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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643화 (643/1,064)

643화

“그래서, 이…고렘은 무슨 능력이 있지?”

신기하긴 했다. 어린아이가 대충 만든 것 같은 투박한 생김새였지만, 어쨌거나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멀쩡히 섰다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인형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저 신기해하라고 이런 것을 만들지는 않았을 터.

군터는 모페이브가 이 고렘이라는 녀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결과물을 들고 나타났을 때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냈다고 자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군터가 재차 묻자 모페이브가 설명을 시작했는데, 듣다 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지만 이 ‘고렘’이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페이브의 설명에 따르면 이 인공생명체는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지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군터는 고렘을 전투에 투입 시키면 어떨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모페이브가 군터의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고렘은 전투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진짜 사람처럼 신속하게 움직이지는 못할뿐더러, 체내의 핵이 파괴되면 그 즉시 작동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보시다시피 몸체가 흙으로 되어 있는지라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몸체가 버티지를 못하고…무엇보다 비용대비 효율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움직임이 굼뜨든 말든, 지치지 않고 움직일 수 있으며 두려움과 고통을 모르는 전투 병기는 상당히 위력적일 터. 하지만 고렘 한 기를 만들기 위해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역시 전장에 밀어 넣기는 쉽지 않다.

“고렘을 전투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호닝거 공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작에 드는 비용을 줄이거나, 아니면 원천이 되는 기운을 바꾸는 식으로 방도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함께 연구를 진행했지만 전투술사인 호닝거는 역시 모페이브와는 여러모로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듯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호닝거는 황자의 후원을 받으면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연구가 목표로 하는 방향은 황자의 바람을 충족시켜주는 쪽일 수밖에 없다.

“그럼 테리브란으로 돌아가면 연구를 재개해야겠군.”

“아니요.”

모페이브가 고개를 저었다.

“제 연구는 끝났습니다.”

“음?”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인공생명체지, 전투 병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특별히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손을 보태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가.”

군터는 꼿꼿하게 서 있는 고렘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다.

“이걸로 만족하나?”

“예. 만족합니다. 술사로서의 삶에서, 무엇하나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모페이브가 활짝 웃었다. 군터는 오랫동안 그를 봐 왔지만, 이렇게 환히 웃는 것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 *

모페이브가 가져온 고렘은 군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전투에는 쓸 수 없다지만, 당장은 오히려 전투에서 활약하는 것보다 더 크게 쓰일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치지 않는 일꾼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토어릭이 헛웃음을 지었다. 벌써 닷새째 쉬지 않고 물자를 나르는 고렘을 보고 있었는데, 아직도 저런 것이 실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다. 저 완벽해 보이는 일꾼들을 부리기 위한 몇 가지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제약 같지 않은 제약 아닌가.”

첫째. 고렘을 부리기 위해서는 고렘에게 명령을 내릴 관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렘의 핵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설명은 거창하지만 특별히 대단한 것은 아니고, 고렘의 핵에 피를 묻혀 관리자의 인을 새기면 된다. 다만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감이 필요한데, 이것은 자질의 문제였다.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술한 과정을 통해 고렘의 관리자가 될 수 있지만, 자질이 없는 자는 피 한 방울이 아니라 한 그릇을 쏟아도 관리자가 될 수 없다. 제약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것이 제약이리라.

하지만 관리자가 되기 위한 자질은 술사가 되는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닐 정도라고 했고, 실제로도 사람이 열이 있으면 한 명 정도는 관리자가 될 만한 자질이 있었다. 덕분에 하루종일 이어지는 작업을 3교대로 진행할 수 있었고.

‘물건을 옮기는 정도의 단순 노동만 가능하다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얼핏 보기에는 사람과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저 고렘이라는 것은 실제 사람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있었다. 팔과 다리는 달려 있지만 손가락이 세 개뿐, 그것도 무슨 기둥을 붙여놓은 것처럼 뭉툭한 모양이라 사람처럼 효율적으로 물건을 나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고렘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끌거나 하는 식이었다.

‘체력은 튼튼한데 몸은 그렇지가 못한 점이 아쉽군.’

아무래도 흙을 된 몸뚱이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한 번은 무거운 돌덩이나 나무 같은 것을 짊어지게 해보았는데, 처음에는 어느 정도 잘 나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한 번에 몸 전체가 무너져버렸다. 그 일이 일어난 이후로는 지금처럼 수레를 끄는 일이나, 자잘한 물건들을 옮기는 일만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성을 재건한다고 해도, 전과 같지는 않겠지요?”

“…그렇겠지.”

토어릭도 바로 그 점이 신경 쓰였다.

큰 전투가 있었던 것은 괜찮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방위 군단장이 거하는 성이니까.

하지만 성내에서 타죽은 수천의 주민들. 그게 문제다. 벌써부터 흉흉한 소문이 인근에 퍼지고 있었다. 원혼들의 저주를 받은 성이라며 꺼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병사들도 그렇고, 심지어 장교들 사이에도 그런 분위기가 돌고 있다.

‘장군께서도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솔롬의 성벽을 이전처럼, 아니 이전보다 더 굳건하게 세워 올린다고 해도 결코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 * *

군터는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는 성내를 거닐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은 이미 다 치웠지만, 지울 수 없는 흔적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지만, 군터는 군중의 분위기를 제법 주의해서 살피고 있었다. 패기 넘치던 어렸을 적에 한 번 데였던 경험이 그의 머릿속에 깊숙이 남은 탓이었다.

그렇기에 현재 군중에 도는 소문도 알고 있었다. 솔롬이 저주를 받았다느니, 아직도 잠들지 못한 원혼들이 성터를 떠돌고 다닌다느니 하는.

‘틀린 말은 아니지.’

그 소문은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부는 사실이다. 저주를 받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불에 타죽고, 아바시스의 병사들에 의해 살해당한 주민들의 영혼이 아직도 상당수 흩어지지 않고 성내에 떠돌고 있었다. 사령술을 다루기도 하고, 기감이 여느 술사들에 비해서 특출난 군터였기에 그들의 존재를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형체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원독에 차 있다. 렌의 봉인지에서 보았던 망령들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이 이따금 오한을 느낄 정도는 됐다.

‘이용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은 진즉 잠들고 영만 남았지만, 그렇기에 이용할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렌의 봉인지에서 치렀던 마지막 싸움. 그때 봉인지에 묶인 망령들이 사령술로 일으킨 시체들에 깃들어 싸우는 것을 봤을 때부터.

‘완전히 달랐지.’

분명 같은 시체였는데, 망령들이 깃든 것만으로 전투력이 전혀 달라졌다. 단순히 기운의 크기가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뭐랄까…….

‘효율.’

모페이브의 표현을 빌렸지만, 그 이상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무미건조하게, 우직하게 싸우던 시체들이 노련한 병사들처럼 싸우기 시작하니 천 마리의 괴물이 상대라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때의 그 장면이 군터의 기억속에 강렬하게 남았다.

‘연구라.’

술법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군터는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술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사고, 그들의 행동방식 등. 무엇하나 겹치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술사들처럼, 한 번 연구라는 것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가능할 것 같으면서도 답이 보이지 않는, 묘한 간지러움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재료들은…한동안은 충분하겠지.’

본래 혼이 빠져나간 영은 며칠 정도면 사라진다. 그러나 솔롬의 성터에 가득 찬 농밀한 사기 덕분에 원혼들의 기운이 짙어졌다. 이 정도면 한동안은 원혼들이 흩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했다. 덕분에 병사들 사이에 돌고 있는 괴소문은 한동안 계속 퍼지겠지만, 그 정도야 뭐 어떤가.

“흠.”

그에게만 보이는, 흐릿한 연기 같은 것이 손을 휘감아왔다. 군터가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자, 연기는 언제 있었냐는 듯 흩어져 사라졌다.

* * *

“대장! 대장!”

경박한 목소리. 연무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보리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 만큼이나 경박한 걸음으로, 거의 달려오고 있는 수하가 보였다.

“후욱. 후욱.”

그는 들고 있던 검을 마지막으로 신중하게 내리긋고 천천히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냐.”

“소집령입니다! 드디어 결정이 난 모양입니다!”

“목소리를 낮춰라. 시끄럽게 떠들 일이 아니다.”

“흡! 아, 알겠습니다.”

어째서 실력과 성품이 비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 성품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저 가벼움이었다. 도대체가 일이 하나 생겼다 하면 저렇게 사람이 붕붕 뜨니 원.

혀를 찬 보리스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동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땀에 젖은 그의 몸을 가볍게 식혀주었다.

“가자.”

보리스는 벗어놓았던 옷을 챙겨 들고 걸음을 옮겼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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