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화
할렌은 기침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내를 보며 낯빛을 굳혔다. 아내의 건강에 대한 걱정보다도, 창백해진 얼굴로 기침을 해대는 그녀의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아.”
억눌렀던 한숨은 밖으로 나오고서야 내쉬었다.
“맞는 것 같군. 그렇지 않으냐?”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말을 걸기 전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수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렌의 한숨이 더 진해지고, 길어졌다.
요 근래에 귀부인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고 있다. 사실 정말로 전염이 되는 병인지는 모른다. 다들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에 전염병이라고 칭하고 있을 뿐.
“장군께서도 알고 계시겠지?”
“아니더라도 곧 아시게 되겠지요.”
“미치겠군.”
이 ‘전염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요새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화장품을 애용했다는 것.
“하아.”
여인들이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라, 입소문에 끌려 유행을 따르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특히 황도에서 유행한다고 하면 앞뒤 안 살피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 이 북쪽의 여인들이니.
허나 왜 하필, 돌아가신 부인께 그 문제의 화장품을 추천한 이가 자신의 아내란 말인가.
‘나쁜 마음이 있었을 리 없지만.’
좋은 것을 알게 되어 추천한 것일 뿐일 터.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장군 부인을 위해서 그런 것일 거다. 그 결과가 비극적이라 문제일 뿐.
그래. 결과가 비극적인 것이 문제다. 어찌 보면, 루시는 부인을 죽게 만든 장본인일 수도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현기증이 밀려왔다. 전장에서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번만은 정말 눈앞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니. 이런 고민은 소용없다.’
이 사실을 숨길까?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지도 않을 것일뿐더러, 군터를 속인다는 생각만 해도 거부감과 두려움이 치밀었다. 결국 사실이 들통 난다면, 그의 얼굴을 어찌 본단 말인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실직고하고 죄를 청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기를 바라면서.
할렌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창백한 아내의 얼굴을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꼈을까. 루시가 감고 있던 눈을 힘겹게 떴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몸조리 잘 하시오.”
“…예.”
루시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기침 때문에 목이 쉬어서는 아니다. 기운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녀는 똑똑한 사람이니,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도 얼핏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그녀의 얼굴에서 두려움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일이 어떻게 되던, 내가 당신과 함께 할 테니.”
“죄송해요. 저는 정말…….”
“쉬시오.”
그 길로 집을 나선 할렌은 곧장 군터를 찾아갔다. 군터는 며칠째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끊고서 그의 자택에서만 머물고 있었다. 그의 칩거는 그가 이번 일로 얼마나 크게 상심했는가를 의미한다.
그것을 알기에, 익숙한 길을 지나는 할렌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후우.”
익숙한 집 앞에서, 익숙하지 않은 마음으로 멈춰 섰다. 그를 알아본 저택의 호위병들 몇이 다가왔다.
“할렌 천부장님.”
“장군을 뵈러 왔다.”
“아시지 않습니까. 장군께서는…….”
“안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러 왔다가 그냥 발길을 돌린 이가 열이 넘는다고 알고 있다. 그만큼 상심이 커서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그의 상관은 지금 분노에 차 있었다.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는 모르지만, 오랫동안 그를 봐온 이들조차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 정도다.
모두가 숨죽이며 눈치를 보고 있다. 할렌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이곳을 찾았다.
“아뢰어주게. 내가 죄를 청하고자 왔다고.”
“…일단은 아뢰겠습니다.”
할렌이 단호하게 말하니 병사들 중 한 명이 곧바로 저택에 들어갔다. 잠시 후. 걱정스러운 얼굴로 돌아온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시지요.”
“장군께서는?”
“연무장에 계십니다.”
할렌은 안내하겠다는 것을 거절하고 홀로 걸었다. 하도 많이 가서, 연무장까지는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었다.
“장군.”
그는 연무장 중앙에 홀로 앉아 있었다. 직전까지 창을 휘둘렀는지, 그의 전신에서 옅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무슨 일이냐.”
할렌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말씀 올렸듯이, 죄를 청하러 왔습니다.”
“무슨 죄?”
“소관의 처가 부인을 해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땅히 제 처 또한 이 자리에서 소관과 함께 죄를 청해야겠으나…지금 거동이 힘들 정도로 몸이 상해 있어 불가피하게 소관만이 장군을 찾아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설명해봐라.”
만나려는 자들은 다 돌려보냈다고 하더니, 군터는 아직 전해듣지 못한 듯했다. 할렌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서 천천히, 그가 알게 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길지 않은 말이 끝났을 때.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할렌은 다시 눈을 감고 처분을 기다렸다. 시원한 밤바람도 그의 두려움을 식혀주지는 못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
노성이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들려온 것은 짤막한 웃음소리였다. 아마도, 헛웃음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명운이라는 것이 짐작할 수 없이 피고 진다지만, 이건 너무하는군.”
아름다워지려고 얼굴에 칠한 분 때문에 죽었다. 얄궂은 것도 정도가 있는데, 이건 그 정도를 벗어나도 한참은 벗어났다.
“두려우냐?”
“두렵습니다.”
“내가 너를 엄히 벌할 것이?”
“그 또한 두렵습니다만, 그보다는…어쩌면 더는 안사람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그러면서도 용케 용기를 냈구나.”
“제가 아니면 누가 나서겠습니까.”
“눈을 떠라.”
“…….”
할렌이 눈을 떴을 때. 군터는 여전히 연무장 바닥에 앉아 있었고, 그의 손은 창에 가 있지 않았다.
“불문에 붙인다.”
“장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려거든 집어치워라.”
“…….”
“누구를 탓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화풀이밖에 더 되겠느냐. 지독한 불운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기어이 할렌의 눈에서 눈물 한 두 방울이 흘렀다.
벨리사는 그에게 있어 단순히 상관의 부인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은인이었다. 그와 루시를 맺어준 것이 그녀와 군터였으니까.
“장군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나, 저와 제 처 모두 평생에 죄로 기억하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다만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거든, 그리 하거라.”
일말의 노기도 없는 공허한 목소리가 할렌의 가슴 깊숙한 곳을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 * *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아름다워지는 것에 집착하셨어.”
“여인이라면 대부분 그렇지.”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보리스는 동생의 싸늘한 대꾸에 입을 다물었다.
뚱할 때는 종종 있었어도, 항상 밝았던 동생은 이제 없다. 며칠 사이 살이 쪽 빠진 동생은 침울함에 젖어 있었다. 눈 밑에 그늘이 지고, 목소리는 힘이 없으면서도 신경질적이다. 보리스는 그런 동생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그나마 지금 동생을 만나고 있는 것도 이야기 상대나 되어주라는 조언을 따른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마음이 식었다고 여기셨어. 그리고 그 이유는, 나이가 들어 외모가 시들어서라고 생각하셨고.”
“…….”
“어머니는 아버지의 애정이 그리우셨던 거야. 그래서 아프신 와중에도 화장을 계속 하신 거고.”
“비약하지 마라.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에게 헌신적이셨다. 그 흔한 첩 하나 들이지 않고, 끝까지 어머니 한 분과 함께하셨어.”
조언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분명 ‘잘 들어주라’고 했었으니까. 지금처럼 말싸움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동생의 슬픔과 분노를 이해하지만, 그것이 엄한 방향을 가리키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슬퍼하고 계신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슬픔 이상으로.”
“그렇게 생각해?”
“물론. 무뚝뚝하시고, 감정 표현에 서투르실 뿐이다.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난…모르겠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모르고 싶은 건 아니냐? 넌 지금 원망할 대상이 필요할 뿐이야.”
“…….”
틀려먹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왔다가 언성을 높이며 훈계나 하고 있으니.
‘이 성질도 좀 고쳐야 하는데.’
어렸을 때는 차분하니 침착하니 하는 소리들도 꽤나 들었는데, 어째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욱하는 일이 늘어난다. 거친 사내들 틈바구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 것일까.
“난…조금 쉴래.”
“그래. 많이 피곤해 보인다.”
“응…요 며칠 잠을 잘 못 잤거든.”
유모로부터 전해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되어 이렇게 찾아온 것이고.
“끼니는 거르지 마라. 아버지에게 다시 가족 식사를 하자고 말씀드릴 생각이니까, 너도 참석해라.”
“…알았어.”
조언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급한 불은 끈 것 같았다. 실비아가 마지못해 납득한 척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어쨌든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
‘화가 나겠지.’
당연히 그럴 것이다. 자신 역시 그러하니까.
왜 자신의 어머니여야 했는가. 그녀를 데려간 것이 신의 뜻인가? 그렇다면 그 신에게 묻고 싶었다. 왜 그녀여야 했냐고.
‘내가 실비에게 그런 말을 할 주제는 되는 건가.’
슬픔에, 분노에 못 이겨 엉뚱한 곳에다 화를 풀었던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주검을 앞에 두고 부친에게 쏘아붙였던 그때는, 정신이 어떻게 되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으니까.’
처음에는 화를 내는 것 같았고, 그 다음에는 당황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그랬듯 표정 없는 얼굴이었지만, 보리스는 알 수 있었다.
‘나보다, 우리보다 더 슬퍼하셨겠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실비아에게는 이상한 소리 말라며 단호하게 대꾸했지만, 사실 확신은 없다. 단지 그럴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그랬겠지.’
아니, 사실 그럴 것이라 믿고 싶은 것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