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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419화 (419/1,064)

419화

군터와 병사들이 테리브란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거창한 환영식 같은 것은 없었다. 군터의 병사들은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고, 힐데리트의 병사들은 그런 도시와 시민들의 반응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위글로우에서야 자그마한 토벌을 마치고 돌아와도 미리 성문을 열어주고 환영식을 베풀고는 했지만, 테리브란은 위글로우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도시다. 고작 수백 정도 밖에 안 되는 도적 무리를 소탕했다 하여 요란스럽게 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의 주인이 먼 전장에 나가 대전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니 더더욱 이런 사소한 일로 들뜰 수는 없다.

"서운하시다면 이해해주시길."

"서운하다니. 그럴 리가."

혹 그의 기분이 상할까 싶어 힐데리트가 달래듯 말했지만, 군터는 정말로 괜찮았다. 시민들의 환호라던가, 떠들썩한 환영식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군터 자신부터가 이번 일을, 딱히 내세울 만큼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관점에서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손쉬운.

자랑스러워 할 것도 아니고, 칭찬을 들을 일도 아니다. 바람이 있다면, 그저 눈앞의 힐데리트가 제레이스 가문에 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힐데리트의 태도를 보면, 그런 바람은 잘 이루어질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그것으로 족하다. 병사들도 상하지 않았고, 목표했던 바도 이루었다.

"조만간 부름이 있을 것입니다. 기대하고 계셔도 좋을 겁니다."

"……?"

그게 무슨 뜻인지 군터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테리브란에 돌아오고서 딱 하루가 지났을 때, 그는 알게 되었다.

"반갑군.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던가? 내가 다이시리 판 제레이스라네. 내가 자네를 어찌 불러야겠나? 군터 공? 군터 경?"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편하신 대로 부르십시오."

"허면 군터 공이라 부르겠네. 경이라는 칭호는, 제국에서도 쓰이기는 하지만 베이고르와는 다르거든. 제국에는 공식적으로 기사라는 지위가 없다네."

"……."

다이시리 판 제레이스. 연로하여 직접 나서는 일이 드물다는 부친을 대신해 가문이나 조정에서의 대소사를 거의 도맡아 처리한다는, 제레이스 가의 당주나 다름없는 자였다.

제레이스 가문의, 정식은 아니라 하나 실질적으로 당주 역할을 하고 있는 자라면 데이븐 랏지에서야 말할 필요도 없고 7황자의 진영 전체를 통틀어도 최소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최고 권력자였다. 어찌 본다면 베이고르의 왕보다도 더한 권세가인 것이다.

하지만 군터는 그런 사내를 앞에 두고도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가 지닌 신분, 권력, 그 모든 것이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그가 다이시리 제레이스를 보고 느낀 것은, 그의 몸이 무관의 몸은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훌륭한 정도는 아니어도, 나름대로 단련을 한 티가 났던 동생에 비해 다이시리 제레이스는 완전히 문관의 체형이었다.

그나마 흉하게 살이 뒤룩뒤룩 찌지는 않았지만, 그저 평범한 관리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봐도 제국의 한 주를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힐데리트에게 들었네. 활약이 대단했다고, 그런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네의 칭찬을 하더군."

"힐데리트 공이 소관을 좋게 봐주었군요."

"아무에게나 호감을 가지는 이가 아니고, 아무에게나 칭찬을 하는 이가 아닐세. 그렇기에 나는 직접 보지 않았어도, 자네가 훌륭한 군인이요 무인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네."

"……."

"다만. 아직까지도, 난 자네를 믿어도 될지 확신할 수가 없다네."

"어째서입니까."

군터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의 불편한 심기가 아주 희미하게, 억눌렀던 기운을 타고 주변으로 새어나갔다.

"자네가 힐데리트와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떠난 사이에 전갈이 당도했네."다이시리 제레이스는 갑작스레 소름이 돋아난 팔을 무심히 내려 보았다.

'이건 뭐, 사람이 아니라 맹수 한 마리를 앞에 둔 것 같군.'

스스로 무술을 익히지는 않았어도 본 것은 많은 그였다. 때문에 그는 방금 전 군터가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저 기분이 불쾌해진 것만으로, 감정이 살짝 동요한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기세라니.

'확실히, 대단한 경지의 무인인 건 틀림없군.'

희미하게 입매를 비튼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베이고르로 보낸 사신단이 코누다이안을 들렀네. 그리고 내게 서신을 보냈다. 코누디스 자작을 만난 후에 말이야."

"만났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자네의 말과는 다르게, 코누디스 자작은 살아있었네. 중병에 거린 듯해 보였다고는 하지만…어쨌거나 살아있었어. 당연히 사신단의 접견도 다 직접 했고."

"……."

"자네는 내게 거짓을 말했어. 이러니 내가 어찌 믿음을 가질 수 있겠나?"

"…결과적으로는 그리 됐습니다만, 결코 속이려는 의도로 그리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관은, 실제로 그런 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리 믿었습니다."

"믿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으나, 소관은 코누디스 자작의 충복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제국의 백부장이었던 시절부터 그의 밑에서 종군했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전투에서 선봉에 서 싸웠었습니다. 단언컨대, 단 한 번도 그의 명을 충실히 따르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으흠."

계속해 보라는 듯 가볍게 턱짓을 하고, 다이시리 제레이스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검은 차를 홀짝였다.

그러는 와중에 냉기가 뚝뚝 떨어지지만, 그 속에는 데일 것만 같은 열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고저 없이 계속 흘러나왔다.

"북부의 민족들이 침공을 해와, 동부의 군대를 이끌고 북부로 향해 그들과 싸웠습니다. 쉽지 않은 싸움 끝에 승리했고, 왕도로 개선했지요. 왕이 개최한 승전연이 열려 며칠이 넘도록 이어졌습니다. 그러던와중에 소관은 군대도 놔둔 채, 소수의 수하들만을 이끌고 급히 코누다인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코누디스 자작의 밀서라도 받았나?"

"…그렇습니다."

목소리의 열기가 식었다. 조금은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다이시리 제레이스는 그런 상대를 보며 약간의 유쾌함을 느꼈다.

'순진하군.'

진부한 이야기가 아닌가. 부하를 시기하거나, 두려워한 주인이 숙청의 칼을 휘두르는 경우는 세상 어디서나 빈번하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나?"

"영주가 위독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후계의 준비를 위해서 영지로 급히 돌아오라는 명이었습니다."

"코누디스 자작의 독자가 아직 코흘리개라는 말은 들었지."

모든 것이 딱딱 맞아 떨어진다.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불러서 압박을 가한 것은, 이 거칠고 순진한 사내를 조금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순진한 군인이 주인에게 등을 찔린 것이든 아니든 간에, 주종 간에 서로 다툰 것은 확실한 듯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세한 이유라던가 책임의 소지, 말하자면 명분 같은 것은 처음부터 아무래도 좋았다. 제레이스가 누구를 거두든, 감히 코누디스 따위가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아참. 그러고 보니 리에론이 내게 사람을 보냈다네."

"리에론……?"

"거래를 제안했네. 자네의 목을 달라더군. 그 대가로 자네 몸뚱이 무게 만큼의 금과 법구 몇 가지를 넘겨주겠다고 했지."

"응하셨습니까?"

"하하하."

다이시리 제레이스는 느긋하게 몸을 늘어뜨리며 상대를 살폈다.

리에론을 언급하고, 목을 운운했음에도 여전히 차분했다. 이건 완전히 남의 이야기를 듣는 투다.

대범하다고 해야 할지, 겁이 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인상적이기는 했다.

"내가 거기에 응했다면 지금 자네와 이리 독대를 하고 있겠나? 자네가 지금 당장 일어나 내 목을 비틀고자 한다면 난 막을 도리가 없네."

"……."

"재물 따위는 썩어 넘칠 만큼 있어.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재물 따위가 아니네. 그런 하찮은 거래를 제안하는 것은 날 모독하는 것이지. 난 리에론의 사자라는 놈의 목을 베고 싶었으나 참았네. 왜인지 아는가?"

"모르겠군요. 어째서입니까?"

"리에론이 제시한 거래는 상당히 진지했어. 그건 결코 떠보기 위함이나, 속이기 위함이 아니었네. 진지하게 자네의 목을 원했지. 때문에 난 알 수 있었네. 자네가 진정 놈들과 척을 졌다는 것을."

"저는 공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그랬는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내게 거짓을 말하지 않았나. 게다가 자네는 이미 한 번 제국을 등진 적이 있지 않나? 물론 자네가 충성을 바친 대상이 제국이 아니라 코누디스 자작이었다고 한다면 그 배신에 일말의 명분은 붙일 수 있겠지만 말이야."

"……."

"뭐 그건 그렇고, 지금은 어떤가 군터 공."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과거의 자네는 제국에 마음을 두지 않았지. 그럴 만도 하다 생각하네. 뛰어난 재주를 가졌음에도 그 재주를 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자연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지금의 제국은, 지금의 자네를 중용할 수 있네. 그러니 내 묻지."

다이시리 제레이스가 빈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군터 공. 제국에 충성을 할 준비가 되어 있나?"

*

"놈은 우리의 손을 떠났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평소의 그였다면 이런 의미 없는 반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의 한 마디를 듣고 상황을 능히 유추하고서 그에 걸맞은 대꾸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미겔은 너무나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믿고 싶지 않았던 일이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제레이스가 리에론의 제안을 거절했다는군."

미트라스가 탄식하며 말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기어이 미겔은 인상을 왈칵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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