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7화
“후우.”
무관은 막사 앞에서 숨을 골랐다. 딱히 긴장하거나, 다른 이유로 마음이 흔들려서가 아니다. 그저 습관이었다. 물론 이런 겁쟁이 같은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실수는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음. 됐어.’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 아니, 마음이 아니라 코의 준비인가.
“장군.”
그는 막사에 들어갔다. 천막을 들추고 들어가자마자 시큼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그는 미리 준비를, 아니 대비를 했기에 내색하지 않고 태연한 척을 할 수 있었다.
“어때.”
“잠잠합니다.”
“원군을 기다리는 거겠지.”
너무 당연한 소리를 무슨 대단한 통찰력을 발휘한 듯 우쭐거리는 꼴이 솔직히 우스웠다. 하지만 역시 내색은 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그의 상관은 잔혹한 사내다. 자그마한 실수에도 인정사정없이 추궁을 가하며, 좀처럼 잊지도 않아서 응어리진 마음이 오래 간다. 부하로서는, 어떤 면에서는 최악의 상관이 아닐까?
위이이잉―
그때였다.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자그마한 날파리 한 마리가 그의 앞을 날아다녔다. 녀석은 눈앞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가 싶더니, 스윽 코밑으로 내려가 코를 간질였다. 간지러움을 참으려다가 절로 표정이 찌푸려졌는데, 그러기가 무섭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안 좋은 냄새라도 나나?”
“아, 아닙니다. 냄새라니요.”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쳤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눈을 굴리며 변명하겠지만, 그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확실히 학습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당당하게 눈을 마주치고 온몸으로 억울함을 호소해야 한다. 그것만이 조금이라도 덜 억울해지는 방법이다.
“그래?”
세로로 쪼개진 동공이 탐색하듯 그를 살폈다. 쉬익―하는 소리가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지만, 그 소리는 커지지 않고 점점 줄어들었다. 살짝 일어났던 노기가 도로 가라앉고 있다는 뜻.
“뭐, 믿도록 하지. 우리 사이에 그 정도 믿음은 있으니까.”
우리 사이에, 라. 이런 말을 들으면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거나, 하다못해 약간의 친밀함이라도 들어야 할 텐데 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인지.
“그보다…어때. 냄새가 나지 않느냐?”
“전혀 나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아니. 그게 아니야.”
쉬익―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다시 났다. 짜증이 난 것이다.
“금 냄새가 나지 않아? 이 향기로운 냄새가 느껴지지 않느냔 말이다.”
아아. 그 소리였나. 그는 모르겠다는 듯 슬쩍 고개를 틀었다.
“으음. 글쎄요. 소관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하긴, 그럴 만도 하지. 현실성이 떨어지는 건 확실하니까. 그냥 금도 아니고 요금(妖金)이야 요금. 내 생전에 이런 물건을 다시 볼 수 있을 줄이야.”
그러면서 자그마한 금덩이 하나를 드는데, 솔직히 그는 저 금이 뭐가 그리 특별한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상관이 저 금을 보자마자 눈이 돌아가서 잔뜩 흥분했던 것으로 보아, 저 금이 이름 말고도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기는 있으리라 짐작할 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군.”
“설명을 해주지 않으셨으니까 말입니다.”
아차. 조금 말이 불퉁하게 나가고 말았다. 파리 새끼 하나 때문에 낭패를 볼뻔한 상황도 상황이고, 아무래도 여기까지 오면서 불만이 쌓였던 탓이다. 고작해야 조금 특별한 것 같은 금덩이 하나 때문에 전투를 치르게 생겼으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말실수를 했지만, 다행히 그의 상관은 두 손가락으로 든 작은 금덩이에 신경이 팔려서 그의 말실수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듯했다.
“아주 특별한 녀석이야. 특히 나 같은 자에게는 더더욱 특별한 녀석이지. 이 녀석이 있으면 법구를 만들 수 있거든.”
“법구…말씀이십니까?”
대꾸가 떨떠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법구가 귀한 것이기는 해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법구일수록 가격은 입이 벌어질 만큼 비싸겠지만, 그것 때문에 일군을 움직여 전투를 치를 정도냐고 한다면…….
쉬익―
“방금 말했는데 대체 뭘 들었나? 평범한 법구가 아니야. 말했듯, 매우 특별하지.”
“그, 그렇습니까.”
“그래. 잘 만들면 법보에 준하는 보물이 될 수도 있어. 물론 요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아무튼 매우 좋은 소재지. 돈이 있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솔직히 관심 없었다. 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금이 귀물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인가. 상관의 말에 따르면, 그 귀물은 무척이나 ‘특별’해서 ‘특별’한 피를 가진 자에게만 그 효용을 발휘한다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금덩이 몇 개는 떨어지겠구만.’
물론 그 금덩이는 평범한 금덩이일 것이다. 그래도 상관이 인색한 자는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때때로 고생을 시키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린다. 그렇기에 이제까지 이 예민하고 사나운 자를 군소리 없이 따라온 것이다.
“그나저나, 괜찮을까요.”
“여기까지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그것이 아니오라…우리는 수가 적으니, 적의 원군이 합류하면 아무래도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지금쯤이면 소식이 전해졌겠지. 하지만 원군이 오려면 못해도 닷새는 걸릴 터. 아직은 여유가 있다.”
그 말대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원군이라는 것은 적어도 천 이상의 규모만 헤아린 것이다.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는, 백 단위의 적은 병력들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하나하나는 별 것 아닐지 몰라도, 그런 무리가 여럿 모인다면 충분한 방해요인이 되니까. 특히 성에 틀어박혀서 버틴다면 더더욱.
“괜찮아.”
그런 그의 우려를 읽은 것일까.
“사냥개들을 풀어놨다. 굴이 완성될 때까지는 활약해주겠지.”
그가 똬리를 풀고 몸을 세웠다. 큼직한 꼬리가 풀리고 꼿꼿하게 바로 서니 눈높이가 단번에 확 올라갔다.
“그래도 이곳은 적지니까. 만약을 대비하는 게 좋겠지? 두더지 녀석들을 재촉해.”
“하지만 이미…….”
“아직도 병사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나? 계속 다그쳐.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게 해.”
“…예.”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쩌랴. 자신은 명령대로 따라야 하는 군인인 것을.
* * *
두 개의 원이 맞물린 깃발. 정식 명칭은 따로 있다. 이원기인가 쌍원기인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깃발을 누구도 그런 이름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아바시스의 국기. 그 한 마디면 충분하다.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한가.
흔히 남강(南强)이라고 불리며, 제국과 오랜 세월 대립해온 강대국. 제국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설마 했는데.’
아바시스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동부의 요새들에 물자들을 비축하고 병사들을 배치한 까닭이 무엇인가. 이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해두었을지언정, 실제로 일이 닥쳤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른 법이다.
5개 성이 함락되고 열여섯 개 초소가 불탔다. 그 소식을 적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접했다. 경계를 그리 철저히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허망하게 뚫린 것인지, 경계병들은 대체 뭘 한 것인지,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당장 어디에 물어본다고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다.
“사령관. 제대로 쉬지 못하신 것 같군요.”
“그대도 마찬가지요.”
살라스의 눈밑에도 그늘이 져 있었지만, 시어문드도 만만치 않았다. 당장 적이 저 앞에 진을 치고 있는데 어찌 마음 편하게 쉴 수 있겠나. 하물며 미처 대비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욱하게 안개가 꼈었다고 하더군요.”
“안개?”
“안개로 몸을 숨기고 은밀히 움직인 모양입니다. 들어본 적은 없지만, 아바시스가 이런저런 기이한 술법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직접 당하게 되니 당황스럽군.”
아는 것은 대비, 아니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저들이 노리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오? 성을 공략하는 것이겠지?”
“아마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저렇게 우르르 몰려와서 눈싸움만 하다가 돌아갈 리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공격을 개시하지도 않고 저렇게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보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글쎄요. 지금으로서는 정찰병들이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쯤이면 돌아와야 하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소. 어쩌면…….”
“오늘까지는 기다려보시지요.”
적을 발견하자마자 정찰대를 내보냈으니 벌써 사흘째다. 하지만 소식이 들어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후에 추가로 내보낸 정찰대 역시 소식이 없기는 마찬가지. 답답함은 쌓여만 가고 있었고, 살라스의 마음에도 초조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라스는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전장에서 조급함이라는 녀석이 얼마나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만 더 두보고자는 시어문드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하지만 그날 밤이 되도록 정찰병들이 돌아오지 않자, 살라스는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어문드 역시 마찬가지.
“아무래도 적이 적극적으로 우리의 눈을 가릴 작정인가 봅니다.”
“그렇다는 건, 뭔가 꾸미고 있다는 거군. 그렇지 않소?”
“예. 기껏 은밀하게 쳐들어 와놓고 지금까지 얌전히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을 보면…….”
시어문드가 슬쩍 표정을 찡그렸다.
“뭘 꾸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직접 확인하겠소.”
“그 말씀도 일리는 있지만, 기다리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원군이 오고 있을 테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어째 안 좋은 생각이 드는구려.”
“감입니까?”
“그렇소. 감이오.”
정찰병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이상, 눈과 귀가 먼 것과 마찬가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상황에서는 온갖 생각이 들기 마련.
이럴 때, 생각 있는 지휘관들은 대부분 최선을 노리기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쪽으로 선택을 한다. 지금 같은 경우 그것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언젠가는 당도할 원군을 기다리는 것이 되겠지.
하지만 살라스는 왜인지 모르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방금 이야기했듯, 순전히 감이었다.
“내가 직접 기병을 이끌고 나가겠소. 그리고 놈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 확인해야겠어.”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전장에서 내리는 모든 선택은 위험을 부담할 수밖에 없지.”
“그도 그렇습니다만.”
“내가 자리를 비우면…성내의 지휘는 그대에게 맡기겠소.”
“불만이 많을 텐데요.”
“장군께서는 그대의 능력을 신임하셨지. 내게도 그대를 중용하라 하셨고. 난 장군의 말씀을 따를 뿐이오.”
“…알겠습니다.”
그날 밤. 살라스가 일단의 기병을 이끌고 성문을 나섰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