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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393화 (393/1,064)

393화

구어어어어-!

구노르가 울부짖었고, 창이 날아들었다. 파르네토 후작의 몸을 꿰뚫었던 것과 같은 방식.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군터는 몸을 옆으로 눕히다시피 하며 창을 피해냈다.

간단히 던진 것 같은 이 투창이 멀찍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철갑을 뚫어낼 정도의 위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받아 치면 몸이 굳고, 덩달아 말까지 움직임이 굼떠진다. 그리고 저 괴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 터.

그런 군터의 짐작은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었다. 군터가 몸을 크게 움직여 창을 피해내자 파그니타는 피식 웃었다.

'눈치가 빠른 놈이군.'

아주 만족스러웠다. 강하다 해도 멍청한 놈은 목을 따는 재미가 적다. 머리를 쓸 줄 아는 성가신 놈이야말로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끝장을 냈을 때의 즐거움이 더 크다.

쿵! 쿵!

구노르가 콧김을 씩씩 뿜으며 내달렸다. 그 기세와 박력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모든 생물들이 숨을 죽이게 할 정도였다. 말들은 울부짖으며 어떻게든 멀리 떨어지려 했고, 양측의 군사들은 생사의 다툼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한 번씩 굉음이 터져 나오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히히힝!

군터는 신중함을 견지했다. 말머리를 돌리는 것을 망설이지 않으며 최대한 거리를 유지했다.

한 것이라고는 고삐를 몇 번 잡아당기거나 말의 배를 찬 것밖에 없는데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와중에 말이다.

"……."

그는 이제껏 이런 적과 맞닥뜨린 적이 없었다. 정면으로 맞설 수 없는 상대. 일찍이 상대한 가장 강력했던 난적, 대전사 포라칸도 이렇지는 않았다. 상식을 벗어나는 저 괴물도 그렇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창을 던져대는 노인도 그렇고, 하나씩 떼어 놓아도 까다로울 상대가 둘이나 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괴물과 창, 모두 피해야 한다.'

본래의 목표였던 파르네토 후작의 구출은 실패했지만, 그것에 안타까워할 겨를도 없었다.

"roiwubahate-a!"

노인이 무어라 소리쳤다. 아마 도망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목소리에서는 답답함이나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노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연륜에 걸맞은 노련함이다.

그는 아마 이 싸움을 얼마든지 길게 가져가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더불어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고.

"장군!"

구노르의 돌격을 가까스로 피해내고 있는데, 휘하 병사들이 달려왔다. 호위의 대상인 파르네토 후작이 죽어버려 할 일을 잃은 병사들이 상관을 돕고자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선택은 비극적인 결말을 낳았다.

구어어어어-!

재빠르게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군터 때문에 화가 치밀어 있던 구노르가 새로 나타난 적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거칠게 포효하며 그들에게 돌진했다.

"피, 피해!"

일부는 피했다. 그러나 일부는 피하지 못하고 구노르의 발에 걸리고 말았다. 사람과 말이 으깨지는 섬뜩한 소리가 연달아 이어졌다.

군터는 바로 그 순간 움직였다. 뒤를 보인 구노르에게 전속력으로 말을 몰았다.

"흥!"

그에 파그니타는 예상했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몸을 틀었다. 그리고 쥐고 있던 창을 투척했다. 흥분한 구노르가 날뛰도록 놔두면서도 그의 신경은 군터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한 것은 파그니타만이 아니었다. 군터 역시 예측하고 있었다. 괴물은 다른 곳에 신경을 팔더라도, 파그니타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미안하다.'

군터는 파그니타가 창을 던짐과 동시에 손으로 말의 목을 밀며 몸을 띄웠다. 그리고 창이 말의 가슴에 박히는 순간 말 등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탁!

말의 다리가 꺾일 정도로 강하게 차고 오른 군터는 그대로 괴물, 구노르의 등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굴렸다. 그가 균형을 추스르기 무섭게 또 한 자루의 창이 날아든 것이다.

"taluza! quentaraa!"

자칫 굴러 떨어질 뻔한 것을 튀어나온(아마도 괴물의 엉덩뼈 정도 되는 것 같은) 부분을 잡고서 균형을 잡으니 노인이 창 한 자루를 들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노인은 웃고 있었다. 그것도 입 꼬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목청껏 소리를 내며 아주 대소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전후 좌우 가릴 것 없이 날아드는 화살을 피해내는 것은 덤이었다.

"한 방 먹었군!"

실제로 노인, 파그니타는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측을 벗어나는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설마하니 구노르의 등에 오를 줄이야.

'확실히,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이지.'

올라탄다. 구노르의 위협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닌가? 비록 수십 병사가 죽는 틈을 탄 것이긴 하지만, 그 또한 틈을 놓치지 않는 영리함이니 칭찬을 하면 했지 탓할 것은 못 된다.

"이제 어쩔 거지? 내 목을 쳐야지. 그렇지 않느냐?"

상대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 없다. 피차 무기를 들고 마주본 상황에서는 언어가 아니라도 목소리와 기세로 소통할 수 있는 법.

피잉!

파그타는 또 한 대 날아드는, 하품이 다 나오는 화살을 고개만 까딱여 피해냈다. 그리고 이미 올라간 입 꼬리를 다시 한 번 위로 말았다.

상대가 달려들었다. 세찬 바람처럼 사납게 뻗어오던 기세는 아예 폭풍이 되었다.

파그니타는 순식간에 코앞까지 찔러온 흉험한 창을 보며, 활짝 이를 드러냈다.

*

괴물의 등에 올라타면서 반은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괴물이 아무리 뛰어난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겉으로 본 신체구조상 위에 올라타는 순간 괴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다.

물론 괴물의 기수인 노인도 범상치 않은 상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일단 괴물의 등에만 올라탄다면 말이다.

"크하하하하하!"

그렇다. 노인을 상대로 고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군터의 머리에는 없었다. 그렇기에 군터는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창을 휘둘러대는 노인이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챙!

칸젤과 노인의 창이 부딪쳤다. 군터와 노인의 움직임이 멎고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흐읍!"

어째서 쇠붙이에다 대충 아무 나무나 갈아 붙인 것 같은 허접한 노인의 창이 칸젤 앞에서 부러지지 않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모든 생각을 지우고 온 힘을 다해 노인을 밀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나 군터가 그야말로 있는 힘을 다했음에도 노인은 밀리지 않았다. 웃음소리에 힘이 더 들어갔을 뿐. 노인과 군터는 서로를 밀어내지 못하고 굵은 힘줄만 얼굴에 더해갔다.

균형이 깨진 것은 두 사람이 발을 디딘, 구노르가 크게 몸을 틀면서였다. 한 순간 두 사람의 균형이 틀어진 순간, 군터는 노인을 밀어 뒤로 물러나며 비술을 사용했다.

몸이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심장에서 시작된 뜨거운 열기가 전신으로 퍼졌다. 동시에 눈이 붉게 번뜩이고, 물러나던 몸이 화살처럼 튕기며 돌진해 들어갔다.

"……!"

노인이 눈을 크게 떴다. 재빨리 뒷걸음질치는 그의 가슴팍에는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군터는 그가 당황할 틈도 주지 않고 몰아쳤다. 힘을 배분하는 것도 없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 쏟아 부었다.

노인은 비술을 사용하여 신체능력이 월등히 강해진 군터를 상대로도 어떻게든 버텨냈다. 쏟아 붓는 공격을 다 막거나 피하지는 못했지만 급소는 허용하지 않았다.

조금씩 늦는 반응속도로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노인의 창술이 달인의 수준을 넘어선 수준이었으며, 더불어 그의 창이 칸젤의 날에도 견뎌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쾅!

그러나 그렇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칸젤에 의해 생긴 상처는 점점 심각하게 변해갔고, 출혈은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 번씩 칸젤의 날이 살을 가를 때마다 빨리는 피도 누적되다 보면 적은 양이 아니었다. 아무리 강인한 몸을 지녔다 해도, 피가 흐르는 생명인 이상 정도 이상 피를 잃게 되면 버틸 수 없다.

생명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그런 한계는 노인에게도 분명히 존재했다. 노인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안색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군터는 노인의 그런 기색을 확인했고, 그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

사실 더 일찍 끝낼 수도 있었다. 발을 딛고 있는 곳이 땅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괴물의 등 위였다.

괴물이 움직일 때마다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빠르게 달리거나 크게 몸을 뒤틀기라도 하면 노인을 상대하는 것보다 균형을 유지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싸움을 이어가면서도 항시 신경의 일부는 괴물의 움직임에 가 있어야 하니 싸움에 몰두하기가 쉽지 않았다.

"크허어!"

다시 한 번 십여 합을 겨루다가 노인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군터는 이번에는 쫓지 않고 숨을 고르며 자리를 지켰다.

"pasakeltaa…nu-weadaa……."

노인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렸다. 창백해진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xhelaa. rumonann……."

마지막 한 마디는 무척이나 희미해서 독백처럼 느껴졌다.

치이익.

노인의 몸에서 연기가 일어났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눈에 뭔가가 낀 것도 아니었다.

군터는 갑작스레 노인에게 일어나는 괴현상에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달려들었다. 뭔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그냥 놔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그런 직감이 들었다.

카앙!

다시 한 번, 칸젤이 노인의 창에 막혔다. 있는 힘껏 밀어붙였고, 노인은 이번에도 군터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서걱!

벤 것은 어깨. 그러나 역시 얕았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딛던 군터가 덜컥 멈춰 섰다. 푸르스름한, 빛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 것이 노인의 두 눈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 군터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물에 닿은 것이 축축해지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고 마땅했다.

치이익.

금방 베인 노인의 어깨에서 연기가, 김이 피어 올랐다. 군터는 바로 앞에서, 그 괴이한 현상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상처에서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칸젤의 날은 조금도 붉게 물들지 않았고, 벤 어깨에서 나오는 것은 피가 아닌 가느다란 연기 줄기 뿐이었다. 그리고.

'얼어?'

노인이 입은 상처가 얼어붙고 있었다.

[흐음.]

"……!"

뭔지 모를 '소리'가 머릿속을 울림과 동시에 몸을 뒤로 날린 것 역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군터는 몸을 뒤로 날리며, 자신이 섰던 자리에 사람 키만한 얼음 가시가 솟아있는 것을 보았다.

[역시 날래. 눈치도 빠르고. 짐승보다도 더 짐승 같군.]

노인이 히죽 웃었다.

얼굴의 반이 얼음에 뒤덮여 있는, 아니 얼음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은 외관에 입 꼬리가 올라가 있으니 그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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