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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634화 (634/1,064)

634화

크아아아―!

여전히 시끄러운 괴성. 하지만 똑같이 귀가 아파도, 그 소리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 불길 속에서 일어선 시체들, 아니 해골들이 그들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괴물들의 돌진 앞에, 앙상한 시체들은 금방이라도 박살이 날 것 같았다.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콰앙!

늑대와 사자를 섞어놓은 것 같은 외형의 괴물이 커다란 앞발을 휘둘렀다. 제 몸뚱이처럼 앙상한 칼 한 자루만 덜렁 들고 있던 해골이 단번에 박살이 났다. 하지만 그 사이, 다른 해골 두 마리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괴물의 몸에 제법 깊숙이 상처를 냈다.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지만, 해골들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계속 무기를 휘둘렀다.

“…….”

군터는 괴물 한 마리의 멱을 따고 나서 시체들 쪽을 보았다. 그가 눈을 돌렸을 때는, 쓰러져 있던 해골 하나가 벌떡 일어나서 괴물의 정수리에 막 칼을 박아넣던 순간이었다.

‘빙의?’

그는 쓰러졌던 시체들이 다시 일어설 때부터 바로 알아차렸다. 모를 수가 없었다. 비록 시체들에는 아직 그가 뿌린 사기가 남아있었지만, 그것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와 상관없는 전혀 다른 힘이었으니까.

델프티의 망령들. 시체들에 깃들어 있는 것은 틀림없이 그들이다. 빙의라는 표현을 써야겠지만,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라 시체들에 깃든 것이라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사령술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망령을 통제하여 시체에 깃들게 해서 움직이는 것이 사자를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용맹하게 싸우고 있는 시체들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확실하게 달라.’

비슷하지만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 시체들을 움직이고 있는 망령들은 저 몸뚱이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들의 몸뚱이는 못해도 수십 년 전에 다 가루가 되었을 거다. 즉, 저 다 타버려 뼈만 남은 몸뚱이와 몸뚱이를 움직이는 망령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다. 그럼에도 저들은 육신(뼈만 남은 몸이지만)의 통제권을 쥐고 마음껏 움직이고 있었다. 망령들이 가진 영력이 그만큼 강대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품은 원한이 저들을 괴물로 만든 것이다.

‘망령이라고 다 같은 망령이 아니라는 건가.’

군터가 일으켰던, 흐느적거리면서 어설픈 칼질만 해댔던 시체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능숙하게 무기를 다루는 것뿐 아니라, 치고 빠질 때를 정확히 구분하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뼈만 남은 몸이지만 그 움직임은 여느 병사들 못지않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이었다. 게다가.

콰직!

척추가 뚝 끊겨서 쓰러진 해골이 순식간에 다시 일어선다. 끊겼던 척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된 상태. 아무리 부러지고, 심지어 박살이 나도 순식간에 복구가 되고 있다. 그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불사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으리라.

‘대단하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델프티의 망령들은 본래 시체에 깃들어 있던, 원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망령들을 억누르고 육신의 주도권을 쥐었다. 어찌 보면 전력을 다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저렇게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가지는 못하겠지만…….’

뼈만 남은 몸뚱이가 손상을 복구할 때마다 망령들의 음산한 기운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모든 힘이 그렇듯, 저 불사신 같은 힘 역시 제한 없이 발휘할 수는 없다는 것일 터.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얼마간은 충분히 버텨줄 수 있을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밀어붙여라!”

신주 쪽에서 거대한 기운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

군터가 일갈하며 괴물들에게 달려들었다. 긴 주둥이를 들이밀던 괴물의 턱 아래를 찌르고, 한입에 그의 머리통을 씹으려던 괴물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한 손으로 낚아채 그대로 휘둘렀다. 그렇게 군터가 아껴뒀던 힘을 아낌없이 쏟으며 나아가자, 진이 빠져 있던 병사들도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으윽!”

그 형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신주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거칠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오랜 세월 갇혀 있다가 마침내 자유를 얻은 순간 아닌가. 흥분하여 날뛰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일곱 기둥. 다섯 가시. 거꾸로 씌운 왕관.’

익숙하지 않은 고대의 술법이다. 술식을 들었지만,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으니 그 형태를 머릿속에 그리기가 쉽지 않다. 아는 것이라곤 이 술법이 강력한 억제의 힘을 지녔다는 것.

[오오오오오―!]

머릿속으로 그린 형상이 실체화되기 시작하자 보이지도 않는 신이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테론 아바예크는 숨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고서 크게 몸을 뒤틀었다. 간신히 술력의 흐름은 유지했지만, 술식을 더 이어가지도 못했다. 그저 버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크…윽! 예상은 했지만…이 정도였나.’

그는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술식을 떠올렸다. 그로 하여금 초인적인 인내심과 집중력을 발휘하게 한 것은 위기감, 그리고 책임감이었다. 테론 아바예크는 지금 여기서 그가 쓰러질 경우, 이 부담이 휘하의 술사들에게 옮겨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결코 버티지 못하리라는 것도.

‘내가 쓰러지면…그걸로 끝이다.’

당장 수백이 죽을 것이다. 또한, 8천 명의 죽음도…모두 가치 없는 개죽음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일곱 개의 기둥이 세워졌다. 눈을 질끈 감은 터라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기감을 통해 느껴졌다. 첫 번째 단계는 어떻게든 무사히 마친 것이다.

‘이제 두 번째.’

일곱 개의 기둥은 감옥이다. 하지만 감옥은 아직 허술하고, 가둬야 할 상대는 기운이 넘치니, 그 기운을 꺾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다섯 개의 가시.

쾅! 쾅!

서둘러야 한다. 힘들게 만든 기둥들이 허무하게 부서져버리기 전에.

테론 아바예크는 피가 흘러나오는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신중하게 기운을 이끌었다.

* * *

군터는 전황이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확신했다. 물론 병사들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으며, 맹활약하고 있는 시체들의 기세도 조금 있으면 꺾이기 시작할 것을 알고 있었다. 반면 상대해야 할 괴물들은 여전히 많다는 것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까닭은, 저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악의가 요동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초조해하고 있지?’

신주 쪽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더니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일이 순조롭게 풀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네겐 이제 시간이 없다.’

괴물들을 쉴새 없이 몰아넣은 것은 주효했다. 예상치 못한 망령들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그 과격한 계획은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고, 급한 것은 저쪽이 됐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겠지.’

아직까지는 참고 있지만, 저 인내심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군터는 묵묵히 기다렸다. 여전히 밀려오는 괴물들을 상대하면서도 반드시 올 그 순간을 기다렸다.

쿠웅!

그럴 리 없지만, 군터는 바위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절대 못 들을 수 없을 만큼 아주 큰 소리.

하지만 그 소리는 실제로 들린 것이 아니었다. 군터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 신호음이었을 뿐이니.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먹구름은 느릿하게 흘러가듯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번개가 치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한번 날갯짓을 할 때마다 고개를 옆으로 틀어야 할 정도였다.

그렇다. 날갯짓. 몰려오는 먹구름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아니라 입이 벌어질 만큼 커다란 날개를 가진 괴조였다.

[카아아아아악―!]

괴조의 부리부리한 눈과 군터의 눈이 마주쳤다. 시선만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다면 수십 번은 죽었을 만큼, 괴조의 눈에 담긴 악의는 군터조차도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맹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그르치지는 않았다.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만큼, 군터는 괴조가 몇 번의 날갯짓으로 순식간에 지척까지 날아오자 몸을 뒤로 빼면서 들고 있던 창을 던졌다.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간 창은 그대로 괴조의 몸통에 틀어박혔다. 환영처럼 반투명한 몸에 박혀 있는 검은 창의 모습은 꽤나 괴이해 보였다.

[캬아아아아아악―!]

“으윽!”

“뭐, 뭐야!”

괴조의 비명이 터지자 멀쩡하게 잘 싸우던 병사들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휘청거렸다. 다행히 괴물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기에 바로 발톱이나 이빨에 머리가 사라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얕았나.’

군터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혀를 찼다.

괴조는 창에 맞고 크게 비틀거렸지만, 추락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괴조의 덩치에 비하면 발톱 하나 정도의 크기 밖에 안 되는 창 한 자루로 어떻게 해보는 것은 무리였던 것일까.

하지만 괜찮다. 당장 떨어뜨리지는 못했더라도, 창에 가득 실은 사기가 독버섯처럼 번져 괴조를 갉아먹을 테니까. 다만.

“할렌!”

“예 장군!”

“이곳을 맡기겠다!”

“예? 아…알겠습니다!”

군터는 뒤쪽에 대기시켜놓은 전마에 올랐다. 그리고 괴조가 날아간, 신주 쪽을 향해 전력으로 말을 달렸다.

* * *

[캬아아아아악―!]

“으윽?!”

처음 찢어지는 비명을 들었을 때, 테론 아바예크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삭풍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처럼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떨림이 몸에서 멈추지 않고 정신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느리지만 꾸준히 이어가던 술식이 덜컥 멈췄다.

‘이…이건…….’

술식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벌써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끔찍한 무언가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안 되겠군.]

하얗게 변하던 머리가 마침내 텅 비어버린 그 순간. 낯선 소리가 텅 빈 머리에 울려 퍼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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