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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547화 (547/1,064)

547화

군터가 바크렌에서 돌아오고 얼마 후. 살라스가 테리브란에서 돌아왔다. 갈 때는 없었던 한 팔을 회복한 채로.

모두가 놀라워했다. 외팔이였던 사람이 멀쩡하게 두 팔을 가지고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테리브란에 있는 대단한 술사가 살라스의 팔을 만들어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파헨델에 널리 퍼졌다.

“소문이 퍼지는 것도 순식간이겠군요.”

“음. 두 분이 귀찮은 일을 겪으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할렌의 말에 살라스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토어릭이 한 마디 끼어들었다.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염려하시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무슨 말인가? 잘린 팔을 붙인…다고 하긴 좀 그런가? 아무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은 내 들은 적이 없네. 그런데 호닝거와 모페이브님이 그걸 해내지 않았나?”

할렌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나도 마찬가지네. 그런 게 가능하다는 말은 들은 적 없어. 대단한 일이지. 그런 재주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셀 수 없을 테고.”

“그런데 어째서?”

“저 팔이 요정의 팔이라고 하지 않나. 거기에 더해 솜씨 좋은 술사들이 대여섯 붙었고, 거기에 뭔지 모를 귀한 재료들까지 들어갔다지.”

“아무나 혜택을 볼 수 없을 거라는 말이군.”

살라스의 말에 토어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술사라는 이들 자체가 흔치 않으며, 몸값이 비싸다. 그런 술사들 중에서도 솜씨 좋은 이들이 여럿 붙었고, 거기에 이름도 모를 귀한 물건들이 들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정의 육신. 그것은 정말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힘든, 아니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인간 아닌 것들이 씨가 마르다시피 한 제국 내에서는.

“제 생각으로는 귀족이거나, 어지간한 고관이 아닌 이상은 꿈도 꿀 수 없을 겁니다.”

본래라면 살라스도 그 ‘꿈 꿀 수 없는’ 부류에 포함이다. 그가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군터가 손을 써주었기 때문.

“그런데 그런 자들의 사지가 잘리는 일이 어디 흔하겠습니까.”

“…그렇겠군.”

보통 사지가 잘리는 정도의 부상은 전장에서 입게 마련이고, 전장에서 직접 적의 칼을 맞는 것은 병사들이다. 거기서 조금 더 쓰면 일선의 장교들 정도이고. 과연 그런 이들이 그 비싼 시술을 언감생심 꿈이나 꿀 수 있겠는가.

“실용성이 없습니다. 모르지요. 나중에, 더 많이 연구가 진행된다면…아니. 그래도 힘들 것 같긴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네.”

“아무튼, 그 두 분이 귀찮아질 일은 없을 겁니다. 이름은 좀 날리시겠지만, 그뿐이지 않겠습니까?”

“뭐, 그렇다면 다행이겠군.”

“그보다, 그 새로운 팔은 좀 어떠십니까?”

살라스가 씩 웃으며 팔을 들어올렸다.

“만족스럽네. 원래 달려있던 녀석보다 더.”

과장이 아니었다. 테리브란에서 훈련을 하며 새로운 팔에 익숙해졌다. 본래 오른손잡이였던 살라스다. 그러나 새로 얻은 왼팔은 검을 쥐던 오른팔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다. 낼 수 있는 힘도 더 강했고.

‘검을 왼손으로 들어도 될 것 같을 정도니.’

물론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왼손이 오른손보다 더 힘이 세졌다고, 움직이는 것도 더 자연스러워졌다고 해도 검술은 이제껏 오른손으로 익혀왔으니까.

“오호. 어떻습니까? 오랜만에 한 판 해보시겠습니까?”

할렌의 도발 아닌 도발에 살라스가 싱긋 웃었다.

“좋지. 간만에 다시 자네의 버릇을 고쳐줘야겠군.”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새 팔을 얻으신 기념으로 하극상 한 번 제대로 경험하게 해드리지요.”

할렌이 노예 소년이었을 때도 살라스는 군터 휘하였다. 군문에서 보낸 세월이 다르며, 공식적인 계급은 천부장으로 같지만 살라스에게는 파헨델의 부사령관이라는 직함도 있다.

“시도는 많이 하지 않았나. 한 번도 해내지 못했지만.”

할렌은 살라스에게 대련으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한 번 붙으면 쉽게 결판이 나지 않지만, 끝까지 가면 모두 살라스의 승리로 마무리 됐다.

“이번엔 다를 겁니다.”

“기대하지.”

그들은 곧 연무장으로 가서 맞붙었다. 바크렌에서의 전쟁 이후, 정확히는 살라스가 회색 산에서 팔을 잃은 이후 처음 있는 대련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녹초가 될 때까지, 수백 합이 넘게 부딪쳤지만 마지막에 서 있는 이는 살라스였다.

“허억…허억. 여전하시군요. 아니, 전보다 더 나아지신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시종일관 거칠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할렌의 전투 방식. 그에 반해 살라스는 공수의 균형이 적절하게 갖췄다. 그렇기에 둘이 붙으면 항상 할렌이 몰아치고, 살라스가 버티면서 틈을 노리는 모습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살라스도 힘에서 밀리지 않았다. 두 팔로 쥔 검이 할렌의 거친 칼을 어렵지 않게 받아쳤다.

“그 팔. 반칙 수준인 것 같습니다만.”

“말하지 않았나. 원래 달려있던 놈보다 더 낫다고.”

살라스가 땀에 젖은 갑옷을 벗고 땀에 젖은 옷까지 벗어던졌다. 팔꿈치 위의 살색과 확연히 구분되는 회색 팔이 드러났다.

* * *

“쿨럭!”

“어머니. 의사를 부를게요.”

“그럴 필요 없다. 감기일 뿐이야.”

“벌써 보름 넘게 기침을 하셨잖아요. 감기라도 이렇게 오래가는 감기라면 의사를 부르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벨리사는 강하게 말하는 딸을 보며 쓰게 웃었다. 어미를 걱정하는 마음이 기특하지 않은가.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어미를 걱정할 줄 알게 된 딸에게서는, 이제 서서히 숙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러자꾸나.”

실비아의 강권에 벨리사는 의사를 불렀다.

“감기입니다.”

“보름이 넘게 가고 있소만.”

“예. 근래에 독한 감기가 돌고 있습니다. 약을 처방해드릴 테니 몸을 따뜻하게 하시고 외출을 삼가십시오.”

“그리 하리다.”

감기. 그냥 독한 감기라.

열이 있고, 기침이 나오니 감기 말고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지만 보름이 넘게 고생하고 있는 벨리사로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약한 몸이로구나.’

어렸을 적부터 잔병치레는 제법 하는 편이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몸이 약해진 것을 느낀 것은 보리스를 낳으면서부터였다. 그 시기, 전쟁이 나면서 밤낮으로 도망을 다녀야 했던 때.

스스로도 그 이후로 몸이 안 좋아진 것을 느꼈기에 생활이 안정된 후로는 몸에 좋다는 것을 찾아서 먹고, 운동도 부지런히 했다. 그러나 한 번 망가진 건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 장군께서 이틀 후에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콜록!”

소식을 전한 모페이브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몸은…여전히 안 좋으십니까?”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푹 쉬면 괜찮아지겠지요.”

“으음. 사제를 불러보심이 어떨지요?”

“사제라고 한들 다르겠습니까.”

교단의 사제들 중에는 보신과 치유의 힘을 지닌 이들이 있다. 주로 생기를 다루는 술법을 사용하는 이들인데, 쉽게 움직이는 자들은 아니었으나 교단에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기부금을 내면 청하기가 어렵지도 않다.

“사제와 의사는 다릅니다.”

“모페이브 공도 알지 않습니까. 효과를 본들 미미하며, 그마저도 일시적이라는 걸.”

“…….”

안다. 벨리사가 몸이 약했던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껏 사제들을 불러와 축복을 청했던 것이 한 두 번이었겠나. 몸에 활기가 도는 것도 며칠 뿐. 그 며칠이 지나면 예전처럼 돌아갔다. 한 번 사제를 부를 때마다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며칠 기운을 내려고 사제를 청할 생각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체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야겠군.’

사실 이미 알고 있다. 흔히 영약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그나마 구하기 쉽다고 하는 것조차 어지간한 법구 이상의 값어치를 갖는 귀물이다. 돈을 준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귀물 중의 귀물로 여겨진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바람이며,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는 힘 있는 자들은 그런 쪽에서 만큼은 자신들의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다.

‘영약이라…….’

벨리사는 원치 않겠지만, 모페이브는 그래도 군터에게 한 번 말을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 * *

“의도했던 대로 되었다.”

“그렇군.”

‘예상했던 대로’가 아니다. 의도했던 대로다.

군주, 키리스트는 싱긋 웃었다.

무인의 것 같지 않은 매끄러운 손가락이 현 위를 누볐다. 아름다운 음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는 떨리는 현도, 그 위를 움직이는 손에도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연주를 하고 있다는 자각도 없었다. 지금의 아름다운 연주는 완전한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졌다.

“소식이 전해지면 꽤나 혼란스러워지겠군.”

“서로 다투던 녀석들이 손을 잡을 확률도 있지 않겠나.”

“진정으로 그리 생각하나?”

“…….”

키리스트의 반문에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사내였다. 그곳에 서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의 모습은 일렁거리는 어둠에 감춰져 있었다.

“스스로도 너무 말랑한 생각임을 알고 있겠지.”

“이 나라는 정말 무너지겠군.”

“당연하지.”

단호한 목소리. 그런 와중에도 현을 오가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이 나라는 무너져야 한다. 반드시.”

“당신과 함께 말인가?”

“그래. 나와 함께.”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사내의 미소이건만, 그 웃음은 그 어떤 여인의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사내가 보더라도 가슴이 설렐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으나, 일렁이는 어둠에 감싸인 사내의 눈은 여전히 서늘했다.

“그나저나, 상처는 좀 어떤가?”

“괜찮다.”

“아직도 피 냄새가 나는군. 안개도 다 가려주지 못할 정도야. 룬차이가 그 정도였던가?”

“그의 무공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앞으로 나서던 녀석은 아니었지.”

앞으로 나서지를 않으니 활약할 일이 드물고, 칼 솜씨를 구경할 일은 더더욱 드물었다. 일신의 무공은 변변찮다고 생각했으나, 예상 이상이었던가.

“굳이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건가.”

“아까운 녀석이었지. 허나 녀석은 이 나라에 미련이 있었다.”

아마 그대로 두었더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고, 룬차이는 그 존재 자체로 큰 변수였다. 그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움직인다면 막기가 힘들어지니, 사전에 변수를 제거했다.

“줄카는?”

용살자. 위력적인 용아를 거느린 난폭자.

“욕망에 잡아먹힌 애송이. 문제 되지 않는다.”

“쿠엘단은.”

끝없는 지혜.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자(知者). 제국 군주들 중 가장 은밀하고 신비롭다 여겨지는 사내.

“논할 필요도 없지.”

“아간투스베록도 마찬가지겠군.”

“물론.”

담담하게 흐르는 음율 속에, 리비암의 하늘이 붉게 물들어갔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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