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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374화 (374/1,064)

374화

두 사람이 덜컥 멈춰서고 숨을 골랐다.

동시에 불만의 눈길이 쏟아졌다. 우선 헐떡이며 멈춘 두 사람이 그랬고,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지켜보던 병사들이 그랬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대결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일방적으로 할렌을 응원하던 병사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수인병들에 대한 감정마저 잊어버리고 순수하게 두 사람의 대결에 몰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흘리는 호흡 하나하나에 동조하면서 말이다.

한창 몰입하던 중에 흥을 깨버렸으니 그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여 군터는 그들의 불경한 시선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어떻든, 그는 이 대결을 더 이어가게 할 마음이 없었다. 더 이상 했다가는 정말 둘 중 하나가 크게 다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굳이 결착을 짓지 않더라도, 이만하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고도 남는다.

"더 이상 했다가는 둘 중 하나가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만 하도록."

비겼다고 볼 수 있는 결과인데,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기색은 판이하게 달랐다. 카엘은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후련한 듯 보이는 반면, 할렌은 무엇이 결과가 못마땅한지 입을 다문 채 턱 근육을 간간이 씰룩거렸다.'

'자존심이 상했군.'

내심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사전에 카엘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경고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실력을 믿었겠지.

무리도 아니다. 할렌은 갓 애송이를 벗어났을 때부터 그를 따라다녔고, 적지 않은 전장을 겪으며 실전으로 실력을 갈고 닦았다.

타고난 재능도 뛰어난데 노력까지 받쳐주니 그의 실력은 코누다이안에서 못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고, 본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군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왈패에 가까운 무리의, 왈패 두목 따위는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지. 그것도 무술 솜씨가 아니라 신체 능력에 의해 낭패를 보았기에 더욱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기교의 문제라면 연마하면 그만이나, 몸은 그렇지가 않다.

할렌 정도 되는 무인이라면 이미 신체는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다. 단련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단련을 끝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할렌은, 카엘을 상대하면서 어떤 거대한 벽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여러 신비한 조화로 인해 인간을 뛰어넘은 육신을 지닌 군터로서는 알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때문에 지금 할렌의 심정이 어떨지, 그는 어렴풋이 짐작만 할뿐 제대로 헤아릴 수는 없었다.

*

"허억…허억……."

굵은 구슬땀이 흘렀다. 부들거리는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힘이 들어가지 않아, 막시밀리언은 거친 숨을 토하며 쓰러져 누웠다.

"수고하셨습니다."

"하아…정말이지 이제는 이런 것조차도 버겁군."

"고된 노력의 성과를 보실 겁니다."

막시밀리언은 코르넬의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자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어. 일전에 창에 찔렸던 옆구리가 종종 욱신거린다네. 흉터는 남았어도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통증을 느낀단 말이야. 비가 오기 전이나, 내릴 때면 그 고통이 배가 되지. 그럴 때는 정말 꼼짝도 하기가 싫어진다네."

"말씀하신 것처럼, 어찌 제 앞에서 그런 한탄을 하십니까. 자랑은 아닙니다만, 소신이 몸에 새긴 흉터만 해도 영주님의 수 배가 넘을 겁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나이도 제가 더 먹었고 말입니다."

"자네와의 비교는 옳지 못해. 자네는 강골이 아닌가. 타고난 무인 체질이란 말이지. 반면에 나는, 그저 평범한 사내에 불과해. 흐흐. 그런 면에서 자네가 참 부럽군. 내가 자네 나이가 되어도 지금의 자네처럼 정정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저보다 더 나으실 겁니다. 단련을 멈추지 않으시고 지금처럼 계속 하신다면 말입니다."

"아니지. 아니야. 아무리 열심히 한들 내가 자네 나이가 되면…글쎄. 뒷방 늙은이가 되어 골골거리고 있지 않겠는가?"

"하하. 그럼 소신은 어떻겠습니까?"

"자네야 내 옆에서 주름진 얼굴로 무게를 잡고 있겠지. 지금처럼 말이야. 하하하."

농담을 몇 마디 주고 받으니 늘어졌던 몸에 조금이나마 힘이 돌아왔다.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 막시밀리언은 일어나다 말고 옆구리를 잡았다. 그의 미간에 굵게 주름이 졌다.

"또 시작이군."

옆구리의 통증.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놈이다. 이놈 때문에 자다가 깬 적이 셀 수도 없다. 고통을 참으며 흉터 위에 손을 대고 있으면, 이 자리에 창을 찔러 넣었던 적병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떠오른다고 해도 대략적인 형체일 뿐, 얼굴에는 안개가 낀 채였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얻은 훈장이니 딱히 다른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고통에 시달리며 자꾸만 움츠러드는 몸에 짜증이 날 뿐이다. 이렇게 고통이 가시길 기다리며 아이처럼 웅크리고 있으면, 스스로가 점점 더 약해지는 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 사실은 고통보다도 그런 분노가 더 그를 힘들게 했다.

'이까짓 상처, 이까짓 고통 따위…아무렇지 않게 넘기던 시절이 있었건만.'

따져 보면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그 시절이 멀게만 느껴진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코르넬이 우려하며 다가선다. 막시밀리언은 찌푸린 표정을 풀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여전히 옆구리의 통증은 그를 괴롭게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져서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그래. 괜찮네."

말을 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서쪽 어느 하늘에서부터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고통이 일 때부터 짐작했지만, 아무래도 오늘 밤에는 비가 오려는 모양이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것도 아니네."

쓰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점점 검에 변해가는 하늘 아래를 걸으며, 막시밀리언은 언젠가를 떠올렸다.

'눈이 보고 싶군.'

떠올려보니, 어느덧 눈이 내리는 것을 못 본 지도 꽤 되었다. 한때는 비보다 눈을 더 자주 봤었는데 말이다.

"콜록콜록!"

"음? 괜찮은가?"

"아, 예. 목에 뭐가 들어갔었나 봅니다."

"꽃가루가 날릴 시기는 아닌데. 감기라도 걸린 거 아닌가?"

"아닙니다. 목이 간질거린 것뿐입니다."

"쯔쯔. 사람 거 칠칠 맞기는."

핀잔을 주듯이 혀를 찼지만 이어서 나오는 목소리에는 염려가 서려 있었다.

"건강 조심하게. 아무리 자네가 튼튼한 몸뚱이를 타고 났다 해도, 이제는 나이가 나이지 않은가. 게다가 자네가 좀 험하게 산 인생도 아닌데 말이야."

"예. 영주님의 말씀, 깊이 유념하겠습니다."

코르넬이 싱긋 웃었다. 나잇살을 살짝 머금은 얼굴에, 예전 검을 휘두르던 시절의 날카로운 모습은 옅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

결과적으로, 수인병들의 친위대 합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승부를 내지 못했으나 할렌은 수인병들에게 대장의 자격을 인정받았고, 할렌과 카엘의 대결을 지켜본 병사들은 수인병들의 힘을 인정했다. 그렇다고 다 좋게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니었고, 말하자면 '꼴 보기 싫은 놈들이지만 전장에 나가면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 녀석들' 정도의 평가일까. 적어도 전장에 나가 함께 싸울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신경 쓰이는 일이 일단락 된 이후, 군터는 계속해서 강행군을 명했다. 보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병들조차 말에서 내리면 절뚝거리며 걸을 정도로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지휘관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래도 군터는 밀어붙였다.

"병사들의 원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할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허나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군의 사기가 말이 아니게 바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군터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있는 장군 막사를 향해 원망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것 역시도.

하지만 군터의 마음은 단호했다.

늦출 수는 없다.

"반나절 빨리 당도하면 승률이 적어도 이 할은 올라갈 것이다."

전쟁의 승패를 가를 향방은 칸디시아렌 공작의 북부군이 패퇴하기 전에 당도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이에 대해서는 위글로우에서 수하들과 전략을 논할 때 모두가 동의한 바였다. 할렌 역시 그 자리에 있었기에 군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하오나 장군. 사기도 사기지만, 병사들의 피로가 너무 큽니다. 이래서야 늦지 않게 당도한다고 해도 제대로 싸울 수라도 있겠습니까."

할렌이 이렇게까지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병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마음을 급하게 먹어 일이 잘 풀리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장군께서 너무 조급하신 것이 아닌지 저어 됩니다."

할렌이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던 그때, 막사 밖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그러더니 그림자가 지고, 목소리가 들렸다.

"장군. 시어문드입니다."

"드시오."

군터가 기다렸다는 듯 답하자 할렌이 물었다.

"장군께서 그를 부르셨습니까?"

"그래. 그에게 의견을 구하고자 한다."

짤막하게 한 마디 나누는 사이 시어문드가 천막을 밀며 들어왔다. 그는 군터에게 군례를 취하고는 그의 앞에 서 있는 할렌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할렌 공도 계셨구려."

"예."

"장군.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잘 오셨소. 앉으시오."

"예."

시어문드는 가죽을 덧댄 조약한 의자에 앉자마자 군터에게 물었다.

"음…장군. 어인 연유로 소관을 따로 찾으셨는지?"

"그대의 의견을 구하고 싶어서 말이오."

"소관의 의견이요?"

"이대로 계속해서 고삐를 바짝 조이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조금 숨을 돌리는 것이 나을지를 묻고 싶소."

"생각이 있으신 것이 아니셨습니까?"

"물론 생각이야 있지. 허나 확신은 없소."

"소관의 말 한 마디가 장군께 확신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자요. 지금 내게는 그대의 통찰이 필요하군."

"하하. 보잘것없는 몸을 너무 높게 보시는군요."

"답이나 주시오. 계속 갈지, 멈출지."

너스레는 좋아하지 않는다. 딱딱한 목소리로 답을 촉구하니 어색하게 웃던 시어문드도 표정을 달리 했다. 군터가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바라보자 그는 곧 입을 떼었다.

"계속 가십시오."

"이유는?"

"생각하고 계신 그 이유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하자면, 이제 와 고삐를 늦춘다면 이도 저도 안 됩니다.

조금 전 장군께서 흐름을 이야기하셨지만, 우리는 이미 그 흐름 안에 몸을 담갔습니다. 그것도 아주 거친 물살이지요. 격류에 밀리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줘본들 몸만 축 날뿐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적극적으로 몸을 맡기는 것도 방법이지요."

"…정찰병을 늘려야겠군."

"두 배도 부족합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야 할 테니까 말입니다."

군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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