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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265화 (265/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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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프롱기우스 백작은 군단장으로서, 그의 막사는 군영의 중심에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그의 안위를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배치는, 이 뜬금없고 당혹스러운 사태를 맞아 빛을 발했다.

“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

익숙한 괴성이다. 그런데 기억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흉흉하다.

“바르바피들인 것 같습니다! 헌데…….”

“헌데? 헌데 뭐가 어쨌다는 말이냐!”

수하 무관에게 쏘아붙이는 목소리가 사납다. 프롱기우스 백작은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나태해 보일 만큼 여유로운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얼음장처럼 차갑고 사나웠다.

그 서슬 퍼런 기세를 느낀 무관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보, 보통의 바르바피들과는 다릅니다. 덩치도 크고, 움직임도 빠릅니다. 열 명의 병사가 붙어도 제지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수는?”

“정확히 파악은 되지 않습니다만, 족히 수백은 되는 것 같…….”

거기까지 들은 프롱기우스 백작은 몸을 돌렸다. 그는 곧바로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하달했고,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이 각기 병력을 이끌고 야습자들을 막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군터는 처음 사나운 포효가 들렸을 때 즉시 눈을 떴다. 위기감이 몸을 엄습하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당연하다는 듯 잠기운은 한 순간에 사라졌다.

“할렌!”

“예엣!”

어딘지 맥이 빠진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을 집결시켜라! 적습이다!”

다급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소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들려오는 고함과 비명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뒤덮는 쩌렁쩌렁한 괴성이 베이고르 군영을 혼란으로 몰아갔다.

“어디냐! 대체 어디서 공격해오는 것이야!”

앞장서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교들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분명히 적이 쳐들어온 것은 맞는데, 그 방향이 제각각이었다. 설마하니 정말로 사방을 둘러싼 것인가 싶다가도, 막상 직접 눈으로 보이는 것은 들려오는 것에 비해 그리 많지 않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적은 소수. 하지만 강하다. 아마도 소규모 최정예로 이루어진 특공. 아군은 어둠에 눈이 멀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막시밀리언은 차분하게 대응했다. 그는 곧바로 휘하 병사들을 불러 모았고 그들에게 간략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는 와중에, 때마침 군단장이 보낸 전령이 도착했다.

“코누디스 남작 각하께 아룁니다! 군단장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베로니 남작 각하와 함께 남쪽의 적을 막으시라는 명입니다!”

“잘 알겠다고 전해라. 받잡은 명을 지체 없이 수행하겠노라고.”

“옛!”

막시밀리언은 병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군영지 남쪽에서는 이미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러서지 마! 포위해라!”

크허엉!예상했던 대로, 날뛰고 있는 적들은 바르바피였다. 그런데 통상적인 바르바피와는 달랐다. 그것들은 바르바피보다 더 거대했고, 더 빨랐다. 병사들이 그 움직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장교들이 악을 써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교 한 명이 통솔하는 병력은 기껏해야 스물 남짓.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장교들끼리 유기적으로 협력을 하거나, 그 위의 상급 장교가 나서야 한다. 그런데 그 정도 직급이 되는 인물이 지금 이 군영 바깥쪽에는 없었다. 아마도 지금쯤 열심히 달려오고 있겠지.

“바르바피인 것 같지만, 상당히 다르군.”

“일전에…저런 것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음?”

군터는 설명을 요구하는 막시밀리언의 눈빛에 이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제국군이었던 시절에, 본 적이 있습니다. 단 한 번, 그때는 한 명…뿐이었습니다만. 보통의 바르바피들과는 확연히 다르더군요. 전투력도, 흉포함도.”

“뭐, 위험하다는 뜻이군.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이네만, 특별한 약점은?”

“거기까지는…모르겠습니다.”

“기대는 안 했으니 실망도 않겠네. 자, 슬슬 움직여볼까. 기병이 시선을 끌어주고 보병이 버틴다. 천천히 화살을 먹여가면서 잡아가도록 하지.”

당장 보이는 수는 100마리가 조금 안 되어 보였다. 다른 쪽에서 날뛰고 있는 것들이 더 있겠지만, 고작 저 정도 밖에 안 되는 적에게 전군이 동요한다는 사실이 군터는 우습기만 했다.

“뭉치지 못하도록 흩어놓아라!”

막시밀리언의 지시를 들으며, 군터는 휘하 기병들을 이끌고 질주했다. 스무 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 무리가 한 곳에 뭉쳐 있었다. 그 주변에는 그들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되어 보이는 병사들이 주검으로 변해 널브러져 있었다.

“비켜라!”

포위한 채 도륙당하는 병사들에게 일갈한 군터는 다급히 열리는 길을 따라 내쉬를 몰았다.

크르르

멀어지는 적들에 이를 드러내던 괴인들이 다가오는 새로운 적을 감지했다. 세 마리가 한꺼번에 땅을 박찼고, 그 중 가장 가운데 있던 한 마리가 높이 뛰어올랐다.

“흐으읍!”

온 몸에 힘이 끓어올랐다. 창을 쥔 팔에 전력이 깃들고, 주인의 뜻을 읽은 내쉬가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몸을 굽혔다.

쿵!

쏘아낸 화살처럼, 거대한 인마가 높이 날아올랐다. 이미 정점에 머물다 떨어져 내리는 괴인과 이제 막 솟구쳐 오른 인마가 부딪쳤다.

날카로운 발톱이 도끼날처럼 떨어졌다. 그에 맞춰 두꺼운 섬광이 호를 그렸다. 그 궤적은 괴인의 팔 하나를 통째로 포함했다.

푸악!잘려나간 팔의 단면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비명을 지르는 괴인이 추락하고, 군터는 코앞까지 다가온 두 마리 괴인과 맞닥뜨렸다.

채앵!한 번의 휘두름에 두 번 불똥이 튀었다. 두 마리 괴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발톱을 감싸 쥐며 뒷걸음질 쳤다.

군터와 내쉬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물러나는 적을 쫓았다.

“밀어붙여라!”

한 쪽은 기세를 얻었고, 한 쪽은 잃었다. 바르바피와 비슷하지만 다른 괴인들의 흉포함은 여전했지만 용기백배하여 한데 뭉쳐 돌진하는 기병대를 당해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흩어진 괴인들에게 보병대가 붙어 발을 붙잡았고, 그 사이 궁수들이 쏜 화살이 괴인들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순조로운 전투였다. 중간에 베로니 남작의 부대가 합류하면서는 더 속도가 붙어,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보이는 모든 괴인들을 땅에 눕힐 수 있었다.

“이거, 내가 너무 늦어버렸군. 염치도 없이 코누디스 남작의 공을 탐한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려.”

“무슨 그런 말씀을. 베로니 남작의 도움이 없었던들 이리 쉬이 일을 마칠 수 있었겠습니까.”

두 남작이 훈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변 정리도 슬슬 마무리 되어 갔다.

나중에 보다 자세히 따져봐야겠지만, 당장 대략적으로 파악되는 사상자의 수는 삼백 가량이었다. 날이 밝은 후 추가적으로 수습을 한다면 거기서 수십 정도는 더 추가가 될 듯했다.

“피해가 크군.”

보고를 들은 베로니 남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초반에 당한 피해가 큽니다.”

“대비가 안 되어 있었지요. 대체 이놈들이 어디서 기어 나온 건지 모르겠군. 분명 놈들과는 아직 제법 떨어져 있을 터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소수가 아닙니까. 다른 쪽에 얼마나 몰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얼마 되지는 않을 터. 수백 정도라면 티 안 나게 빼돌릴 수도 있었겠지요.”

“끄응. 그렇다 하나, 이 정도 전력을 이렇게 내버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더 요긴하게 쓸 수도 있었을 터인데.”

“모르지요. 달리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도.”

남쪽의 소란이 멎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쪽의 소란도 잠잠해졌다.

예상치 못한 적의 예상치 못한 야습에 베이고르군의 피해는 제법 컸다. 순수 전사자만 사백에 가까웠고, 중상자 역시 그 정도 되었다. 경상자까지 합치면 거뜬히 천 명이 넘어가니, 크고 작게 자신들의 휘하 병력을 잃은 지휘관들은 이를 갈았다. 제대로 된 전투였다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후려 맞듯 당한 것이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불만은 날이 밝았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베로니 남작에게 ‘달리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모른다’고 했던 막시밀리언의 말은 고스란히 맞아 떨어졌다.

*

“느껴지는가? 손아귀에 힘이 조금씩 빠지는 느낌이야.”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느끼고 있소. 빌어먹을. 정말이지 지독하군.”

발루아는 투덜거리는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얼굴이다. 그럴 만도 하다. 족히 이틀은 걸릴 거리를 하루, 그것도 반나절 만에 주파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꼴을 해서 칼이나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겠나?”

“걱정 마시오. 내 만약 죽는다 해도, 최소 스무 놈은 베고 죽을 테니.”

“흐음. 기대하지.”

그의 시선이 도열한 부하들에게 옮겨갔다.

그들 역시, 하나 같이 지친 얼굴이다. 평생 말을 타고 달렸던 자들이 말없이, 두 다리로 걷고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모르겠군.’

발루아는 은근히 힘이 빠지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혀를 찼다.

불과 며칠 전, 신의 저주를 받았다며 떠들어대던 휘하 전사들 몇의 목을 직접 친 그였지만 정말 이 지독한 현상에 대해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신의 저주가 있다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처음에는 말들이 쓰러졌다. 그 다음에는 전사들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언제, 무엇에 당했는지 모르는 것도 답답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죽어간다는 것은 전자와는 비할 수 없는 공포였다.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싸움터를 나섰을 때부터 평생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는 발루아조차도, 처음으로 두려움에 휩싸일 정도였다.

그래서 승부를 걸었다. 다가오지 않는, 아마도 말려 죽일 생각인 것으로 보이는 적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귀한 전력을 풀었다. 베이고르의 탐마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밀히 빼돌려 동굴 속에 재워두고, 베이고르가 인근을 지나는 시기에 맞춰 잠을 깨웠다. 설마 이런 곳에서 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지만, 어차피 제대로 통제할 수도 없는 전력인데다 이대로라면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이쪽이 끝장날 판이니 사용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딱히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조심해야 하오. 놈들이 또 무슨 괴상한 수작을 부릴지 모르는 일이니.”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상황도 좋지 않나. 적들은 밤잠을 설쳤고, 우리는 좋은 노래까지 들으며 푹 쉬었으니.”

황당하다는 시선이 여기저기서 달라붙는다. 발루아는 키득거리며 칼을 뽑았다. 그리고 베이고르의 마을에서 약탈한 말에 올랐다. 덩치는 그럭저럭 되지만, 군마로 쓰기에 적합한 놈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호사다.

“자, 가보자. 요 며칠 동안 신나게 우리를 비웃었을 놈들에게 거한 칼침 한 번 놔주도록 하지.”

두려움, 체념에 휩싸여 있던 전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들의 목소리에 조금 전까지 그들을 누르던 감정은 없었다. 가증스런 적을 앞에 두고 남은 것은 오직 분노뿐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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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의 마지막이네요. 그래도 내일도 빨간날이라 덜 아쉽기는 합니다.

모든 독자분들 곧 다시 돌아올 일상을 건강히 맞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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