!”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시 한번 술병을 잡았다. 독한 술을 몇 모금 더 들이키자 부글부글 끓으려던 속이 다시금 진정 됐다. 하지만 야스메티는 이 역시 오래가지는 못할 것임을 잘 알았다.
사람이 마지막을 앞두면 지난 일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며 후회하곤 한다는데, 야스메티는 그런 것이 없었다. 부족의 보잘것없는 약골로 살 때의 기억이야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으니 제외하고, 그 이후의 삶에서는 평생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으니 후회할 거리도 없었다. 그나마 아쉬웠던 점이라면, 코누다이안에서 저지른 실수 한 번 정도? 그러나 그마저도 돌이켜 보면 그 일로 인해 제국으로 오게 된 것이니, 실수긴 해도 그리 크게 가슴에 얹히지는 않았다.
‘좋구나.’
그는 창가 끝에 기대다시피 하며 햇살을 맞았다. 따스한 빛이 온몸을 비추니 썩어버린 몸뚱이가 정화되는 것만 같았다.
‘좋은 날씨야. 지금쯤이면 풀 내음이 들판에 가득하겠군.’
초원을 떠나온 지 오래라지만, 그는 초원 출신이었다. 탁 트인 대지를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본래 그의 취미 중 하나였다. 비록 약해빠진 몸뚱이 때문에 원하는 만큼 오래, 격렬하게 달리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초원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이라고 할 만한 곳은 없다. 평생 정처 없이 말먹이가 있는 곳을 따라 움직이는 게 초원 부족의 삶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한들, 거기가 어딘지, 그곳이 어땠는지 기억할 수조차 없다면 어찌 그곳을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다만 그는 죽을 때가 되면 고향으로 고개를 돌린다는 어떤 짐승들처럼, 망연히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난 곳이 어디든, 그곳은 분명 북쪽일 테니까.
“쿨럭쿨럭!”
그는 잠시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다가, 다시 책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보고 있던 서류들을 죄 옆으로 밀어서 치워버리고 아무것도 쓰지 않은 새 종이를 가져와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거칠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하여 장군께서 군무를 중시하시고, 군관들을 총애하시는 것을 이해합니다. 허나 군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끔 뒤를 받쳐주는 내무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또한 내무를 보기 위해서는 재물이 필요하고, 재물을 얻기 위해서는 상인들이 내는 세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내용은 대체로 평소에 하던 말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평소에는 하더라도 조금 돌리거나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하던 것을 제법 직설적으로 썼다는 점이다. 그간 아랫사람으로서 이래저래 눈치를 보았던 것에 대한, 나름의 속풀이였다.
흐릿하게 미소지은 채 글을 써 내려가던 야스메티는 종이 한 장을 끝까지 채우고 난 후에야 깃털 펜을 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 * *
“장군!”
살라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했다. 내심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터는 몸을 일으켰고, 그러기가 무섭게 살라스가 벌컥 문을 열고 달려 들어왔다. 평소의 살라스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야스메티 공이…쓰러졌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언제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앞장서라.”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기에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야스메티를 볼 때마다, 그의 죽음이 그리 머지않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내내 아쉬움이 짙어졌다.
“장군.”
야스메티의 집으로 가는가 했는데, 살라스가 안내한 곳은 집무실이었다. 지저분한 방에 들어서면서 마지막까지 야스메티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무실 끄트머리, 햇빛이 비치는 창가 바로 앞에 의사가 엉거주춤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 급하게 가져온 것 같은 가죽 담요 위에 야스메티가 누워 있었다.
“지금 막…운명하셨습니다.”
“뭐라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의사의 말에 살라스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언성을 높였다. 군터는 의사에게 한소리 할 것 같은 기세의 살라스를 제지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겠지. 재주 밖의 일에 대해 탓하지 마라.”
“으음.”
화를 식히는 살라스를 뒤로 하고, 누워 있는 야스메티에게 다가갔다. 비록 육신은 기능을 멈췄지만, 생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몸뚱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영혼이 느껴졌다. 군터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것을 가두었다.
아아아아악-!
영혼이 비명을 질렀다. 그에 군터는 재빨리 구속을 거두었다.
‘욕심이겠지.’
억지로 가둔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웠을 수하에게 또 다른 고통만 안겨줄 뿐.
“…….”
야스메티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건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제도 창백했고, 그제도 창백했으니. 다만 지금은 어제 보았던, 억지로 참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얼굴만 보면 지금이 더 나았다.
‘덧없구나.’
사람이 죽는 것은 많이 보았고, 죽은 것도 많이 보았다. 그러니 새삼스러울 게 무엇이겠냐만, 오랜 세월 가까이서 본 수하의 죽음은 다르다.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 되면 피고 지는 들꽃과 사람의 인생이 다를 게 무엇일까.
“장군.”
“음?”
“야스메티 공이 남긴…유서 같습니다.”
살라스가 글이 빼곡하게 적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탁자 위에 있더군요.”
첫 줄만 얼핏 읽어봐도 당부하는 말만 가득한 것이, 일반적인 유서와는 다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야스메티는 마지막까지 그다웠다.
그것을 확인하자, 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웃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 * *
“테리브란은 여전하군요.”
“마지막으로 왔던 게 얼마나 되었다고, 이 거대한 도시가 크게 변하기라도 할 줄 알았더냐.”
부친의 쌀쌀맞은 대답에 로우렌은 입을 꾹 다물고 섭섭함을 속으로 삭였다. 그는 부친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엿새 전에 사냥을 나갔다가 실수로 낙마했던 것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리라.
“바로 공자님을 뵈실 겁니까?”
“그래야지. 다만 지금 시간이 시간인 만큼, 일단은 저택으로 먼저 가야지 않겠느냐.”
형을 대하는 것과 자신을 대하는 것에 있어 온도 차이가 어찌 이리도 극심하단 말인가. 로우렌은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저는 빠지면 안 되겠습니까?”
“뭐라?”
부친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불쑥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로우렌은 할 할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버님과 형님께서는 공자를 오랜만에 뵈는 것이겠지만, 저는 이전에도 몇 번 공자를 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그때마다 차가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필시 어머님의 일을 잊지 않고 있는 겁니다. 얼굴을 봐도 불편하기만 할 자리에 굳이 가야겠습니까?”
“…한심한 놈.”
“한심하다니요. 어찌…….”
“불편하다고 해서 피하기만 하면 일이 해결되느냐? 잘못한 부분에 있어 미움을 받아야 한다면, 받으면 그만인 것이다. 두렵다고, 어렵다고 고개를 돌리는 건 겁쟁이나 할 만한 일이야. 내가 너를 겁쟁이로 길렀더냐?”
“…….”
“하아. 대체 네놈은…….”
“아버님. 이제 녀석도 아버님의 말뜻을 알아들었을 겁니다. 가시죠.”
그라모트가 부친을 달래며 막아섰다. 장남이 만류하니 할렌은 씩씩대면서도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로우렌은 잔뜩 움츠러든 뒤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