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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326화 (326/1,064)

326화

연회가 열린다. 막시밀리언 코누디스 자작의 이름을 건 연회였다. 주변 영지의 영주들을 초청하였으며, 그 외에도 인근 지역의 유력자들이 초대를 받았다.

이런 시기에 이런 대대적으로 열리는 연회.

이게 무슨 의미인지 머리 있는 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명실상부한 동부의 강자로 우뚝 선 코누디스 자작이 자신의 세를 주변에 떨치며, 동시에 그와 함께 할 이들을 불러모으는 자리.

한 달 전 쯤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참석여부를 고민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코누다이안과 교분을 나누고 싶든 그렇지 않든, 코누다이안 뒤에는 리에론이 버티고 있었으니 그 위세 때문에라도 초대를 거부할 수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충격적인 사유로 인한 이혼과, 그 직후에 벌어진 더욱 충격적인 카트리나 리에론의 자결로 인해 리에론과 코누디스의 관계는 완벽하게 깨졌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리에론의 후광을 등에 업던 입장에서 한 순간에 그들과 적이 되어버린 코누디스와 코누다이안. 그들과 교류를 한다는 것은 리에론에게 밉보일 각오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 그런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과연 코누다이안과 마주앉아야 할까? 초대를 받은 이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궁금한가?"

"……."

조금 표정 관리에 소홀했던가. 막시밀리언이 숨을 헐떡거리며 묻는 말에 군터는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변명거리는 있다. 조금 전에 막시밀리언이 숨을 돌리면서 위벨에게 한 이야기가 궁금증을 자극했던 탓이다. 그의 생각에,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명령을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내리던 모습이 의아했으니까.

"조금은 그렇습니다."

챙!

"간단하네. 이제는 숨겨만 놨던 힘을 내보일 때가 되었다 생각한 것이야."

챙!

회심의 일격이었을 것이다. 힘껏 내지른 검이 막히자마자 안 그래도 거칠던 호흡이 아예 턱 끝에 걸렸다. 군터는 여유롭게 그를 밀어내고 대꾸했다.

"숨겨만 놨던 힘이라 하시면……."

"커닐레이가 우리에게 건 수작질은 유치하지만 나름 괜찮은 것이었어. 그들의 힘이 보다 강했다면 그처럼 여유롭게 여길 수는 없었겠지."

간단한 이야기다. 힘의 논리라면 부족하지 않게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은 없다. 두 사람이 있다고 치면, 그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수단은 힘이다. 옳고 그름과는 상관 없이, 힘이 강한 쪽이 원하는 답을 얻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한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힘의 논리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충분한 힘이.

약자들은 강자에게 밟힐 것을 우려한다. 때문에 강자에 맞서 그들끼리 뭉친다. 약한 개인보다 강한 집단의 힘을 내세우며, 그들만의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낸다. 홀로인 강자가 그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이 없다면, 결국 홀로인 강자는 집단의 논리에 묻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코누다이안은 어떤가.

지금 시점에서, 동부에 막시밀리언 이상 가는 힘을 가진 자는 없다. 저 밑에 있는 커닐레이 백작조차도 그러하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씩 놓고 봤을 때 그런 것이지, 막시밀리언 개인이 동부를 통째로 아우를 정도의 힘을 지녔다 말하는 것은 아니다.

"걱정스러운가 보군."

"두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겠지. 자네는 홀로 천 명을 상대하러 내보내도 두려워 할 자가 아님을 아네."

막시밀리언은 씩 웃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검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확신하고 있네."

"……."

"전쟁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 권력의 구도, 힘의 균형, 그야말로 모든 것을."

남작은 자작이 되었다. 옆구리에 있던 성가신 칼도 다시 칼집으로 들어가 먼 곳으로 떠나갔다.

"꾸준히 준비를 해왔지. 지금과 같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한 자루 칼은 백 명을 베지 못하겠지만, 백 명을 겁 줄 수는 있다. 그렇지 않은가?"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자네가 직접 조련시킨 병사들이 아닌가. 못해낼 것이라 보는가?"

"폴사도의 떨거지들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장담합니다."

"그거면 충분해."

군터가 다시 검을 들었다. 막시밀리언이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 더 쉬어도 되지 않겠나?"

"몸이 식습니다."

"엄격하군. 이래서 자네를 부른 것이지만."

군터는 엄격하게 막시밀리언을 몰아붙였다. 그는 다소 기름기가 흐르던 막시밀리언의 볼이 홀쭉해지고, 눈 밑에 짙은 피로가 들어설 즈음에야 칼을 늘어뜨렸다.

"오래 쉬셨다고는 하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몸만 조금 가벼워지면 체력도 금방 돌아올 것 같습니다."

"쉬었다고는 해도 꾸준히 검은 잡았었네. 지금처럼 혹독하게 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군마가 아닌 이상, 채찍질을 하지 않으면 말은 힘껏 달리지 않습니다."

"내가 말이라는 말인가?"

"음.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하! 됐네. 간단하게 한 잔 하고 가도록 하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막시밀리언이 몸을 씻고 오는 동안 군터는 먼저 들어가 주안상이 차려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막시밀리언이 그에게도 씻을 것을 권했지만, 땀 한 방울 나지 않은 몸을 보고는 그 말을 취소했다.

"아! 개운하군. 땀을 흘리는 재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러시다면 금방 좋아지실 겁니다."

"아니야. 가끔이니까 즐거운 것이지, 이런 생활이 계속 된다면 금방 넌덜머리를 내게 되겠지. 나는 나를 잘 안다네."

가끔씩 막시밀리언은 뭐라 대꾸하기 힘든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랬다.

멋쩍어진 군터는 술로 답을 대신했다.

"이번 일.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나? 솔직히 말해보게."

"자칫 적을 늘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초대장이 날아간 영지는 총 일곱 곳. 그 중에 코누다이안에 우호적인 영지가 둘. 중립적인 곳이 다시 둘. 마지막으로 적대적이라고까지 하기에는 뭐하지만, 비우호적임은 확실한 곳이 셋이었다.

막시밀리언은 그 중 마지막 세 곳을 노리고 병력을 움직였다. 공식적으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들여 비밀리에 양성한 병사들이었다. 군터의 손을 제법 탄 병사들이기도 했다.

"피아를 가리는 것이지.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고."

"감당이…되겠습니까?"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더라도, 결국엔 알게 될 것이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니까. 그들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차리는 것까지가 다 병사들을 움직이는 의도에 포함되어 있다.

"약한 소리를 하는군. 하지만 뭐, 이해하네.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

"……."

"허나 군터. 알아두게. 적을 낮게 보는 것이야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나, 그와 버금갈 정도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적을 높게 보는 일이야. 낮춰봐도 안 되고, 높여봐도 안 돼. 있는 그대로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하네."

"음."

적을 높여보았는가? 모르겠다. 그들의 정확한 전력을 파악하지는 못했으니까. 겉으로 드러난 전력을 보고 어림잡아 계산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막시밀리언은 그의 계산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숨기는 자가 있는가 하면, 부풀리는 자가 있기 마련이지."

"그들이 그렇다는 말씀이십니까."

"욕심이 많은 자들이야. 허나 이전의 전쟁에서 그들은 변변한 공을 세우지 못했지. 무리해서 병사들을 이끌고 나갔음에도, 얻은 것도 없이 피해만 입고 돌아왔어. 전력이 줄었음은 물론이고, 병사들을 부리는 능력이 형편없음을 알 수 있지. 그런 자들이 천 명, 아니 만 명을 지휘한들 천 명의 병사만 있다면 두렵지 않아. 하물며 위장을 하고 들이닥친다면 초반에는 방심한 적으로부터 이득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따끔한 맛을 보여주기는 충분하지."

"허면 소관을 보내주십시오. 병사 삼백만 주신다면 그들이 향후 1년 간은 성 밖으로 나오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짓밟고 오겠습니다."

"안 돼. 자네는 너무 얼굴이 팔렸어. 게다가, 이런 지저분한 일에 자네를 쓸 수는 없지. 이제 자네는 코누다이안의 무력을 상징하는 얼굴이 아닌가."

"………"

"지켜보도록 하게. 다시 태어난 코누다이안의 출정식을."

막시밀리언이 씩 웃으며 반 잔 술을 들이켰다.

*

덤펠드, 베데하린에서 일어난 소란이 바람을 타고 귀에 들어왔다.

군터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신과는 관계 없는 일이라는 듯 가볍게 듣고 넘겼다. 토벌을 위해 움직였던 두 영지의 군대가 토벌은커녕, 병력이 반 토막이 나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군적에 등록이 되지 않은, 그야말로 막시밀리언의 사병이라고 할 수 있는 군대.

수도 수이거니와, 무장의 질과 훈련 정도만 보면 대영지의 친위병들과 비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정병이다. 문제는, 이렇다 할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이 없다는 점이었는데…….

'그것도 이번 일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될 테니, 한 대 화살로 두 마리 새를 꿰었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토엔도트의 대농장이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군터는 그때까지 놓지 않고 있던 일말의 우려마저 털어버렸다.

막시밀리언은 정확하게 보았다. 그의 말처럼, 시끄러운 세 이웃은 이빨만 요란하게 드러낸 똥개들에 불과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늑대 정도는 된다 여기고 있었던 것이고.'

잘못 본 것보다도 문제였던 것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사실인양 믿고 있었던 어리석음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정도에 불과한 정보를 가지고 알고 있다 생각했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만 못하군.'

좋은 것을 배웠다. 배웠으니 이제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유념해야 할 터.

"연회 참석자 명단을 보았나?"

"예."

"자네 생각에, 내가 신경 써야 할 자가 있겠는가?"

"신경은 영주님께서 쓰시겠지요. 만일 장주님께 먼저 다가오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만 신경 쓰시면 될 것입니다."

"그렇군."

바깥에서 시끌시끌한 일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영지의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은밀하지만 한편으로는 공공연한 무력 시위가 먹혔는지, 참석 의사를 밝혀오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참석자 명단이라고 받기는 했지만, 아마 내일이면 여기에 또 이름 몇 개가 더 추가 되어 있을 것이다.

"기대 되는군."

"뭐가 말씀이십니까?"

"당일이 되었을 때, 얼마나 더 많은 이름이 쓰여 있을지 말이네."

군터가 피식 웃고는 손에 쥔 종이를 구겼다.

일요일, 월요일은 휴재입니다. 수요일에 될 수 있으면 연참으로 조금이나마 만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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