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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403화 (403/1,064)

403화

끼익-끼익-

낡아빠진 수레바퀴가 비명을 지르며 힘겹게 움직였다.

"정지! 뭐냐?"

"에헤이! 딱 보면 모르나? 똥 수레잖아!"

수문병이 앞을 가로막았다가 동료의 제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수레를 끌던, 챙이 긴 모자로 짚 모자로 얼굴을 가린 중년인이 슬쩍 얼굴을 보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송구합니다 나리. 오늘따라 양이 많아 한 번 비우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얼굴이 처음 보는 얼굴인 것 같은데?"

"혼자 일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일전에 오페 영감을 뒤따르며 며칠 일을 배운 적이 있었습지요."

"으음. 그래?"

"아 이런 젠장! 뭘 그리 깐깐하게 따지고 있어?! 냄새도 지독한데 빨리빨리 보내자고!"

"아니 그래도 확실히 해야……."

"그럼 저 거적을 다 들추고 똥통에 머리라도 박든가! 똥인지 흙인지 분간해야 할 거 아냐?"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왜 또 그리 흥분을 해? 알았어 알았어. 통과!"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수레가 다시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성문을 빠져 나와 길을 따라 쭉 이동한 수레는 작은 숲 앞에 다다라서야 멈췄다.

중년인이 숨을 고르며 땀을 닦아내던 중. 그의 앞에 소리 없이 몇몇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표를 노리는 암살자처럼 은밀히 나타난 그들이었지만, 중년인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보며 물었다.

"꼬리는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중년인이 구부정하게 굽혔던 몸을 펴고 짚 모자를 벗었다. 지저분하게 묻은 오물과 먼지를 닦아내자 추레함이 걷히고 어딘지 모르게 차분한 느낌의 말끔한 중년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모페이브님."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어떻게…가능하겠습니까?"

"그 이야기는…이동한 후에 하십시다. 이곳은 아직 불안합니다. 감찰대의 눈이 언제, 어디서 따라붙을지 알 수 없습니다."

"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요."

그들은 수레에서 큼지막한 궤짝을 꺼냈다. 두꺼운 가죽에 둘둘 싸여 있었는데, 그 위로 역한 오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궤짝을 꺼내던 사내들이 인상을 찌푸리자 모페이브가 쓰게 웃었다.

"어쩔 수 없었소."

"물론이지요. 그저 냄새가…생각한 것보다 조금 심하여."

궤짝을 꺼낸 그들은 세 무리로 나뉘었다.

"3조는 뒤떨어져서 흔적을 지운다. 2조는 계획대로 혹 있을지 모를 추격자들을 교란시키고."

모페이브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내가 수하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후 궤짝을 실은 자그마한 마차 앞에 섰다. 마차 안에는 모페이브가 궤짝과 함께 들어가 있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음."

그들은 어둠에 몸을 묻고 은밀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수풀을 지나고, 산을 넘어 그들이 다다른 곳은 어느 이름 모를 야산의 동굴이었다. 그곳에는 몇몇 무장한 사내들이 지키고 서 있었는데, 마차를 모는 사내의 얼굴을 보고는 동굴 안쪽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모페이브님. 도착했습니다."

"알겠소. 고생했소이다."

마중을 나온 사내들이 마차 안에서 궤짝을 조심스럽게 들어 옮겼다.

"준비는 어찌 되었는가?"

"말씀하신 것은 모두 마련해 두었습니다."

모페이브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라스 공은?"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지요."

모페이브는 앞장 선 사내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동굴 안쪽으로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음습한 냉기가 발을 타고 올라오는 듯했다.

이런 조건의 장소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부디 그 행운이 조금만 더 이어지기를.'

사내들에게 들려 옮겨지고 있는 궤짝을 바라보며, 모페이브는 생각했다.

*

"대장님. 모페이브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그래. 드디어 오셨는가."

수하의 보고를 듣고 살라스는 몸이 잔뜩 달아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남은 유일한 희망이다. 조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살라스는 모페이브가 나타나기 전부터 일찌감치 일어서 불안하게 서성거렸다. 그 와중에도 한 손은 허리춤의 검에 가까이 가 있었는데, 이따금씩 센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거친 살기가 꿈틀거렸다.

"살라스 공."

"모페이브님."

모페이브가 나타나자 그제야 살라스는 검 손잡이에 가까이 두었던 손을 허리 아래로 떨어뜨렸다. 흉측한 상처가 훑고 지나간 입술이 부자연스럽게 말려 올라갔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고생은 이곳에 남아 준비를 하느라 바빴던 공과 공의 수하들이 했지요."

"으음. 어떻…습니까? 오면서 보셨겠지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별로 좋지는 않더군요."

"그렇습니까……."

살라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순간 억제하지 못한 살기가 입에서 새는 공기처럼 흘러나왔다. 모페이브가 헛기침을 하고서야 살라스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기세를 갈무리했다.

"좋지 않다면, 문제는 없겠습니까?"

"일단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어디가 절단되거나 한 것 없이 잘 붙어 있으니. 거기에 예상했던 대로, 시신의 부패 역시 거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바로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반나절이라도 쉬시면서 기력을 보충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마차 안에서 충분히 쉬었습니다. 지금은 제 기력을 보충하는 것보다, 불씨가 조금이라도 더 꺼지기 전에 일을 진행하는 것이 더 중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모페이브는 살라스와 함께 의식을 위한 제단으로 향했다.

준비는 모두 끝나 있었다.

원형으로 파인 땅의 중심에 마차에서 꺼낸 궤짝이 놓여 있었고, 궤짝을 향해 가늘게 판 땅이 나무의 줄기처럼 원형의 땅을 가로지르는 형태였다.

그 위에는 사지를 포박당한 사람들 십여 명과, 닭과 소 같은 짐승들이 또 십여 마리씩 무장한 사내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후우."

모페이브는 그 모두가 내려다 보이는, 나무로 쌓은 단 위에 올라 작게 한숨 쉬었다.

자신은 없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머리로만 기억하고 있는 술법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술법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공양 의식의 일종이다. 아주 어둡고, 은밀하며, 사악하기까지 한.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이것 밖에 방도가 없었다. 모페이브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에 쓱 한 번 눈을 마주친 후 굳게 다물었던 입을 떼었다.

"그럼, 준비들 해주시오."

콰직!

사내 두 명이 궤짝의 뚜껑을 뜯고 그 안에 든 것을 꺼냈다.

그것은 시신이었다. 수분이 다 빠져나가 메말랐으나, 그럼에도 그 끔찍한 형체를 알아보기가 어렵지 않은.

뿌득!

뒤편에 서 있던 살라스가 이를 갈았다.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 넘치는 살기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위태롭게 흔들렸다.

"살기 또한 기운입니다. 공의 사나운 기운에 영(靈)들이 들썩일까 걱정이 되는군요."

"아! 송구스럽습니다. 실수를 했군요."

모페이브는 그의 심정을 이해했다.

참극이 벌어진 그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살라스 만큼 큰 고통을 겪은 이는 없다. 그의 몸에 새겨져 아물지 않은 상처의 수는 두 손으로도 다 셀 수 없으리라.

그러나 그런 그의 심정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그런 티를 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한 번 의식이 시작되고 나면 되돌릴 수 없고, 중간에 일이 어그러지기라도 한다면 모두 끝장이다.

"시작하겠소."

모페이브가 신호를 보내자, 멀찍이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

그들은 일제히 칼을 휘둘러, 묶여 있던 닭들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머리가 떨어져나간 닭들의 목을 붙잡고 피를 짜냈다.

그렇게 뿜어져 나온 피의 일부는 땅에 스며들었고, 일부는 파인 길을 따라 흘러내려갔다.

길을 따라 흐른 피의 극히 일부가 메마른 시신에 가 닿았다. 그것을 확인한 모페이브가 낡은 가죽으로 된 책장을 넘겼다.

*

스스로의 존재를 의식했을 때,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거스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도도한 물결 속에 몸을 담고 있었다.

세상에서 태어나 세상에서 죽는다. 생명의 뿌리는 이 세상에 있으니, 시들어 죽은 뒤에는 다시금 세상의 일부로 녹아 든다.

인간, 혹은 생명으로서 존재했던 한 사내가 다시금 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대한 하나의 일부가 되는 거다.

생각이라는 것은 할 수도 없었고, 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그저 그 거대한 흐름을 느끼며, 그것의 일부가 되어갔다.

[ŋ…?…Ł…Φ…….]

그러나 어느 순간. 어떤 희미한 소리가 점점 더 녹아가는 '그'를 끄집어냈다.

처음 그 소리를 인지했을 때. 그는 불쾌감에 사로잡혔다.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소리는 그의 평온을 깨뜨리는 불청객에 지나지 않았다.

[г…Щ…….]

그런 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불쾌는 점점 진해져 분노가 되었고, 그는 마침내 깊게 가라앉아 있던 곳에서 고개를 들었다.

물속에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바람이 그를 할퀴었다.

[뭐지?]

그가 물었다.

[누구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뜻과는 상관 없이, '소리'는 끝없이 그의 세상에 울려 퍼졌다.

[δε…π…ψξ…….]

어느덧 세상은 변해 있었다.

거대한 강은 자그마한 웅덩이가 되어 있었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닿을 수 없었던 땅바닥은 이미 그의 발아래 밟혀 있었다.

[누구지?]

고작해야 가슴 높이에 불과한 웅덩이 속에서, 그는 홀린 듯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나는…….]

그의 발이 물 밖을 밟았고, 그는 다시금 거대한 세상에서 갈라져 나왔다.

*

"으으으읍!"

"읍읍!"

마지막이다.

자그마한 생명부터 시작해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이미 의식의 장소에는 삶과 죽음의 기운이 처절하게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모든 생명의 불꽃은 꺼지기 전에 가장 강하게 빛나는 법. 죽음을 앞에 둔 생명들이 발한 절망과 삶에 대한 진한 욕구가 그들의 핏속에 담긴다.

"iŁ…ðĦ…i."

이것은 저주다. 갈 곳으로 가야 할 자들의 영을 강제로 옭아매어 고통 받게 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육신 속에서 몸부림치는 영혼. 그들이 내지르는 절규. 이미 거의 세상을 떠났을 '그'를 부르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영'들의 외침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외침이.

" π…ψξ."

열 한 번째 제물의 목이 베였을 때. 생을 잃어가는 육신의 경련이 잦아들 즈음.

피 웅덩이 위에 누워 있던 몸이 꿈틀거렸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으나,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모페이브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모조리 베시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목이 베여 쓰러졌다. 그들이 흘린 피는 붉게 변한 길을 따라 아래로 흘러갔고, 피 웅덩이의 색은 더 진해졌다.

*

"좀 어떠십니까?"

"……."

"아직 움직이기 힘드실 겁니다. 장주님의 몸은 한동안 죽어있었으니까요.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시간이 더 필요할 겁니다."

"……."

"지금은 쉬십시오. 다시 일어나셨을 때는,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

그. 군터는 꿈결에 들려오는 것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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