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화
베르츠는 기분이 좋았다. 감찰대의 간부 중 하나인 그는 미겔이 도적질을 일삼던 때부터 그를 따랐던 이들 중 하나였다.
비루한 출신임에도 벼락출세를 한 그였지만,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특히 그는 멍청하고 능력 없는 모브락이 자신의 위에 있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굴러들어온 돌인 니클라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미겔의 오른편에 설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친다고 확신했다.
'모브락 같은 놈을 그 자리에 두니까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니클라스는 변절했고, 쓸모 없는 돼지 놈은 함정에 빠져 사로잡혔다. 한심한 노릇이지만, 베르츠의 입장에서는 박수라도 치고 싶을 만큼 환상적인 상황이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둘이 알아서 나가주니, 자연스럽게 그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니클라스 놈만 잡으면 감찰대의 이인자는 이 몸이란 말이지.'
이건 기회다. 니클라스 놈은 생포하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모브락 놈도 만약 살았다면 조용히 처리한다.
물론 그러지 않더라도 모브락은 어련히 알아서 놈이 저지른 멍청한 짓에 대해 처벌을 받겠지만, 베르츠는 굳이 모브락을 살려서 위글로우로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놈을 따르거나, 친하게 지내는 감찰대의 간부 놈들이 아직 위글로우에 남아있는 만큼 당장에는 상황이 기분 좋게 흘러가더라도, 후일은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후환을 남겨서는 안 되지.'
당연하지만, 모브락 그 놈은 자신이 이인자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은 저지른 죄가 있으니 고개 숙이고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어떻게든 수작을 부리려 들 것이다. 베르츠는 그것을 알고서도 가만히 내버려둘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선발대의 표식은 남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틀. 아니,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로군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멍청한 니클라스 놈은 추격을 따돌렸다고 좋아하고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기는 모르고 있겠지만, 니클라스는 웅크린 쥐새끼들에게 안내해줄 안내자의 역할을 충실히 다하고 있었다.
'하아. 기대되는군.'
베르츠는 벌써부터 미겔이 자신이 세운 공을 무엇으로 치하해줄지를 생각했다. 그의 대장은 속을 알 수 없지만, 상벌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벌도 벌이지만 특히 상을 줄 때는 입이 떡 벌어지게 내려주곤 했다.
'금 몇 덩이 가지고 입을 씻지는 않을 거고…아! 그 년을 달라고 할까.'
문득 모브락이 자랑하던 애첩이 떠올랐다. 그 미모도 미모지만, 애교가 그렇게 끝내준다면서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 자랑질을 했었다. 그럴 때면 베르츠는 겉으로는 코웃음을 쳤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교태가 끝내주기에 저렇게 천박하게 굴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모브락 놈을 처리하고 나면 어차피 주인 없는 계집 아닌가?'
니클라스와 잔당 놈들의 수급을 가져가서 넌지시 그 년을 달라고 한다면 미겔이 인색하게 굴 것 같지 않았다. 즐거운 상상을 한 베르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말 위에서 며칠을 보내며 몸에 피로가 쌓였지만, 마음이 즐거우니 그 모든 고단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베르츠는 니클라스 일행의 움직임이 점점 더 느려지고 있다는 보고를 들으면서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짐작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대장! 찾은 것 같습니다! 놈들이 야산으로 들어선 것을 확인했습니다!"
"산이라…쥐새끼들이 숨어들기에는 딱 좋은 곳이지. 어울리는 곳에 숨었군 그래."
베르츠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
"이 정도면 되겠군."
니클라스는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진 주변 지형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수하 중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뭐가 말이냐."
"자칫하면 이곳이 저희의 무덤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는 위글로우를 떠날 때부터 각오하지 않았나."
"그렇긴 합니다만…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뻔히 보이는 수작에 그대로 당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군터 경에게 진 빚을 갚으시려는 게 아닙니까?"
"…뭐, 그런 것도 있지. 난 그에게 한 번 목숨을 빚졌으니.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저쪽에서 제대로 호응을 해준다면 지금까지 우리를 귀찮게 했던 놈들에게 확실하게 한 방을 먹일 수 있어."
수하가 흐릿하게 웃었다.
"그렇긴 하지요."
"그러니 준비해라. 이곳에서 놈들을 맞는다."
"예."
바쁘게 움직이는 수하들에게서 시선을 뗀 니클라스는 그의 허리춤에서 두 자루 검을 뽑아 들었다. 항상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은 그의 검들은 요 며칠 동안 겪은 몇 차례의 교전에서도 예기를 잃지 않았다.
매끈한 검신에 비친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니클라스는 자문했다.
'아쉬움이 있는가?'
그리고 곧바로 자답했다.
'아니.'
긴장이 된다거나, 두렵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검보다도 더 올곧게 섰으니, 곧 닥칠 일이 얼마나 험하다 해도 흔들림은 전혀 없다.
'그대가 내게 걸었듯, 나 역시 그대에게 걸었소.'
겁집에 들어간 검들이 찰칵!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다시 뽑혀 나올 때는 피를 머금어야 할 순간이리라.
*
"장주님!"
전에 없이 목소리를 높인 모페이브가, 역시 전에 없이 다급하게 달려온 것을 보고 군터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를 짐작했다. 모페이브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열기를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들을 수 없는, 오직 그만이 들을 수 있는 울음소리가 조금 전부터 격렬하게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주님.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부축하겠다'는 말을, 모페이브는 뱉지 못하고 도로 삼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군터가 스스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전과 같이 뼈만 남은 것 같은, 시커멓게 죽어버린 몸으로 스스로 일어서고 있었다. 그런 것이 가능하리라 모페이브는 생각도 못했었기에, 멀쩡한 사람처럼 일어서는 군터를 멍하니 지켜만 보았다.
"…어떻게."
엄밀히 말해, '멀쩡한 사람처럼'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몸을 일으킨 것뿐이었음에도 군터의 얼굴은 이미 땀으로 축축해졌고, 꽉 다문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으니.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모페이브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순간 그의 주인이 몸을 회복한 것인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곧 비틀거리는 군터를 보고 달려가 부축하며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장주님. 어찌."
"어디에 있나?"
"도착한 직후 탈진하여……."
"밖으로 나가겠다. 도와주게."
"예."
군턴은 모페이브에 의지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잡한 나무 문 앞에서 모페이브가 문을 열라 하자 바깥에 있던 병사가 문을 열었다.
문이 열렸다.
그곳에 있었다. 천에 둘둘 말린 채, 구슬피 울고 있었다.
병사가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그의 '창'을 한동안 바라보던 군터가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엉망인 몰골을 한 채, 한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누구냐."
"감찰대의 부대장, 모브락이라고 합니다. 위글로우에서 생포해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
군터는 설명을 다 듣지도 않고서 손을 뻗었다. 이번만큼은 떨림이 없었다. 창을 든 병사가 무릎을 꿇었고, 군터는 창을 덮은 천을 걷었다.
우우우우-
울부짖는 창, 칸젤에 손을 가져다 대자 따스함이 몸을 감쌌다. 작게 부는 바람에도 살이 아리고 뼈가 시렸었는데, 차가운 쇠붙이에 손을 댔음에도 기분 좋은 온기만이 느껴졌다.
군터는 칸젤을 쥐고, 들었다. 작은 돌멩이 하나 들지 못했었던 몸에서 어찌 그런 힘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칸젤을 들어올리는 군터의 팔에는 그 어떤 떨림이나 부자연스러움도 없었다.
"……."
군터는 잠시 감회 어린 눈으로 칸젤의 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심한 얼굴로 찔렀다. 칸젤을 들고 있던 병사 바로 옆에 무릎을 꿇고 있던, 감찰대의 부대장이라는 놈의 목을.
푸욱!
어떠한 저항도 없었다. 목을 찔린 모브락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했고, 반응 하지도 못했다. 모페이브나, 주변의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모브락은 입을 벌렸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목이 뚫린 순간부터, 그의 몸은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그의 피가, 생명이 목을 찌른 창 날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창대를 타고 군터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하아……."
모페이브도 모페이브지만, 지켜보던 병사들이 하나 같이 입을 쩍 벌렸다.
그들도 내심 우려하면서도 기대하고 있었다. 죽었다 살아난 군터가 찾은 것이 그의 창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지만, 군터는 이제껏 그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기에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런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는 그들 중 누구도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우득! 우드득!
땅에 묻히고서도 며칠은 지난 시체와 같았던 몸에 살이 붙었다. 뼈에서부터 살이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또한 시커멓게 죽어있던 살색이 점점 핏기를 머금었고, 힘 없이 늘어져 있던 몸이 점점 곧추섰다.
반면, 창 날에 목을 찔린 모브락의 몸은 정반대로 변해갔다. 마치 두 사람이 몸을 바꾼 것만 같았다. 엉망으로 망가지기는 했어도 사람 같았던 몰골이 삽시간에 말라비틀어져갔다.
털썩!
메마른 시체가 땅에 쓰러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숨 몇 번 길게 들이쉴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앙상한 가죽과 뼈만 남은 시체는 땅을 뒹굴었다.
"장주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오직 모페이브만이 떨리는 눈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그러나 군터는 반응하지 않았다. 앙상한 시체와 같은 몰골에서, 마르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같은 모습으로 변한 그는 손에 쥔 칸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푸스스스-
무엇이든 꿰뚫고, 벨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기가 느껴지던 창이 모래처럼 변했다. 쌓여 있던 재가 바람을 만나 흩날리는 것처럼, 형체를 잃어버린 그것들은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고 군터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야말로 기사(奇事)의 연속이었다. 연달아 벌어진 두 가지 일에 대해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페이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주님?"
모페이브의 두 번째 부름.
그에, 빈 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군터가 답했다.
"모페이브."
"예…옛."
고저 없는 목소리. 짧은 한 마디.
단지 그것에, 모페이브는 굳어버렸다.
음습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그를 움직일 수 없게 했다.
'변하셨다.'
시체에서 사람이 된 외관을 말함이 아니다. 모페이브가 느낀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에 자리한 본질이었다.
"창이 한 자루,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던 모페이브는 문득, 자신의 입에서 허연 김이 흘러나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빨리 올리고 싶었습니다만, 타 플랫폼과 시간을 맞춰야 하는 관계로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