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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터-249화 (249/1,064)

<-- 2부 -->

드디어 주인을 잃은 영지들의 병합이 이루어졌다. 크루기스는 코누다이안과 센트리올로 찢어져 병합 되었는데, 이로 인해 코누다이안 영지는 반 배 이상 크기를 키웠다. 구 크루기스의 주도인 메르마엠 역시 코누다이안의 영토가 되었는데, 이 도시의 시장 자리를 놓고 가볍게 소란이 일었다.

메르마엠은 위글로우와 비등, 아니 오히려 조금은 더 큰 규모의 번듯한 도시였다. 비록 이제 주도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메르마엠의 관리자 자리가 막대한 이권을 다룰 수 있는 요직인 것은 여전했다. 따라서 이 군침이 도는 자리에 누가 가느냐에 여러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간혹 어떤 이들은 주도가 바뀔지도 모른다고 수군대기도 했다. 영주인 막시밀리언이 위글로우를 떠나 메르마엠에 새로 자리를 잡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곧바로 논박 당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위글로우는 솔직히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도시이기는 했다. 본래 촌구석의 어쩔 수 없이 선 도시 같은 느낌이 강했던 위글로우는 금맥이 발견 되면서, 그리고 막시밀리언의 주도 하에 암상의 거점 같은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점차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은 도시였다.

“영토가 커졌다한들, 코누다이안의 중심은 여전히 위글로우다.”

무슨 상징적인 의미를 말함이 아니다. 위글로우는 말 그대로 코누다이안의 중심에 자리해 있다. 중심에 있기에 코누다이안 전역에 고르게 영향력을 펼칠 수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는 큰 이점이다. 게다가 위글로우에는 막시밀리언이 제국의 사령관이었던 시절부터 키워온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다. 물론 메르마엠으로 옮겨 간다고 해서 그가 허수아비가 되지는 않겠지만, 위글로우에 계속 머무는 것보다는 고생스러워질 것은 분명하다.

“향간에 메르마엠의 시장 후보군으로 장주님도 거론이 되는 것 같더군요.”

“신경 쓸 가치도 없는 낭설이다.”

할렌의 은근한 말에 군터는 단호하게 답했다. 자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실제로 그리 생각했다.

굳이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군터는 자신에게 한 도시를 다스리는 재주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또한 막시밀리언은 믿을 만하다고 해서 능력도 없는 자에게 자리를 안기는 사내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다.

‘어리석은 놈들.’

당장 사람들의 입에 여러 이름들이 오르내리는 모양이지만, 그가 보기에는 메르마엠의 시장으로 갈 만한 자는 딱 한 사람뿐이었다.

‘위벨이겠지.’

막시밀리언의 총애를 받고 있고, 능력도 출중하다. 또한 본인의 의지 또한 충만할 것이다.

군터는 일전에 그와 서로 마음을 트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위벨은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했었다. 위정자로서 가진 바 재주를 써서 위민하고 싶다고 마음을.

“내 자리가 아니다.”

“그래도…혹시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메르마엠의 시장 자리에 앉는 자가 사실상 영지의 2인자가 되는 거라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습니다. 영지의 2인자라면 역시 장주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제국군이었던 시절에도 부사령관의 지위는 장주님께서 맡으셨었고……. 무엇보다 영주님께서 가장 총애하는 사람이라 하면 장주님 뿐이 없지 않습니까.”

“쯧! 내 자리가 아니라 했다. 그러니 괜한 소리 입에 올리지 말거라. 수하들이나 다른 쪽으로도 이야기가 돌지 않도록 입단속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송구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최대한 표정관리를 한다고는 했지만, 할렌은 조금 불퉁해 보였다. 하지만 더 나무라지는 않았다. 군터는 그의 심정을 다는 아니어도 일부는 이해했다.

할렌의 말처럼, 여러 사람들이 이번 메르마엠의 시장직이 영지의 2인자 자리인 양 떠들어대고 있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번 인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이다. 특히 세 명의 기사들을 따르는 이들 같은 경우, 이름이 오르내리는 당사자들보다도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마치 이번 일에 그들이 따르는 기사들의 명운이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권력을 쫓는 자들은 권력의 잔향에라도 눈이 돌아가게 되어 있지요. 또 그게 아니더라도 이번에 생긴 시장이라는 자리는 더 오를 곳 없던 장주님을 비롯한 기사들에게 생긴 유일한 승진의 기회이지 않습니까.”

할렌을 내보내고 쉬고 있는데 모페이브가 직접 차를 들고 들어왔다.

“보기 좋은 허상일 뿐이다.”“허상이라. 어찌 그리 생각하시는지 여쭈어 봐도?”

“병합 전부터 손을 썼다고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통치를 하려면 여러모로 곤란한 일들이 생기지 않겠느냐. 그것을 다 해결하고 안정화시키려면 얼마간은 일에 파묻혀 있어야 할 터. 그러니 말이 승진이지, 실은 험난하기 짝이 없는 고생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대단하십니다. 장주님의 혜안이 날이 갈수록 빛을 더해가는군요.”

“추켜세울 필요 없다. 이 자그마한 장원 하나를 다스리는 나도 이렇게 골치가 아픈데, 그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도시를 다스린다면 당연히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겠지.”

군터는 작게 한숨을 쉬며 장원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두드렸다. 오늘 아침에 도착한,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보고서였다.

“과연. 경험이라는 것은 늘 사람을 성숙시키는 법이지요.”

“말장난은 그만 둬라. 알아보라고 한 것은?”

“음. 확실히 장주님의 말씀대로인 것 같습니다. 타칸 연합에서 넘어온 자들이 위글로우 뿐 아니라 코누다이안 곳곳에서 종종 보인다더군요. 코누다이안이 이런 상황이니 다른 영지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조금씩 있을지언정, 대부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

군터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어지는 모페이브의 말을 들으며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타칸 연합의 대족장이 폭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조심스럽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족장 회의에서는 강제 이주를 거부하고 대족장을 비난하던 족장 하나가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렸다고 하더군요.”

“대단하군.”

타칸 연합은 왕국이 아닌 ‘연합’이다. 초원의 부족들이 한데 모여 만든 나라가 타칸 연합국이며, 대족장은 부족장들이 모여 세운 그들의 대표다. 비록 군터 역시 타칸 연합의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타칸 연합 내에서 족장이라고 하는 자들의 영향력이 베이고르의 영주들 이상으로 막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만고만한 소규모 부족의 족장도 아니고 족장 회의에 참석할 만큼 힘 있는 부족의 족장을, 그 자리에서 목 베어 죽여 버렸다니.

“타칸 연합의 대족장은 왕이 되고 싶은 것인가?”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들려오는 소문만 들어보면 그는 그냥 왕이 아니라 폭군이 되려는 모양입니다.”

“그런 자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모를 일이군.”

“어떻게…몇 명 정도 찾아 대령하오리까?”“그래.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군.”

호기심이 생겼다. 여러모로 그와 무관하지 않은 타칸 연합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

“메르마엠의 시장으로는 위벨 경을 임명하겠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이라면 그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이는 없겠지. 난 위벨 경이야말로 아직까지 다소 혼란스러운 메르마엠을 관리할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였다. 군터는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트라스도 담담한 반응이었다. 그 역시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으리라.

“부족한 몸에게 과분한 자리를 내려주시다니, 감읍할 뿐이옵니다. 영주님의 은혜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기대하지. 이제까지처럼 잘 해줄 것이라 믿고 있다.”

요 근래 코누다이안 정계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화두가 싱거울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이에 대해 입이 아프게 떠들어대던 자들은 아마도 허무함을 느꼈으리라.

그렇게 위벨이 메르마엠의 시장으로 임명이 된 날 밤. 군터는 막시밀리언의 부름을 받고 영주관저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늘 메르마엠의 시장이 된 위벨과 미트라스도 있었다.

“내 오늘 그대들을 이렇게 불러 모은 것은 긴히 해줄 이야기가 있어서네.”

“긴히 하실 말씀이라면…….”

막시밀리언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입을 떼었다.

“오늘 아침 일찍 왕도에서 사람이 왔었다. 조만간에…란도흐 백작이 위글로우에 도착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미트라스가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란도흐 백작이라면? 혹시 그…….”

“생각하는 것이 맞네. 왕국에 란도흐 백작이 둘은 아니지 않는가.”

미트라스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입까지 슬쩍 벌렸다. 위벨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오직 군터만이 이야기를 듣기 전과 다를 바 없이 담담했다. 란도흐 백작이라는 자를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실은 모를 수가 없다. 아무리 다른 곳,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적은 군터라고 해도 종종 들려오는 이름 정도는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란도흐 백작이라는 자는 그만큼 유명인사다. 백작이라는 작위를 가진 고위 귀족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는 왕당파의 핵심 귀족으로서 유명했다.

란도흐 백작은 말하자면 국왕의 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이다. 백작이라는 고위 작위에도 불구하고 영지가 없어 영주는 아니지만, 대신 궁무대신이라는 왕실의 고위 직책을 맡고 있다. 왕도 조정에서 국왕의 의지는 란도흐 백작을 통해 나온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그가 무슨 일로…….”

“그것까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벼운 일은 아니겠지. 무려 왕의 사자가 움직였으니까 말이야.”

왕의 사자(使者). 란도흐 백작의 별칭이다.

“이번 란도흐 백작의 움직임이 국왕 전하의 의중임은 분명하다.”

“리에론 공작께서는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으셨습니까?”

본래 후작이었던 파비우스 리에론은 이번 반도 숙청(아샤즈 테오모렌과 그 일파는 반역의 도당이 되어 일가족은 물론 친족들까지 모두 몰살을 당했다)에서 공훈을 세웠다 하여 유그 칸디시아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작이 되었다. 위벨은 왕의 행사가 아무리 은밀하게 이루어질지라도 왕국의 실세인 그가 모를 리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추측이기도 했다.

“아직이다. 그래도 란도흐 백작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뭔가가 오겠지.”

막시밀리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내가 자네들에게 이리 언질을 주는 이유는 하나다. 란도흐 백작이 무슨 의도로 오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외부의 실력자가 영지로 들어선다는 것은 거슬릴 수밖에 없는 일. 괜히 트집 잡힐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자네들이 최대한 애를 써주기 바란다.”

“명심하겠습니다.”

“물론이옵니다.”

다른 두 명과 함께 군터는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생각에 잠겼다.

‘란도흐 백작이라니. 무슨 일이지.’

뜬금없이 무언가에 휘말린 느낌이다. 란도흐 백작은 결국 대행자에 불과하다. 그를 위글로우로 보낸 것은 결국 국왕이다. 베이고르의 주인이 이곳을 눈여겨봤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체 왜? 군터는 그 연유를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자꾸 생각이 많아지는 느낌인데.’

예전이라면 란도흐 백작이 오든지, 왕이 오든지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할 일만 했겠지.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 그는 여러 가지에 대해 생각을 하곤 했다. 머리를 쓰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피곤하기는 했다.

‘오늘은 좀 더 땀을 빼야겠군.’

어제보다 혹독한 수련을 다짐하며, 군터는 이어지는 막시밀리언의 당부를 귀담아 들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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