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부 -->
후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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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글로우는 본래 작은 도시였다.
지금도 대도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반 배 이상 규모가 커진 상태였는데, 이는 막시밀리언이 영주가 되기 전부터 꾸준히 벌인 도시 확장 작업 덕분이었다.
특히 그 확장작업은 전란을 피해 온 피난민들을 수용하며 절정에 이르렀었는데, 그때 막시밀리언은 피난민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할 겸해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었다. 외성벽의 외연을 확장했고, 집들을 지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었다. 때문에 도시 외곽으로 나갈수록 어수선한 풍경이 펼쳐졌다. 어정쩡하게 들어선 집들이며, 길들은 지금 같은 밤이면 음산하게까지 보였다.
“빠져나간 것은 아니더냐?”
“아닙니다. 분명히 이쪽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미겔은 수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자주 오는 곳은 아니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부랑자들이 밤바람을 피하고자 이곳에 숨어든다는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제법 조사 좀 한 모양이군.”
“예?”
“부랑배 놈들이 이곳 주변에 도망칠 구멍을 제법 파 두었다는 소리, 못 들었느냐?”
“으음.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영리한 놈들이다. 포기는 하지 않았는데, 여차하면 도망칠 구멍도 놓치지 않는다.”
이쪽이 고양이고, 저쪽은 쥐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 쥐가 보통 쥐는 아닌 것 같다. 미겔은 허름한 외투에 달린 후드를 뒤로 넘겨 벗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와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조금이라도 귀를 더 활짝 열어두는 편이 좋으리라.
“흩어져서 찾는다. 발견 즉시 신호를 보내라.”
“옛.”
미겔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흩어진 수하들은 다섯 명씩 한 조를 이룬데 비해 그는 홀로 움직였다. 실력에 자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는 본래 혼자 움직이는 것을 더 선호했다. 혼자 움직이게 되면 그의 능력을 끌어내기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자. 어디냐.’
바람이 불어온다. 정령들이 바람을 타고 다가와 작게 속삭인다. 그들은 그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미겔은 그들의 목소리를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령들이 열을 속삭이면,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잘해야 둘 정도였다.
‘참 억울하단 말이지. 언놈은 놀고먹어도 타고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잘났는데, 타고나지 못한 놈은 백날 노력해봐야 그 반도 따라가지 못하니.’
짜증스럽지만, 이 또한 배부른 투정에 불과함을 안다. 가지지 못했다고 불만스러워하지만, 이마저도 가지지 못한 자들이 넘쳐나지 않는가. 미겔은 투덜대는 대신 어둠 속을 주시하며 불어오는 바람에 귀를 기울였다.
‘저쪽인가.’
어깨 높이 정도까지 올라간 벽에 몸을 감춘 미겔은 어렴풋이 느껴지는 기척에 즉시 땅을 박찼다. 힘껏 달려 나감에도 옷자락 밑단이 작게 펄럭이는 것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탁!
복잡한 골목을 몇 번이나 좌우로 가로지르자 거지같은 몰골을 한 한 너덧 명이 뭉쳐있는 것이 보였다.
“큭! 어떻게…….”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 흔하게 널린 부랑배가 아니라는 것은, 미겔이 모습을 보였을 때 그들이 보인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바람을 피해 숨어든 것처럼 웅크린 거지들이 날렵하게 몸을 일으키며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너무 경계할 필요 없네. 난 단지 자네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야.”
“개소리 마라. 그딴 헛소리를 믿……”
퍼억!
대표로 이야기를 하던 자의 입에 작은 칼 한 자루가 박혀 들어갔다. 그는 입으로 파고들어 뒷목까지 찌른 칼날에 말을 잇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며 쓰러졌다.
미겔은 피식 웃으며 한 손으로는 또 다른 단검을,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었다.
“믿지 않겠지. 강요는 안 하겠다.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되니까.”
“이 자식!”
남은 것은 셋. 미겔은 제일 앞에 달려드는 한 명에게 왼 손에 쥔 단검을 투척하고 뒤로 물러섰다.
좌우로 허리 높이까지 쌓은 건물 벽들이 있었다. 그 틈은 네 명 정도가 나란히 서면 운신이 자유롭지 못할 정도. 검 같은 무기를 들고 싸운다면 두 명이 싸워도 모자랄 정도로 협소한 공간이다. 미겔은 그런 지형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카앙!
빗나간 검이 벽을 때렸다. 미겔은 검과 함께 튕겨 나오는 손목에 냅다 단검을 찔렀다. 비명을 지르는 적의 품에 숨어 또 다른 칼날을 피해내고, 그를 떨쳐내려는 적을 먼저 밀어내며 허리 높이의 건물 벽을 뛰어넘었다.
“잡아!”
잡다니, 누가 누굴 잡는다는 것인가.
미겔은 비릿하게 웃으며, 따라서 넘어오는 적에게 검을 휘둘렀다. 적은 칼날은 막아냈지만 밀려서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노성을 내지르며 따라붙는다. 행동의 용의주도함과는 달리 딱히 침착한 놈들은 아닌 듯했다. 미겔은 다시 한 번 단검을 투척하고 기어이 벽을 넘어온 적의 무릎을 베었다. 근육이 끊기고, 뼈가 반쯤 드러났다.
“아악!”
미겔은 마무리하는 대신 또 한 번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면서 또 한 번 단검을 던져 시끄러운 입을 꿰뚫었다.
“이, 이놈…….”
이쯤 되자 적들도 무언가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둘이 남았지만, 한 명은 외팔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그에 반해 미겔은 상처 하나 없었다. 수의 우위 따위는 이제 아무런 이점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도 알게 되었으리라.
“주변에 동료들이 많겠지? 불러 모아라.”
“오만하구나! 좋다. 후회하지 말…….”
양 팔이 멀쩡한 사내가 이를 갈며 목에 건 호각을 꺼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오른 쪽 눈에 단검이 틀어 박혔다.
“끄아아악!”
미겔은 비명이 터지기도 전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 사내의 목에 혈선을 그었다. 그는 굵은 핏물을 흘리며 쓰러진 두 사내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아무튼 상대하기 편해서 좋긴 하군.”
검에 묻은 피를 시신들의 옷으로 대충 닦아내고서, 미겔은 다시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다시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
“으아악!”
“무슨 일이야! 브록스 놈들이냐!”
한밤의 고요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고함과 비명소리에 깨어졌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그 중 대다수는 부랑자들이었고, 일부는 칼을 든 자들이었다.
“형제들이여! 섣불리 대적하지 말고 몸을 빼라! 이곳으로 와 뭉쳐라!”
이제 은밀함은 포기했는지, 제법 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두 번째 무리와 조우하고 그들을 마무리 지었을 즈음, 미겔 역시 그 소리를 들었다.
“형제들이라. 낭만적이군.”
대개 저런 소리는 가식적인 경우가 많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입에 발린 소리들 말이다.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하는 말이고, 결속의 강화를 원하는 까닭은 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힘이 모자라니 있는 자들끼리라도 한 몸처럼 합심하여 현실을 타파해보자 하는, 그런 안타까운 몸부림.
때문일까, 저 목소리에도 절실함이 묻어났다. 그 절실함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거야 어쨌든.
‘제대로 찾은 것 같은데.’
미겔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군데군데 선 벽들을 박차며 달리자 곧 수십 명이 뒤엉킨 싸움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넓게 펼쳐라! 개싸움에 말려들어갈 필요 없다!”
형세는 불리해 보였다. 인원은 이쪽이 더 많았지만 적들은 개개인의 실력이 출중했다. 특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두 자루 검을 휘두르는 자가 인상적이었다. 그 자의 주변에 쓰러져 있는 수하들의 수만 다섯이 넘었다.
“대장!”
“물러나! 뒤로 물러나!”
감찰대원들은 미겔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거리를 벌리면서 포위망을 짰다. 악착같이 싸우던 적들은 숨을 고르기 위해서인지 따라붙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수하들을 뒤로 물리고 미겔은 앞으로 나섰다. 그와 쌍검을 든 사내의 시선이 마주쳤다.
“여어. 반갑소. 우리 흉측한 물건은 잠시 내려놓고 이야기나 합시다.”
“흘린 피가 얼마인데 이제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겠는가. 너희는 누구지? 반드레온의 개냐?”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앞으로 할 일도 있지 않겠소? 죽은 이들은 안타깝지만, 산 자들은 살아야지. 아 참! 반드레온의 개냐고 물었소? 아니오. 우리는 이곳의 주인이신 막시밀리언 코누디스 남작님의 수하들이오.”
“코누디스 남작? 그가 왜 우리를 노린단 말인가!”
사내는 반드레온의 수하가 아니라는 말에 더 노한 듯했다. 괜한 피를 흘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미겔은 고함을 지르는 사내에게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인상을 찌푸려 보였다.
“왜냐니? 코누디스 남작님의 땅에 수상한 자들이 대거 들어왔는데, 주인된 입장에서 당연히 살펴볼 수밖에. 그러는 그대들은 누구요? 어찌하여 이곳에 있지?”
“…….”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나 역시 아쉽소. 하지만 일을 이렇게까지 만든 데는 그대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군.”
“소용도 없는 이야기는 이쯤 하지. 결착을 봐야 한다면 미루지 않겠다.”
“급하군.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는 괜한 피를 흘리고 싶지 않소. 지금이라도 우리가 그대들과 싸워야 할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되면…이쯤에서 물러날 수도 있겠지.”
“으음.”
“난 그대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 해줬소.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최소한의 성의 정도는 보여주는 게 어떨지?”
사내는 인상을 찡그렸다. 잠깐 주변의 수하(로 보이는)들을 돌아본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떼었다.
“우린…케일리스 볼드 남작님의 수하들이다.”
“케일리스 볼드? 그렇다면…소문의 그 저항군인가.”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간악한 반드레온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지. 하지만…그대들은 결국 토벌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랬지. 우리는 놈에게 패했다. 하지만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야.”
“흐음. 좋아. 그렇다면…그대들이 이곳에 온 건 모렌스 남작을 치기 위해서인가?”
“그래.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 이곳에서라면 브록스에서보다는 놈의 호위가 옅어질 테니까.”
“그럴듯하군.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지만.”
반드레온이 저항군의 칼에 맞아 죽건 말건 상관은 없지만, 그것이 코누다이안 영지 내에서라면 곤란하다. 특히 영주의 손님으로서 영주성에 온 시점에 일이 벌어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야기는 다 했다. 이제…결착을 보도록 하지.”
사내가 두 자루 검을 고쳐 쥐었다. 서늘한 예기가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 작품 후기 ==========
군터는 어느 정도 수준이냐라... 무력 수준을 물으신 거겠지요? 칸젤을 들었다는 전제 하에, 대략 A급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범인 - ~F
병사 - ~E
정예병 - ~D
숙련 무인, 특수 정예병(예 : 바르바피) - C~
달인 - B~
영웅 - A~
전설적인 - S~
알아보기 쉬우시라고 이렇게 등급표처럼 올렸습니다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같은 등급 내에서도 +-로 실력이 나뉠 수도 있고, 전장 및 상황에 따라 차이를 뒤집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포라칸의 경우 A+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재의 군터는 칸젤을 들어도 그보다는 조금 부족한 수준입니다.
내일 연재는 자정이 아닌 오전이나 정오 즈음에 올라갈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