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요 근래에 살라스는 하루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빴다.
내성 수비대장으로 영전하고서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업무를 익히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쉬웠다.
내성 수비대가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단순하고 뻔했다. 동서남북의 네 개 성문과 성벽을 지키고, 성벽 안쪽 도시 내부를 순찰하는 것. 모두 규범이 정해져 있으니 그에 맞춰 일하면 그뿐이다.
때문에 수비대장의 업무 자체는 문제 될 것 없었다. 살라스가 애를 먹고 있는 것은 휘하 장교들의 인선 건이었다.
내성 수비대장은 기본적으로 천부장과 동급이다. 내성 수비대는 순찰대를 포함하며, 내성의 치안을 도맡는다. 정확히 기준에 맞춘다면 휘하에 거느리게 되는 백부장의 수는 열 명보다 적어야 하지만, 재량으로 열 명까지 둘 수도 있었다. 병력이 조금 모자란다고 해도 부대를 잘게 쪼개면 되니까.
현재 살라스의 휘하에 있는 백부장은 총 열 명이었다. 전임이었던 켄달이 재량을 최대한도로 발휘해놓은 것이다.
그들은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사실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겠지만) 일부는 확실하게 켄달의 사람이었다. 미트라스 쪽의 사람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때문에 그들은 살라스의 입장에서 상당히 곤란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정적의 하수인을, 믿을 수 없는 자들을 어찌 수하로 두고 있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그들을 내쳐야 하지만, 그것이 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휘하의 장교들이라 해서 막무가내로 해임시키거나, 전출 시킬 수는 없다. 구실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살라스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윗대가리가 썩어 문드러진 작자였는데 아랫대가리라고 다르겠습니까? 캐보면 구실이야 자연히 만들어질 겁니다."
간단하게 가진 자리에서 할렌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자 살라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리 쉽지가 않네. 저들이라고 자신들의 지위가 위태로움을 모르겠는가. 작정하고 몸을 사리고 있네. 빌미를 잡기가 쉽지 않을 듯해."
"끄응. 그렇지만, 어차피 골치가 아픈 건 살라스님이나 그 놈들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피차 곤란한 상황이 된 셈인데, 적당히 밟아 놓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물러나지 않을까요."
상관인 그가 압박을 가하라는 소리다. 군부에서 상명하복은 절대적인 규율이니, 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든 명령을 내리면 따를 수밖에 없는 점을 이용하여 부당한 지시로 속을 태우라는 뜻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네만…어떻게든 버틸 기세더군. 따로 언질을 받았는지, 아니면 갈 곳이 없어 그러는지는 몰라도 쉽게 꼬리를 말 것 같지는 않았어."
"참…곤란한 문제군요."
"곤란하지. 하지만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돼."
"으음."
살라스의 영전을 축하할 의도로 가진 자리였는데 그의 고충을 듣게 되니 할렌은 무슨 말을 해야 할 줄 몰랐다.
즐거워야 할 자리가 무거워졌다.
한동안 말 없이 목만 축이며 고민하던 할렌이 문득 탄성을 질렀다.
"아! 바오룸 그 놈이 이런 쪽으로 꾀가 좀 있는 것 같던데, 한 번 의견을 구해보심이 어떻습니까?"
"바오룸에게?"
"그 놈이 그래도 한때 소족장으로 있으면서 이런저런 눈치라든지 머리 쓰는 데 익숙한 모양이던데, 이런 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바오룸이라. 하지만 난 그와 별다른 친분이 없는데."
"뭘 그런 걸 걱정하십니까. 마음이 동하신다면 제가 가서 말을 해보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내 문제가 아닌가. 내가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해도 해야지 않겠나."
"그러시지요 그럼."
며칠 지나지 않아 살라스는 바오룸을 불러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가 맞닥뜨린 고충을 이야기했다.
"흐음. 그렇군요."
"자네 생각에, 내가 어찌 해야 좋겠나. 일전에 보니 자네가 꾀가 많은 것 같아 힘을 빌릴 수 있을까 하여 청했네."
"하하. 이거 참 민망하군요. 제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만, 약간의 눈치라면 모를까 난처한 상황을 타파할 만한 꾀는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살라스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었다. 바오룸이 그의 부탁을 거절한다고 느껴서였다. 그러자 그런 그의 기색을 읽었는지, 바오룸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살라스님을 돕고 싶지 않아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 드린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전에, 자네는 장주님을 위해 이런저런 의견을 내지 않았나. 하나 같이 모두 틀리지 않은 것들 뿐이었지."
"그건…사실 제가 한 생각이 아닙니다. 남의 생각을 빌려와 입으로만 떠들었을 뿐이지요. 언제고 기회가 되면 밝히려 했는데, 그러기도 전에 살라스님께서 저를 찾으신 겁니다."
"빌려왔다 함은?"
"제게는 아우가 있습니다. 같은 배에서 난 형제는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한 핏줄이지요. 그 녀석은 저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좋습니다. 제가 장주님께 올렸던 말들은 모두 그 녀석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 자를 장주님께 소개하지 않았나."
"그것이…녀석이 머리는 좋으나, 그 외에는 모두 남에게 무시를 받을 만큼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외관은 추레하며, 말도 어수룩하게 하지요. 거기에 몸도 허약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덜 떨어진 놈도 이런 덜 떨어진 놈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지요. 하여 녀석을 그냥 소개했다가는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고 천대를 받을까 싶어 시기를 노렸던 겁니다. 사실 이 역시 그 녀석의 생각이었습니다."
"대단하군."
설명을 다 들은 살라스는 바오룸의 이름 모를 동생에게 감탄했다.
"그렇다면 자네 동생에게 부탁할 수 있겠나? 아니, 아니지. 내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군. 그리 할 수 있겠나?"
"뭐가 어렵겠습니까. 녀석 역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기뻐할 것입니다. 바로 데려오겠습니다."
"그리해주면 고맙겠네."
동생을 데리러 간 바오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내와 함께 돌아왔다. 장신인 바오룸에 비해 머리 한 개가 작은 키에 왜소한 덩치. 거기에 굽은 것인지 숙인 것인지 모를 고개 때문에 왠지 모를 음침함이 들었다.
"명망 높으신…살라스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야스메티라 합니다."
느릿한 말을 뱉으며 몸을 낮추는 그.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살라스는 그의 얼굴을 비로소 다 볼 수 있었는데, 보자마자 바오룸이 왜 그런 말을 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렸을 적에 병이라도 알았는지 얼굴이 곰보였다. 피부도 거뭇거뭇한 것이 그늘이 진듯했고, 눈은 그 나이대의 사내답지 않게 빛이 없었다. 심하게 말해 죽은 짐승의 눈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를 만났더라면 아무리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 해도 거부감에 그를 밀어냈으리라. 심지어 바오룸에게 이야기를 들은 후였음에도 어쩔 수 없는 꺼림칙함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겉으로 보이는 가죽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지금 이 자리는 자신이 그를 청해 만든 자리였다. 살라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 추레하고 볼품 없는 사내에게 그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존중을 표했다.
"만나서 반갑네. 자네 형제에게 자네의 이야기를 들었지. 하여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어려움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여 자네를 청했다네."
야스메티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거뭇거뭇했지만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아주 살짝 높아짐으로 인해 살라스는 그가 기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가 대장님께 드릴 수 있는 도움이 있다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자, 앉지."
바오룸과 야스메티가 자리에 앉자 살라스 역시 그의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오는 길에 이미 전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 상황을 이야기하겠네."
살라스는 바오룸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금 야스메티에게 들려주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의 이야기를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듣던 야스메티는 살라스의 이야기가 끝나자 천천히 입을 떼었다.
"요약하면, 대장님께서는 휘하의 백부장들을 갈아치우고 싶지만 명분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는 거군요."
"바로 그렇다네."
"욕심을 조금만 버린다면…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살라스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무슨 뜻인가?"
"대장님께서는 그들을 한 덩어리로 보시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열 명은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지요.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전의 대장이었던 켄달과 가까울 것이고,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멀리 있었을 겁니다. 대장님께서 이번에 새로이 그들의 상관이 되시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불안해 하고 있지요. 자신들의 안정되었던 삶이 망가질까 우려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장님을, 대장님이 휘두르실 숙청의 칼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계속하게."
살라스는 답답함을 느꼈다.
야스메티의 말은 그를 빨아들였지만 너무나 느렸다. 다음 말을 더 빨리 듣고 싶은데, 말이 나오는 속도가 너무나 굼떴다. 목이 탈 것처럼 갈증이 이는데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물은 한 방울씩 떨어지니 그 답답함이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살라스는 꾹 참았다. 생명수 같은 말은 야스메티의 입에서 느리지만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들 중 일부를 포섭하십시오. 둘이면 최선이나 하나라도 괜찮습니다. 그들 중에서 전임 대장과 가장 사이가 멀었던 이들 두 명에게 자리를 보전해주겠다 약속하시고 다른 여덟의 비위를 캐내십시오. 함께 켄달의 밑에 있던 자들이고, 켄달이 하나하나 뽑은 이들이니 켄달의 비위는 그들 열 명이 함께 했을 것입니다.
모를 수가 없지요."
"말은 좋네만, 그게 가능하겠나?"
"가능할 뿐 아니라, 쉬울 겁니다. 다른 말이 없기 때문에 병든 노마의 꼬랑지를 붙들고 있을 뿐, 다른 말로 갈아탈 기회를 준다면 어찌 그러지 않겠습니까? 대장님께서는 군터 경의 측근이시지요. 그것을 모르는 이는 갓난아이나 치매 걸린 노인이 아닌 이상 코누다이안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들을 덮을 그늘이 산이든 건물이든 상관치 않을 겁니다. 지금 그들은 그저 두렵기 때문에, 살기 위해 뭉쳐 있을 뿐입니다."
"으음."
"말단 병사들부터 시작하십시오. 병사들은 직속상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면 백부장들까지는 금방 닿습니다. 그들에 대해 대력적으로 파악한 후, 두 명을 골라 포섭하십시오. 여덟을 쳐내는 것은 순식간일 것입니다."
"좋아. 그럼 나머지 둘은 어찌 하는가? 그대로 품고 가야 하는 건가?"
솔직한 심정으로, 살라스는 열 명 모두를 쳐내고 싶었다. 하지만 야스메티의 말을 들어보니 열 명 중 둘 정도는 어쩔 수 없이 품고 살 수밖에 없는 듯했다. 그는 그것이 못내 걸렸다.
"그래서 먼저 말씀 드리길, 욕심을 조금 버려야 한다 한 것입니다. 여덟은 쳐낸 후에 그들 둘마저 치우실 수 있겠지만, 그리하면 차후에 대장님의 약속을 믿는 이들이 없을 것입니다.
둘 정도는 얼마간만이라도 안고 가셔야 합니다. 정히 그들이 마음에 걸리신다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적당한 핑계거리를 잡아 쳐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그러셔서는 안 됩니다."
"으음. 알겠네. 내 자네 말대로 하지."
야스메티의 말은 설득력이 강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모든 일이 그의 말처럼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어차피 다른 뾰족한 방법도 없었기에, 살라스는 야스메티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백부장 중 평소 켄달과 비교적 거리가 있었던 이들 둘을 포섭했고, 그들을 통해 다른 여덟의 비위를 밝혀 모조리 파직시켰다.
그 사유가 정당했기에 미트라스 쪽에서도 다른 말을 하지 못했고, 살라스는 내성 수비대를 온전히 그의 수중에 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