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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511화 (511/1,064)

511화

군터는 호닝거를 찾아갔다. 전장에서 돌아와서 그런지, 호닝거의 얼굴은 전장에서 보았을 때보다 활짝 펴져 있었다.

“헤어진 지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간만에 뵙는 것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도시 생활이 체질에 맞는 모양이군.”

“아무래도 그렇지요. 전투술사니 뭐니 하지만, 사실 저도 전장에서 긴장하는 것보다는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연구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연구하는 게 더 좋습니다.”

능력이 있어서 전장에 나가기는 하지만 적성은 일반적인 술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군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들었다.

“내 수하 중 한 명이 한 팔을 잃었네.”

“아…혹시 그, 살라스? 천부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알고 있군.”

“예. 몇 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지요.”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잘려나간 팔을 말입니까?”

“자네를 찾기 전에도 적잖은 술사들을 만나봤네. 불가능하다고 하더군.”

“그랬겠지요.”

“자네 역시 그리 생각하나?”

“…….”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어. 딱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야. 그 한 명은 이리 말하더군. 나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고.”

“그 자, 술사입니까?”

“물론.”

“훌륭하군요.”

호닝거가 싱긋 웃었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을 보며 잠시 침묵했다. 생각에 잠긴 듯했다. 군터는 그런 그를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잠시 후. 횡거가 다시 입을 뗐다.

“제게 잘린 팔을 붙이는 재주는 없습니다. 하지만 장군께서 말씀하신 그 술사가 그랬듯, 저 역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도 알고 있나?”

“으음. 장군. 혹 제국의 군주이신 쿠엘단 전하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쿠엘단……?”

알고 있다. 남들이 아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다. 일찍이 베이고르를 정벌하고, 그 땅의 신을 몰아냈던 자.

“쿠엘단 전하는 제국 최고의 술사이십니다. 감히 술사라는 간단한 말로 그 분을 표현하는 것이 죄스러울 만큼 대단한 분이시지요. 비록 그 분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직접 본 바는 없으나, 믿기 힘든 몇 가지 일화들만 전해 들어도 자연스럽게 그 분께서 이룩한 경지를 경외하게 되지요.”

“…그렇군. 그런데 그것이 뭐 어떻다는 건가.”

“소문에 의하면, 그 분께서는 생명을 창조하실 수 있다 하더군요.”

“…….”

“그 분께서 부리는 특별한 ‘인형’들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인간을 닮았으나 인간은 아닌, 생명이지만 생명이 아닌 것들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생명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창조가 가능하다면 온전한 생명도 아닌, 고작해야 팔 하나 만드는 것이 어찌 불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쿠엘단을 찾아가 부탁해보라는 건가?”

호닝거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보다도 장군. 아무리 저희끼리 있는 자리라지만 호칭에 주의해주십시오. 어찌…….”

“군주에게 예를 차리라는 건가? 난 이미 전장에서 룬차이와 싸운 적이 있는데, 그런 내가 군주를 공경하기를 바라나.

“그것과 이건 경우가……. 아닙니다.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여간 장군께서는 여러모로 보통이 아니십니다 그려.”

“하던 말이나 계속 하지. 그래서 뭘 어찌 해야 하겠나.”

“술법으로 인체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사실 장군께서도 알고 계실 그 ‘각인’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술법의 힘을 인간의 육신에 새겨 넣는 것이니, 일부지만 앞서 말씀 드렸던 인체를 다룬다는 것의 범주에 포함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래 저는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이번에 장군과 함께 요정들과 맞서면서 흥미가 생겼습니다. 장군. 요정들이 보였던 기괴한 재주를 기억하십니까?”

“재주? 무엇을 말하나.”

“나무에, 땅에, 온갖 것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 말입니다.”

“기억한다.”

“처음에는 술법인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는 건 지금은 그렇게 생각 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지금까지도 그때 요정들이 보였던 재주가 술법이겠거니 생각한 군터로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말이었다.

“저와 몇몇 술사들이 그때 요정들의 시신을 챙겼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알다마다. 빠르게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이 그럴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 장본인이 바로 군터 자신이었으니 모를 수가 없다.

“테리브란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하게 연구를 조금 해봤습니다. 그리고 알게 됐지요. 요정들의 신체는 우리 인간의,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그 어떤 생명체의 몸과도 다르다는 것을.”

“간단하게 말해주게.”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연구가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은 뭐든 지원하지.”

“그것이 바로 제가 말씀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호닝거가 씩 웃었다. 군터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휘하에 모페이브라는 자가 있네.”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그 자입니까.”

“맞아. 난 술사들에 대해 잘 모르지만,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모페이브는 꽤나 괜찮은 술사네.”

“그와 함께 진행해보도록 하지요. 또한, 저를 따르는 이들 중 함께 할 이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자네 뜻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흥미를 가지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럼, 부탁하지.”

* * *

군터가 호닝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황자와 자이드라 멕시스는 널찍한 대전에서 독대하고 있었다.

“전하와 소신, 단 둘이 만나는 장소로는 너무 넓은 것이 아닌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십이 훌쩍 넘는 인원이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단 둘.

“좁은 곳은 답답해서 말이지. 사실 내게는 지금 있는 이 대전도 답답하다.”

“저런. 전하의 웅심은 이 거대한 대전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 말을 한다 해서 내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으니 관두게. 그 쓸데없이 실실 웃는 것도 어지간하면 그만두고.”

“이 웃는 낯은 습관이 된지라,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젊었을 적에 웃지 않고 다니다가 보기 안 좋다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말이지요.”

“여전히 뻣뻣하군.”

황자가 피식 웃었다.

“하긴, 그런 배짱이 있었으니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겠지.”

“과찬이십니다.”

여전히 웃는 낯이다. 어깨는 쫙 펴져 있고, 선 자세는 당당하다. 누가 보더라도 호쾌한 사내의 모습. 하지만 황자는 그 껍데기 안에 자리한 본성을 알고 있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지금 이 순간이 오기 전까지, 타라냐드의 군대가 바크렌 탈환 전쟁에 참전하기 전까지 그렇게 시달렸었는데.

“그래. 그 비싼 엉덩이를 여기까지 움직이게 했으니 이제 내가 값을 치러야겠지. 뭘 원하나?”

“꾸밈 없는 진솔함. 시원시원한 계산. 소신이 전하를 택한 이유 중 하나지요.”

자이드라 멕시스의 웃음이 진해졌다. 황자는 코웃음 치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예상하셨겠지만, 우선은 타라냐드의 독립적인 존속을 원합니다.”

“지금처럼 말인가? 그건 곤란해. 써먹지 않을 거라면 끌어들인 보람이 없지 않나.”

“다가올 전쟁에서 타라냐드의 모든 신민이 전하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 드리지요.”

“말로 하는 약속은 의미가 없어. 어찌 믿겠나? 그대의 이름은 값싸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야.”

“물론 소신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해서 말입니다만…….”

“음?”

“소신에게 아들이 몇 있습니다. 씨가 좋지 않아서인지 제대로 된 놈은 드물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괜찮은 녀석이 하나 나왔지요.”

“그대가 애지중지하는 넷째 아들 말인가?”

“그렇습니다. 느지막이 얻은 소신의 기쁨이지요.”

“보기 좋은 미끼로군.”

“녀석을 아끼는 소신의 마음은 진정입니다. 제 뒤를 이어 타라냐드의 총독이 될 자질이 있는 건 녀석뿐이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말뿐이군.”

“공주님과 녀석이 맺어진다면, 소신은 녀석을 이곳 테리브란에 보내겠습니다. 소신이 죽을 때까지 말입니다.”

“역시 말뿐이다. 애지중지하는 사남을 이곳에 보내고, 정작 총독 지위를 승계할 때는 다른 아들에게 넘겨주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전하께서 그 정도도 손을 쓰지 못하시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도발해도 소용 없다. 대를 이어 타라냐드를 다스려온 멕시스 가문의 저력을 얕볼 수는 없지.”

“좋습니다. 허면 넷째를 제외한 모든 녀석들을 교단에 밀어 넣도록 하지요. 이만하면 전하께서 마음을 놓으실 수 있겠습니까?”

“호오.”

황자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교단이라 함은 여명 교단을 말할 것이고, 교단에 밀어 넣는다 함은 제 자식들로 하여금 성직자의 길을 걷게 하겠다는 뜻. 성직자가 된 이는 세속의 지위를 가질 수 없으며, 혼인도 할 수 없다. 즉, 타라냐드의 총독 자리와는 작별을 고하게 된다는 뜻이다.

“강하게 나오는군. 가능하겠나? 여러모로 말들이 나올 터인데?”

“녀석들이 세상에 나온 이후로 누려온 모든 것이 타라냐드와 가문의 덕입니다. 죽으라는 것도 아닌데, 가문을 위해 그 정도는 해야지요. 못하겠다고 한다면 이 손으로 내쫓아버릴 것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흐음. 좋아. 마음에 드는군. 그 정도라면 긍정적으로 한 번 고려해보겠다.”

“고려입니까?”

“설마 확답을 바란 건 아니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걱정 마라. 늦지는 않게 답을 줄 테니.”

“하하. 이거야 원. 전하께서는 독한 분이시군요.”

“보고 배웠다네.”

자이드라 멕시스는 자신이 한 일이 있는지라 여유를 부리는 황자에게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단지 황자처럼 픽 웃기만 할 뿐.

“자네가 내게 왔으니 바라눔 그 무식한 놈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인데, 생각은 해봤나?”

“소신이 백 번 걱정한들 방도가 있겠습니까. 이제 소신과 타라냐드의 명운은 전하의 손에 달렸습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군.”

“오직 전하를 믿고 있을 뿐입니다.”

황자가 더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울타마란 소레딜이 그대를 여우라 하더군.”

“하핫! 그와는 몇 번 얼굴을 붉힐 일이 있었지요.”

“불쾌하지 않은가?”

“그 나름대로 소신을 평하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 하겠습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이지요.”

“여우라는 평이 그리 듣기 좋지는 않을 터인데?”

“여우라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지요. 쥐새끼가 아닌 게 어딥니까?”

어찌 보면 면전에서 대놓고 모욕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자이드라 멕시스는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 신색이 너무나 태연해, 정말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그래. 그대가 지닌 여우의 꾀. 이제 날 위해 써주길 바라네.”

“어인 말씀을. 부족한 재주나마 필요로 하신다면 얼마든지 바치겠나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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