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화
연회가 이어지는 중간중간 야스메티가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을 전했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는 것은 없었다. 어차피 권력자들의 소통은 드러난 곳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들려오는 소식이라고 해봐야 누구누구가 얼마 동안 서로 하하 웃으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더라,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군터의 관심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똑같이 시시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조금 의외라고 할까.
“장군의 이름이 돌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지?”
“군인들 사이에서 장군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 같더군요.”
군터가 사령술을 썼다는 사실이 이제야 알려진 것이다.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사람의 입이라는 것은 통제를 하려고 해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것이라, 군터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은밀하게 새어나갔으리라. 그리고 이제는 일반 장교들 및 사병들에게까지 퍼진 것일 테고.
“시민들도…알게 되겠지요. 이제부터는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겁니다.”
“신경 쓰지 않는다.”
야스메티는 조금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지만, 군터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신의 일이기에 조금 관심이 갔을 뿐, 세인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쑥덕거리든지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끝난 일이니까.
“그렇게 무심하게 넘기실 일이 아닙니다. 장군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안 좋아진다면, 당장은 아무렇지 않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장군께서 하시는 일에 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할지 아는가?”
“무엇을 하시든지, 필히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야스메티는 진지했다. 반드시 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세인들의 입 따위를 신경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야스메티가 정 그렇게 말한다면 그의 뜻에 따라주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느낀 것입니다만, 사실 제국에서 말하는 금기라는 것들 중 대부분은 뜬구름과 같습니다. 실체가 없지요.”
“실체가 없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장 이 테리브란에 사령술과 조금이라도 엮여 본 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그들의 두려움은 관습과 무지에 기인한 것입니다.”
지금 장교들과 병사들 사이에서는 군터가 죽은 자들을 일으켜 적들을 쓸어버렸다느니, 그들의 영혼을 먹어 치웠다느니 하는 흉흉한 이야기들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점점 황당할 정도로 변해갔다. 그가 포로들의 심장을 수백 개나 뜯어냈다느니, 피를 마셨다느니 하는…….
‘황당한 이야기지. 무지한 족속들이란.’
물론 사령술사들 중에는 그런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진정 사악하다고 할 수 있는 자들 말이다. 하지만 어디 그런 자들이 사령술사들만이겠는가. 술사라고 하는, 지식의 탐구에 삶을 바치는 작자들 중에는 사악하거나 광기에 찬 이들이 꽤 있었다. 물론 죽음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사령술 쪽에 그런 자들이 더 많을 수는 있겠지만, 하여간 사령술사라고 해서 다 그런 끔찍한 자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야스메티는 군터를 꽤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그가 사령술사였다는 것이, 그 사실을 자신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군터에 대한 그의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가 본 바, 군터는 상당히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때때로 폭력, 아니 파괴적이기까지 한 과격한 사내였지만 그의 그런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아무런 의미 없이 감정에 치우치는 자가 아니었고, 욕심이 큰 자도 아니었다.
‘특별한 사람이지.’
재물, 권세, 그 어떤 것도 탐하지 않는다. 제국의 위장이 되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 되겠다고 의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힘이,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대개, 능력 있는 자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소문을 내겠습니다.”
소문에는 소문이다. 마침 황자가 힘을 써서 무마시켰다는 틀림없는 사실과 명분까지 존재한다.
‘두려워하는 것까지는 좋아.’
윗사람은 위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위엄이라는 것은 거의 두려움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군인이라면, 장군 정도 되는 이라면 그 이름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히려 반겨도 될 일이다.
‘하지만 그 이상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그가 말한 것처럼, 지금 당장 군터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은 틀림없는 불안요소다. 야스메티는 그런 것이 군터의 발목을 잡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실수는 한 번이기에 실수인 거다.’
두 번 실수를 한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다. 야스메티는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는 지금껏 만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코누다이안에서 벌어졌던 일은, 기억하기도 싫은 그 끔찍한 실수는 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언제는 그러지 않았더냐.”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군터는 무심한 듯했다. 자신의 이름이 직접 오르내리는 일인데도 말이다. 어찌 보면 안일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야스메티는 군터의 저런 면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저런 기질이야말로 야스메티가 군터를 계속 섬기는 이유였다.
그는 거대한 나무와 같았다. 나무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지만, 그저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와 잎을 내는 것만으로도 그늘을 만들어준다.
‘거목이 되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자연스럽게 비를 맞고 햇빛을 쬐는 것만으로도 거목은 자라난다. 그러니 그 그늘 아래에 있고자 하는 그의 역할은 엄한 놈이 도끼질을 하지 않게끔 잘 감시하는 것이리라.
“아…하옵고, 바크렌에 주둔하던 군대 중 일부가 파헨델로 귀환한 모양입니다. 공자님께서도 그 편에 돌아오신 모양이더군요.”
“그런가.”
“지금 같은 때라면 공자님을 테리브란으로 모셔와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것 없다. 규칙대로 한다.’
아직 보리스가 휴가를 얻으려면 한 달 가량을 더 기다려야 한다. 물론 야스메티의 말처럼 지금 같은, 전쟁을 끝낸 직후라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불러올 수도 있겠지만…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보리스는 지금 그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제국의 십부장으로서 파헨델에 있는 것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야스메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사실 그도 군터가 이리 답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거절당할 제안을 한 것은 자신이 공자에 대해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하나뿐인 후계자니까.’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되지 않지만, 언제고 군터도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보리스가 그 뒤를 잇게 될 터. 그때까지도 자신이 현역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잘 보여서 나쁠 것은 없다.
* * *
“그러니까…그냥 먹고 마시면서 말씀하신 대로만 소문을 내면 된다 이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병사들은 당황한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지.’
중요한 일이라고 해서 긴장하고 왔을 터. 그런데 명령이라고 하는 것이 먹고 마시라는 것이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어설프게 입을 놀리라는 게 아니다. 되도 않는 연극을 하라는 것도 아니야. 너희는 군터 장군이 어떤 분인지 잘 안다. 그렇지 않느냐?”
“…예. 뭐, 그렇습니다.”
야스메티는 살라스에게 군터를 따른 지 오래 되고, 그러면서도 충성심이 투철한 병사들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살라스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것이니, 이 병사들의 충성심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터.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중요해. 휴가라고 생각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도 좀 마시면서 말이야. 응?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해서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자네들의 그 멋진 흉터들도 좀 보여주고. 아! 장군께서 병사들을 위해 얼마나 애쓰시는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대화하는 게 좋겠어. 이번 전투에 대해서, 지난 전투에 대해서 곱씹는 것도 괜찮겠군.”
한 병사가 입을 열었다.
“혹시…장군에 대해 뭐 안 좋은 소문이라도 돌고 있습니까?”
야스메티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을 한 병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네…머리가 좋군. 눈치가 좋은 건가? 어쨌든.”
병사는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에 비하면 야스메티는 가녀린 여인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누가 봐도 병사가 야스메티의 앞에서 주눅 들 이유는 없었다.
“…….”
하지만 병사는 야스메티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급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그것은 지위와는 상관없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전장에서 벤 적의 목만 열 개가 넘어가는 그가 닭 모가지 한 번 비틀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왜소한 사내에게 주눅이 든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는 그것에 의문을 품지도 못했다.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빤히 그를 쳐다보는 야스메티에게서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기이한 분위기가 풍겼다. 두렵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꺼림칙하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맞아. 자네들도 알겠지만, 반왕의 목을 친 마지막 전투에서 장군께서 사령술을 사용하셨지. 본래 장군께서는 그 힘을 사용할 생각이 없으셨다. 하지만 그 힘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반왕과 그의 결사대에 의해 많은 병사가 죽고, 어쩌면 전투의 향방까지도 뒤바뀌었을지도 몰라. 그래. 지금 자네들 중 몇몇은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하게 됐을지도 모르지.”
“…….”
“장군께서는 어리석은 분이 아니시네. 그분께서 금기를 범하셨을 때 돌아올 온갖 불명예와 정치적인 위험을 생각지 않으셨을 것 같은가? 아니. 아니야. 그것을 다 알고 계셨음에도 감내기로 하신 거네. 지금 자네들이 멀쩡히 살아서 승전병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건, 물론 자네들 스스로가 열심히 싸웠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장군께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몸 바쳐 싸우셨기 때문이야. 내 말이 틀린가?”
“아니요. 옳은 말씀입니다.”
야스메티의 은근한 압박 때문이기도 했지만, 반쯤은 본심이었다. 이곳에 모인 병사들은 모두 군터를 따라 전투를 몇 번이나 치러본 이들이었다. 이는 군터가 베푼 두둑한 포상을 몇 번이나 타먹은 이들이라는 뜻이다. 뭐,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능력 있고, 휘하 병사들에게 여러모로 섭섭지 않게 대우해주는 군터를 좋아하지 않는 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저희가 장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아주 좋아.”
야스메티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는 이 말주변 없는 칼잡이들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들은 불씨다. 불씨를 키울 바람은 따로 있으니, 이들이 제 역할만 해준다면 모든 것이 순조로우리라.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