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화
술사들을 수소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명을 내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술사들 몇이 군터의 자택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분야의 술법을 익히고 연구한 이들이었는데, 잘린 팔을 회복시킬 수 있냐는 군터의 물음에는 다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불가능합니다.”
어려울 것이라 짐작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언해버릴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군터는 그가 불러모은 술사들이 별볼일 없는 작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정말 대단한 실력자들이라면 하루도 안 되어서 이렇게 데려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가능하다 해도 쉽지는 않을 거다, 이거군.’
어중이떠중이들을 불러모으는 것으로는 안 된다. 정말 실력 있는 자, 혹은 흔히 찾아볼 수 없는 힘을 다루는 술사를 찾아야 한다.
무엇 하나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군터는 살라스의 일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알아보기로 했다.
살라스의 일에 대해 당장 할 수 있는 선까지 마무리 지은 후, 군터는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야스메티가 말했던, ‘추리고 추린’ 이들이었다.
군터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따로 밖으로 나서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직접 그를 찾아오는 자들을 거절하지 않는 수준이었는데, 이는 야스메티의 조언을 따른 것이었다.
“활동적으로 보이셔서는 곤란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오는 사람을 박대하지 않는다, 정도면 족합니다.”
군터를 찾아오는 이들은 크게 세 부류였다.
첫째는 군인. 우슈무르 가문과 연이 닿아 있는 장교들이거나 아무런 줄을 잡지 못한, 이끌어줄 사람을 찾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세 부류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군터가 가장 공을 들여 만난 이들이기도 했다.
“그들을 최대한 많이 거두셔야 합니다. 장군을 따르는 이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군부에서 장군의 영향력이 더 커질 테니까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어중이떠중이들로 수만 늘려서는 안 되겠지요.”
야스메티가 최대한 거르고 걸렀다지만, 그럼에도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때문에 군터는 자신을 찾아온 그들을 하나하나 만나보며 면밀히 살폈다. 군터에게는 사람은 몰라도, 제대로 된 군인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
“인물이 없군.”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눈에 띄는 인재라면 이제껏 주인이 생기지 않았을 이유가 없지요.”
옳은 말이다. 길바닥에 보물이 떨어져 있다면 가져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누군가 가져가지 않고 계속 길바닥에 놓여 있었다는 건 그것이 가져갈 가치가 없거나, 가치 없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우슈무르 가문과 연이 닿은 녀석들은 몇몇 괜찮은 놈들이 있더군.”
“우슈무르 가문은 선대 때부터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지요. 정치적인 알력에 질색하는 이들 중 일부가 우슈무르 가문과 연을 텄으니, 그들 중에는 인재라 할 만한 이들도 꽤 있었을 겁니다.”
“나 또한 그런 알력 따위는 관심 없다.”
“장군께서는 그리 생각하시겠지만, 이미 장군께서는 그 알력의 중심에 서 계십니다.”
그렇다. 그게 문제다. 그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군터는 이미 정치판의 중심에 서 있었다. 황자는 그를 거두었고, 황자와 줄다리기를 하는 귀족들은 눈에 불을 켜고 그를 노려보고 있다. 이제 와서 군터가 ‘나를 내버려두시오’ 한다고 해서 먹힐 상황이 아닌 것이다.
“장군.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차라리 완전히 황자 전하의 쪽에 서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장군도 사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미 반쯤은 그리 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
그래. 알고 있다. 황자가 자신을 총애하고 있으며, 여러모로 신경을 써준다는 것도 안다. 특히 이번 일 같은 경우는, 본의 아니게 크게 신세까지 졌다. 세간에서 자신을 황자의 총신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역시 알고 있다. 그러니 야스메티의 말처럼 본격적으로 황자에게 의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군터의 입장에서는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누구에게도 쉬이 밝힐 수 없는 비밀이 한 가지 있다. 그의 본질에 관련된 문제.
황자는 말했다. 네가 신에게 먹히는 순간 널 죽이겠노라고.
물론 군터는 신이에건 괴물에게건 먹힐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자신의 비밀을 아는 황자가 감시자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대놓고 너를 죽이겠노라 말하는 자의 밑에 있는다는 것은…영 마음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신의 관계는 더 이상 맺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운명을 다른 이의 손에 쥐여주는 것은, 그런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거래가 적당하다.’
황자를 위해 내어주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칼이면 족하다. 그가 자신을 챙겨준다면 그를 위해 싸울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검을 뽑지 않는다. 지금 황자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저 권신들처럼 말이다.
“난 황자에게 기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에게 받은 은혜에 보답은 해야겠지만.”
“으음.”
“어려운 길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확고하다.”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손을 잡아야 할 자들이 조금 더 명확해지는군요.”
지금도 그를 물어뜯을 궁리만 하는 권신들은 당연히 아니고, 황자 쪽도 아니라면 남는 것은 하나다.
“그나저나, 다른 자들은 어떠셨습니까?”
세 부류 중 첫째가 군인이라면 둘째는 상인이었다. 적포장군이면서 파헨델을 다스리는 사령관이기도 한 군터인 만큼, 그에게 잘 보이려는 상인들이 적지 않았다. 파헨델에서 소비하는 여러 물자들을 댈 수만 있다면 고정적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또한 적포장군쯤 되면 전쟁에 나설 때 군납 상인을 지정할 때 입김을 넣을 수도 있으니, 아예 그에게 연줄을 대려는 이들도 꽤 있었다.
“글쎄. 장사치들은 잘 모르겠더군. 몇몇이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렇습니까. 허면 쥐새끼들은 어찌 보셨습니까.”
“굳이 녀석들을 만나보라 한 이유가 뭐지?”
“추리고 추렸다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너무 꼭꼭 숨겨두면 의심만 키울 뿐이니, 적당히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군터가 만난 마지막 부류. 그들은 그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보낸 정탐꾼이었다. 그가 어떤 자인지, 그의 속내는 어떤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야스메티가 그들의 목적이라든지 정체를 알아보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치밀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놓고 군터를 떠보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 그들과의 만남을 거부하려면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야스메티는 그러지 않기를 권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금 자신의 입으로 설명했고.
정탐꾼들은 그들의 주인에게 돌아가 군터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은연중 비친 성향과 속내 역시.
“이걸로 또 하나 끝난 건가.”
“예. 그렇습니다.”
군터가 그의 일을 처리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꽤나 큰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아침 대전 회의에 참석했던 그는 황자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한 마디에 대전이 뒤집어지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자이드라 멕시스가 온다고 하더군.”
“자이드라…멕시스 말입니까?”
타라냐드의 총독이자, 두 황자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거듭하던, 울타마란 소레딜의 말을 빌리자면 ‘여우’같은 자.
그 자가 테리브란으로 온다. 황자가 그를 불렀고, 그는 그 호출에 응했다.
“충성을 보이기 위함이라더군.”
“명목일 뿐이지요. 뭐, 전하께서는 그것을 바라고 부르셨겠지만…저쪽에서 그에 응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다. 그간의 경험이 헛되지 않아, 군터도 이제는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주고 받는 게 있겠지.’
주고 받는다. 당연한 이치요, 진리다. 남에게 무언가를 바라면, 나 역시 남에게 무언가를 줘야 한다. 그게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무언가를 바랄 수 있는 경우는, 그런 관계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그런 극히 드문 ‘관계’는 권력자들 사이에서는 성립할 수 없다.
“자이드라 멕시스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데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쪽의 손을 잡았지요.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당연히 황자 전하께서 제시한 대가가 서쪽에서 제시한 대가보다 컸기 때문일 겁니다.”
“그 대가가 뭐라고 생각하지?”
“알 수 없습니다. 정보가 너무 없으니까요. 하지만 추측되는 몇 가지는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타라냐드에 대한 지속적인 지배권은 틀림없이 들어있겠지요.”
타라냐드는 자이드라 멕시스의, 멕시스 가문의 왕국이나 다름 없다고 들었다. 대를 이어 총독의 지위를 역임했으며, 타라냐드의 군대는 그의 사병이나 다름 없다던가. 물론 어느 정도 과장 되었으리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또 하나. 바라눔 엘 트라소프의 견제 역시 약속 받았을 겁니다.”
타라냐드의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제국의 서부를 집어삼킨 27황자 바라눔 엘 트라소프가 군대를 움직인다면 타라냐드가 버텨낼 수 있는 확률은 없다고 봐도 좋다. 특히, 그의 입장에서는 자이드라 멕시스에게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었으니 진노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닌 만큼 자이드라 멕시스는 무엇보다 그의 안전을 요구했으리라.
“군대를 보내겠군.”
“그렇겠지요. 타라냐드로 보내느냐, 아니면 아록으로 보내느냐의 문제겠지만…군대는 움직일 겁니다. 다만.”
“다만?”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그 정도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라면…아무리 물밑에서 오가는 것들이 있다고 쳐도 너무 작습니다. 자이드라 멕시스는 정말 끝까지 결정을 미뤘었으니, 그런 그를 움직이게 할 정도의 조건이라면…….”
“추측하는 바라도 있나.”
“듣기로, 전하의 슬하에…결혼 적령기의 공주님이 한 분 계시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이드라 멕시스의 아들이 아직 미혼인데다, 그 비슷한 나이대라 하더군요.”
“혼맹?”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입니다. 사실 가능성이 그리 큰 편도 아닙니다. 방금 말씀 드린 멕시스 가의 공자가 장남이 아니라 사남(四男)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가문의 후계는 장자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차남도 아닌 사남은 공주의 배필로서 격이 떨어진다. 야스메티의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혼맹을 이야기 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지도 않은 것이, 자이드라 멕시스가 사남을 그렇게 아낀다더군요. 듣자 하니 아직 젊은 나이에도 그 재지가 보통이 아니라, 부친에게도 이런저런 조언을 한다 합니다.”
“그렇군.”
별로 흥미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군터의 흥미는 이런저런 정치적 상황이 아니라 자이드라 멕시스라는 인물 그 자체에 있었다.
‘황자들을 상대로 꿋꿋하게 거래를 주도했던 인물.’
흥미가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