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화
“좀 어떠십니까?”
“나쁘지 않군요.”
“나쁘지 않다하심은?”
살라스가 옅은 회색 도는 손을 쥐었다 폈다.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아주 천천히.
“이질감은 없습니다. 이제는 원래 제 팔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군요.”
처음에는 아주 약간 부자연스러움이 있었으나, 며칠이 지나자 그 부자연스러움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이질적인 피부색만 제외하면 본래 그의 팔이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
“신기하군요.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술법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는, 기적과도 같습니다.”
살라스의 자그마한 중얼거림에 모페이브가 씩 웃었다.
“실상 저희가 한 일은 크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요정의 육신이라는 것이…….”
몇 번이나 들었다. 요정의 육신은 일반적인 뼈와 살, 피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 자체로 신비(神?)라 할 만한 것이라, 영육(靈肉)이라는 명칭이 딱 어울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쪽으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는 살라스가 듣기에는 그게 그거였다.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다 한들,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솜씨가 없다면 소용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얼마간은 두고 봐야 합니다. 음…훈련을 하시는 것도 좋겠군요. 새로운 팔을 되도록 많이 써보십시오.”
“그리 하지요.”
살라스는 팔 하나를 잃고 나서 본래의 전투 방식을 버렸다. 사용하는 검도 기존에 쓰던 것보다 훨씬 가벼운 것으로 바꿨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익혔다.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해야겠군.’
그렇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동안,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노력을 했다. 이제 그 노력이 다 허사가 된 셈이나, 입가에 걸린 웃음은 지워질 줄 몰랐다.
* * *
군터는 모페이브의 서신을 통해 살라스의 팔 이식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잘됐군.”
“정말 놀랍습니다. 어찌 그런 게 가능한 것인지…….”
바로 옆에서 소식을 들은 할렌은 크게 놀랐다. 그리고 놀란 만큼 기뻐했다.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동료인 만큼, 할렌은 살라스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겼다.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크게 좌절할 일이지만, 특히 무인에게 있어 있어서는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에, 팔을 잃고서 살라스가 얼마나 상심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술법이라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제껏 할렌은 술법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는 해도, 그리 대단하다고는 여기지 않았었다. 그나마 호닝거와 그의 무리가 전장에서 활약하는 것을 바로 앞에서 보면서 조금 생각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조금이었다.
술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기로도 할 수 있다. 술법으로 적 몇 명을 해치우는 것보다 화살 몇 발로 해치우는 것이 더 쉽고, 빠르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살라스가 팔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고정관념이 깨졌다. 술법이라는 것이 비단 전투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생각이 좀 변했나?”
“예. 음…그 각인이라는 것,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 합니다.”
각인. 술법의 힘을 몸에 새겨 반영구적인 힘을 부여하는 비술로서, 제국의 고위 무관들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무장으로 여겨진다.
할렌은 천부장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위 무관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각인이라는 것은 시술을 할 술사도 술사지만, 필요한 재료들의 값이 상당한 탓에 보통의 천부장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보통의 천부장’이라면 말이다.
“장군께서는 아직 별 생각이 없으십니까?”
군터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고위 각인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제국의 군사기밀로 분류되거나, 심지어 금주(禁呪)로 분류된 은밀한 것들까지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군터는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필요를 느끼지 못한 탓이 컸다. 그런 것이 없어도 그는 얼마든지 전장에서 초인적인 활약을 할 수 있었으니까.
군터의 그런 모습이 할렌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각인의 힘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상관이 직접 보여주니, 안 그래도 은연중 술법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던 할렌이었기에 각인에 대한 생각은 더더욱 사라졌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몸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넌 아직 젊다.”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한창 두려움 없이 날뛰었을 때에 비하면 기력이 많이 떨어졌음을 느낍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신체능력이 조금씩 떨어진다. 고된 환경에서 시간을 보내고,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사는 군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끊임없는 단련으로 그런 쇠락을 최대한 늦추지만, 그럼에도 힘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육신의 쇠락은 조금씩 나타나지만, 치열하게 몸을 쓰는 무인에게는 그 ‘조금’도 크게 다가온다.
“최대한 오래 장군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는, 이제 슬슬 타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하는 대로 해라. 최대한 지원해주마.”
“감사합니다.”
각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서 당장 시술을 할 것은 아니었다. 각인의 종류는 여러 가지고, 군터의 지원이 있는 이상 일개 천부장은 꿈도 꿀 수 없는 고위 각인까지도 받을 수 있다. 무기를 고를 때도 이것저것을 고려하는데, 하물며 한 번 새기면 거의 평생을 가지고 가는 힘을 고르는데 어찌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번에 테리브란에 가게 되면 모페이브 공과 상의를 해봐야겠습니다.”
아직은 먼 이야기다. 살라스가 돌아와야 할렌이 떠날 것인데, 살라스는 아직도 테리브란에서 새로이 얻은 팔을 시험하는 중이었다. 호닝거와 모페이브가 입을 모아 더 지켜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여 군터가 그리하라 허락했다.
살라스가 돌아오기까지 못해도 두 달.
“할렌. 잠시 네게 파헨델을 맡기마.”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다녀올 곳이 있다.”
“아아. 테리브란으로 가십니까? 전하께서 찾으신 모양이군요.”
군터가 즉답했다.
“아니.”
그가 함에 담아두었던 자그마한 주머니를 꺼냈다.
“다른 곳이다.”
* * *
파헨델을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휘관이 자리를 비우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그렇게 자리를 비우고 향하는 곳이 아직까지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바크렌이라니요? 그것도 호위병도 없이?”
“친위대 열을 데려가지.”
모두가 납득 할 수 없다는 얼굴이 된 가운데, 토어릭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직까지 바크렌의 치안은 엉망이고, 설령 치안이 어느 정도 안정 되었다고 해도…….”
뒷말은 삼켰으나,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짐작 못하는 이는 없었다.
바크렌은 유게르 티브리악의 땅이다. 그는 군터의 친우를 자처했고, 근사한 선물까지 안겨주었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완전히 믿게 되었느냐 한다면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장군께서 괜한 일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사안이 사안인 만큼 여쭐 수밖에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꼭 바크렌에 가셔야 하는 겁니까?”
“그래.”
“그렇다면 정식으로 유게르 티브리악 장군에게 사람을 보내…….”
“과하다. 금방 다녀올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허면 호위의 수라도 늘려주십시오.”
“인원이 늘면 그만큼 조용히 다녀오기 힘들어진다. 너희가 걱정하는 바는 알겠지만, 내 뜻을 따라다오.”
명령이라면 섶을 지고 불길 속에라도 뛰어들 충성스러운 수하들이었지만, 그런 그들도 이번만큼은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군터가 강하게 고집을 부리고, 보름 안에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서야 그들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한 발 물러났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열 명 밖에 되지 않는 호위라면 최정예로 꾸려야 한다는 수하들의 요청에 따라, 군터는 그의 친위대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아홉에다 아드리안까지 대동했다. 아드리안의 경우는 본인이 자청하기는 했지만.
“북쪽.”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아드리안이 살짝 어이없다는 투로 말끝을 흐렸다.
“고향으로 간다.”
“고향? 그…갈색 초원 말씀이십니까? 거기까지 다녀오려면 아무리 길을 재촉해도 보름 안으로는 힘들지 않습니까?”
“…….”
군터가 입을 닫자 아드리안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들은 북쪽으로 향했다. 중간 중간 도적이든, 바크렌의 병사들이든 몇 번은 마주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전쟁이 길기는 길었나 봅니다. 산 자보다 죽은 자를 보는 게 더 쉽군요.”
파헨델을 떠난 지 오늘로 나흘째. 지나오는 길에 폐허가 된 마을을 세 개나 보았다. 무너진 목책과 집들 사이로 타다 만 시체나, 뼈 위에 약간의 썩은 살점이 남은 시신들을 실컷 구경했다.
“이 땅이 다시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살아가는 자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살아가려면 삶의 터전을 일굴 수밖에 없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조금씩 번영을 되찾을 것이다.
아드리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자들은 쥐어 짜이는 자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요.”
농사를 지을 땅도, 장비도, 사람도 부족하다. 이 땅에서 살아갈 이들의 대부분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 터. 그것은 말 못할 만큼 고된 일이겠지만, 진정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위정자들의 가혹한 지배가 될 것이다.
“그건 유게르 티브리악이 알아서 하겠지.”
“어리석은 자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만…어떨지 모르겠군요.”
“살아남는 자는 살아갈 것이고, 그러지 못하는 자는 죽거나 떠나겠지.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남은 자는 살아갈 것이고, 그러지 않은 자는 떠날 것이다. 도망을 쳐서 떠나든, 죽어서 떠나든 간에.
“예. 그렇겠지요.”
이틀이 더 지났다.
그들은 이제껏 보았던 폐허들보다 더 오래된, 그래서 폐허라고 할 수도 없는 ‘흔적’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던 ‘흔적’에.
“이곳은 어디 입니까?”
“비카락.”
예전에 이곳에는, 그런 이름의 마을이 있었다.
군터는 무릎 높이까지 오는 길쭉한 돌 몇 개를 지났다. 병사들은 바깥쪽에서 대기했다. 안쪽까지 그를 따라오는 이는 아드리안 뿐이었다.
“고향이라 하셨지요. 그렇다면 이곳이?”
“그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추측도 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지고 사라진 흔적에, 군터는 그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은 마을의 모습을 투영했다.
고향이라 말했다. 맞다. 그에게 있어 고향은 초원이 아닌 이곳이었다. 하지만 그 고향에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에게 있어 고향은 고향일 뿐, 별 다른 의미는 없었으니까.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이 머무는 곳. 그에게 있어 고향이란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그때의 그 유해입니까.”
“…….”
군터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 자와 무슨 관계셨습니까?”
“이곳에서 함께 자란 친우였다.”
“…거 참. 얄궂은 운명이군요.”
군터는 손을 몇 번 움직여 땅을 파고, 그 안에 주머니를 묻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