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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364화 (364/1,064)

364화

후기에 퀴즈가 있습니다.

*

카자쿠의 방문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것을 그 다음날에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현재 테리브란에 있는 무관들 사이에서 소문이라도 퍼진 것일까.

"빌리치 아조프라고 하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호승심을 감추지 않는, 진짜배기 무인들.

"실력이 대단하다 들었소. 한 수 겨뤄봅시다."

한 번에 여럿이 몰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들 모두와 겨룰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눈을 마주치더니, 한 명을 제외한 이들이 알아서 양보를 했다. 가장 기세가 출중해 보이는 이가 나서는 것으로 보아, 그들 사이에는 이미 어느 정도 위계가 잡혀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카자쿠 공과 대등했다 들었소이다. 그 얘기를 듣고 흥분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소."

카자쿠가 직접 말을 하고 다닌 것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가 퍼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모두 강자들이었다. 군터는 그들을 대부분 이길 수 있었으나,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었던 자들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 중 두 명과는, 카자쿠와 그러했듯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각기 빌리치 아조프와 비스칼 구르야트라는 이름의, 제국 북부의 명문 무가 출신 무관들이었다.

"이런!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믿기지가 않는군."

그들 둘 모두 카자쿠만큼은 아니어도 호쾌한 사내들이었다. 애초 사신으로 온 자에게 한 판 붙어보자고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범상치 않음을 증명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카자쿠 공이 칭찬할 만해. 훌륭한 솜씨요."

신기한 일이었다.

한바탕 부딪치기 전까지, 그들은 서로에 대해 이름은 물론 얼굴도 모르던 사이였다. 그런데 서로의 실력을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벗처럼 웃으며, 제법 살갑게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정치적이거나, 복잡한 이유도 없다. 순수한 갈망과 호감의 작용일 뿐.

누가 더 강한가를 겨루고, 서로의 강함을 인정한다. 이 감정은 너무도 순수해서, 다른 잡다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 자그마한 나라에 이런 무인이 있었군. 솔직히 놀랐소."

"저도 놀랐습니다. 제국은 역시 넓군요."

군터가 승부를 내지 못한 세 사람은 각기 출신지도 달랐다. 카자쿠는 제국 남방의 랑그윤 출신이었고, 빌리치 아조프는 데이븐랏지 출신. 비스칼 구르야트는 아록 출신이었다.

빌리치 아조프가 말하길, 그들 세 사람은 무공으로 7황자 측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했다. 그 말을 할 때의 자부심 넘치는 표정이 인상적이어서, 거짓은 아닐 것으로 생각 됐다.

"그럼 그 다섯 손가락 중 으뜸은 누구입니까?"

"으뜸이라……."

껄끄러운 질문일 수도 있다. 자칫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로 비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한바탕 겨루고 난 뒤,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던지는 물음이었다.

"모르겠군. 다섯 모두 비슷비슷하다네. 물론 끝까지 가면 승부야 나겠으나, 그러면 몸이 상하는 선에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우리는 그렇게 해서라도 승부를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지 않지만, 전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네."

"그렇겠군요."

끝까지 간다 함은 그야말로 쓸 수 있는 힘을 다 쓴다는 뜻이다. 제국의 고위 무관들이 대부분 각인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것까지 사용해 맞붙을 경우 자칫 심각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 때문에 군터도 카자쿠를 비롯한 세 명과 적정선에서 마무리를 지은 것이었고.

"무인으로서의 호승심도 좋긴 하나, 어쨌든 우리는 군인이니까. 우리가 진정 목숨을 걸어야 할 곳은 연무장이 아니라 전장이지."

"옳은 말씀입니다."

며칠 동안 군터는 그들과 자주 만나며 친분을 다졌다. 비무를 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즐거웠다.

빌리치 아조프와 비스칼 구르야트는 서로 친분이 있는 듯하여 함께 만났지만, 카자쿠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말이 옳으리라. 그의 모난 성격은 7황자 진영에서도 유명한 듯했다.

"카자쿠 공의 실력과 전하에 대한 충심은 의심할 바가 없지. 허나 그 성미가 너무 불 같고, 남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한때는 꽤나 훌륭한 야전 지휘관이었다는데, 그 성미로 어찌 그럴 수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야."

황금을 녹인 것 같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사내, 비스칼 구르야트가 툴툴대며 말했다. 카자쿠에 대해 좋은 말만 하는 빌리치 아조프에 비해 그는 쌓인 것이 있는 듯해 보였다.

"뭐라 하든, 카자쿠 공은 그의 직분에 누구보다 충실하고 있습니다. 그거면 되지 않겠소?"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이 좀 둥글둥글해도 좋지 않겠소이까?"

"어쩌겠소? 사람이 원체 그런 것을."

군터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7황자 진영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그들이 특별히 따로 말을 해준 것은 아니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7황자 진영은 크게 두 파로 나뉘는 듯했다. 하나는 7황자의 외가이자 데이븐랏지의 총독 직을 맡고 있는 제레이스 일족. 그들은 데이븐랏지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권세가로, 본래 지니고 있던 권세와 7황자의 혈족이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7황자의 진영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데이븐랏지를 제외한 3주의 세력들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이는 게 타당한지 궁금했지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7황자의 혈족이 아닌 그들끼리 공유하는 정서가 있는 듯했다.

'능력'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다는 것을 보니 제레이스 일족을 위시한 데이븐랏지의 세력이 능력 없이 요직을 차지하고 생각해 어느 정도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들은 것만을 보면 그렇게 두 개 파벌로 나뉘는 것 같았는데, 유일하게 카자쿠만은 그 둘 모두에 속하지 않는 자인 느낌이었다. 제레이스 일족을 좋게 보지 않는 듯한 빌리치 아조프는 카자쿠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대놓고 드러냈고, 개인적으로 쌓인 게 있는 것 같은 비스칼 구르야트도 그의 모난 성격에 대해 토로할 뿐이지 다른 안 좋은 이야기를 입에 담지는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한 모양이군.'

규모만 다를 뿐, 이곳의 사정도 베이고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권력이 있고, 사람이 있으며, 파벌이 있다. 크게 둘로 나누었으나,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서도 또 나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깨달으니 거대하고 위협적으로만 보이던 제국이, 7황자의 세력이 조금은 달리 보였다.

"그럼 이제 전하께서는 남진을 시작하시겠군요."

자연스럽게 화제가 넘어가다가 앞으로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겠지.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어."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게야. 한 번 이긴다고 해서 끝이 아니지. 전하께서 황위를 계승하실 때까지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니."

"각오는 되어 있소."

"이 사람 역시 마찬가지요."

군터는 조용히 각오를 다지는 두 사람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들의 말마따나 긴 싸움이 될 것이다. 고작 한 개 주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 아니니까. 제국 전역 36개 주를 두고 벌이는 대전쟁이다. 어쩌면 몇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 기나긴 싸움을 앞둔 두 사내는 비장하면서도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군터는 그들의 심정을 짐작하고 이해했다. 무인의 삶은 전장에 있으니, 싸우지 않는다면 무공을 갈고 닦는 것은 소용이 없다. 전쟁은, 그들에게 있어 출세의 장 이전에 무인으로서의 증명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군터는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평화도 좋지만, 무인 한 사람의 이기적인 바람은 때때로 치열함과 잔혹함을 희망한다.

*

테리브란에 머무는 동안, 군터는 그를 찾아오는 무인들과 교류하는 한편 보리스와 도시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이주 제레이스는 약속했던 대로 달이 뜬 밤에 뱃놀이를 즐기게 해주었다. 배가 호수 위에서 느긋하게 이동하는 동안에는 보리스의 탄성이 몇 번이나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떠날 날이 되었다.

7황자와 면담을 한 것은 왕국의 사신 자격으로 온 사미르 자작뿐이었다. 자격이 없는 군터는 일찌감치 돌아갈 준비를 마친 일행과 함께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미르 자작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왔고, 그들은 몇몇 인사들의 마중을 받으며 테리브란을 떠났다.

"배웅의 인사치고 과한 것이 아닙니까?"

병사들을 이끌고 따라붙은 이는 군터와 친분을 나눈 빌리치 아조프였다. 그가 지방직이라 하나 장군의 자리에 있음을 감안하면 배웅을 나오는 것치고는 확실히 과한 인사였다.

"하하. 사신의 배웅은 덤일세. 전하께서 따로 맡기신 임무가 있어."

"임무 말입니까?"

"뭐, 딱히 숨길 것도 아니니 말해주지. 파헨델에 있는 우슈무르 장군께 전하의 말씀을 전하러 간다네."

이름을 듣자 사자의 요람이라는 별칭의 거대한 요새를 지키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떠올랐다. 그에게 전할 말이라. 장군 씩이나 되는 이를 통해 전하는 말이니 사소한 것은 아니리라 짐작됐다.

돌아가는 길은 무난했다. 하기야 7황자의 병사들이 호위까지 해주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는 게 더 이상하기도 했다.

거기에 올 때도 느낀 것이지만 7황자가 다스리는 땅은 치안이 상당히 잘 잡혀 있는 것 같았다. 도적들은 구경도 한 적이 없고, 아주 간혹 보이는 백성들도 군사들을 크게 두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황자가 북부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했으니, 이는 제레이스 가문의 치세라 봐야 하는가.'

뭐가 됐든, 대단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제레이스 일족이 능력도 없이 요직을 꿰찼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왔군."

테리브란을 떠나고, 그들은 파헨델을 눈앞에 두었다. 올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병사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우슈무르 장군! 전하의 전언을 전하러 왔습니다!"

"아조프 장군인가? 나 또한 알려줄 소식이 있네. 지금 막 들어온 정보지."

세레온 우슈무르의 날카로운 눈빛이 사미르 자작을 향했다.

"사신은 모르고 있었나? 소식이 영 느리군."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내 생각에 그대는 돌아가는 길을 서둘러야 할 것 같소. 자네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거든."

불쾌함을 드러내던 사미르 자작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전…쟁이라고?"

그의 목소리는 억지로 쥐어짜는 것처럼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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