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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545화 (545/1,064)

545화

절단된 사지를 복원한다.

통상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목표에 도전하며, 처음 모페이브와 호닝거가 관심을 둔 것은 ‘회복’이 아닌 ‘창조’였다. 의수처럼, 아예 기존에 없던 새로운 팔을 만드는 것. 그들은 그것이 ‘회복’보다는 쉬우리라 생각했다.

“생각해봅시다. 풍문에는, 쿠엘단 전하께서 부리시는 인형들을 ‘창조’하셨다 하오. 그래서인지 그분께서 부리시는 인형은 인간의 형태를 한 것도 있으나, 기괴한 외형을 한…일종의 마물 같은 것들도 있다 들었소. 그것들은 자연적으로는 나타날 수 없는 형태이나, 살아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호흡을 하고 피를 흘린다지.”

호닝거가 말했다.

“생물의 창조. 육신의 창조. 맞습니까?”

모페이브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음을 알려주는 교보라 봐야겠지.”

“허나 불가능하지 않다 하여 그것을 우리가 해낼 수 있는가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지요.”

“물론 그렇지만, 한 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생각하오.”

물론 모페이브도 그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생명, 아니 육신의 창조에 매달렸다. 그를 위해 그들은 온갖 지식들을 탐독했다. 여러 술법들은 물론, 사장되거나 금기시 되는 지식들까지도 거침없이 살폈다. 군터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연구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구가 계속 될수록 그들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미궁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본래부터 그랬지만, 점점 더 그 분이 존경스러워지는군.”

호닝거의 심정은 모페이브의 심정이기도 했다.

창조라는 것은 지극히 어려웠다. 무엇이 필요할지는 계속 생각이 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이러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해보려고 하면 초장부터 난관에 부딪치기 일쑤였다.

“사령술을 접목시킨다면 어떨 것 같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겠으나, 잇는 것이 문제겠지요.”

“으음. 그렇겠지.”

뼈를 만들고, 살을 붙이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그렇게 만든 팔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느냐는 것.

“피가 돌고,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냥 생명 하나를 창조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차라리 생명 하나를 만드는 일이라면 정신의 기능을 할 핵을 만들고, 그를 중심으로 해서 기능을 더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만드는 팔의 경우는 이미 존재하는 핵에 그들이 만든 팔이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얼핏 보면 후자가 더 쉬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장치를 만든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소? 관절의 마디마다 정신과 연결시켜 반응 할 수 있도록?”

“그리한다면 얼추 기능은 할 수 있겠습니다만…사고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 그게 문제지.”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장치의 반응속도를 빠르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나마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허나 고민하면 할수록, 그들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한계가 있다.’

아무리 각인에 힘을 불어넣어도, 그들이 원하는 반응속도에는 이를 수 없었다. 물론 그 정도만 되어도 의수로서는 전에 없는 성능을 지닌 보물이었지만 그들은 군터가 원하는 것이 의수가 아니라 진짜 팔임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군.”

그간의 결과물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망 없는 미련을 억지로 붙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알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새로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멈춰 섰다.

“어찌 해야 하지?”

아무것도 모를 때는 이것저것 생각이 가는대로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면 발을 앞으로 딛으려고 하다가도 멈칫하게 된다.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호닝거와 모페이브가 딱 그와 같았다. 비록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는 하나, 그들이 했던 탐구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잘못된 길을 택하기 전, 그들은 다방면에 걸친 연구 끝에 그 잘못된 길이 제대로 된 길이라 여기고서 방향을 잡았었다. 바꿔 말하면, 다른 길들이 그만큼 가망 없다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가망 없다고 여겼던 길을 되짚어가야 한다. 없는 가망성을 억지로 찾으면서 말이다.

“어렵군.”

“쉬웠다면 그 오랜 세월 동안 미지로 남아있었을 리 없지요.”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을 법한 분야다. 전쟁은 어디에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는 이들도 많다. 그들을 위한 연구가 간단했다면, 하지 않았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만큼 어려우니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해봐야 할지도 모르겠소.”

“그 말씀은?”

“그대의 말처럼, 쉬운 일이었다면 과거의 누군가가 해냈을 거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얼마 안 되는 인원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일지도.”

호닝거는 그들의 일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드러냈다. 처음에는 술사로서, 진리의 탐구자로서의 욕망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좌절이 계속 되면서 그의 의지도 점차 꺾여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자존심이었으며, 오기였다.

‘군터 장군이 원한 것은 팔이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만들어진 팔이든 떼어온 팔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끝을 알 수 없는 지혜의 소유자만이 해냈던 일을 따라하려고 했던 것이 오만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다른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무엇인가.

‘팔. 팔이라.’

호닝거는 한 가지에 집중했다. 궁리는 며칠 동안 이어졌고, 그는 마침내 한 가지를 떠올렸다.

‘팔?’

그의 시선이 움직였다.

크지 않은 그의 개인 연구실. 그곳에는 정체 모를 것들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고, 그 중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관들이 여럿 있었다. 호닝거의 시선은 그 중 하나를 향했다.

‘팔이라.’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며 찌그러졌던 그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 * *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살라스는 군터의 명을 받고 테리브란으로 가는 내내 생각했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설다. 이미 오래 전에 포기했음에도,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파헨델을 떠나, 며칠 동안 바람을 맞으며 이동하다보니 들떴던 마음도 제자리를 찾았다.

‘장군께서 마음을 써주신 것이지만…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지.’

기대는 때때로 실망을 낳는다. 살라스는 팔을 잃고서 느꼈던 상실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번에도 테리브란에 가고 싶지 않았으나, 군터의 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었다.

‘호닝거, 모페이브 공이라.’

가벼운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술법으로 뭔가를 해낸 것일까. 성과가 없었다면 군터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을 테니, 확실히 뭔가를 해내긴 해낸 것일 테지만…….

‘가 보면 알겠지.’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허나 중간부터 휑한 팔에 슬쩍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서오시오 살라스 공.”

“호닝거 공. 모페이브 공. 오랜만에 뵙습니다.”

테리브란에 도착한 살라스는 벨리사에게 먼저 인사를 올린 후에 바로 호닝거, 모페이브와 만났다. 그들은 한 반 년 정도 전장에서 험하게 구르기라도 것처럼 초췌한 몰골이었다. 그간 고생이 많았다는 것을 얼굴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제…잃어버린 ‘팔’을 찾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살라스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는다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수십 번도 넘게 되뇌었지만 목소리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이오.”

호닝거의 즉답에 살라스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몇 차례 실험도 했었소. ‘팔’을 달았을 때 제 기능을 하는 것을 확인했지. 본래의 팔처럼, 아니 그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기능하는 것을.”

“어찌…….”

“일단 가시지요. 가서 대략이나마 말씀드리겠습니다.”

모페이브가 나서서 살라스를 연구실로 안내했다.

따뜻한 차를 내오고, 호닝거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려운 일이었소. 숱한 실패를 겪었지. 사실 따지고 보면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야.”

“그게 무슨.”

호닝거가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성공은 성공이되, 우리가 생각했던 성공이 아니라는 뜻이지. 뭐, 그대가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을 거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차를 입에 가져가는 호닝거를 대신해 모페이브가 설명을 이어갔다.

“살라스 공. 공께서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회색 산에서 만나셨던 요정들 말입니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결론부터 말해, 살라스 공께서 새로 얻으실 팔은 그때 그 요정의 팔입니다.”

“……?”

순간, 살라스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우리는 그대의 새로운 팔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소. 허나 ‘이식’을 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았지. 요정의 육신은 그 이식을 위한 가장 적합한 재료요. 아니, 재료라기보다는 이식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방도지. 우리는 실제로 죄수들을 이용해 몇 차례 실험까지 해보았소. 그리고 단 보름일 뿐이지만, 경과를 지켜보고 별다른 부작용이 없음까지 확인했지.”

“사실 시간을 더 충분하게 두고 여러 가지 실험을 더 하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 탓에, 더 지체를 할 수가 없게 되었지요. 하여 장군께 말씀을 드리고, 살라스 공을 오시게 한 겁니다.”

“문제? 부작용은 없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부작용이 아니오. 요정의 육신이 영육(靈肉)에 가깝다 하나, 그래도 어쨌든 피와 살로 이루어진 것임은 분명하지. 난 회색 산에서의 전투 이후 연구를 위해 몇 구의 시신을 가져오고, 그것을 얼음 관에 넣어 보존해왔소. 하지만 한 번 실험을 위해 시신을 관에서 꺼낸 다음에는 다시 관에 넣어도 전처럼 부패…음, 그것을 부패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신이 상하는 것을 막는 게 불가능하더군. 시간이 촉박해진 거요.”

“상황이 급해진 탓에, 더 이상 실험을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요정의 시신을 다시 구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살라스님을 오시게 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식을 거절해도 좋소. 실험을 했다고는 하나 그 기간이 짧은 탓에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 단언할 수 없는 처지지. 위험부담이 분명히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그대에게 자신 있게 이식을 권할 수 없소.”

“제가 선택을 해야 한다, 이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선택은 그대의 몫이오.”

살라스의 시선이 연구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호닝거가 ‘얼음 관’이라 부른 관을 향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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