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화
“…….”
“내 모습…많이 추한가요?”
“아니.”
벨리사가 피식 웃는다. 힘없는 웃음. 그런 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은 생기가 없는, 다 시든 꽃 같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진심이다. 추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름답게 보이지도 않지만.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는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미추(美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벨리사라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고,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설령 그녀의 얼굴이 흉터투성이에, 곰보가 되었더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왜 약을 안 먹었지?”
작은 그릇에 담긴 불투명한 액체는 반 이상이 남아 있었다.
“힘들어서요.”
“약을 먹어야 낫지 않소.”
“이제껏 그렇게 먹었어도…소용없었잖아요.”
“…….”
“이제는 편해지고 싶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벨리사는 이제 다 놓아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충분히 괴로워했으며, 그렇기에 충분히 지쳐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이 약을 다 먹는다고 해도 그녀가 나을 수 있을까? 무의미한 투병에 회의를 느끼는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벨리사가 고통에 지쳤다면, 군터는 그런 그녀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에 지쳤다.
“포기한 거요?”
“달리 방도가 있나요?”
옅은 웃음은 그대로다. 핏기가 가신 얼굴을 진하게 덮은 화장이 이질적이다. 제대로 거동도 못하면서 힘겹게 얼굴에 분칠을 한 것일까.
“젊었을 적에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요. 기대하는 만큼 절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
“당신을 만나서 모든 게 달라졌죠. 기적처럼.”
억지로 잇는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쌕쌕거리는 호흡 사이로 기침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억지로 말하지 마시오. 쉬는 것이 좋겠어.”
“고마워요. 그때도, 지금도.”
더 이상은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낯 뜨거워지는 말은 평소에 들었다면 별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겼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쉬시오.”
“오늘은…같이 있어줘요.”
“편히 쉬어야 하오. 내일 봅시다. 아침 일찍 오겠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늘고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렸다. 그새 또 잠이 든 것이다.
군터는 눈을 감은 벨리사를 물끄러미 보다가 소리 없이 일어나 방을 나섰다.
* * *
함께 있어달라고 했던 그 말은 투정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벨리사가 마지막으로 뱉은 애원이며, 호소였을지도 모른다.
잠이든 벨리사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를 깨우기 위해 약을 들고 방을 찾았던 시녀가 그녀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발견했고, 뒤이어 급히 달려온 의사가 그녀의 죽음을 확인했다.
“…….”
군터는 시녀와 의사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벨리사의 방에 도착했다. 그는 이미 식어버린 벨리사를, 그녀의 얼굴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은 여러모로 익숙했다. 직접 죽인 이들은 셀 수 없고, 그 스스로도 한 번 죽음을 겪어 보았다. 그러나 그 무수한 경험들조차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돌처럼 굳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가슴이 아주 오랜만에 요동쳤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동요라, 군터는 잠시 그 들끓는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헐레벌떡 달려온 보리스와 실비아로 인해 깨졌다.
“엄마!”
보리스도 그랬지만, 실비아의 외침은 숫제 비명이었다. 벨리사의 식은 몸을 끌어안으며 숨넘어갈 듯 울부짖는 실비아의 모습은, 군터조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왜! 왜!”
실비아의 유모가 조심스럽게 실비아에게 다가갔지만, 실비아는 평소 잘 따르던 유모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곤 식어버린 어미의 몸을 더욱 끌어안았다.
“나을 거라고 했잖아! 같이 생일 드레스를 보러 가자고 했잖아요!”
모두가 숨을 죽이는 가운데, 실비아의 비명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군터는 그런 딸을 몇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실비아를 휘감은 말 못할 슬픔과 상실감이 느껴졌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울렁거리던 가슴이 딸의 비명을 들으며 더욱 아프게 뛰었다.
“아버지.”
“…….”
보리스가 그를 불렀다. 군터가 고개를 돌리니, 입을 반쯤 벌린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보리스의 얼굴이 보였다. 아비를 불렀으면서도 보리스의 눈은 그의 어미를 향해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슬프지 않으십니까?”
이 말에는 군터조차 눈살을 찌푸리며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페이브를 비롯해, 뒤쪽에 서 있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순식간에 변한 군터의 분위기가, 절제하지 않은 기세가 그들을 자연스럽게 위압했다.
“…무슨 소리냐.”
“슬프지 않으십니까?”
“슬픈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
보리스는 군터의 사나운 기세에 가장 가까이, 가장 많이 노출 되었다. 그럼에도 보리스는 조금도 움츠려들지 않았다. 눈물이 흘러나오는 눈은 초점 없이 멍했다.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슬프십니까? 그럼 어째서…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십니까?”
“…….”
거칠게 흘러나오던 기세가 뚝 그쳤다.
군터는 손을 들어 볼을, 눈 밑을 더듬었다. 거친 피부. 그 위를 가로지르는 흉터들.
어디에도 물기는 없다. 시야가 흐리지도 않다.
눈까지 올라갔던 손이 도로 내려갔다.
* * *
벨리사의 장례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본래 군터는 조용히 진행하기를 원했으나 이래저래 조문을 오겠다는 이들이 많아진 탓에 어쩔 수 없이 규모를 늘려야 했고, 기왕에 규모를 늘리는 김에 할 수 있는 것을 다해 성대하게 치르기로 했다.
군인으로서 손꼽히는 위치에 오른 군터인 만큼, 그 부인의 장례식을 찾는 이들의 면면은 화려하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했다.
제레이스 가문의 사이주 제레이스부터 시작해서 군부 쪽의 이름 있는 인사들, 가문들은 모두 대표로 한 명씩은 조문을 왔다. 면식만 있는 관료들도, 심지어는 말 한 마디 나눈 적 없는 이들도 직접 오거나 사람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안 좋아 보이는군.”
장례식이 끝난 후. 군터는 황자와 독대했다.
황자는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보내 위로의 말을 전했다. 지금 군터가 그를 찾은 것은 명목상 그 답례를 위함이었다.
“그래 보이십니까.”
“그래 보인다. 전에 없이 흔들리는 것 같아. 나쁘지 않지만, 그 연유가 짐작이 되니 안쓰럽기도 하군.”
황자는 군터가 무엇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아내의 주검을 앞에 두고서도 눈물이 나지 않더이다. 마음은 슬프다고 외치는데,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습니다.”
“슬프다고 해서 꼭 눈물이 나는 건 아니지. 자네가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는, 슬프지 않았거나…생각보다 그 슬픔이 크지 않아서일 게야. 그렇지 않은가?”
“…….”
“내가 자네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했으니 이건 다 추측일 뿐이지만, 아마도 머리와 가슴의 괴리가 아니겠는가. 머리로는 슬프다고, 슬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감정은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지. 그 이유는, 이미 자네의 눈높이가 달라져서 그런 것일 테지.”
“눈높이?”
“제대로 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거라네. 자네는 사람인데, 땅을 기는 개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감흥이 있겠나? 그것들이 자네의 발아래서 죽어나간다고 한들 무슨 대단한 감흥이 있을까? 하찮게 여긴다는 것이 아니야. 자연히 눈이 가지 않고,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됨을 말하는 것이야. 작은 것보다는 큰 것에 눈길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시야가 달라지고, 사고방식이 달라지지. 아주 자연스럽게. 뭐가 잘못됐는지조차 알지 못해. 아니, 사실 잘못된 것이 아닐지도 몰라. 잘못됐다는 건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나오는 말인 것일지도. 하지만 어떤가? 인간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인간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자네가 흔들리는 것 역시, 아직 일부나마 인간이라는 증거일 테지.”
“즐거우신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전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군.”
“걱정?”
“지금의 그런 혼란조차도 익숙해지고, 무뎌지겠지. 점점 인간을 벗어난 스스로에게 적응하게 될 것이야. 종국에는 그 괴물들처럼 전락해버릴 테고.”
“그리 되지는 않을 겁니다.”
“결심이 섰나?”
슬퍼해야함에도 슬퍼하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던 보리스가 시체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실비아가 절규했다. 그 어느 것에도 공감하지 못했고, 위로해주지 못했다. 군터는 그런 자신이 낯설고,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쿠엘단의 말은 틀렸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는 틀린 말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그의 말처럼 더 거대한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일 수도 있지만, 군터에게 있어 그것은 황자의 표현처럼 ‘전락’이었다.
“예.”
황자가 손끝으로 팔걸이를 두들겼다.
“아바시스 놈들은 대협곡에서 똬리를 틀고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아국의 내전이 더 격화되기를 바라는 거겠지. 하지만 내 형제들이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남쪽의 승냥이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생각 없이 움직일 리 없지 않은가.”
저마다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러나 황좌를 기약 없이 비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눈치 싸움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리해지는 게 이쪽이라는 것을 저들이 모르지 않을 테니까.
“전쟁을 준비하게 장군. 파헨델의 병력을 증원해줄 테니 언제든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잘 훈련시켜두게나.”
기다림은 길지 않으리라.
* * *
[그새를 못 참고 또 확인하러 왔나?]
힐난에 대한 답은 무뚝뚝했다.
[그의 뜻이다.]
쿠엘단은 이런 경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입 꼬리를 비틀고, 약간의 웃음소리를 낸다.
[부끄러운 줄은 아는 모양이지?]
[그 거창한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나?]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 그럼에도 이야기가 이어지는 까닭은, 표현하는 방식에 관계없이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검은 안개를 옷처럼 두르고 있었다. 차이라면, 한 명은 땅 위에 서 있고 다른 한 명은 하늘 위에 떠 있다는 점.
[이제 곧이다. 그에게 가서 전해라. 걱정할 필요 없다고.]
[그는 변수가 생기기를 원치 않는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야.]
그렇고말고. 오히려 황도에 눌러앉은 망령보다도 더 절실하다.
[너와 그는 다르지 않다. 둘 다 죽음을 찾아 헤매지.]
[죽음?]
다시 한 번, 쿠엘단은 웃었다.
[아직도 그런 미적지근한 표현에 매달리나?]
[죽음은 죽음일 뿐이니까.]
[그건 너무 무식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렇다면 너의 정의는 무엇인가.]
[자유이며, 해방이지.]
지긋지긋한 감옥에서의 해방. 하늘에 닿는 자유.
그 진솔한 갈망이 그를 움직인다. 닿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원대한 목표는 이제 거의 손 안에 들어와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