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화
“정말 높군요. 보십시오. 탑의 끝이 정말로 하늘에 닿아 있습니다.”
그렇다. 뾰족한 탑의 끝은 하늘에 닿아,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러나 높다는 것은 알아도, 정확히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탑의 끝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런 게 가능한 건가?”
“가능하니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거겠지.”
“전설에 따르면 쿠엘단 전하께서 직접 지으셨다던데……”
모든 이들이 탑의 높음에 집중할 때, 군터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저 흉물스러운 탑이 얼마나 높은가에는 조금도 관심 없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하늘을 뒤덮은 검은 장막이었다. 아마도 다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오직 그의 눈에만 보이고 있을 거대한 장막.
그것은 마치, 이런 말을 하면 우습지만 말도 안 되게 거대한 커튼 같았다. 쉼 없이 일렁이고 있었고, 그 너머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아아…왔군.]
‘소리’는 어둠의 장막 너머에서 들려왔다. 장막이 넘실거리고, 그 안에서 어떤 형체가 희미하게 비쳤다. 역시 말도 안 되게 거대한, 보고 있기만 해도 절로 압도되는 무언가.
군터는 그 형체에게 뜻을 뻗었다. 헤아리려 했으나 넘실거리는 장막이 칼로 자르듯 그의 의념을 막아냈다. 하여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뜻에 소리를 담는 것뿐이었다.
[그대가 쿠엘단인가.]
존대는 없다.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의성이기에 가식적인 공손함 따위는 묻어나지 않았다. 평온한 상태였다면 그리 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꾸밀 여력이 없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군터가 할 수 있는 일은 굽히지 않으려 이를 악 무는 것밖에 없었다.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는 것도 보고 있었지. 마중을 나갈까 했는데, 적절한 때에 잘 도착했어.]
의미 없는 물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쿠엘단임에 분명한 거대한 형체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불쾌할 법도 한데,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저 존재는 저러는 것이 어울린다. 하늘에 닿아 있는 자가 땅 위에 서 있는 자들의 말 따위를 신경 쓰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습게도.
[와라.]
장막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주 약간 열려 있던 틈이 사라지고, 하늘은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응? 저기…누군가 옵니다.”
알려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반쯤 달려오는 사람 한 명.
왜소한 체구에 민머리였다. 표정 없이 창백한 얼굴은 성별을 분간하기 힘들었고, 어쩐지 무언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은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인형…….”
모두가, 그것을 보자마자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반질반질한 이마 한 가운데 보이는 기묘한 문양은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올라와라. 너 하나만.”
“전하. 소신은 리즈레 가문의…….”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던 파시 리즈레는, 인형의 눈을 마주하자마자 입을 벌린 채로 굳었다. 인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주 잠깐, 흘깃하고 그를 바라보았을 뿐.
그것만으로도 파시 리즈레는 굳어버렸다. 튀어나오려던 말은 그의 목구멍에서 더 올라오지 못했다. 그저 투명해 보이는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갔다 오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군터의 한 마디가 정적을 깼다. 파시 리즈레는 그제야 다시 한 번 상황을 파악했는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군터는 그를 뒤로하고 천천히 인형을 따라 말을 몰았다.
* * *
도시의 성벽은 회색에 군데군데 거뭇한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그게 뭔지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건가.’
성벽을 지났음에도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아주 오랫동안 방치 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집들과 거리, 그리고 제법 깔끔하게 쭉 뻗은 길뿐. 그 어디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성문에서부터 이어진 길은 똑바로 탑까지 이어져 있었다. 집들은 쓰러지거나 무너진 것들이 종종 보일 정도였지만, 길은 꾸준히 관리를 했는지 그럭저럭 괜찮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올라와라.”
인형은 뻥 뚫린 탑의 입구 앞에서 멈춰 섰다. 그에 군터가 훌쩍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고삐를 인형에게 건넸다. 인형은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잠시 이해하지 멍하니 서 있다가, 곧 손을 뻗어 고삐를 건네받았다.
“재미있군.”
“그런가.”
읊조리는 인형을 지나쳐 어두컴컴한 탑으로 들어섰다.
탑 내부는 꽤 넓었다. 그런데다 벽에 걸린 불도 하나 없어 어두컴컴하기까지 했다. 물론 군터는 어둠 속에서도 훤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그럴 수 없으니, 역시 이 탑은 평범한 인간들이 발을 디디는 것을 상정하지 않고 지어진 건축물이 분명하다.
‘꽤 걸리겠군.’
계단에 처음 발을 올리며 한 생각이었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 이 탑은 하늘의 구름을 관통하고 있었다. 쿠엘단이 꼭대기에 있을 것으로 추측 되니,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계단을 걸어서 구름 높이까지 올라가야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빠르게 올라가도 꽤나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번째 계단에 발을 올린 순간.
“……!”
군터는 갑작스레 그의 눈앞에 나타난 큼지막한 문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들어와라.”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터는 그것이 쿠엘단의 목소리임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술법인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믿기 힘들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는 괴물은 이런 짓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끼익-
허름한 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이 열렸지만, 군터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방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문이 열리고 드러난 방 내부의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뭐지 이건?’
어지간한 것에는 별 느낌도 받지 못한다. 심장이 굳어버렸다고 느끼기 시작한 이후로는 줄곧 그랬다. 아무리 놀라운 일일지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기함을 할 만한 일일지라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에 들어온 광경은 그런 그조차도 머뭇거리게 만드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하늘. 밤하늘. 그는 지금 밤하늘 위에 떠 있었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 반짝이는 별들이 무수하게 떠 있었으며 때때로 물결처럼 일렁이기도 했다.
바람도, 공기도 무엇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아찔하기까지 한 별들의 세상 속에 그는 덩그러니 홀로 서 있었다.
“근사하지. 그렇지 않나?”
“쿠엘단.”
그 역시 그렇게 서 있었다. 등을 돌린 채였다. 그는 두 손을 뻗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뭔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도시 바깥에서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장막이 시선을 차단했다.
“음. 좋아. 다 됐어.”
그의 한쪽 손이 움직였다.
‘책?’
한 손에는 책. 한 손에는 깃펜. 그가 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그것들은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마치 안개가 걷히듯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래도 역시 놀랍군. 나름대로 자연발생이라고 봐야 하는 건데,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어. 가능은 하지만, 현실로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혼자서 뜻 모를 말만 중얼거리는 것은 대화라고 하지 않는다.”
“대화? 아. 그래. 그렇지.”
그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가면이 어떤 모양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곳은 장막과는 또 다른 어둠에 가려 있었다. 어두운 곳도 훤히 볼 수 있는 군터의 눈으로도 결코 꿰뚫어볼 수 없는.
“그 녀석이 보냈지. 남쪽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물어보라 하던가?”
“…그렇다.”
“나도 녀석을 알지만, 녀석도 나를 알지. 전부터 영리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었어.”
그의 화법과 목소리는 기괴했다. 특히 목소리가 그랬다. 그는 간혹 보통 이어서 말하는 부분을 길게 늘이거나 중간 중간 끊어서 말했고, 끊어서 말해야 할 부분은 붙여서 말했다. 그러다가 또 어떨 때는 ‘정상적으로’ 말하기도 했고.
목소리의 고저 역시 마찬가지. 어떤 부분에서는 ‘정상’적으로 말했다가, 또 어떤 부분에서는 뜬금없이 ‘비정상’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거나 낮췄다. 마치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거나,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 내 말이 이상한가보군. 그렇지?”
그는 군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리 말하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고저 없는 목소리로 느릿느릿 다시 말을 이었다.
“음. 내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 꽤 오랜만이거든. 딱히 말하는 법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보니 이렇게 됐군. 아직도 이상한가?”
“들어 줄만은 하다.”
“다행이군.”
[그렇지만,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떤가.]
굳이 어색한 목소리를 쓰느니, 쉽고 정확하게 뜻을 표현할 수 있는 이쪽이 더 나을 터.
그러나 군터의 말에 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거, 별로 좋지 않아. 익숙해지다 보면 잊어버리게 되거든. 선배로서 내리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무슨 의미지?”
“영특한 꼬마야 그렇다 치고, 너는 먹히기 싫어서 온 것 아닌가? 나라면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
“그러니 새겨 들어. 첫 번째 가르침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거다. 익숙함을 경계하고, 편안함을 경계 해. 인간으로서 사는 것은 불편하지만, 원한다면 감내해야 한다.”
그 말이 끝난 순간. 군터는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서 그와 마주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반응할 틈도 없었다.
놀라웠다. 모든 것이 통제를 벗어나 움직인다. 완벽하게 휩쓸려가는 느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놀랐나?”
“…….”
“지금의 그 감정에 집중해. 붙들고서, 최대한 많이 놀라라. 두 번째 가르침이다.”
“이해할 수 없다.”
“감정에 매달리라는 뜻이다. 점점 줄어들 거다. 희미해지다가 결국 사라지겠지. 그리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끝없이 붙들고 매달릴 수밖에 없다. 과하게 기뻐하고, 과하게 슬퍼해라. 미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니 그냥 정말 미쳐버리는 것도 좋지. 때때로는 거짓으로라도 꾸며내. 기쁘지 않아도 기뻐하고, 슬프지 않아도 슬퍼해라. 한 명의 배우요, 광대가 되는 거지. 그렇게 계속해서 감정을 끌어내. 사라져야 할 것을 억지로 유지하려면 그 방법뿐이다.”
“계속 그리 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다른 방법도 있지. 하지만 위험해. 영혼을 섞어야 하거든. 잉크가 섞인 물에 다른 물을 부어 희석시키듯이, 다른 것을 가져와 너의 영에 혼합시키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넌 네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겠지. 별로 추천하지는 않아.”
“…….”
“이 몸으로 직접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야. 네가 나를 만나고,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이번뿐이다. 선배로서 후배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 있으니, 후배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