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이른 아침 잠에서 깬 미트라스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침이라기 보다는 새벽에 가까운 시각부터 믿기지 않는 소리를 들었기 문이다.
"…다시 말해봐라. 켄달 대장이 어찌 되었다고?"
"지난 밤 군터 경이 그의 집을 찾아가 그를 포박하여 끌고 갔습니다."
"포박? 끌고 가?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군터 그 자가 반란이라도 일으켰다는 말이냐?"
"그게 아니오라…실은 간밤에 군터 경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 합니다. 대로변에서 수십의 암살자들이 뒤늦게 귀가하던 그를 습격했다고……."
미트라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그 암살자들을 심문하였는데, 그들의 입에서 켄달 대장의 이름이 나왔다고 합니다."
쾅!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수하로부터 보고를 듣는 순간 확신했다. 이것은 저열한 함정이라고 말이다.
켄달이 그런 멍청한 짓을 벌였을 리도 없고, 그게 아니라도 그런 일을 벌이고자 했다면 당연히 먼저 자신을 찾아와 상의를 했으리라. 켄달이 무모하게, 독단적으로 군터의 목을 노려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무식한 야만인 놈이 얕은 수작을 부리는구나!"
"수십의 암살자들이 그를 노린 것은 사실이라 합니다. 간밤에 순찰대가 그에게 합류하여 암살자들을 상대했고, 그 과정에서 사상자도 나왔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주변 시민들 중 소란을 느꼈다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암살 시도 자체는 사실이라는 뜻이다. 그것도 수십 명씩이나 동원될 정도로 꽤나 진지한 시도였다는 것이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켄달에 대한 혐의가 말도 안 되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함정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자작극인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켄달은 그 야만인 놈의 집에 감금되어 있는 건가?"
"아닙니다. 영주님께서 사정을 들으시고는 즉시 그를 영지 감옥에 이송하라 하셨습니다. 또한."
"야만인 놈을 불렀겠지."
"예. 지금 영주 관저에 가 있다 합니다."
"곧 관료 회의를 소집하겠군."
"그러지 않겠습니까."
미트라스는 영주 관저로 향하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정말 걸려도 제대로 잘못 걸렸다는 사실 뿐이었다.
'혐의는 부인하더라도, 정황에 대한 의심은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수십이나 되는 암살자들이 대로변에서 활개를 친 것 자체로도 문제다. 내성 수비대장으로서 그런 것들이 설치게 한 것은 치안대도 치안대지만 내성의 수비대장으로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켄달을 버려야 하는가?'
수작질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당할 수밖에 없다. 무식한 야만인 놈이 이런 발칙한 짓거리를 벌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기에 더 뒤통수가 아렸다. 켄달은 미트라스의 일파에서도 그 위치가 손에 꼽히는 자였다. 그의 가문 역시 위글로우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명문가였고.
그를 잃는 것은 미트라스로서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그를 따르는 유지들이 켄달의 구명을 바랄 것이라는 거다.
잃는 것은 부담이지만, 버리는 것은 그와 비할 수도 없다. 켄달을 버리면 그를 지지하는 유지 세력이 동요할 것이다.
'제기랄!'
물려도 아주 제대로 물려버렸다. 켄달을 못 구해도 문제고, 구한다 해도 얼마나 양보를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으니 역시 문제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영주 관저가 가까워졌다.
문을 여는 수문병들을 보며, 미트라스는 숨을 골랐다.
*
"급했군."
"송구합니다."
"뭐, 이해는 가네. 마음 편히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수십 암살자들과 맞닥뜨리고 나면, 아무래도 마음이 격해질 수밖에 없겠지."
"……."
"아무튼 꽤나 재미있는 생각이었어. 노린 대상도 절묘했고. 누구의 생각인가?"
"예?"
"암살자들은 어디서 구한 거지? 수하들을 아끼는 자네가 수십 명씩이나 버리는 패로 쓸 것 같지는 않은데."
군터는 가라앉아 있는 막시밀리언의 시선을 마주했다.
"영주님. 암살자들은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음?"
"그들은 독 묻힌 칼을 들었었고, 진정으로 제 목을 노렸습니다. 순찰대의 합류가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
"전장에서야 제 목을 노릴 만한 자들이 넘쳐났지만, 위글로우에서는 극히 드물겠지요.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분풀이와 경고 정도였습니다."
"정말로 미트라스가 자네를 노렸다고 믿나? 미트라스는 그리 멍청한 자가 아니야."
"다른 이를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위글로우 한복판에서 수십이나 되는 암살자들을 부려 그의 목을 노릴만한 자. 막시밀리언은 군터의 흔들림 없는 굳은 눈을 보고 그가 빈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암살이라. 내 땅의 중심에서 암살……."
"얄팍한 계산이 섞였음을 부인치는 않겠습니다. 다만, 없는 일을 만들어내어 무모하게 나선 것만은 아님을 알아주십시오."
"그렇군. 이해했네. 그저 놀라울 뿐이야. 이제 자네가 독단적으로 이런 일을 벌일 정도로 노련해졌구나 싶어서 말이지."
나무라는 목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어쩐지, 군터는 막시밀리언의 말이 멀게 느껴졌다.
"어찌하고 싶은가?"
"제가 이야기할 주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암살자들은 자네의 목을 노렸지 않나."
"그 전에, 영주님의 땅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가? 그도 그렇군."
막시밀리언이 픽 웃었다.
"좋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네가 바라는 바가 있을 게 아닌가. 그러니 콕 집어 켄달의 집을 들이쳤겠지. 허심탄회하게 말해보게. 원하는 게 켄달인가?"
"내성 수비대장입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 중 하나이지 않겠습니까."
심문으로 얻은 증언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말하지 않았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괜찮은 판단이었어. 자네가 직접 나서서 크게 한 번 소란을 일으킨 덕에 간밤의 일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네. 정오가 지나기 전에 알 사람은 다 알게 되겠지. 그리 되면 미트라스도 어쩔 수 없이, 꽤 큰 대가를 치러야 할 터."
미트라스는 어느 것 하나 쉬이 택하지 못하리라. 켄달을 포기하든 포기하지 않든, 그가 치러야 할 대가는 크다.
"자네가 의도한 바 그대로지. 그렇지 않나? 그러니 말해보게. 자네는 어디까지 보았는가?"
편안한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편안한 목소리. 그러나 군터는 여기서 더 빼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발 뒤꿈치에 칼날이 닿아있는 것 같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불길함.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드러냈다.
"켄달이 그의 자리에서 내려오기를 바랍니다. 그의 가문까지 쳐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과욕이겠지요."
"과욕이지. 하려면 할 수는 있겠으나, 그 뒷감당이 만만치 않을 걸세. 아무튼 좋아. 켄달이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그 빈 자리에는 누가 올라가야 하겠는가?"
"제 부관인 살라스는 저와 함께 많은 전장을 누비며 공을 세웠습니다."
"살라스라. 호송 하나 제대로 못해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녀석이 아닌가."
"그렇지만 그 후에 폴사도의 정병 수십을 베어 과를 씻었습니다."
"그렇지. 그 정도면 되나?"
"소관이 보았던 끝은 거기까지입니다."
만족스런 답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표정, 그 가면너머에 또 다른 표정이 숨어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없었다.
*
저벅저벅-
적어도 열흘에 서너 번은 걸었던 길을 그때와 똑같이 걷고 있다. 적어도 외관상, 평소와 크게 다른 것은 없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귀를 파고 들고,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특유의 목재 향이 코끝을 스친다.
가슴이 조여져 두근거리고, 남은 걸음의 수가 줄어들수록 보폭도 덩달아 줄어든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결정권은 그에게 있지 않으니, 결정을 내리고 말고는 크게 의미가 없다.
무거운 마음이 몸을 짓누른다.
뚜벅뚜벅-
걸음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미트라스는 앞쪽, 그가 가야 할 곳에서 걸어오는 사내를 보았다.
복도가 좁지 않은데도, 세 사람은 나란히 걸어도 될 만한 길을 홀로 가득 채운 듯하다. 실제로는 여유 공간이 있었더라도, 그는 그렇게 느꼈다.
"……."
그는 가볍게 목례했다. 그러자 같은 인사가 돌아왔다.
"영주님께서 기다리신다."
"알고 있소."
상대가 멈춰 섰다. 미트라스는 복도 한 가운데를 떡 하니 점거하고 선 그를 옆으로 지나쳐 걸었다.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맹수의 이빨이 닿아있는 것 같은 섬뜩함에도 느릿한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도망가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괜히 어깨를 더 펴고 고개를 세웠다.
그렇게 걷고 걸어, 병사들이 지키고 선 문 앞에 섰다.
끼익-
문이 열렸다. 영주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차를 입에 가져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음에도 그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영주님."
"앉게."
희한한 일이다. 푹신한 의자에 앉았음에도 섰을 때보다 더 불편하니까 말이다.
"이미 이야기는 들었겠지."
"예."
"유감스럽기 짝이 없어.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나. 그것도 내성 한복판에서 말이야."
"그 암살자들은…확인하셨습니까?"
"암살자의 복장을 한 시신 수십 구에 대해서 지금 신원확인을 하고 있네. 결과는 곧 나오겠지.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렇다. 중요한 건, 암살자든 뭐든 간에 그런 무리가, 영주의 말마따나 내성 한복판에서 설쳐댔다는 사실 한 가지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런 일이지. 무능이 더 큰 해를 가져오기 전에 자그마한 사건으로 드러났으니 말이네."
"영주님. 켄달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 그리고 또 하나. 그가 누구의 추천으로 그 자리에 올랐었는지 기억하고 있나?"
"…모엔 청인서(請人署)관입니다."
"사람을 보고 뽑으라 그 자리에 있는 자가 아닌가.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사람 보는 눈 하나 없음이 드러났으니, 마땅히 그 역시 책임을 져야지."
"영주님. 허나 한 번의 실수였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목이 날아가기도 하지 않나. 자네는 잘 알 텐데,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
미트라스가 고개를 숙였다.
악 다문 이빨이 입술을 깊이 파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