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터-338화 (338/1,064)

338화

"장주님."

"살라스. 깔끔하게 처리했더군. 감탄했다."

"그 일 말입니다만…제가 한 게 아닙니다."

"음?"

"조언을 들었고, 그 조언 그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한 일이라 말씀드릴 수 없지요."

군터는 잠깐 동안 살라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했다.

"조언? 무슨 조언 말이냐."

"바오룸의 이복 형제가 있습니다. 야스메티라고 하는데, 그의 머리가 비상하여 그에게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소관은 아직까지 손톱에 박힌 가시를 제거하지 못한 채 앓고 있었을 겁니다."

"바오룸의 형제라고? 얼핏 듣긴 한 것 같은데, 그런 재주가 있었나? 흥미롭군."

"머리가 뛰어나지만, 남들의 눈에 비치는 그의 외관이 비루하여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바오룸이 그의 동생을 장주님께 곧바로 소개하지 못한 것 역시 혹시라도 재주를 드러낼 기회도 없이 홀대를 받을까 염려해서라고 합니다."

"알만하군. 하지만 동시에 실망스러워. 나를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위인으로 여겼단 말인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동시에 궁금해졌다. 그 야스메티라는, 바오룸의 동생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외관이 얼마나 비루하기에 그리 걱정을 하는지.

"데리고 와라. 만나보겠다."

"예."

군터는 살라스, 바오룸과 함께 야스메티를 보았다. 상석에 앉은 군터를 기준으로 좌우 앞자리에 두 사람이 앉은 가운데, 왜소한 체구의 사내는 홀로 멀찍이 떨어져 군터와 마주보았다.

"고개를 들어라."

들어올 때부터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야스메티는 군터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을 본 군터는 왜 살라스가 그런 말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얼굴부터 시작해서 썩 믿음을 주는 외관은 아니었다. 미추를 말함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 그늘이 져 있었다.

자신감이 없어 보였고, 음습해 보였기에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 능력 있음을 들었기 때문인지, 야스메티의 추레한 몰골이 그리 거슬리지는 않았다.

"살라스의 일에 네가 도움을 줬다고 들었다."

"부족한 꾀나마 최대한 짜냈을 뿐입니다. 소인이 아니었더라도 살라스님께서는 방법을 찾아내셨을 겁니다."

"머리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낮추는 데는 능숙하군."

"……."

야스메티는 말과 행동이 다른 자였다. 군터는 그렇게 느꼈다. 왜냐하면 이 왜소하고 추한 사내는 스스로를 낮추는 말을 하면서도 두 눈 깊숙한 곳에서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은 음습하지만 도전적이었으며,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주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자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야스메티는 그의 불쾌함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자였다. 그가 보이고 있는 겉과 속의 다름은 그 나름대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임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래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법이다. 야스메티 역시 그럴 것이다.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인정을 갈망하는 것이리라.

그런 자는 싫지 않다.

"칼을 휘두를 줄 아느냐?"

"할 줄 모릅니다. 태어나기를 허약하게 태어나 종종 잔병을 달고 살았지요. 이 지저분한 얼굴 역시 그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몸을 쓰는 일보다는 머리를 쓰는 일에 자신이 있는가."

"그것 밖에는 할 줄 모릅니다. 그것이 제 전부입니다. 제게 칼 쓰는 일을 맡기시려 하면 실망밖에 드릴 것이 없을 겁니다."

"그럴 생각은 없다. 그저 한 번 물어봤을 뿐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그저 확실히 하기 위해 물었을 뿐이다.

"살라스에게 해준 것처럼, 내 옆에서 내게 네 머리를 빌려주겠느냐."

담담한 한 마디 말에 야스메티가 넙죽 몸을 숙였다.

"바라 마지 않는 일입니다. 믿어주신다면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야스메티를 얻은 날. 군터는 그의 측근들을 불러모아 연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직접 야스메티를 소개했다.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나, 군터가 직접 소개까지 하니 그들은 속으로야 어떻든 겉으로는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

군터의 휘하에 든 후, 야스메티는 처음으로 그의 의견을 내놓았다.

"미트라스 경을 위시한 유지들은 영주님께 재혼을 요구할 겁니다."

"재혼?"

"예. 비록 소공자의 생모께서 면천하여 첩의 지위를 얻었으나, 코누디스 가문의 안주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절대 불가한 일이지요. 따라서 저들은 코누디스 가문의 안주인을, 영주님의 새로운 정실 부인 되실 분을 요구할 겁니다. 영주님께서는 그것을 거부하실 수 없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싶었다. 확실히, 라일라는 첩은 되어도 절대 정실부인은 될 수가 없는 여자였다.

신분의 비천함은 영주의 권력으로도 누를 수 없는 것이니까. 코누다이안 내에서는 밀어붙일 수 있을지 몰라도, 영지 밖에서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다. 어린 아들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기에 억지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것도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이다.

"이는 영주님의 뜻과도 일치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아마도…연합을 구성한 이웃 영지들 중 한 곳과 혼맥을 이루려 하시겠지요. 동시에, 코누다이안의 유지가문들 중에서도 처를 들이려 하실 겁니다."

여기서는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그건 어째서지."

"이전과는 다릅니다. 전 영주부인께서는 리에론의 여식이었지요. 때문에 리에론에 대한 존중의 표현으로써 처를 하나만 두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약이 사라졌으니 거리낄 것이 없지요. 혼인은 가문과 가문을 잇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아닙니까. 연합 영지 중 한 곳에서 정실 부인을 맞고, 코누다이안 내 유지 가문들에서 후처를 맞이하여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또한 그리 함으로써 후계자를 얻을 확률도 높일 수 있지요."

"후계자?"

"지금 계신 소공자는 후계자가 되지 못합니다. 정확히는,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더 맞겠군요. 제국, 아니 베이고르의 귀족 문화는 상당히 고루합니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 나라에서 후계자의 자격은 능력보다 혈통을 우선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공자는…자연히 탈락이지요.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그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영주님께서는 여러 부인들을 두시게 될 겁니다."

아무래도 후계자의 정통성이라는 것은 귀족 가문, 특히 영주 가문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모양이었다. 군터는 그를 몰랐으나, 야스메티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 역시 초원 출신이며, 심지어 전쟁으로 병합이 되기 전까지는 타칸 연합의 일개 군소 부족민이었을 터인데 어찌 이리 잘 아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모르긴 몰라도 공부를 제법, 아니 상당히 많이 한 것 같았다.

아는 것이 없으니 모르는 말을 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없었다.

"영주님과 혼맥을 맺기 위해서 유지 가문들은 총력을 다할 겁니다. 혼맥을 맺기만 하면 영지 내에서 목소리가 커질 수 있으니까요. 혹 후계자를 낳기라도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지요."

"……."

"이는 유지 가문들에게도 기회이지만, 동시에 영주님에게 있어서도 기회입니다."

"무슨 뜻이지?"

"현재 유지들을 대변하는 이는 미트라스 경이지요. 많은 유지들 가운데 그의 영향력이 가장 크지요. 하지만 영주님과 혼맥을 맺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주님은 유지들과의 혼사를 통해서 미트라스 경을 필두로 한 유지들의 연합을 흔들려 하실 겁니다."

"미트라스는 그를 원치 않겠군."

"그렇겠지만, 막을 수는 없습니다. 명분은 영주님에게 있으니까요. 영주님은 절대적인 우군을 얻으실 것이며, 힘 센 신하들을 내리누르실 수 있게 되지요."

군터는 길게 이어지는 야스메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갑작스레 웃음기를 머금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이미 일어난 것처럼 말하는군."

"확실히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낮 다음에 밤이 오는 것처럼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일입니다."

"두고 보면 알겠지."

반신반의 했다. 야스메티는 확신에 차서 말을 했지만 그가 말하는 투는 추측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오히려 더 믿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야스메티가 그 말을 하고서 불과 열흘 정도가 흐른 뒤에 관리들 중 일부가 목소리를 모았다.

"영주님. 코누디스 가의 안주인 자리를 더 이상 비워놔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군터는 야스메티의 느릿느릿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

혼담이 오갔다. 코누다이안의 영주 막시밀리언 코누디스 자작과 젠탄테르 남작의 차녀간의 혼담이었다.

이야기가 나오고 보름도 지나지 않아 양가 간에 예물이 오갔다. 미리 약속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군더더기 없이 신속하게 일이 진행되어갔다.

"영주님은 이미 동부를 손에 쥐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듣자 하니 폴사도의 영주 커닐레이 백작이 병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후계를 두고 장남과 차남이 벌써부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말까지 들려오는 것을 보면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유일한 경쟁자마저 이탈해버린 상태에서, 영주님이 못하실 일은 없습니다."

"별 것을 다 아는군."

커닐레이 백작이 와병 중이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의 밑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위글로우의 일개 시민(물론 바오룸의 동생이라는 위치기 있겠지만)에 불과했던 야스메티가 어디서 그런 정보를 들었는지 의아했다.

"들으려고 하면 저 멀리서 나는 자그마한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들으려 하지 않기에 들려오는 것만 들리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정보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그에 대해 군터는 공감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너와 같은 생각을 안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송구한 말씀이나, 장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쓰고 남은, 여력으로 꾸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병사들을 조련하듯 눈과 귀를 만드셔야 합니다. 알지 못하면 제대로 대처할 수 없고, 멀리서부터 보지 못하면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예언과도 같았던 예측이 적중한 순간부터 군터는 야스메티의 능력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가 얼마만큼 현명한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군터 자신과 그를 따르는 수하들보다는 현명한 것이 확실했다. 때문에 그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하는 것을 허투루 흘리지 않았다.

"좋다. 그럼 네가 할렌과 함께 한 번 진행해보도록 해라. 필요한 지원은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주겠다."

"맡겨주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