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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258화 (258/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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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우리는 지금부터 서쪽으로 이동. 프롱기우스 백작의 4군단에 합류한다.”

왕도에서 소집명령서가 당도했다. 그리고 그 명령서에 따르면, 막시밀리언이 이끄는 코누다이안 군은 프롱기우스 알다미아 백작이 이끄는 3군단에 편제 되었다.

“3군단이라. 프롱기우스 백작님에 대해서는 얼핏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만, 군단장이라는 직위에 비해서는 조금 가벼운 인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말에 막시밀리언은 가볍게 코웃음 쳤다.

확실히 그렇게 보일 법도 하다. 이번 전쟁에 투입되는 군세는 총 넷. 그 중 하나는 국왕이 직접 이끌고, 나머지 둘은 공작들이 지휘한다. 지금의 말은 왕과 공작이라는, 베이고르 최고의 권력자들이 한 군단씩을 맡았으니 남은 하나는 후작이 맡아야 하지 않겠냐는 뜻이겠지.

“왕국의 후작들 중에 군사를 아는 자가 누가 있느냐.”

베이고르에는 네 명의 후작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군사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아도 이론만 읊는 수준에 불과한 자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일군을 맡긴다? 모양새는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실속은 전혀 없는, 어리석은 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 분에 대한 소문이 그리 좋지 않던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미트라스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프롱기우스 백작은 유력 귀족이라고는 볼 수 없는 자였다.

그는 굳이 분류하자면 귀족파에 속하는 자이기는 하나 정치적으로 나서서 뭔가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백작이라는 고위 귀족임에도 중앙 정계에 얼굴을 비치는 경우가 없고, 자신의 영지에만 박혀서 두문불출하는 터라 작위에 비해 이름이 잘 알려진 자도 아니었다. 사람이 음침하고 속을 알 수 없다는 소문이 다름 아닌 귀족파에 속하는 다른 귀족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는 점만 봐도 그가 얼마나 비사교적인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만약 올다미아 가문이 베이고르에서 명망 높은 무가가 아니었다면 그가 귀족파로 분류되지도 않았을 거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 분께서 크게 전공을 세우신 일도 없는 것으로 아는데, 국왕 전하께서는 무엇을 보고 결정을 내리신 것인지.”

“알아서 무엇 할 것인가. 명령은 내려왔고, 우리는 따르면 그뿐이다.”

막시밀리언은 한 마디 말로 화제를 끊었다.

“내일 바로 출진한다. 준비는 다 되었겠지?”

“옛.”

준비는 오래 전에 끝났다. 잘 훈련된 병력들부터 보급까지 부족한 점이 없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영주 막시밀리언 코누디스가 이끄는 2천 군세가 위글로우의 성문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선두에 선 영주의 옆에는 군터가 있었다.

*

“환영하네, 코누디스 남작. 하나같이 잘 훈련된 병사들이군. 굉장히 인상적이야.”

“왕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 군을 조련했습니다. 자그마한 노력을 군단장께 인정받으니 기쁘군요.”

군터는 막시밀리언의 뒤에서 군단장인 프롱기우스 백작을 볼 수 있었다.

무관치고는 조금 작은 체구를 가진 중년인은 다소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목소리는 가물어 갈라진 땅 마냥 살짝 거친 느낌이 났고, 풍기는 분위기도 음침한 느낌이었다. 백작이라는 신분을 놓고 그 자체만 보자면, 어디 가서도 인상 좋다는 말은 듣지 못할 것 같은 사내였다.

“왕국에 자네 같은 영주들만 있었다면 이번 전쟁이 한층 더 여유로웠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군.”

“별 말씀을. 현재까지 얼마나 집결했습니까?”

“열 하나가 와야 하는데 아직 넷이 오지 않았지. 모인 병력은 지금 자네가 끌고 온 이천을 합해 일만 이천이 조금 넘네.”

그렇다면 나머지 넷이 차질 없이 당도한다는 가정 하에 대략 1만 5천에 가까운 병력이 모이는 셈이다.

“솔직히 조금 놀랐네. 근자에 덩치를 좀 키웠다고는 하지만, 일개 남작이 이천의 병력을 동원하다니. 듣던 대로 수완이 좋은 모양이군, 남작.”

“과찬이십니다. 나라의 대사가 걸린 일에 여유를 둘 수 있겠습니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습니다.”

바깥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코누다이안의 병력은 3천 가량이다. 숨겨진 2천을 제한다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다는 막시밀리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프롱기우스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성스러운 신하로군, 남작. 잠시 후에 간단히 회의를 열 참이니 자네도 참석하도록 하게. 먼저 도착한 다른 영주들과도 그때 인사를 나누도록.”

“예.”

막시밀리언은 수하들을 이끌고 그의 막사로 향했다.

“군터, 미트라스. 병사들을 쉬게 하고, 혹여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잘 단속하도록.”

“예.”

“옛.”

몇 가지 사소한 명령 사항을 전한 뒤, 막시밀리언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군터와 미트라스는 막사를 나서 각기 맡은 일을 수행했다.

“할렌.”

“옛!”

말을 돌보고 있던 할렌이 군터의 부름에 달려왔다.

“병사들을 쉬게 하고, 보급품들을 진지 중심으로 옮겨라.”

“예.”

군터는 명령을 내리고 바삐 움직이는 병사들 틈을 거닐었다. 군례를 취하는 병사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면서 다른 영지에서 온 병사들의 모습도 슬쩍 살펴보았다.

‘장관이군.’

만 명이 넘는 병력이 집결해 있다. 영지별로 거리를 벌리고 주둔해 있다지만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베이고르의 깃발이 펄럭이고 병사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응?”

그런데 시선을 돌리던 와중, 이상한 것이 눈에 보였다.

병사는 병사인데, 어째 무장이며 군기가 유독 초라해 보이는 무리. 그들은 알다미아 백작 가의 깃발 아래 모여 있었다. 대략 천 명 정도 되어 보이는 병력은 주변의 다른 병력들에 비해 너무도 빈약해 보였다.

‘뭐지? 보급병인가?’

전투병이 아니라 보급품을 나르는 보급병인가 싶었으나, 그렇다고 보기에도 너무 형편없었다. 힘없이 축 처진 몰골에서 전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알다미아 백작령의 병사들이 문제인가 하기에는 그 바로 옆에, 같은 깃발 아래 주둔해 있는 또 다른 병사들은 외관과 기세가 제법 그럴 듯했다.

‘묘하군.’

신경이 쓰였지만 곧 관심을 거뒀다. 어차피 다른 영지의 병사들이다. 신경 쓸 필요도, 신경 써서 변하는 것도 없다.

천천히 군영을 한 바퀴 쭉 둘러보고 나니 지휘관(영주) 회의가 시작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기사들은 배제된, 그야말로 지휘관들만의 회의였다. 당연히 일개 기사에 불과한 군터는 해당사항이 없어 병사들, 그리고 특히 말들을 찬찬히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해는 금세 져버려 날은 어느새 어둑해졌다.

“군터 경! 영주님께서 모두 모이라 하십니다!”

“알겠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 회의가 드디어 끝이 난 모양이었다. 군터는 막시밀리언의 막사로 향했다.

곧 부름을 받은 자들이 모두 모였다. 막시밀리언은 구 바크렌 전역과 그 바깥 지역 일부까지 나온 지도를 펼쳐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북상하여 고카지를 친다.”

막시밀리언이 짚은 곳은 갈색 초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타칸 연합의 국경 도시였다.

“일찍이 제국이 요새로 쓰던 곳을 타칸 연합이 손을 봐 도시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타칸 연합과 도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정착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이들이다. 근래에 따뜻한 땅에 내려오면서 변화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여러모로 어설픈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그들이 세운 성벽은 낮고, 형편없다.”

본래 제국의 도시였던 곳을 그대로 쓰고 있는 거라면 모를까, 본래 요새였던 곳의 성벽을 헐고 형편없는 솜씨로 새로 지은 도시 따위는 우습기만 하다.

“고카지를 함락시키고, 그대로 진군하여 갈색초원에 있을 적들의 합세를 막는다.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큰 전략은 이미 사전에 논의가 되었던 것일 터. 단순히 정보 전달을 위해서라면 긴 시간 동안 회의를 이어갔을 리 없다. 뭔가 더 있을 거라고 추측하자마자 막시밀리언이 말을 이었다.

“아국의 목표는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차이라포룸을 무너뜨리는 것 것이다. 적의 왕도를 함락시키고, 대족장의 목을 베어 전쟁을 끝낸다.”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안에 쥐새끼처럼 틀어박혀서 목숨을 보존하느니 바깥으로 나와 싸우다 죽는 것을 택할 자들입니다.”

군터의 말에 막시밀리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래도 다를 건 없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목표는 적의 왕도, 그리고 대족장의 목이다. 그 둘만 취한다면 이 전쟁은 끝난다.”

목표를 세우는 건 쉽다. 그것이 거창하거나 초라한 것과는 관계없이, 툭 내던지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내느냐다.

“주력은 국왕전하께서 이끄는 1군단이다. 그곳에는 그 말로만 듣던 ‘우군’이 합류한다. 왕도를 향해 돌진하는 것도 그들이 할 것이고, 아마도 대족장의 목을 취하는 것도 그들이 될 것이다. 우리를 비롯한 나머지는 조력인 셈이지.”

“그 우군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여기까지 와서도 들은 바가 전혀 없으니…….”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은 실상 이곳에 자리한 대다수의 마음이었다. 군터 역시 아직까지 그 우군이라는 이들이 뭐하는 작자들인지에 대해서 들은 바가 전혀 없었다. 막시밀리언은 뭔가 알고 있는 듯도 했지만, 말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쩌면 윗선에서 함구령이라도 내린 것일지도 모른다.

대체 그 우군이라는 것이 뭔지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그 자들에 대한 왕국의 신뢰는 제법 대단한 모양이었다. 냉정히 말해 타칸 연합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베이고르가 자신감 있게 먼저 전쟁을 선포하고, 나아가 왕도니 대족장의 목이니 입에 담을 수 있게 하는 용기의 근원이라.

“상부의 결정이다. 뭐가 되었든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싸움만을 신경 쓰면 된다. 앞서 말했듯, 당면한 목표는 고카지다.”

*

진군 속도는 제법 빨랐다. 프롱기우스 백작은 첫날부터 무리다 싶을 정도로 서둘렀다. 자연히 뒤로 처지는 병사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는데, 프롱기우스 백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뒤처지다 못해 기어이 쓰러지는 병사가 나왔을 때에야 그는 진군을 멈췄다.

‘무식한 짓을 하는군. 이러다가 적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군터는 그가 의욕만 앞서는 멍청이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을 외관만 보고 판단하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도 프롱기우스 백작은 척 보기에도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실적도 없는 고위 귀족이 지휘권을 잡은 것도 그렇고, 그런 자가 음침한 분위기나 풍기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응?’

멀찍이 떨어진 프롱기우스 백작을 슬쩍 곁눈질로 살필 때였다. 몇몇 무관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뭐라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일견하기로는 평범한 모습이었는데, 묘한 느낌이 군터의 뒷머리를 간질였다.

이 정체모를 감각이 대체 뭘까 고민하던 군터는 곧 깨달았다.

‘썩은 내가 나는군.’

틀림없다.

절로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불쾌한 냄새. 그러면서 동시에 친숙한 냄새가 저들에게서 풍겨왔다. 그것을 인식하고서야 군터는 저들의 정체를 짐작했다.

‘하긴, 나서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국운을 건 총력전이다. 쓸 수 있는 전력을 안 끌어올 리 없다. 그것도 제법 쓸 만한 전력이라면 더더욱 아낄 이유가 없지.

‘재미있군. 어쩌면 그 흉측한 괴물 같은 것을 또 볼 수도 있는 건가.’

그것도 이번에는 아군으로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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