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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424화 (424/1,064)

424화

초원의 기병을 경기병이라 한다면 제국의 기병은 중기병이었다. 두껍고 무거운 무장에, 마갑을 씌운 말을 타고서 적을 향해 돌격하는 것이 제국식 기병 활용법이다.

한때 제국군이었던 군터도 그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제국식 기병 운용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제대로 된 제국 기병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바크렌의 군부는 결코 유능하지 않았고, 병사들은 갈색초원과 닿은 곳에서 복무하던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가 오합지졸들이었다. 때문에 군터는 제대로 된 '제국의 기병대'는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아그니스 체스퍼가 이끌던 군대만이 제대로 된 군대라 할 수 있었지만, 그의 기병들은 흔히 말하는 '제국 기병'이 아니었다. 초원의 전사들을 대적하기 위해 무장을 가볍게 하고 전투 방식을 바꾼, 오히려 제국보다는 초원의 전사에 가까운 경기병이었다.

'느리고 투박한 기병에 당해줄 적이 어디 있는가.'

돌파력이 장점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무장을 단단히 한다 해도 그렇게 무식하게 들이 받는다면 기병의 피해도 상당할 터. 군터는 그런 비효율적인 전투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살라스의 말이 옳았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시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900여 명의 병사들을 100명 남짓한 병사들에게 맞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그들에게 무장을 가볍게 하고 마갑을 벗기라는 말을 하면 어떻게 반응을 하겠는가.

가뜩이나 얼굴도 본 적 없는 자가 대장이랍시고 나타나 분위기가 어수선한 판에, 반기라도 들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군마의 품종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무장도 무장이고, 제국의 기병은 쓰는 군마도 달랐다. 초원에서는 날래고 오래 달릴 수 있는 말을 선호하지만, 제국에서는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말을 선호했다. 아무래도 무거운 마갑을 걸쳐야 하는 데다, 중무장을 한 기수까지 태우고 적을 향해 돌격해야 하는 만큼 다른 무엇보다 힘을 우선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말까지 바꿀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군터를 비롯해 그의 수하, 병사들이 타는 군마들은 모두 준마라 할 만한 것들이었다. 군터는 늘 휘하 병사들의 무장에 공을 들이는 편이었고, 그 중에서도 군마에 있어서만큼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병사들이 타는 말들은 날래면서도 덩치가 좋고 힘도 좋은, 상등마가 아닌 것이 없었다.

그런 덕분에 당장 병사들의 무장을 바꾸고 말에 마갑을 씌운다고 해도 별 무리는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이전과 같은 날랜 기동을 선보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일단은 어쩔 수 없지.'

사실 기병돌격이라는 것이 낯선 것은 아니다. 군터 역시 병사들과 함께 수없이 많이 적진을 향해 내달렸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빈틈이 생긴 적을 찌른 것이었다. 그 빈틈을 만들기 위해서 거리를 벌리고 활을 쏜다거나 하는 식으로 적을 흔드는 것이고.

그러나 제국의 기병은, 그 빈틈을 만들기 위해서 돌격을 한다. 기병이 창끝이 되어 적을 찌르고, 그렇게 해서 적이 흔들리면 그제야 보병이 움직인다.

군터는 그런 제국의 방식이 투박하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이 더 옳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제국은 제국 나름대로 그들이 기병을 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방식을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의 기병들에게는 초원의 전사들 많나 기마술이 없다. 따라서 군터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방식이 있고, 군터는 그것을 따라야만 했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반갑다. 군터라고 한다."

아홉 명의 백부장이 보이는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이는 조금 얼떨떨해 보였고, 어떤 이는 불퉁해 보였다. 또 어떤 이는 담담했으며, 또 어떤 이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러나 그 다양한 반응들의 공통점은, 어디에도 호의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터는 그런 반응을 이해했다.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자가 상관이랍시고 나타났는데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군터는 그들의 복종을 이끌어내야 했다.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서 어찌 전장에 나가 싸울 수 있겠는가.

만약 주어진 시간이 많았다면, 군터는 천천히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때문에 그는 조금 거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겠지. 납득이 가지 않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어쨌든 나는 너희를 이끌어야 하고 너희는 나와 함께 전장에 나가야 한다. 그러니 한 가지만 기억해라.

나는 명하고, 너희는 따른다. 너희도 군인이니 잘 알겠지. 아주 간단한 이치다.

그것만 명심한다면 너희와 나 모두 괜히 피곤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군터는 무의식적으로 억제하고 있던 기운을 풀어놓았다. 세레온 우슈무르의 앞에서 그랬던 것 이상이었다.

전장에서 적을 마주한 것처럼, 은근히 살기까지 섞여 대놓고 위협을 가하니 아홉 백부장의 안색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들 중에는 전쟁 경험이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직접 벤 목의 수가 수십에 달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 해도 군터의 기세를 태연히 버텨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흐읍."

세레온 우슈무르가 그랬던 것처럼 칼에 손을 가져가는 이조차 없었다. 그래도 군터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나마 뒷걸음질을 치거나, 몸을 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꽤 쓸 만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하지. 내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너희를 개죽음 당하게 하지는 않겠다. 다만, 난 이 전쟁에서 공을 세우길 원한다. 그러니 여기에 겁쟁이가 있다면 지금 내게 말해주기 바란다. 용맹하게 싸우지 못할 자는 내 부대에 필요 없으니, 지금이라도 이곳에서 나가라."

무심하게 뱉은 도발은 상당히 유효했다. 군터의 사나운 기세에 압도되어 입도 뻥긋하지 못하던 이들 중 몇몇이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에 겁쟁이는 없습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긴장감이 흐르던 대면을 마치고, 군터는 본격적으로 휘하 병력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는 않았다. 백부장들이 반기를 들거나 비협조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겉으로는 순순히 군터를 받아들이는 듯했다. 문제는 병사들이었다.

"어이."

"그래. 맞아. 이전에 아쿼러즈라는 것들을 본 적이 있다고. 분명 저기 저놈들이랑 똑같았어."

"우리 대장이라는 사람도 아쿼러즈인 것 같던데."

귀부 초원인. 아쿼러즈에 대한 인식은 썩 좋지 않았다. 옛 바크렌 뿐 아니라, 바크렌과 닿아 있는 데이븐랏지에서도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편이었다.

그런 데다 망국의 잔당들이 초원 야만인들의 손을 잡고 전쟁을 일으켜 바크렌을 앗아가 버리자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초원인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악화되었다. 제국인이라지만 뿌리가 초원에 있는 아쿼러즈들 역시 안 좋은 눈길을 피하지 못했다.

군터의 휘하 병사들 중에는 제국 출신도 있지만 초원인 출신들도 꽤 섞여 있었다. 그들은 제국인들과 크게 생김새가 다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구별이 가능할 만한 외향적 차이는 있었다.

거기에 아주 어린 나이에 제국에 건너온 것이 아닌 이상, 구사하는 말에도 초원인 특유의 억양이 묻어 있어 제국인들이 보기에는 자신들과 '다르다'고 여길 만한 구석이 충분히 있었다.

"저 눈들을 다 뽑아버리고 싶구만."

할렌이 불쾌하게 흘깃거리는 시선을 느끼고 사납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살라스가 할렌을 달랬다.

"참게. 등을 맞대고 함께 싸워야 하는 병사들이 아닌가."

"등을 맞대기 전에 제 등에 칼을 꽂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불쾌한 마음에 과장하여 말하기는 했지만, 병사들이 그에게 보내는 눈길에는 틀림없이 짙은 불신과 희미한 적의마저 담겨 있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상관을 보는 눈빛은 결코 아니었다.

"출정하기 전에 이 상황부터 어떻게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자네 말대로네. 대장님께서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러나 살라스의 기대와는 달리, 군터는 특별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계획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살라스가 바란 방식은 아니었다.

"말로 다독일 시간은 없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들을 놈들도 아닐 것 같고."

군인들, 특히 정규병들은 대개 성미가 거칠다. 실전에 많이 투입이 되는 녀석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원래 성질이 더러운 놈들이라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다.

특히 군터의 휘하로 배속된 병사들은 기병이다. 제국의 기병들은 전투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적들과 부딪치는 역할이다.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말 위에 올라 적들에게 돌격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어지간한 담력이 없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 놈들은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편하지.'

가장 편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이다. 자신도 있다. 하지만 그 방법도 지금은 쓸 수가 없다.

역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쿼러즈 대장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녀석들을 힘으로 찍어 누른다면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그마저도 다시 찍어 누르면 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지만, 지금은 그 얼마 안 되는 시간마저도 없는 형편이다.

그러니 힘으로 누르는 것은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 수밖에.'

전투를 치르게 되면 선봉에 서서 싸울 것이다. 그러면 병사들도 자연히 알게 되리라.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아쿼러즈 대장과 동료들이 믿을만한지 아닌지.

당장은 불만이 있겠지만, 그 불만이 바로 터지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백부장들을 휘어잡은 덕분이다. 병사들의 불만은 백부장들이 어느 정도 통제해줄 것이다.

'출전은 아직인가.'

속속들이 병력이 당도하고 있다. 현재 결집한 병력은 대략 1만 5천 가량. 총병력이 2만이 될 것이라 이야기를 들었으니 출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하루 내지 이틀.

그 안에 모든 병력이 결집을 끝낼 것이고, 출전의 북이 울리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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