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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372화 (372/1,064)

372화

"뭐야?!"

"이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돌 때부터 앞으로 나와 있던 수인병들 중 몇몇이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 목을 붙들린 채 대롱대롱 흔들리던 수인병의 눈이 노르스름하게 변했다.

'그래. 이거로군.'

이 노란 눈. 익숙하다. 바르바피들의 것과 닮았다.

군터는 강하게 몸부림치는 수인병을 강하게 집어 던졌다. 달려오던 네 명이 날아오는 몸뚱이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부딪쳐 함께 나뒹굴었다.

"이런 씨발!"

쓰러졌던 이들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눈치만 보고 있던 이들 중 몇몇이 앞으로 나섰고, 일찌감치 이를 드러내고 있던 이들은 검까지 뽑아 들었다.

'이성을 잃었군.'

보통의 경우라면 상황이 아무리 최악이더라도 상관에게 검까지 뽑아 들지는 않는다. 군중에서 하극상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중형이며, 대부분의 경우 사형에 처해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저들은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검을 뽑았다. 분노에 눈이 돌아가버린 것이다.

'기운은 덜하고, 정신력은 약하다. 모든 면에서 바르바피만 못해.'

왕국은 타칸 연합의 바르바피들을 얻고 싶었던 것 같지만, 이놈들은 명백하게 실패작이다. 이런 종잇장 같은 인내심으로는 전장의 열기를 버틸 수 없으며, 전투력이 어느 정도 된다 한들 지휘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짐승들은 난전 상황이 아닌 이상 적에게 큰 위협도 되지 못한다.

'실망스럽군.'

찔러오는 검을 흘려 보내고 팔을 잡아 비틀었다. 있는 힘껏 꺾어버리니 팔꿈치 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놈을 쓰러뜨리고 짓밟았다. 끔찍한 고통에 눈을 까뒤집은 수인병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던 나머지가 멈칫했다.

군터는 비명을 지르는 놈의 가슴을 짓밟고, 뼈가 튀어나온 팔을 더 강하게 고쳐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뿌득! 뿌드득!

"끄아아아아아악-!"

인간의 몸은 연약하다. 이 수인병들은 짐승을 닮고자 했지만, 짐승 같은 흉성은 가졌으되 그 강인한 몸은 가지지 못했다.

지지직!

팔이 뜯겨 나왔다. 얼굴에 피가 튀었지만 군터는 눈 하나 깜빡 하지 않았다.

"일어나지 못하나? 바르바피들은 팔이 뜯겨 나가든, 다리가 뜯겨 나가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이를 감추지 않았다."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몸만이 아직 살아있기는 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나, 그뿐이었다.

군터는 뜯어낸 팔을 가볍게 던졌다. 그것은 검을 든 채 멈춰서 있던 수인병들의 앞에 툭! 하고 떨어졌다.

"안 덤비나?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베어야 하지 않겠나."

"…우,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거요?"

군터는 전장에 나섰을 때처럼 기운을 자제하지 않고 모두 풀어내고 있었다.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 등등했던 수인병들이 떨고 있었다. 자기가 사자인 줄 알았던 고양이들이 진짜 사자를 앞에 두고 꼬리를 말은 것이다.

그들은 이쯤에서 그만둬주길 바라는 듯했다. 죽더라도 한바탕 해보겠다는 독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상관에게, 그것도 총대장에게 검을 빼든 주제에 말이다.

'그래. 그렇군.'

너무나 달라진 그들의 태도를 본 순간, 군터는 깨달았다. 아니, 알아차렸다. 이 수인병이라는 것들의 본질을 말이다.

이들은 짐승의 본성을 가졌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하다. 사람도 그러한 본성이 있지만, 이들은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약자에게 사나운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강자에게 비굴하다. 어찌 보면 힘의 논리에 무섭도록 충실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을 깨닫자, 군터는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보여줘야겠지.'

완전히 짓밟을 것이다. 대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넘어, 그의 숨소리만 맡아도 벌벌 떨게끔.

"장군!"

그렇게 마음먹고 한 걸음 내딛으려던 순간. 카엘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는 사나운 기운을 풍기는 군터를 보고는 돌덩이처럼 굳었다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장군! 부디 수하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물러서게. 자네도 군인이니 하극상의 처분이 어찌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다만…해명이라도 할 기회를 주십시오."

"해명? 하극상에 무슨 해명이 필요한가? 저지른 이상, 필요한 건 처분 뿐이네."

"장군! 부디!"

그간 카엘은 항시 어딘지 모르게 냉소적이고, 때때로 그의 수하들처럼 거친 모습만을 보여왔다. 그런 그가 이렇게 절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군터가 기억하는 한은 처음이었다.

"……."

본래 군터는 적어도 검을 뽑아 든 놈들만큼은 확실하게 처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카엘이 절박하게 부르짖자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 카엘이 보이는 모습이 단지 상황을 면피하기 위한 잔꾀로는 보이지 않은 탓이다.

"검을 버려라."

"검 버려!"

잠시 생각하던 군터가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카엘이 따라서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수인병들이 일제히 검을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군터가 주변의 병사들에게 명했다.

"이놈들을 포박하라. 이들에 대한 처우는…자네의 해명을 들은 다음에 결정하도록 하지."

카엘이 더 깊숙이 몸을 숙였다.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군터는 카엘과 독대했다. 카엘이 원한 것이었다. 할렌을 비롯한 몇몇 수하들이 반대했으나 군터는 받아들였다. 카엘이 미친 짓을 저지를 거라 보지도 않았고, 설령 저지른다 한들 문제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들어는 보겠으나, 어지간한 해명으로는 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걸세."

"군인으로서, 군중에서 저질러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죄를 지었습니다. 어떠한 처분을 내리신들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모든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런 후에, 장군의 자비만을 바라겠습니다."

"좋아. 할 말이 있거든 해보게."

"저희는…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짐작했네."

"그러십니까? 어디까지 짐작하셨습니까?"

군터도, 카엘도 서로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자네들이 바르바피를 따라 한 무언가라는 것 정도."

"…맞습니다. 저희는 왕실이 행한 실험의 결과물입니다. 왕실은, 아니 국왕은 타칸 연합의 바르바피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지요. 그는 자신만을 위한, 바르바피와 같은 초인들을 가지고자 했습니다."

"국왕 전하를 입에 담으면서 존칭은 어디에 가져다 버렸지?"

"용서하십시오 장군. 허나 저는, 저희는 왕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없지요. 오직 충성심 하나로 그 끔찍한 실험을 견딘 저희를, 왕은 헌신짝 버리듯 버렸으니까 말입니다."

그 말을 하며, 카엘의 눈은 불덩이처럼 타올랐다.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는 그 모습이 거짓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

"저희가 그 '우리'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왔을 때, 그들은 저희를 실험했습니다. 하루도 걸리지 않았지요. 그 뒤에 저희에게는 실패작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철저하게 외면당했습니다."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 '우리'라는 것은 뭐고, '그들'은 또 뭔가? 실험은 또 무슨 실험을 말하지?"

"제가 너무 두서 없이 말씀을 드렸군요.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라는 것은 은어였다. 목조 감옥처럼 생긴 커다란 구조물을 뜻했다. 이것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카엘도 알지 못했다. 다만 타칸 연합에게서 흘러나온 물건이며, 이것이 바르바피들을 탄생시킨 물건임은 확실하다고 했다.

"저희 역시 그 우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과정은 그야말로 간단했다. 그 우리 안에 들어가 일정 시간 동안 버티기만 하면 됐으니까. 다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우리에 있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끝없이 이어지는 그 고통을 참으면서도 절대 의식을 잃어서는 안 됐다. 의식을 잃으면 그 순간 짐승처럼 변해 끝없이 자해를 하다가 죽어버린다.

"…몇 번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 안에 괴물로 변해 죽어버린 동료들의 시신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지요. 죽더라도 저렇게 죽지는 않겠다는 일념으로 버텼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버티고 버텨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들에게, 술사와 요정들은 얼마간 살피더니 실패작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렸다.

"요정?"

"확실합니다. 그 특유의 인간 같지 않은 분위기와 생김새. 그리고 귀족들마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모습 등을 보면, 요정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저희를 칭할 때 인간이라고 했지요. 마치 자신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투로 말입니다. 이런 점들을 따져보았을 때, 달리 생각나는 것은 없지요."

그럴듯했다. 아니,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우리'라는 것도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타칸 연합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때, 타칸 연합의 수도를 점령한 뒤 내려온 명령이 있었다. 왕궁 한쪽의 출입을 엄금하라고 했었다. 그곳에는 오직 몇몇 술사들만이 드나들었었다. 아마 그곳에 있던 것이 그 '우리'일 것 같았다. 바르바피들을 만들어낸 귀물이라면…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그 우리라는 것을 제대로 다룰 수 없어 요정들의 힘을 빌린 건가.'

끼워 맞추는 식의 추리였지만 제법 그럴싸했다.

그렇게 군터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카엘의 말은 이어졌다.

"그 후, 저희는 간단한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말은 훈련이지만 실은 또 다른 실험에 가까웠지요. 거기서 저희는…부끄럽지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저희는 특히 더 반항심이 컸고 거칠었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그 죽을 고생을 하고서 실패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반쯤 이성이 나가버렸었습니다."

"변명은 됐다. 그래서? 그 다음은 뭐지?"

"대기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그 당시의 느낌으로는, 저희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더군요. 실험을 겸했던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더라면 근위대로라도 쓰일 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의 저희는 지금보다도 더 거칠었습니다. 거의 통제불능이었지요."

"왕도에서 말인가?"

"예. 미친 소리 같으시겠지만…이상하게도 왕의 얼굴을 직접 보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우리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감히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손발을 떨었었는데 말입니다."

"흐음."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아예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자칫하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전혀 두렵지가 않았지요. 저희를 감시하는 병사들, 그들을 부리는 왕과 귀족들. 무엇 하나 두렵지 않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었습니다."

군터가 피식 웃었다.

"정말 겁을 상실했군."

"예.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이곳에서 장군을 뵙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

"시기 적절하게 출진 명령이 내려졌지요. 아마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 시기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저희는 처분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처분?"

"그런 공기를 느꼈었습니다. 난처한 것을 바라보는 눈이, 성가신 것을 바라보는 눈으로 바뀌었을 때 말입니다."

"전장에 나가라는 명을 용케도 따랐군 그래."

"말씀 드렸듯, 가만히 그곳에 있으면 죽을 판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저희는 기회를 보아 탈영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해도 되겠는가?"

"모든 것을 솔직히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어째서 내게 그런 것까지 말하는 거지? 내가 자네의 수하들을 살려준다 해도, 이래서야 내가 어찌 자네들을 믿을 수 있겠나?"

"장군께서는 저희에게 아직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장군께서는 힘과 두려움으로 저희를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그런 장군께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신다면, 어찌 저희가 장군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망가졌다고는 하나, 저희 역시 군인입니다. 전공을 세워 출세하고픈 욕심이 있습니다.

개죽음을 당하지만 않는다면, 도망자가 되는 것보다는 명예로운 군인이고 싶습니다."

절절하게 끓는 목소리에 군터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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