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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628화 (628/1,064)

628화

이럴 수가 있는 건가? 군터는 문득 자문해보았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의아했기 때문이다.

지금 포위를 좁혀오고 있는 병력은 타이던의 병력 거의 전부다. 그에 합류하지 않고 어정쩡하게나마 맞서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이백이나 될까 싶은, 솔롬에서 온 병력 일부. 즉, 그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반란에 동참했다는 뜻이다.

그들이 느낀 불만이, 아니 두려움이 그렇게 컸던가? 아무렇게나 긁어모은 징집병도 아니고, 나름대로 정규군이라는 놈들이 반란을 일으킬 만큼? 실패하면 당연히 목이 날아갈 것이고, 성공한다 해도 뒷감당을 하기 힘들다. 거기에 목이 날아간다면 자기 목만 날아가는 게 아니라 가족들까지 얽히게 될 터.

‘이해할 수 없군.’

한심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미친놈들! 네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냐!”

그런 생각은 군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젊은 장교가 조금 전까지 아군이며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들을 향해 분노에 찬 일갈을 내뱉었다. 그의 상식으로 이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저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적’ 중에는 그의 친우도 여럿 있었다. 타이던에 있을 때 종종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던 놈들이 이런 짓을 벌였다.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의문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러나 머리가 복잡하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저 반란에 동참할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정당한 지휘관의 명에 따라 싸워야 한다.

“혼란스러워하지 마라! 저들은 이제 크렘보르 장군과, 그를 임명하신 황자 전하에 맞서는 역도들일 뿐이다! 놈들이 먼저 칼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지 않는 한, 너희는 칼을 거둬서는 안 될 것이야!”

“젊은 친구가 꽤나 침착하군.”

그는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말 한 번 나눈 적 없지만, 그럼에도 이름은 알고 있는 사내가 옅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할렌님이셨지요.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 것 같군.”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전혀.”

말문이 막혔다. 명쾌한 느낌까지 드는 즉답에, 몸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일순간 풀리는 느낌이었다.

“걱정이 없어 보이시는군요.”

“걱정할 게 뭐가 있나. 눈앞에 있는 적은 두렵지 않아. 복잡하고 불분명한 것보다는 훨씬 낫지. 자네도 그렇지 않은가?”

“어제까지만 해도 동료였습니다. 전우였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적이지. 의심할 여지 없이.”

“…….”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는 걸까? 그는 이 할렌이라는 이름의, 다소 이국적인 용모의 사내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조금은 부러웠다. 이렇게 깨끗한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 고민 같은 것을 하느라 골치 아플 일은 없을 것이 아닌가.

“적은 쳐 없앤다. 그뿐이야. 복잡할 것은 없네. 단순하게 생각하게. 머리가 깔끔하게 비어있지 않으면 자네의 검에도 망설임이 깃들 테니.”

옳은 말이다. 전장에서 망설임은 독이다. 칼과 사람을 무디게 하여, 약해지게 만든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사내, 할렌이 여전히 옅은 웃음을 머금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볼일은 다 봤다는 듯 말머리를 돌린다. 아마 크렘보르 장군에게로 가려는 것이리라. 그는 장군의 부관이며, 그림자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그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

“계획이 있습니까?”

평소였다면, 그러니까…이런 황당한 일로 머리가 복잡해진 상태가 아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다. 그는 내려진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내였지, 무슨 어려운 명령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는 사내가 아니었으므로.

“말했지 않나. 적은 쳐 없앤다고.”

“…제가 어리석었군요.”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방금 들었음에도 잊어버렸다. 아니, 그게 ‘답’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안일했던 거다.’

어쩌면 벌써 망설임이라는 놈이 마음 한구석을 좀먹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험하게 외쳐대고 기세 좋게 칼을 뽑은들, 저 앞에 다가오고 있는 놈들이 어제의 전우요 친우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어제는 그랬지. 하지만 오늘은…적일 뿐.’

마음속에 칼 한 자루를 세웠다. 그 어떤 것에도 날이 상하지 않는 날카로운 칼 한 자루를.

“이름이 뭔가?”

이미 갔다고 생각한 할렌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 뜬금없지만 어려운 질문도 아니라, 선뜻 입을 열어 답했다.

“제 이름은…….”

* * *

군터는 앞으로 나가 적들과 마주했다. 그가 홀로 앞으로 나섰음에도 마주나오는 이는 없었다. 대장이 없거나, 있어도 앞으로 나올 용기는 없다는 뜻이리라.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특별히 소리친다는 느낌은 없었으나, 군터의 목소리는 모든 이들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앞으로 나설 용기도 없는 것들이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런 일을 벌였지?”

물음에 대한 답은 즉시 튀어나왔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럿에게서.

“네놈이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네 고집 때문에 수천 명이 죽었어! 이제 다음은 우리 차례겠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거다!”

악을 지르는 자도 있었고, 이성적인 척하면서 주절주절 떠드는 자도 있었다. 저주를 퍼붓는 자들도 있었고, 약간이지만 망설이는 듯한 자들도 있었다.

그 가지각색의 모습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제정신이기는 한 것 같지만 어딘가…….’

할렌의 말대로였다. 묘한 느낌이다. 멀쩡하다면 멀쩡해 보이는데, 뭔가 석연찮다. 자연스럽지가 않다고 할까. 저들이 비치는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이…너무 격앙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감정이라는 것이 본래 불과 같아서 쉽게 부풀기도 하고, 또 쉽게 사그라지기도 한다지만…그래도 이건 좀 다르다.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불이 저 혼자 꿈틀대는 꼴이다.

“여기까지 다 와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군. 마지막 기회다.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물러나는 놈들은,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

“헛소리! 무기를 버리고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것은 너다! 우리가 아니라!”

날카롭게 받아치는 목소리에 군터는 미련 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말한 것처럼, 저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그걸 걷어차겠다면 이쪽도 더 할 말은 없다.

“장군.”

“준비해라. 단번에 끝내겠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으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저 머저리들은 오만하고 어리석게도 제 놈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자기들이 잘나서인 줄 착각하고 있다.

‘헛수고였군.’

차라리 죽어버리게 둘 것을, 뭐하러 조금이라도 살려보겠다고 아등바등했었는지.

“기병 준비!”

뭐, 괜찮다. 짜증나는 것들은 지금이라도 치워버리면 되니까.

“장군. 조금 더 설득을 해보심이…….”

테론 아바예크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그럭저럭 전투 경험이 있다지만, 역시 그는 술사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싸웠던 이들을 상대한다는 것이 영 꺼림칙한 듯했다. 그게 아니면 수에서 열세인 상황이 불안한 것이거나.

“뒤로 빠져있어라. 이런 일로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농담도 되지 못할 테니.”

“…예.”

군터는 얼마 남지 않은 기병을 이끌고 앞으로 나갔다. 적들도 그가 이렇게 나올 것을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몇 번이나 함께 전투를 치르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테니까.

“온다!”

부산을 떠는 것이 보인다. 창병을 앞세우면서 밀집한다. 기병 돌격을 막아보겠다는 뜻이다.

“어리석은 놈들이군요. 하긴, 그러니까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거겠지요.”

할렌이 조소했다. 동감이었다. 저렇게 대놓고 들어와라, 하는데 들어가 줄 바보가 어디 있는가. 물론 이대로 들이받는다고 해도 돌파할 자신이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선택지는 많으니까.

“활을 준비해라.”

저 머저리들을 상대로는 조금의 피해도 입고 싶지 않다. 군터는 안장에 걸려 있는 활을 손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앞으로 말을 몰았다.

*

두 배가 넘는 병력 차이. 어쩌면 그것을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해야 백 기가 조금 넘는 기병이 날렵한 기동을 선보이며 측면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기병 돌격을 대비하여 밀집해 있던 병사들의 머리 위로 화살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할 때. 그들은 잠시 잊고 있던 두려움을 다시 떠올렸다.

“흩어지지 마!”

그나마 이성적이었던 누군가가 버틸 것을 요구했지만, 때늦은 외침이었다. 틈이 보인다 싶은 순간, 군터는 즉각 고삐를 당겨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난 틈을 인정사정없이 파고들었다.

퍼억!

군터는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그간 쌓인 답답함과 분노를 창으로 풀어냈다. 단번에 방패와 그 뒤의 적을 베었다. 찔러오는 창을 고개만 틀어 피하고 가슴에 창을 박았다. 그 쾌속한 일격은 짤막한 비명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히히힝!

적의 수가 아군의 배가 넘는다지만, 사실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양측을 합쳐도 이천이 되지 않으니, 이 정도 규모의 전장에서는 단 백 기의 기병이라도 충분한 위력을 뽐낼 수 있다. 하물며 군터 자신이 직접 이끈다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쓸어버려!”

기병이 한차례 날카롭게 적진을 뒤흔들고 빠져나간 후, 보병이 묵직하게 이어 쳤다.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적은 흔들리고 있고, 아군은 단단하게 대열을 갖추고 있으니 그들은 손쉽게 승기를 잡았다.

“아아악!”

“이 개새끼들!”

그러나 적들도 순순히 무너지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난잡했지만 독했다. 이대로라면 어차피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머리 위로 화살이 떨어져도, 홀로 서너 개의 창칼을 맞게 되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맹렬한 분노에 휩싸여 하나라도 더 데리고 가겠다는 듯 저돌적으로 덤벼들었다.

등을 돌리는 자 하나 없이, 그들은 그렇게 싸웠다.

죽고, 죽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를 사투는 마지막 비명이 사그라질 때까지 이어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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