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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587화 (587/1,064)

587화

“싹 다 파내라!”

야스메티가 들뜬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병사들에게 명했다. 그의 재촉을 들은 병사들은 한숨을 내쉬거나 슬쩍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충실하게 곡괭이를 내리찍었다.

“응?”

그렇게 마땅찮은 얼굴로 곡괭이질을 하던 그들은 곧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단단한 돌이 분명한 희끄무레한 것에 곡괭이질을 하는데 예상했던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돌과 곡괭이가 부딪쳤으니 큰 소리와 함께 반발력이 크게 일어나 곡괭이가 튕겨 나와야 할 텐데 뜻밖에도 곡괭이는 퍽! 소리를 내며 희끄무레한 돌을 어느 정도 파고들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이 영락없는 돌처럼 생긴 것이 실은 돌이 아니라는 뜻.

“야스메티 공. 저게 뭡니까?”

할렌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도 군터에게 명을 받았을 뿐. 왜 갑자기 산에 올라서 땅을 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다만 야스메티가 워낙 강하게 말을 하고, 군터도 허락하여 명을 내렸기에 군말 없이 따르고 있을 뿐.

“저거 말입니까? 똥입니다. 똥.”

“…뭐요?”

잘못 들었나? 할렌은 새끼 손가락을 귀에 가져갔다. 그러자 야스메티가 피식 웃으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조금 더 고상하게 말할까요? 배설물입니다.”

“그, 제가 아는 게 별로 없기는 합니다만 저런 것을 싸질러놓는 동물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하여간 그런 놈이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병사들을 좀 재촉해주십시오. 이놈들이 제 말은 잘 안 듣는군요.”

“…알겠습니다.”

제대로 설명을 안 하는 야스메티가 못마땅했지만, 할렌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야스메티가 부추기기는 했지만, 어쨌든 군터가 명령을 내렸지 않은가.

“이놈들아 서둘러라! 게으름을 부리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

며칠 동안 산을 헤집은 것도 그렇고, 갑자기 곡괭이질을 하게 된 것도 그렇고,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인지라 할렌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입에서 나오는 말이 썩 곱지 않았다.

“어휴.”

하지만 할렌의 기분이 안 좋다 한들 직접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 병사들만 할까. 그들은 내심 쓸데없는 말을 해서 일을 만든 야스메티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어쩐단 말인가. 명령이 떨어졌으니 하는 수밖에.

퍽! 퍽!

돌인지 똥인지 하는 것을 내리찍는 곡괭이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 * *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

군터의 말에 야스메티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변명했다. 처음에 그는 길어야 닷새라고 했으나, 오늘로 벌써 엿새째였다. 더 문제인 것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돌보다야 무르지만, 그 괴물의 배설물이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세월이 오래 흘러 더 단단하게 굳어진 것일지도…….”

“변명은 됐다.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으냐.”

“당초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깊게 파고 들어갔습니다. 해서 이제는 얼마가 걸릴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기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야스메티가 그답지 않게 조금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일정이 너무 지체되어도 곤란하니, 일단 장군께서는 먼저 솔롬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곳의 일은 제가 병사 몇몇과 남아서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 장군께서 솔롬에 당도하신 뒤에 추가로 인원을 보내주신다면 이곳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겠지요.”

“기왕 시작한 일 아닌가. 솔롬의 일은 살라스가 있으니 급하지 않아. 그 괴물이라는 놈이 궁금하기도 하고.”

“병사들을 재촉해보겠습니다.”

“지금도 불만이 많을 텐데, 재촉만 해서는 안 되지. 적당하게 포상을 약속할 테니 병사들에게 전해라.”

“예.”

병사들의 곡괭이질은 그로부터 사흘 후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그 ‘배설물’이 넓게 퍼져 있는 것은 아니라 좁은 면적을 계속 파고 들어가면 되는 것이기에 병사들은 교대로 밤낮없이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군터가 직접 포상까지 약속한 터라 병사들은 불만이 있어도 꾹 참고 계속 힘을 냈다.

“엇?”

곡괭이질을 하던 한 병사가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병사가 무슨 일이냐며 다가왔다.

“어?”

그런데 다가온 병사 역시 무언가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맞는 것 같은데?”

“그렇지? 내가 얼른 올라가서 알리겠네.”

병사는 서둘러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장 위에 있던 장교에게 그가 본 것을 알리고, 장교는 다시 야스메티에게 병사의 보고를 그대로 전했다.

“드디어!”

장교의 말을 들은 야스메티가 반색하며 굴로 향했다.

괴물의 배설물을 파고 들어간 지 벌써 열흘이 가까웠다. 그동안 쉼 없이 이어진 곡괭이질로 인해 처음 배설물을 발견했던 자리에는 굴이라고 하기에 충분한 통로가 파였다. 너비가 그리 넓진 않지만 깊이는 횃불을 들고 꽤 걸어야 할 정도로 깊었다.

“맞군.”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그 굴의 끝에 다다랐을 때. 야스메티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즉시 장군께 보고해라.”

“예!”

* * *

보고를 들은 군터는 곧 산을 올랐다. 처음 괴물의 배설물을 발견했을 때 한 번 온 뒤, 이번이 두 번째였다.

“꽤 깊군.”

그는 병사들이 몇 날 며칠 동안 땀 흘려가며 파놓은 굴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굴이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 게다가 아래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터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꽤 깊숙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지하인가?”

어느 순간, 군터는 공기가 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텁텁하면서도 눅눅한. 지하 특유의 공기였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깊이도 내려왔군. 병사들의 고생이 컸겠어.”

“아무래도 그럴 테지만, 생각하시는 것만큼은 아닐 겁니다. 단단한 부분은 괴물이 다 먹어치웠을 것이고, 저희가 따라온 것은 놈의 흔적일 뿐이니까요.”

할렌의 앞에서는 거침없이 똥이니 뭐니 이야기했지만, 군터의 앞에서는 야스메티도 말을 가려 했다.

“놀랍군.”

굴의 끝에 당도하고, 뻥 뚫린 통로 같은 것을 지났을 때. 군터는 탄성을 흘렸다.

좁은 굴을 한참 동안 지나 도착한 곳은 꽤 널찍한 공동이었다. 지금껏 지나온 굴은 사람 셋이 나란히 서면 꽉 찰 정도였으나, 지금 나타난 공동은 수백 명이 들어서 있어도 넉넉한 크기였다. 그런 공동의 곳곳에는 지금 그들이 지나온 것 같은 굴들이 여럿 있었고, ‘배설물’로 가려진 곳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공동의 곳곳에 널려 있는 반짝이는 물체들이었다. 공동 내부는 빛 한 점 들지 않아 캄캄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 물체들은 저마다 반짝이는 빛을 냈다.

“설마…저게 다 금입니까?”

할렌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스메티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입니다. 그것도 그냥 금이 아니라, 불순물은 전혀 섞이지 않은 순금일 겁니다.”

“세상에…….”

할렌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군터가 유일했다. 야스메티조차 잔뜩 들떠 있었다.

“네 말이 맞았군.”

“헛소리로 장군의 시간을 뺏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사실 며칠 동안은 저도 조금 불안했습니다.”

진심이었다. 물론 확신은 있었지만, 며칠 동안이나 수확 없는 날들이 이어지는 와중에 병사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가니 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그라도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군터가 도중에 마음을 바꾸면 어쩌나 싶어 조금은 조마조마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결과가 나왔으니,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그 괴물이라는 놈은 어디에 있지?”

“예? 음…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저기 뚫린 통로들을 보면 그쪽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겠지요. 다만, 강에서 사금이 발견되었다고 한 것이 벌써 수십 년 전인데다, 이곳의 흔적들만 봐도 괴물이 이곳에 머문 지가 꽤 오래된 것 같으니 다른 곳으로 옮겨갔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짧게 혀를 찬 군터가 공터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 야스메티는 할렌과 함께 병사들로 하여금 공터 곳곳에 쌓인 금덩이들을 옮기게 했다.

“살면서 이 정도로 많은 금은 처음 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커다란 수레가 족히 수십 대는 필요할 것 같은데…….”

“한 번에 옮기는 것은 무리겠지요?”

할렌의 물음에 야스메티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롬에서 병사들을 데려와야지요. 아마 그러고도 여러 번 움직여야 할 겁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병력을 움직이면 이곳저곳에서 신경을 쓸 테니까요.”

“이렇게 되면 이곳에 병사들을 남겨야겠습니다.”

“그럴 겁니다. 이미 솔롬으로 사람을 보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오겠지요.”

야스메티는 산에서 괴물의 배설물을 발견한 그 날 군터에게 솔롬의 병사들을 불러올 것을 제안했다. 군터는 확신에 찬 야스메티를 보며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대담하단 말이지.’

그때는 일이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정말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장군. 먼저…….”

생각에 잠겨있던 할렌은 공터 곳곳을 천천히 둘러보는 군터에게 먼저 올라가 있는 것이 어떤지 이야기하려 했다. 지하 공동의 환경이 썩 좋지 않은 데다, 쌓여있는 금들을 옮기기만 하면 되니 먼저 마을로 돌아가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쿠루룩.

그런데 그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려던 순간, 조용하던 공동에 괴상한 소리가 울렸다. 병사들이 금덩이를 옮기며 낸 소리는 아니었다. 아니, 사람이 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이상한 소리였다. 무언가 땅에 끌리는 듯하기도 하고, 바람이 빠지는 것 같기도 한.

“설마…….”

옅은 미소가 걸려있던 야스메티의 표정이 일변했다. 할렌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야스메티처럼 무언가를 짐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숱하게 전투를 치르며 단련된 감각이 있었다.

그 감각이 경고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이 주변에 있노라고.

“어디지?”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심지어 점점 커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리가 들리는 방향은 알 수가 없었다. 소리가 공동 전체에 울렸기 때문이다.

“장…….”

문득 군터를 떠올리고 고개를 돌린 할렌은, 군터가 어느 한쪽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공동에 있는 굴들 중 하나였다.

“내 창을 가져와라.”

흥미로운 얼굴을 한 군터가 뒤쪽의 병사에게 명했다. 그러자 병사가 허겁지겁 달려와 그의 창을 건넸다. 그의 창은 얇은 천으로 둘둘 말려 있었는데, 창의 음산한 기운을 억제하기 위한 제기포(制氣布)였다.

쿠룩. 쿠루룩.

소리가 계속해서 커졌다.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도 아주 가깝다.

쿠-룩.

그가 바라보고 있던 동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것을 본 병사들이 기함했다. 어지간한 것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할렌 역시 눈매를 꿈틀하며 검을 쥔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신기하게도 생겼군.”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군터가 그것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내뱉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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